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97화 (97/263)

< 천재의 두 얼굴 (2)>

“시후야. 너 혹시 블랙소울 팬이냐?”

“왜? 이상해? 나 블랙소울 팬클럽 1기 멤버다. 최애는 혜수 님이지.”

“혜수 님?”

그의 눈은 마치 성기사처럼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마치 예루살렘으로 원정을 떠나는 크루세이더(십자군) 같은 표정이랄까?

그런데 왜 이렇게 당당해? 유정 씨랑 완전히 정반대잖아?

아니지. 오히려 더 잘됐다. 이렇게 되면 시후를 꼬시기 훨씬 쉬울 것 같은데?

나는 인상을 펴고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시후는 놀란 표정을 수습하고 다시 평소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너 걸그룹···. 아니 아이돌 좋아하냐?”

“이준형. 너 지금 블랙소울을 일반 걸그룹으로 분류해 놓은 거냐?”

“응? 일반 걸그룹이 아니면 뭔데?”

“세계 최고의 걸그룹이자 혁명!”

“뭐?”

“그리고 힙합을 베이스로 최고의 퍼포먼스를 펼치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역대 최강의 걸그룹이지.”

나는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고 뜨악한 표정을 짓고 말았다.

‘이 녀석···. 너무 어려운 글만 써서 그런가? 글 쓰는 스트레스로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좋아하는 주제가 나오자 옳다구나 하면서 줄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자식이 어디서 감히 공자 앞에서 문자를 쓰는 거야? 업계 전문가 앞에서 참교육 좀 당하고 싶은 건가?

따끔하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참기로 했다. 솔직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내가 전업 웹소설 작가 시절 개인적인 일로 멘탈이 나갔을 때 나를 위로해주던 것은 텐뮤지스 뿐이었으니까. 물론 지금은 해체한 상태였지만···.

“시후야. 너 글 쓸 때 스트레스가 많은 모양이구나. 그걸 덕질로 푸는 거야?”

“·········.”

그는 내 질문에 입을 다물고 빌딩에 걸린 나유정의 거대한 광고를 보고 다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이 녀석 눈빛이 좀 수상하다.

“나유정···. 이준형···.”

“뭐, 뭔데?”

“준형이 너 블랙소울이랑 친하냐?”

김시후는 미간에 잔뜩 힘을 준 체 나에게 질문했다.

“친하냐고···.”

“시끄러워 인마. 목소리 좀 줄여. 솔직히 친하다고 하기엔 좀 이상하지. 유정 씨랑 친하지 나랑은 뭐···.”

“유정 씨랑 친하다고? 그런데 아까 집에서 뭐 어쩌고 하던데?”

“아···. 그건 유정 씨 집에서 다 같이 나만의 세계를 본 적 있어서 그래.”

“나만의 세계? 그거 밤 11시 다 돼서 하는 거잖아? 사적으로 밤에 그렇게 드라마를 보는 건 친한 사이끼리 하는 거 아냐?”

“글쎄? 그렇게 이야기하니 그런 거 같기도 하고···.”

사실 내가 혜수 씨를 제외하곤 블랙소울 멤버들과 큰 친분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었지만 시후에게는 일부러 애매하게 말을 했다.

“계약할게. 여기서 계약서 쓸까?”

김시후가 갑자기 태도를 돌변해 나랑 같이 일을 해보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사업은 다르다며?”

“망해도 네가 망하는 거잖아? 나는 그냥 작가로 계약하는 거지?”

“맞아. 넌 소속사가 있는 작가가 되는 거고···.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내가 망할 일은 없어.“

“알았으니까 한다고···.”

그는 뭔가 자세히 듣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뭐···. 그래 잘 생각했다. 나중에 지금 한 결정이 옳은 선택이었다는 걸 알게 될 거야.”

김시후는 무슨 망상을 하고 있는지 고개를 과하게 끄덕이고 있었다.

‘두고 봐라. 내가 명예는 물론이거니와 돈도 많이 벌게 해줄 테니. 좋은 콘텐츠만 뽑아봐. 넌 그 특유의 신춘문예식 글쓰기만 버린다면 충분히 대성 가능해.’

김시후는 문장력이나 감수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상상력도 꽤 좋은 편이었다.

등단 후 쓴 첫 작품은 비록 판매가 저조했지만, 꽤 괜찮은 소재로 글을 쓴 걸 확인했다.

‘그래도 아우라 체크는 해봐야겠지?’

나는 아우라 스카우터로 그의 능력을 확인했다.

‘크···. 역시···. 보라색 아우라가 강렬하구만?’

“준형아. 이제 내가 뭐 어떻게 해야 되냐?”

“잠시만 기다려. 나 곧 회사 그만두고 독립할 거야. 내가 연락해줄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끄덕끄덕···.

시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재차 질문했다.

“블랙소울은 개인적으로 어때? 착하니?”

“야···. 이 새···. 그걸 내가 어떻게···.”

나는 그에게 짜증을 내려다 급히 입을 다물었다. 마치 어린아이와 같은 순수한 표정이랄까? 이제 같은 식구인데 화내서 뭐하겠는가.

“멤버들 전부 다 자세히 알진 못하고···. 혜수 씨는 착한 거 같더라. 연기 쪽도 상당히 관심 있어 하길래 이야기를 좀 해봤지.”

“그래? 역시 혜수 님은 천사였군.”

“·········.”

잠깐! 내가 언제 천사라고 했지? 그냥 착하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데 혜수 님이 연기에 관심이 있다고? 이건 팬들도 모르는 건데···. 정말이냐? 왜 너랑 그 이야기를 하는 건데?”

“너 내 사회적 지위를 망각하고 있는 거 같다? 나 이준형이야. 연속으로 드라마를 초대박 낸 사나이. 차기작 이야기를 살짝 흘렸더니 거기 출연하고 싶다더라.”

“웃기는군. 그게 가능할 거 같아? 지금 블랙소울의 인기가 사상 최대란 걸 모르는 모양인데···. 드라마를 찍으려면 최소 몇 개월이고···. 스케줄상 그게 되겠냐?“

“아···. 자식···. 쓸데없이 날카롭네. 사실은···”

나는 시후의 끝없는 질문에 사실을 다 털어놓고 말았다. 일단 뮤지컬 드라마나 영화를 차기작으로 생각하고 있고 혜수가 출연한다고 가정했을 때 일정을 고려해서 드라마보단 영화로 가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출연을 위해 YN 엔터 대표와 협상

을 해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 해줬다.

“그래. 좋은 생각인 거 같다. 근데 그 차기작이라는 거 나 좀 볼 수 있냐?”

“그거 써 놓긴 했는데 그냥 웹소설 스타일로 쓴 거라 대본으로 다시 만들···”

어라? 갑자기 김시후 앞으로 꽃길이 활짝 열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그는 신춘문예를 각기 다른 세 작품으로 뚫어버린 미친 필력의 소유자로 그 작품 중 하나가 한민족 일보의 시나리오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보내 줄 수 있는데···. 너 혹시 내가 보내 준 소설을 시나리오로 만들 수 있겠냐?“

작가로 내 요구는 약간 무례한 요청일 수도 있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그의 의견을 타진했다. 이렇게 되면 원작 이준형, 극본 김시후가 되는 거다.

“이거 혜수 님 출연하는 거 확실하지?”

“그렇다니까?”

뭐···. 100% 확정 된 건 아니지만···.

“한번 해볼게. 혜수 님 일인데 내가 손을 놓고 있을 순 없지. 너 보니까 이것저것 하느라 바쁜 거 같던데 시나리오 작업 개판 칠까 봐 겁난다.”

“개판이라니···. 내 피 같은 돈이 걸렸는데 그러겠냐?. 일단 내가 내일 톡으로 보내 줄게.“

“오늘···.”

“아이 씨···. 그래 알았어. 인마.”

우리 사이엔 잠시 적막이 감돌았다. 강력한 우군을 얻었지만 뭔지 모르게 찝찝하다.

‘이 광적인 집착···. 설마 김시후 이 녀석 모태솔로인가?’

분명 대학 다닐 때 누구랑 사귄다는 걸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내가 왜 그를 고고한 학이라고 표현했겠는가?

그 고고한 학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하는 중이었다.

‘학은 십장생 중 하나로 일부일처제에 부부간의 사랑도 지극하다지?’

학은 그렇게 옛날 그림이나 병풍을 보면 꽤 자주 등장하는 편이었다. 마치 반쪽을 애타게 찾아 헤매는 수컷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럽기 그지없었다.

‘음···. 내 코가 석 자인데 뭐···.’

“시후야. 이제 들어가자. 너무 자리를 오래 비운 거 같다.

“먼저 들어가라. 나 담배 한 대 더 피우고 들어갈게.“

“그래. 작작 좀 피워라. 건강에 안 좋다.“

나는 옷깃을 여미고 몸을 돌려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차기작 시나리오는 시후에게 맡기면 되겠네. 녀석의 필력은 믿을 만하지. 암···.’

이제 하나둘씩 인재가 모이는 것 같다. 확실히 모든 일은 차근차근히 해나갈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통곡의 벽 김시후의 이상형이 블랙소울의 혜수라니···. 이거 이어질 수 있겠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쯧쯧···. 꿈도 크구나. 뭐 내 알 바 아니니까.”

입구를 열고 들어가는데 로비 휴게실에서 동기 두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게 보였다. 문창과 여자 동기들이었는데 답답해서 잠시 나온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본 동기들이라 잘 지내는지 물어보려고 가까이 가는데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야···. 세상사 어떻게 될지 진짜 모르겠다. 웹소설이나 쓴다고 비리비리하던 이준형이 저렇게 될 줄 진짜 몰랐어.”

“그러게. 나도 솔직히 어이가 없더라. 나는 마귀 할망구 밑에서 죽을 둥 살 둥 보조작가로 경력 쌓고 있는데 누군 유명 여배우 등에 업혀서 아우토반을 그냥 시속 300km로 달리고 있네.”

“최하나 작가 아직도 그렇게 히스테리 심하니?”

‘응? 최하나 작가? 유정 씨랑 친한 최하나 작가 말하는 건가?’

“그 마귀 할망구 요즘 잘 나가다가 시청률이 고꾸라지니 우리를 아주 미치게 만들더라. 그게 우리 탓이야? 메인 줄거리가 별론데 뭐 어쩌라고! 이제 그 아줌마도 감 떨어졌어.”

“야! 그 아줌마가 잘 돼야 너도 기회를 잡을 거 아냐?”

“아···. 몰라. 짜증 나니까."

"쯧쯧···.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네."

"아 맞다! 몇 달 전에 할망구가 나한테 혹시 이준형 아느냐고 물어보더라.“

“왜?”

“그게 나유정이랑 같이 만났다고 하더라고···. 거기서 봤는데 얘가 괜찮은 거 같던데···. 어쩌고저쩌고···. 듣는데 짜증 나서···.”

“왜 짜증 났는데?”

“마귀 할망구가 갑자기 둘이 잘 어울린다는 둥 헛소리를 하잖아. 나유정이 미쳤어? 이준형이 가당키나 해?”

“그건 좀 그렇지.”

“아무튼, 저번에 노친네가 자기 SNS에 ‘나만의 세계’ 재밌다고 칭찬했는데 아무래도 지금 보니까 그때 보니까 나유정이랑 돌아다니면서 여기저기 로비했나 봐.”

“헐···. 무슨 로비하러 매니저로 들어갔다니? 어머나 세상에···. 이거 스릴러물 아냐?”

“암튼 그래. 하아···. 내가 이러려고 보조작가로 들어간 게 아닌데···.”

‘허···.’

드라마 잘 봤다고 자기 작품 좀 봐줄 수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던 동창이었다. 아까는 사람이 많아 별다른 이야기를 못 해서 밖으로 나온 김에 말이라도 몇 마디 나누려고 했는데 전과 다르게 안면을 싹 바꾸고 없는 소문을 지어내고 있었다.

‘와···. 진짜 사람 불신하게 만드네.’

아무리 이쪽 업계가 시기, 질투가 일상다반사라지만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정말 세상에는 꼬이고 꼬인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이런 소리를 들으니 힘이 쭉 빠진다. 이러니 연예인들이 정신병에 걸리는 거 아니겠는가?

앞만 보고 달려가기도 바쁜데 이런 소리나 듣고 멘탈 깨져 봐야 나만 손해였다. 한숨을 내쉬고 그냥 발걸음을 돌리는데 김시후가 정문으로 들어오며 나에게 소리를 쳤다.

"이준형! 안 들어가고 뭐 하냐?

시후는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자 무슨 일인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 피웠냐? 들어가자.”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들기며 방으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때였다.

“저기···. 준형아. 아까 내 작품 봐준다고 했잖아. 혹시 메일이나 전화번호 좀 알려줄래?”

최하나 작가 밑에서 보조작가를 하는 동기였다.

그냥 아무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생글거리는 얼굴을 보니 혈압이 훅 치솟았다.

“마귀 할망구한테 봐달라고 하는 게 어때? 나 같은 로비스트가 뭘 알겠어?”

“뭐?”

“나는 앞뒤가 다른 인간들하고 상종 안 한다. 내가 충고하는데 입 가볍고 남 험담하고 다니는 사람치고 성공하는 사람 못 봤다. 잘 생각해봐.”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언제 그랬다고···.”

역시 그럴 줄 알았다. 거짓말도 밥 먹듯 하네.

“됐고···. 이상한 소문 돌면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네 앞길을 막을 테니까 처신 똑바로 해라.”

“아니···.”

“가자. 시후야.”

시후는 영문도 모른 체 멀뚱멀뚱 눈만 껌뻑이고 있었다.

‘하여간 검은 머리 짐승은 믿을게 못 된다니까?’

*  *  *

나는 상쾌하지 못한 기분으로 동창회를 마치고 집에 도착했다. 기분도 좀 그렇고 해서 TV를 보고 있던 여동생과 농담 따먹기를 하며 용돈을 투척했다.

“오! 내 삶의 한 줄기 빛이시어. 이준형 선생님. 커피라도 한잔 드릴까요?”

“좋지. 오랜만에 예쁜 동생이 타주는 커피를 한번 마셔볼까?”

그렇게 거실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휴대전화로 기사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고당 출판사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

“어? 대표님. 이 늦은 시간에 어찌한 일이십니까? 전자책은 잘 나가고 있겠지요?”

“하하···. 물론이죠. 제가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드린 이유가 있습니다.”

“뭔데요?”

“놀라지 마세요. 일본의 한 출판사에서 작가님 작품을 출간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네? 정말요?”

아니! 이게 웬 떡이란 말인가? 일본 출판사에서 내 책을? 갑자기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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