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재의 두 얼굴 (1)>
밖으로 나가보니 화산회관 정문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시후의 모습이 보였다.
“담배 피우냐?”
“그래.”
시후는 항상 그랬다. 병약 미소년 같은 이미지인데 왠지 모르게 행동에 카리스마가 있달까? 나는 행동보다는 외모와 덩치에 카리스마가 느껴지는(?) 타입이다.
“날씨가 이제 쌀쌀하네?”
“한 대 줄까?”
“아니···. 나 담배 끊었어.”
“이 좋은 걸 안 피운다고?”
“좋긴 인마. 담뱃갑에 인쇄된 사진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후···. 멋지네.”
멋지다니? 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다.
“무슨 소리야?”
“저거···.”
그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까딱하면서 전면을 가리켰다.
“아아? 난 또 뭐라고···.”
화산회관 앞 높은 빌딩에 거대한 나유정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타이트한 민소매와 레깅스를 입고 열심히 러닝을 하는 그녀의 건강한 모습이었다. 타고난 몸매에 빡센 운동으로 다져진 예술적인 육체였다.
약간 야한 차림새지만 자랑스럽게 온몸을 드러내고 있는 나유정이었다. 그녀는 저런 멋진 모습을 얻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고 세계에서 제일 잘 나가는 스포츠웨어 브랜드 중 하나와 스폰서 계약을 맺었다.
그녀가 연기한 캐릭터의 메가톤급 후폭풍을 감지라도 했는지 3년간 전속모델 계약을 제시했다. 그 엄청난 규모의 계약에 회사는 당연히 오케이!
워낙 엄청난 금액이라 김인환 대표가 직접 손을 떨며 사인을 했다는 후문이었다. 유명 스포츠 스타의 계약과 동일한 형태였다.
그들의 조건은 타사의 스포츠웨어를 절대 입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내가 사준 캐릭터 추리닝만 입는 분이시라 그런 조건은 아무 상관 없었다. 오히려 브랜드 광고모델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해?”
내가 잡생각을 하는 사이 그는 담담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친하냐고? 당연하지. 너 내가 유정 씨 매니저인 거 모르냐?”
“요즘은 매니저 안 하지 않아? 너 이제 그런 거 할 위치가 아니라던데?”
“뭐···. 필요하면 가끔 매니저로 뛰지. 오늘도 같이 있었는데?”
“응? 정말?”
갑자기 그의 동공이 커지기 시작했다.
“왜···. 너도 유정 씨 팬이냐?”
“후후···.”
그는 대답하기 곤란한지 담배 연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있었다. 병약 미소년 같은 시후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항상 적응이 안 됐다.
“넌 유정 씨의 실체를 몰라서 그래 인마.“
“왜···. 나쁜 사람이냐?”
“아니···.”
“그럼 재수 없어?”
“그, 그것도 아닌데?”
“그럼 뭔데?”
나쁜 사람은 아니고 착한 사람, 재수 없는 게 아니고 재미있는 사람이다. 단지, 심각한 남자 아이돌 덕후이며 미디어에 나오는 것과 달리 약간은 더럽고 심각한 건어물녀라는 사실이다.
“그건 비밀이야.”
“후후···. 그럼 별문제 아니네. 나쁘지도 않고 재수가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저렇게 예쁘다? 뭐가 문제야?”
어라? 듣고 보니 그럴듯하다. 뭐야. 나 설득당하는 건가?
“그건 그렇고···. 드라마 진짜 재밌더라.”
시후는 나유정 사진을 보다가 나에게 시선을 돌렸다.
“훗···. 그거 고맙네. 칭찬이냐?”
“재밌더라고. 그런데 슬기로운 덕질생활? 그건 별로였어. 내 취향하곤 백만 광년쯤 떨어져 있달까? 그렇게 예쁜 여배우가 남자 아이돌 덕후라니 그게 말이 되냐?”
“크흠···. 뭐 취향에 안 맞으면 안 맞는 거지 왜 유정 씨를 깎아내리냐?”
“응? 갑자기 뭔 소리야?”
아차···.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한 거야? 방금 내가 유정 씨의 비밀을 자백한 꼴이다.
“아···. 그게···.”
“너도 참 대단하다. 아직도 작품하고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구나? 얼마나 작품에 빠져있으면 그러냐? 솔직히 학교 다닐 때 무슨 환상 문학 어쩌고 하다가 웹소설을 쓴다길래 너한테 관심이 없었거든.”
“그랬는데?”
“나만의 세계를 보고 생각이 완전히 바꿨어.”
“그냥 운이야 인마···.”
갑자기 그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졌다.
“운이라고? 감동은 절대 운으로 줄 수 없어. 엄청난 고민과 퇴고의 산물이지. 인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얼마나 치열하게 생각했느냐?! 이런 걸 고려하지 않았다면 나올 수 없는 거야. 그런 것 없이 감동을 주는 건 대자연밖에 없지.”
오오···. 뭐야. 이거 내가 듣고 있어도 되는 칭찬인가? 뭐지? 천재 김시후가 내 작품을 이렇게 치켜세워준다고? 그런데 대사 뭐야. 대자연밖에 없다? 음···. 이건 어디 가서 써먹어야 하겠는걸? 역시 김시후.
그는 담뱃재를 손가락으로 털더니 휴지통 모래위에 비벼껐다.
“매력적이고 역동적인 캐릭터,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이야기, 그리고 우리 사회의 추악한 민낯까지 드러내는 사회 고발까지···. 난 네가 쓴 작품이 정말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준형아.’
“고, 고맙다.”
‘아···. 이거 얼떨떨하네.’
대학 시절 절대 넘어설 수 없었던 존재가 이런 말을 하다니···.
“솔직히 그 드라마를 보고 질투심이 났어. 이게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구나! 나는 왜 이렇게 못쓰지? 내가 지금 등단했다고 어깨에 뽕만 찬 거 아닐까? 사람들이 읽지도 않는 글을 써놓고 왜 이런 좋은 글을 안 읽느냐고 한탄만 한 게 아닐까? 별의별 생
각이 다 들더라.”
으음···. 시, 시후야. 너 너무 심각한 거 아니냐? 솔직히 내가 그 정도는 아니지. 오버도 이런 오버가 있나? 너 이런 애였어? 다른 작품으로 동시에 세 군데 신춘문예를 뚫어버린 우리 과 최고의 글쟁이가 너무 약한 모습을 보이는데?
“뭐···.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말리진 않겠지만 내가 봤을 땐 글을 쓰는 건 너도 천재 아니냐?”
솔직히 시후가 상업적인 것을 쓴다는 전제로 내가 조금만 옆에서 봐준다면 엄청난 작품을 쏟아낼 수 있을 거다.
이런 인재를 놓칠 수 없다.
그는 내가 본 천재 중 한 명이다.
나는 넌지시 그의 생각을 떠보기로 했다.
“시후야. 너 혹시 네 작품으로 나처럼 영상화하고 그래 볼 생각 없냐?”
“없냐고? 당연히 있지. 말해서 뭐하겠냐. 내가 그간 너무 등단 스타일을 고집했던 거 같아. 지금 생각이 완전히 확 바뀌었어. 특히 웹소설도 그렇고···.”
“웹소설?”
“응···. 한번 써보려고 했더니 잘 안되더라. 뭔가 내 글이 죽어가는 느낌이라 도저히 못쓰겠어.”
“너 웹소설 읽긴 읽어봤냐?”
“아니···. 별로···. 인기 있는 작품 한두 개 봤나? 아! 순위권 작품들 초반만 조금 봤어. 그런데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 같더라고···.”
“그런데 막상 써보니 안 되지? 필력도 죽는 것 같고 재미도 없고···.”
“맞아.”
“후후···. 그건 네가 장르 특유의 감성을 모르기 때문이야. 그리고 넣으면 안 되는 소재나 금기사항도 많아. 물론 그걸 머리로 안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느냐? 그것도 아니야. 잠깐! 그런데 내가 너한테 왜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냐?”
“됐다. 난 웹소설 말고 드라마 같은 거 해보고 싶다. 너처럼···.”
“좋네···. 내가 조만간 회사를 하나 차릴 생각인데 들어올 생각 없냐?”
“무슨 회사? 네가 회사를 차린다고?”
“쉿···.”
나는 손가락으로 입을 막는 시늉을 했다.
“조, 조용히 해. 인마. 여기서는 자세히 이야기하기 힘들고 나중에 만나서 깊은 이야기를 나눠보는 게 어떠냐?”
“왜···. 스카우트하려고?”
“하고 싶다며? 난 창작자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지원을 해서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 소설이나 드라마 그리고 영화까지···. 아···. 그리고 소설 웹툰화도 진행해보고 싶고 나중에는 배우 매니지먼트까지 해서 아이돌도 키우고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로 만들어
갈 생각이야.”
“흐흐···. 너도 좀 막무가내에 돌아이 같구나?”
“응? 칭찬해줄 때는 언제고 갑자기 돌아이라니?”
“아무리 네가 요즘 잘 나간다고 하지만 그게 가당키나 해? 어떻게 그걸 혼자 다 한다는 거야?”
“혼자는 무슨? 같이 할 사람들 지금 물색하고 있지. 여러 분야로···”
“작품 제작에 아이돌까지? 흐음···. 글쎄다···. 난 아직 모르겠다.”
이 녀석···. 글만 쓸 줄 알지 지금 판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네? 아 맞다. 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모르지.
아마 내가 어떻게 불패의 신화를 만들어갈지 감이 안 올 거다.
“여기서 자세히 설명해줄 순 없어. 하지만 너한테 별로 해가 되는 건 없을 거야. 내가 나중에 연락해줄 테니까 일단 하는 거나 마무리 지어봐.”
“흐음···.”
시후는 뭔가 확신이 없는 것 같았다. 나라도 좀 망설였을 거다. 이런 이야기는 그냥 담배 피우러 나왔다가 할 말은 아니었다.
하여간 이 고집쟁이.
나는 과감히 시후와 어깨동무를 했다. 김시후 너 왜 이렇게 앙상하냐? 혹시 생활고라도 있는 거니? 아니면 스트레스로 이렇게 된 거니?
일단 얼굴에 철판을 깔고 팔에 힘을 주었다.
그의 마음을 돌려서 내 사단에 집어넣고 싶었다. 나는 그를 도망가지 못하게 하고 귓속말을 했다. 누가 보면 오해할 만한 자세였다.
“이건 너만 알고 있어라. 너도 작품성 있는 글도 쓰고 돈도 벌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잖아? 솔직해져 봐. 나 이번 작품 하면서 번 돈만 거의 이십억이 넘어.”
“이, 이십억?”
드라마 원고료와 책 인세가 이십억이 아니라 거의 삼십억에 육박하고 있었지만, 너무 놀랄까 봐 금액을 좀 줄였다. 전자책의 판매가 조금 줄긴 했지만,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서 금액이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그래. 어때 시원하지? 나랑 같이하면 너도 그렇게 될 수 있거든?”
“파, 팔 좀 풀어봐. 준영이 네가 그렇게 벌었다니까 이해는 하겠는데 사업은 또 다른 문제잖아.”
아···. 이 자슥···. 정말 까탈스럽네. 쉽지 않구만.
내가 한숨을 푹 내쉬는데 어디서 많이 본 자동차 한 대가 가게 앞에서 멈췄다. 그러더니 차 유리가 스르륵 내려가며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준형 씨? 뭐에요. 동창회 한다는 곳이 여기예요? 지나가다가 어디서 많이 본 전봇대가 서 있길래 깜짝 놀랐잖아요.”
“나, 나유정 씨?!”
나는 대답 하려다 내 팔뚝에 끼어있는 시후가 말을 더듬으며 깜짝 놀라자 나도 모르게 팔을 풀고 말았다.
“응? 준형 씨 동창이세요?”
“네. 아, 안녕하세요. 준형이랑 동창입니다.”
허허···. 연예인 앞이라 그런가? 얘가 긴장을 다 하네?
“네. 안녕하세요. 우리 준형 씨 잘 좀 봐주세요. 워낙 칠칠치 못해서 항상 걱정이네요.”
“으응? 말도 안 되는···. 저기요?”
“네···. 제가 교육 좀 잘해 놓겠습니다.”
“쯧쯧···. 혹시 연습 이제 끝났어요? 대리 기사 필요한 거 아니죠? 저 술 마셨습니다만···.”
“됐거든요? 우리 이제 댄스 연습 끝나고 리나가 아는 맛집으로 가고 있어요. 예약했는데 늦었거든요?”
갑자기 뒤쪽 차 유리가 내려가며 리더인 혜수와 메인보컬인 리나의 얼굴이 나타났다. 그녀들은 얼굴을 빼꼼 내민 채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작가님. 안녕하세요~ 자주 뵙네요?”
“혜수 씨랑 리나 씨도 잘 계시죠? 우리 모지리 유정 씨 좀 잘 부탁드릴게요. 어때요? 춤은 잘 따라가고 있나요?”
“킥킥···. 저번에 유정이 언니 집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언니가 춤 실력이 보통이 아니에요. 정말 우리 멤버로 넣고 싶을 정도라니까요?”
“푸하하···. 리나 씨 사회생활 잘하시겠네요. 유정 씨가 듣고 있다고 그렇게까진 하실 필요 없어요.”
“정말인데···”
“리나야. 그만해. 준형 씨 춤알못이잖아. 너희들 저번에 준형 씨 춤추는 거 방송으로 보고 빵 터졌다면서?”
“그 이야기 좀 그만 꺼냅시다.”
빵빵···.
뒤에서 차가 왜 안 움직이냐고 경적을 울려댔다.
“안 되겠다. 우리 이제 갈 테니까 나중에 집에서 봐요. 그럼 동창회 잘하시고···”
“준형 씨 친구분도 나중에 언제 한번 봬요. 그럼···.”
그들은 유리를 올리고 쌩하니 사라졌다.
에잉···. 여기서 나유정을 만나다니 강남 바닥이 좁긴 좁네.
정신을 차리고 옆을 돌아보니 시후가 떠나간 유정 씨의 차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야. 뭘 그렇게 보고 있어?”
“이게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
응? 뭐야 이 자식? 눈이 왜 이래?
“야 인마. 정신 차려! 미쳤어? 왜 이래? 팔 안 놔?”
“오오! 실물 너무 예쁘다!”
“아니 이 자식이 진짜 왜 이래? 너도 나유정 빠냐?”
“유정 씨?”
내 말을 들은 김시후가 갑자기 정색하더니 나를 쳐다봤다.
그는 고개를 돌려 떠나간 나유정의 차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넋이 나간 사람처럼 자신의 주머니를 뒤져 휴대전화를 꺼내 잠금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는게 아닌가?
시후의 휴대전화 잠금화면에는 어디서 많이 본 여자의 얼굴이 나타났다.
‘헉···. 이런 미친···. 블랙소울 혜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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