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조심 좀 합시다 (1)>
[대단원의 막을 내린 드라마 ‘나만의 세계’ 성공 요인 분석]
[드라마에서 풀지 못했던 한승호에 관한 이야기를 일기 형식의 소설로 담담하게 풀어놔···.]
[JTVC 나만의 세계 최종화 40.2%로 종영. 영화 같은 액션과 결말에 시청자들의 찬사가 이어져···.]
JTVC 금토 드라마 '나만의 세계'가 지난주 토요일 충격적인 대미를 장식했다. 최종화에서 세 남녀의 무너진 신뢰와 엇갈린 사랑, 복수로 모든 관계가 파국으로 치달았다.
불륜과 사회 부조리, 빈부 격차를 다룬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찬사를 받은 나만의 세계는 화제성과 시청률 그리고 통렬한 사회적 메시지까지 모두 담은 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부부 관계에 대한 화두, 강렬한 캐릭터를 잘 살린 배우들의 명연기, 영화 같은 스펙타클한 액션, 감독을 비롯한 제작진들의 뛰어난 연출능력이 돋보인 작품이었다.
그리고 시청률이 모든 것을 증명했다. 30% 가까이 나온 전작? (전작이라고 부르기에도 모호한)을 훌쩍 뛰어넘는 시청률로 JTVC 역대 최고 시청률을 갈아치웠다.
또한, 각종 화제성 지수를 1위를 달성하고 검색 포털에서도 상위 검색어를 대다수를 점령했다. 시청자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기사나 하이라이트 동영상 조회수, 각종 커뮤니티와 SNS 글 수도 1위를 싹쓸이··· <중략>
한편, 이 작품을 집필한 이준형 작가는 신인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다는 반응이다. 두 작품을 연달아 히트시킨 올해 최고의 신인일 뿐만 아니라 차기작에서 최고의 몸값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사실 그가 신인이라고 하기엔 글을 써온 시기가 길다는 문제점이 있는데 그가 웹소설 작가였다는 점이 작가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드라마 작가들은 웹소설은 웹소설일뿐 드라마로는 신인이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또한, 현재 출판 시장의 태풍의 핵인 '어느 살인자의 일기'가 주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오르며 인기를 얻고 있다. 10만 부 한정 발매로 이미 완판이 되어 구할 수 없는 이 소설은 매진 후 오히려 전자책으로 더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준형 작가는 이 작품으로 일약 스타로 발돋움했으며 엄청난 수입을 거둘 것으로···. <중략>
[베스트셀러 1위 '어느 살인자의 일기' 10만 부 완판 쾌거!]
[‘어느 살인자’의 일기 품귀 현상, 서점에서 재고 사라져.]
[책을 구매하지 못한 나만의 세계 팬들이 웃돈을 주고서라도 책을 구매하려고 아우성···.]
[‘어느 살인자의 일기’ 전자책 흥행 돌풍! 판매수에서 이미 출간 서적 앞질러···. 책을 구하지 못한 독자들이 대거 구매한 것으로 분석···.]
나는 사무실에 출근해서 기분 좋게 기사를 훑어보고 있었다. 역시 작품이 좋으면 돈은 자연적으로 따라오는 것인가 보다.
양반처럼 점잔 빼고 싶지만, 입이 자꾸만 귀에 걸려 표정 관리가 잘 안 되고 있었다.
'우와! 28만 부라고? 이게 다 얼마야? 어허허···.'
나는 고당 출판사에서 보내준 판매 현황 자료를 보고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발을 동동 굴렀다.
책을 한정 판매로 딱 10만 부만 찍는 계약이 나름 머리를 굴려서 나온 최선의 전략이었다. 어차피 출판사도 플랫폼 수수료를 빼면 이북으로 돈을 벌 수 있으니 킬러 콘텐츠라면 실물 재고보다는 전자책을 푸시 하는 게 꽤 괜찮은 전략이기도 했다.
'책은 권당 1,500원 정도 수익이지만 전자책은 권당 5,400원의 수익이고 이걸 28만 부를 팔았으니···.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억십억···. 어우야···.'
아찔했다. 다 쓰는데 일주일도 안 걸린 전자책 한 권으로 드라마 원고료보다 더 벌게 생긴 것이다.
드라마 내용을 CF로 연결해 책을 팔아먹으려고 꼼수를 부린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직 언론으로 새로운 수익 창출 방법이라고 소개되고 있지 비판의 목소리는 별로 없었다.
솔직히 걱정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 돈에 환장한 놈이라고 욕먹을 각오로 진행한 일이었다.
"룰루···."
음···. 미치겠네. 왜 자꾸 콧노래가 나오는 거지? 남들 보기 안 좋으니 포커페이스를 유지해야 하는데···. 글 쓰는 업계에 있다 보니 진심으로 기뻐해 주는 사람은 드물고 시기 질투하는 사람은 널린 게 이 바닥이다.
최대한 겸손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잘나간다고 해서 아무 말 없겠지만 약발이 조금이라도 떨어지면 여기저기서 물고 뜯으려고 하는 사람이 사방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나는 다시 커뮤니티에 올라온 나만의 세상 앓이에 관한 글을 읽는 중이었다.
글쓴이는 나만의 세상에 빠져있다가 드라마가 종영한 지금 후유증을 심하게 앓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특히 나유정이 연기한 나지혜가 총에 맞고 죽을 때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다음 날까지 멍하니 침대에 누워있었다고 고백하며 지금은 중고로 구매한 '어느 살인자의 일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요. 나지혜가 미친놈들을 칼로 다 베어버리는 통쾌한 장면과···. 김하진이 죽을 때 그 안타까운 눈빛···. 그리고 한승호의 아픈 과거까지···. 당분간은 나만의 세계에 빠져 있어야겠네요.]
너무 오래 모니터를 바라봐서 그런가? 눈이 빠질 것 같았다.
나는 휴식을 취하기 위해 회사 옥상으로 올라가 커피를 마셨다. 건물 아래로 많은 사람과 차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문득 신기한 게 눈에 띄었다. 자세히 보니 시내버스 광고에 한기주의 얼굴이 떡하니 보였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안경을 손가락으로 쓱 밀어 올리는 이미지의 대형 학원 광고였다.
멘트가 뭔가 병맛인데 웃겼다.
[너희 공부 안 하면 알지?]
인간 백정 이영민이 학원 광고를 하다니···. 극 중 이영민은 IT 재벌이 된 천재로 묘사되고 있으니 뭔지 모르지만, 광고에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학원 광고 말고 학습지 광고와 안경 브랜드 모델도 하고 CF로 은근히 잘나가고 있었다. 차가운 천재 이미지로 주가를 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가능한 이유는 드라마에서 이영민은 나쁜 놈만 죽이는 살인마였고, 어느 살인자의 일기에서 자세히 설명한 대로 일종의 규칙을 가지고 있는 사이코패스였기 때문에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바뀐 것이다.
그날 성우 형 집에서 술을 마시면서 배우들과 다 말을 트기로 해서 기주 형이랑도 친해졌는데 광고 출연한다고 고맙다고 톡으로 허니 콤보 치킨을 보내왔다.
씁···. 하여간 있는 사람들이 더한다니까?
나는 멍하니 건물 아래의 바쁜 일상을 쳐다보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쁜데 나는 한가하네."
드라마도 끝나고 출간 첫 주에 서점에서 작가 사인회도 끝냈더니 이제야 한가해 졌다. 물론 아직 TV나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이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긴 한데 전혀 나갈 생각이 없는지라 전부 거절하고 있었다. 괜히 방송 같은데 나가면 또 노래 부르라고
시킬지 모르는 일이다.
잠시 머리를 식히고 있으니 직원들이 올라와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내가 있는지 눈치를 못 챈 것 같다. 우리 회사 옥상은 정원이라 숨을 곳이 많으므로 말을 조심하지 않으면 누가 몰래 들을 수도 있는 그런 곳이었다.
"아···. 이 실장 부럽다."
"이 실장? 이준형 실장님?"
"그래. 님은 무슨···. 비록 팀은 다르지만 나보다 후배야. 몇 번 회식도 같이 한 적 있었지."
"후배지만 직급은 이제 선배님보다 훨씬 높잖아요."
"그렇지. 그래도 입사는 나보다 후배지."
"아니 그게 무슨 논리입니까! 직장은 직급이 갑이죠. 그런데 이준형 실장님이 왜요?"
나는 슬쩍 몸이 안 보이게 대형화분 뒤쪽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최근에 낸 책 있지? 그걸로 돈 엄청나게 벌었다더라. 거의 로또 수준이라던데?"
"드라마 원고료도 받았을 거잖아요? 그럼 그거 합치면 수십억이네요?"
"그럼 대박 났지. 드라마 하나 잘 터트려서 20~30억 시원하게 땡긴 거야. 예전에 테리우스 애들 뒤치다꺼리하느라 얼굴이 누렇게 떠서 빌빌댔었는데···. 제길! 다 이 바닥이 인맥이야 인맥. 갑자기 어떻게 그렇게 확 떴겠어?"
"예? 그게 무슨? 대충 어떤 식으로 성공했는지 밝혀졌잖아요. 공모전에 출품하고···. 유정 씨가 그 뭐냐 드라마 대본 가지고 있는 거 찍혀서···."
"허 참! 넌 그게 문제야. 순진하게 그걸 믿냐? 다 인마. 인맥 빨이야. 예전에 준형이 동기 이야기 들어보니 대표님이 처음 면접 때부터 좋아라 했다던데? 그게 뭐겠냐? 우리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야."
"설마요···."
'아니! 이건 무슨 개소리야?'
그냥 놔두면 이상한 소문이 돌 것 같아 인기척을 내고 몸을 드러냈다.
"험험···."
"엇?"
"주, 준형 실장···."
"정우 형. 오랜만입니다. 왜 이렇게 바쁘세요? 배우 1팀 일은 형이 혼자 다 하시나 보네요."
"으, 응···. 요즘 조금 바빠서···."
배우 1팀 김정우 매니저는 키는 보통인데 풀죽도 못 얻어먹게 생긴 마른 외모였다.
나는 그에게 한 발짝 다가가 어깨 위에 떨어진 머리카락과 비듬을 털어줬다.
'비듬 샴푸 좀 쓰지. 더럽게 시리···.'
탁탁···.
그는 모종의 위압감을 느꼈는지 얼굴이 약간 사색이 되었다.
"정우 씨. 충고하는데요. 후배가 돈 번 이야기 어디 가서 이상하게 얘기하지 마세요. 저 소문처럼 많이 못 벌었어요. 내년 5월에 종합소득세도 신고해야 하고요. 세금으로 다 뜯깁니다. 번 돈이 다 제 돈이 아니라고요. 아시겠어요?"
"아, 아, 예···. 죄송합니다."
"여기서 험담하지 마시고요. 누군가는 다 듣고 있습니다. 계속 그러다가 한 방에 훅 갑니다. 입조심 하세요."
"죄, 죄송합니다. 실장님."
그들은 내 카리스마에 눌려 어찌할 줄 모르다가 인사를 꾸벅하고 몸을 돌려 사무실로 급히 내려가려고 했다.
"잠시만요!"
"네, 네!"
"참고로 저 인맥 없습니다. 로열패밀리도 아니고요. 그냥 글 하나 쭉 써서 여기까지 온 놈입니다. 경고하는데 이상한 소문 내지 마세요. 다시 한번 그런 얘기가 들리면 절대 용서 안 합니다."
"죄, 죄송···."
"가보세요."
내가 고개를 까딱거리자 그들은 부리나케 계단을 내려갔다.
"아이! 욕 나오네. 짜증 나게 어디서 모함질이야? 하여간 이상한 놈들 진짜 많다니까? 좀 성공했다고 하면 그냥 질투에 눈이 멀어서 있는 말 없는 말 다 지어내고···. 어?"
좋았던 기분이 확 안 좋아지려고 하자 나는 다시 전자책의 매출을 떠올렸다.
"오오~ 서울의 고급 아파트 한 채···. 너무 좋고···."
그 생각을 하자 다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그래 모함하고 싶으면 하고, 질투하고 싶으면 질투하고···. 맘대로 하세요. 저는 조용히 꿀을 빨겠습니다.'
"뭐하냐?"
"응?" 형택이 형?"
요즘 테리우스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조블리 팀장이었다. 오늘따라 유난히 갑빠가 커 보였다.
"뭔데 헤벌쭉해서 그러고 있어? 드라마 끝나고 정신줄 놓은 거야?"
"어허! 말조심 좀 합시다. 머리를 식히며 차기작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만?"
"어우! 내가 너 때문에 죽겠다. 아주!"
조블리는 그 말을 하면서 또 내 멱살을 잡았다.
"켁···. 아 좀만 참으세요. 내일 테리우스 경력직 매니저 면접 본다니까요?"
"아니 그거 말고 이 자식아. 왜 드라마를 그따위로 끝냈어?"
"드, 드라마가 어, 어때서? 사람들은 역대급 엔딩이라고 하던데? 이거 안 놔요?"
"우리 마나님이 그거 보고 또 우셨다. 어떻게 책임질 거야? 어? 내가 집에 들어가서 마나님 눈치나 봐야겠어?"
"아니 누가 들으면 배우랑 결혼한 줄 알겠네. 형수님 감수성 해도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너 자꾸 막장 드라마 쓸 거야? 해피엔딩으로 하란 말이야. 해피엔딩!"
"으음···. 조카 돌잔치 때 시원하게 하나 쏘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이거. 나한테 너무 적대적이야."
그 말을 하자마자 힘을 뺐는지 목에 느껴지던 압박이 씻은 듯 사라졌다.
"야 인마. 다리미질 좀 똑바로 해라. 목에 주름이 있길래 좀 펴줬다. 무슨 말인 줄 알지?"
"아. 뭐래···. 어이없네."
"역시 우리는 죽음을 같이 해쳐온 사이 아니냐···. 동지애 하면 역시 이준형 선생이지. 암!"
".........."
어쩜 이렇게 사람이 안면을 싹 바꿀까?
"뭐 필요한 거 있으면 미리 말해요. 하나 사주려니까."
"어익후···. 세상에 이런 일이···."
"이제 그만 좀 해요. 등치는 산만해서 유치하게 옛날 개그나 치고···."
"아 참! 너 그 소식 들었냐?"
"뭐가요?"
형택이 형이 갑자기 생각났는지 대화 주제를 바꿨다.
"어제 내가 경영지원본부하고 회의하다가 들은 이야기인데 조만간 테리우스 일본에 홍보하러 가잖아?"
"그러겠죠? 애들 미니 앨범 발매하잖아요."
"그래. 그런데 유니버설 J 측에서 협조 좀 부탁한다면서 유정 씨랑 너까지 같이 일본에 와줄 수 없겠냐고 요청이 왔다더라."
"유정 씨는 그렇다 쳐도 저까지요? 아니 저는 왜···."
"내가 그걸 어떻게 아냐. 드라마랑 엮어서 같이 홍보하려는 건가? 아무튼, 그건 홍보팀장한테 물어봐."
"알았어요. 형. 그건 제가 물어볼게요. 혹시 저 핑계 대고 일본 안 갈려고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응? 아, 아냐. 아냐. 준형아 나 스케줄 가야 하니 나중에 보자. 나 간다···."
그렇게 조블리 팀장은 바쁘게 계단을 내려갔다. 육중한 그의 몸에 계단이 쿵쿵 울리고 있었다.
'흠···. 아니 일본에서 왜 나까지···."
살짝 생각에 잠겨있는데 주머니에 휴대전화가 울리고 있었다.
"응? TVM 오수정이네? 얘가 웬일이지?"
"여보세요? 수정이냐?"
[여···. 이준형이···. 너 요즘 겁나게 잘나가더라?]
"흐흐···. 그래 고맙다. 웬일이냐?"
[너 까먹고 있을까 봐 전화했다. 저번에 알려줬을 텐데 내일 오랜만에 동창회 한다고 했잖아. 너 잘됐다는 소식 쫙 돌아서 벼르고 있더라.]
"나 아직 신인이야. 왜들 그래?"
[웃기시네. 엄살 그만 부리고 내일 꼭 나와라! 내가 다시 장소 찍어줄게.]
"그, 그래. 알았어. 생각 좀 해보고···."
[얼씨구? 이준형이 이제 스타 작가 다 됐네. 동창회도 나갈지 말지 고민을 하다니···.]
"일단 알았고 끊어라.“
흠···. 동창회가 내일이었나? 요즘 사인회 하느라 바쁘게 돌아다녀서 그런지 까맣게 잊고 있었다.
'가봐야 하려나? 동창회 안 나간 지 한 3년 넘었지? 저번에 밥 사준다고 했던 놈들 얼굴이나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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