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92화 (92/263)

< 마지막 안배 (2)>

[2개월 후]

김인애가 이사를 하기 위해 집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이 화면에 잡혔다.

그러다 이삿짐센터 직원이 철제 상자를 발견한다. 그녀가 조심스레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여러 권의 노트가 들어있었다. 그녀는 뭐에 홀린 듯 가장 왼쪽에 있는 노트부터 펼쳐보았다.

그것은 한승호의 일기였다. 김인애가 일기를 펼치자 화면에서 한승호의 얼굴이 점점 젊어지고 있었다.

화면은 어린 시절 한승호의 모습을 비추고 있었다.

한 아이가 빈민가와 초고층 아파트를 가르는 거대한 담벼락을 손으로 만지며 동네 외곽을 빙 돌아 등교를 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학교에서 거지새끼라고 놀림을 당한다. 그러다 놀리는 아이를 살짝 때리고 만다. 그리고 그 아이는 교무실에서 힘없이 고개를 조아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막노동으로 희망 없이 살아가는 아버지가 목을 매 자살하고 경비원을 하던 할아버지는 주민의 갑질, 폭행으로 투신자살하는 일을 연달아 겪게 된다.

완전한 고아가 돼버린 어린아이···.

천성적인 사이코패스가 아니었지만, 이 착하고 밝았던 아이는 가슴속 깊이 분노를 간직한 괴물이 되어갔다.

보육원에 맡겨진 그 아이는 친구들과 놀지도 않고 지쳐 쓰러질 때까지 공부했다. 운 좋게 입양을 가고 영재 학교에서 김태원, 이영민으로 추정되는 사이코패스들이 고양이를 죽이는 것을 보고 그들을 제압하고 꾸짖는다.

그렇게 친해지며 그들에게 영향을 받기 시작한 아이는 학교 사회 시간에 했던 ‘사회를 개선하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김인애는 최근인 듯한 일기를 읽고 있었다. 경악으로 물든 그녀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었고 일기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이수현의 미친듯한 마지막 열연이었다. 그녀는 최근으로 보이는 일기를 집어 들었다.

[9월 17일 (수)]

조직이 방대해지니 점점 통제가 힘들어지고 있다. 죽을 만한 놈들만 죽여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희생자들이 나오고 있다!

내가 바라던 것은 지옥을 개선하는 것이지 이런 식으로 죄 없는 희생자를 만드는 게 아니다!

하지만 이 지옥 같은 사회 구조가 계속 연명하길 바라고 있는 최고 권력자들이 버티고 있으니 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브레이크 없이 달려갈 수밖에 없다.

이제는 절대 돌이킬 수 없다.

만약 부득이하게 희생자가 생긴다면 나 스스로 지옥 불에 떨어져 영원히 그 죄를 갚아 나갈 것이다.

지금까지 한가지 목표만을 바라보며 살아왔지만, 나와 비슷한 처지의 지혜를 사랑하며 비로소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항상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순백의 나의 아내.

나는 그녀에게 용서받지 못할 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내가 빈민가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면···. 그리고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그렇게 돌아가시지 않았다면···.

나는 아내와 평범하게 만나 사랑을 나눌 수 있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이런 감정을 느끼다니···. 혼란스럽고 가슴이 아프다.

정신 차리자. 이런 감정은 사치에 불과해!

그들과 같아지면 나는 이 지옥을 지탱하는 놈 중의 하나가 될 뿐이다.

이럴 때면 나도 사이코패스처럼 죄책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계획을 완수해서 내가 생각하는 나만의 세계를 현실로 만들 수 있을까?

오늘 밤은 가슴이 답답하다.

*  *  *

자신의 속내를 일기장에만 털어놓을 수 있었던 사이코패스가 아니었던 한 남자의 자기 고백이었다.

똑···. 똑···.

일기를 다 읽은 이수현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는 한승호의 일기를 가슴에 품고 미친 듯이 오열했다.

그리고 김인애는 어느 외딴곳에서 그의 남편에 대한 자서전을 쓰기 시작했다.

화면이 흐려지며 강아지풀을 입에 물고 거대한 담벼락 안에 치솟은 잿빛 빌딩을 바라보는 소년의 모습으로 드라마가 끝이 났다.

드라마를 보던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살짝 고여 있었다.

"훌쩍···."

"아···. 이거···. 으음···."

짝짝짝...

몇몇 사람은 가슴이 먹먹한 듯 천천히 박수를 치고 있었다.

"후···. 뭡니까···. 작가님. 눈물 나잖아요."

"감독님은 언제 마지막 장면을 찍으신 거예요?"

"성우 씨랑 수현 씨는 알고 계셨어요?

"어쩐지 성우 씨 캐릭터가 좀 수상하다 싶었는데 이런 반전이···."

한성우는 드라마에 이런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았다는 뿌듯함이 표정으로 나타나 있었다. 이 형은 어린 시절 너무 불우하게 살아서 항상 사회 문제에 깊은 관심을 보이던 사람 아니겠는가?

"왜 제가 이 드라마에 낮은 출연료를 받고 나온 지 이해되시죠?"

"이거 마지막에 빈부 갈등에 대한 메시지를 담았네요. 아···. 그런데 뭔가 복잡한 생각이 드네요."

드라마가 끝난 후 배우들이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뭔가 명확하게 끝나는 결말이 아니라 약간의 여운을 주기 위해서 악마들의 수장 한승호가 실은 사이코패스가 아니었다는 반전을 넣었다. 그리고 그가 정말로 지옥같은 사회를 바꾸고 싶어 했다는 것도···.

나는 이준환 감독과 시선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

마지막 장면이 의도대로 괜찮게 뽑혀 나왔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엄지를 척하고 내밀었다. 그도 손을 들어 나에게 엄지를 내밀었다. 왠지 가슴이 뿌듯했다.

이렇게 나의 장편 드라마가 끝이 났다.

드라마가 완전히 끝나고 화면이 바뀌며 CF가 흘러나왔다.

[드라마 ‘나만의 세계’ 한승호의 일기를 간추린 그의 자서전이 10월 20일 출간됩니다. 이준형 작가의 신작 어느 살인마의 일기, 한정 판매!]

두둥!

사실 나의 진정한 반전은 신간 출간이었다.

나는 그동안 이준환 감독과 협력해서 비밀리에 책을 출간하기로 했다. 사전에 원고를 넘기고 책 출판은 JTVC 스튜디오가 진행했다.

한정판으로 내일부터 시중에 쫙 깔릴 예정이었다.

"어? 책이다."

"이거 책으로 또 나와요?"

"와! 이거야말로 진정한 반전이네. 오늘 뒤통수 몇 번을 맞는 거야. 제길!"

"아! 뭐에요! 언제 이런 걸 썼어요? 왜 안 보여 줬어요? 네?"

나유정이 화가 난 표정으로 씩씩거리며 몸을 들이밀었다.

"어? 아 왜 그래요. 저리 가요. 저리 가!"

"왜 말을 안 했냐고요! 얼른 책 내놔요."

"뭡니까. 책 맡겨놨어요? 서점에 가서 책도 사고 사진도 찍혀서 SNS에 올라가시기도 하고 좀 그러세요. 나 책 좀 팔아서 돈 좀 법시다."

"공짜로 모델을 하라고요?"

"아니 내 드라마에 나와서 돈을 갈퀴로 훑으시는 분이 그거 하나 못 해줍니까?"

"작가님! 유정아! 왜 그래. 지금 싸우시는 거예요?"

보다 못한 한성우가 우리 사이를 중재했다.

"성우 씨 안 말려도 될 거 같아요. 제가 보기엔 그냥 사랑싸움 같은데요?"

"언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원래 우린 그냥 평소에 이런 식으로 대화해요."

"험험···. 수현 씨 그건 좀 너무 나가셨다. 저흰 그런 사이 아닙니다."

"그렇죠. 지금은 아니겠죠."

뭐지? 그녀의 말이 좀 애매하다. 지금은 아니라니···.

"저도 내일 서점 가서 책 사고 인증할게요."

"그럼 나도 오랜만에 서점에 한 번 들려볼까?"

이수현뿐만 아니라 한성우까지 옆에서 거들었다. 왠지 책이 잘 팔릴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저도 내일 책 구매해서 인증할게요."

한기주와 정혜성도 인증에 동참하기로 했다.

"저는 서점이 멀어서 인터넷으로 지금 주문하고 있습니다."

귀여운 캐릭터 티셔츠를 입은 김형탁이 자신의 휴대전화를 모두에게 보여주었다.

"작가님이 좋은 작품을 쓰셔서 저희가 다들 만족을 했는데 이 정도는 해드려야죠. 부디 베스트셀러 등극하시길 바랍니다."

"베스트셀러 가즈아!"

"자자! 우리 이제 정식으로 파티를 해야죠? 다들 잔에 와인 채우시죠?"

와인 마니아인 한성우가 자신의 셀러를 활짝 개방한 상태였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건배!"

배우들은 모두 잔을 들고 건배를 외쳤다.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로 파티가 진행되고 있었다.

"솔직히 아까 형탁 씨 불쌍하더라. 마지막 유언도 못 남기고 머리에 구멍이 뻥···."

사람들이 그를 보고 위로를 하고 있었다.

"노노···. 깔끔하게 하직하는 게 좋아요. 그래야 시청자들에게 잘 잊히죠."

김형탁의 말은 왠지 모르게 철학적이었다.

"조연들은 너무 강한 이미지도 안 좋아요. 저흰 바로 다음 작품을 들어가서 이걸 당겨야 하거든요."

김형탁이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 표시를 해서 나에게 들이밀었다.

'음. 철학적이라는 건 취소다.'

내가 형탁 씨의 개그를 보며 웃고 있는 사이 누군가가 내 옆구리를 푹푹 찌르기 시작했다.

"쓰읍···. 뭡니까?"

나유정이었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내일 오전에 서점 갈 테니 집으로 와요."

"왜요? 그냥 사시면 되잖아요. 서점에 차 몰고 가서···."

"사람 많을 텐데요? 나 그냥 거기 혼자 가도 돼요? 그리고 사진은 누가 찍어줘요?"

"사진은 셀카 찍으면 되죠. 흠···. 아니다. 혼자 가면 좀 그렇겠네. 어차피 나도 서점에 들려야 되고···. 알았어요. 아침에 집으로 갈게요."

"이 작가님. 오늘은 한잔하시죠. 제가 대리 불러드릴게요."

"성우 형님. 말씀 편하게 하시면 안 될까요? 전 원래 형 동생 하는 거 좋아하거든요."

"아? 그래도 되려나? 내가 작가님들을 존경해서 그게 잘 안되더라고···."

뭐야 벌써 말 놨네. 그동안 갑갑해서 어찌 살았을까? 흐흐···.

"편하게 하세요. 형."

"그래. 준형아. 한잔하자. 오늘은 내가 유정이 뒤치다꺼리에서 해방시켜줄게."

"오빠! 내가 무슨 뒤치다꺼리 할 게 있다고 그래요?"

"너 인마. 엄청 신경 쓰여."

"하하하! 정말 그래요. 그건 팩트!"

그렇게 즐거운 파티가 진행되고 있는 사이···.

내 눈에 한 청년이 구석에서 와인을 홀짝거리고 있는게 보였다.

유일하게 씁쓸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배우 이건호였다. 사이코패스 이혁 역할을 하고 인터뷰는 많이 했으나 그 어떤 CF나 배역도 들어오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잘했어. 건호야.’

그리고 다음 날

내가 집필한 책이 전국 서점에 깔렸다.

내 책은 많은 연예인의 SNS 구매 인증과 함께 순식간에 재고가 동이 나기 시작했다. 딱 10만 부만 한정판으로 출간했기 때문이다.

[이준형 작가의 신작 '어느 살인자의 일기' 한정판 완판 행렬!]

[어느 살인자의 일기 물량 품귀 현상. 추가 발매 계획 없어···.]

[어느 살인자의 일기를 발매한 고당 출판사 "전자책으로 구매하세요."]

나만의 세계 한승호의 일기를 간추렸다는 '어느 살인자의 일기'가 완판되었으나 해당 작품을 발매한 고당 출판사는 한정판이라며 증쇄는 없다는 입장이다. 독자들의 원성이 큰 가운데 전자책 발매가 시작했다. 해당 전자책은 대형 플랫폼 어디에서든지 구매가 가능한 상황···. <중략>

출간 서적 10만 부를 팔아봐야 나에게 떨어지는 인세는 10%로 고작 1억 5천이었다. 하지만 전자책은 달랐다. 일반적으로 전자책의 인세는 15%~50%였다.

나는 출판본의 인세를 10%만 가져가기로 하고 전자책의 인세는 45%를 받기로 계약했다.

JTVC 스튜디오 측은 나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하기로 하고 전자책 인세의 5%를 가져가기로 했다.

그렇게 전국 서점에서 출판본이 동이나 아우성일 때 전자책이 조용히 빠른 속도로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발매 1주일이 지나고 판매 부수가 집계됐다.

ⓒ 소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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