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91화 (91/263)

< 마지막 안배 (1)>

"오! 성우 씨 돈 많이 버신 듯? 일단 여긴 건물부터 때깔이 다른데요?"

"한강 변 고급빌라잖아요."

일단 외관부터 다른 건물들과 달리 뭔가 있어 보이는 디자인이었다. 차를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가구별로 엘리베이터가 있다니···."

"카메라 엄청 많네요. 보안팀이 CCTV로 다 감시하나 봐요."

"유정 씨도 이런데 살 정도는 되잖아요. 돈도 엄청 많다면서요?"

"솔직히 마포 아파트도 좋잖아요. 이런 건 너무 부담스러워서···."

뭐야. 최근 CF로만 100억 넘게 번 거 사람들이 다 알거든요?

"그래도 여긴 왠지 특별한 느낌인데요? 사생활 노출 꺼리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딱 맞네. 한번 고려해봐요."

"준형 씨 돈도 많이 벌었는데 마포로 이사 와요. 분당 집이 크긴 하던데 이제 아파트가 오래돼서 이사 오면 딱 맞지 않아요?

"저 그 정도로 아직 못 벌었습니다. 거기 20억 넘던데···.“

"분당 집을 팔면 되죠.“

”그게 내 것도 아니고···."

"그럼 제가 무이자로 빌려드려요?"

"됐습니다만?"

초인종을 누르자 문이 열리며 한성우가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작가님. 유정이도 어서 와."

"네.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어가겠습니다."

성우 씨의 안내로 집에 들어서자 이미 많은 사람이 도착해 있었다.

우와! 집이 커서 그런지 열 명이 넘게 있는데도 좁아 보이지 않는다. 휴대전화로 빌라의 정보를 찾아보니 67평이 넘는 크기였다.

"와! 복층이라 시원시원하네. 한강 경치도 보이고···. 이거 비싼 값을 하는데?"

"탐나요? 돈 벌어서 오면 되죠?"

"그, 그건 조금 걸릴 것 같네요. 음···."

가구들도 상당히 고급스럽고 인테리어에 공을 들인 게 느껴졌다. 정말 가구를 본인 취향에 맞게 하나하나 골랐는지 고급스러움이 범상치가 않았다.

내가 이런 거에 관심이 있다 보니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솔직히 너무 좋다. 상상 속으로 그리던 그런 집이다. 이런 집을 갖고 싶었지만 비싸도 너무 비싸다. 집값만 한 50억쯤 하나? 지금 가지고 있는 돈으로 택도 없었다.

'음···. 돈을 많이 벌어야겠어. 그러기 위해선 하루빨리 독립해야겠네.'

한성우가 꾸며놓은 집을 보니 알게 모르게 자극이 팍팍 되고 있었다. 내 외제차와 10억이 넘는 통장은 이런 것에 비하면 별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 깔아놓은 게 터진다면 좀 빨라질지도···.'

한성우가 따뜻한 눈빛으로 생각에 잠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어우! 이 형의 이 눈빛은 정말로 치명적이다.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여심을 녹인 걸까?

"작가님. 너무 부러워하지 마세요. 작가님은 나이도 젊으신 데가 앞으로 저보다 훨씬 잘 나가실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리고 결혼은 적령기에 꼭 하세요. 제가 유일하게 실수한 게 바로 그거니까요."

맞다. 생각해보니 이 형 여자친구가 있었을 게 분명한데 아직도 미혼이다. 몇 년 후면 오십 대로 접어드실 텐데···.

"항상 주변에 좋은 여자가 있으니 놓치고 후회하지 마시고···."

그는 말을 하면서 나유정을 흘깃 쳐다보았다.

"크흠···. 직접 요리도 하신 거예요?"

나는 말을 돌리기 위해서 식탁에 차려진 요리들을 가리켰다. 한성우는 요리를 하다 나왔는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종방연 때 일찍 나가시더니 이것 때문이었나?

"다들 배부를 텐데 요리는 아니고 디저트나 그런 것들이에요. 그리고 몇 개만 내가 준비했어요. 이런 거 만드는 거 좋아하거든요."

헐···. 이 형 정말 대단하다. 이런 것까지 하다니···.

우리는 개방형 거실로 들어가서 이미 도착해 있던 이준환 감독과 배우들에게 다가갔다. 이제 올 사람은 다 온 모양.

파티의 주최자인 한성우가 스크린 앞에 서서 간단하게 종방연 2차 파티에 대한 공지를 했다.

“여러분! 오늘 이렇게 행복한 자리를 갖게 돼서 너무 기쁩니다. 작품도 좋았고 촬영장 분위기도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모든 사람이 즐겁게 웃고 떠드는 사이 드디어 최종화가 거대한 거실 스크린에 비치고 있었다.

*  *  *

직원이 없는 카오스사 빌딩에서 사이코패스 클럽의 수뇌가 빌딩 최상층 대표이사실에서 긴급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쾅!

정신과 의사 김태원이 회의실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리더!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리더랑 관련된 여자 둘이 20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원대한 계획을 죄다 망치고 있잖아!!"

"김태원. 조용히 해라. 냉정하게 말해서 조직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힌 건 네가 병원에서 하던 그 쓸데없는 인공 수정 실험 관련 일이었다. 그전까지는 얼마든지 내 선에서 수습할 수 있었다."

차가운 말투로 김태원의 잘못을 지적하는 이영민이었다.

"제길! 인애가 그걸 빼내 갈지 몰랐지."

"아직도 늦지 않았다. 미적거리지 않고 두 여자를 처리하면 된다. 리더.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다."

"그래. 리더. 어차피 좋아하지도 않던 여자와 재미로 만나던 어린애 아냐? 사고사로 처리하고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는 코스프레라도 언론에 노출하는 거 어때?"

둘은 한승호의 결단을 촉구했다.

한승호는 평소와 다르게 심각한 선택의 기로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조직의 보스답게 인상을 쓰고 말없이 턱을 괴고 있었다. 그의 몸에서는 차가운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리더! 혹시 그 나지혜라는 젊은 여자 때문에 갈등하는 건가? 그 여자와 그 여자 동료로 인해 별장이 사라지고 조직원 십수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것은 분명 우리 조직에 엄청난 타격이었다."

한승호는 마치 기계처럼 말을 하는 이영민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리더···. 예쁜 여자는 얼마든지 있잖아."

김태원은 혀로 입술을 핥고 있는 사악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 * *

"형탁 씨. 저 표정 소름 끼쳐요."

"맞아요. 진짜 사이코 같아요. 평상시엔 완전 착하셔서 차이가 상당하네요."

배우들이 김형탁의 연기를 보고 감탄을 하고 있었다.

"하하···. 예전에 예능에 나가서 약간 바보 같은 이미지가 생겼는데 요즘은 인상 한번 쓰면 사람들이 다르게 보더라고요. 그건 진짜 좋은 거 같아요."

캐릭터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그런 말을 하니 왠지 설득력이 제로였다. 그의 가슴에는 귀여운 몬스터가 엄청난 크기로 떡하니 박혀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그 모습을 보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다가 살짝 입을 다물고 있었다.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 게 싫으면 굳이 그런 옷을 입고 다닐 필요가 없는데···. 뭐 개인 자유니까···.

*  *  *

김인애는 지하로 잠입한 뒤 건물 환풍 시스템에 바이러스 캡슐을 던져넣고 그게 건물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시스템을 변경했다.

한편, 1층에서는 슈퍼 솔저 흥분제와 바이러스 백신을 투약한 나지혜가 거의 날아다니다시피 하며 조직원들을 휩쓸기 시작했다. 그녀는 총까지 꺼내 조직원을 사살했다. 드디어 최상층에 도착한 그녀는 가드를 서고 있던 조직원을 향해 분노의 방아쇠를 당겼다.

타앙! 타앙!

화장실에 나오던 조직원도 그녀의 일자 배기에 쓰러졌다. 바닥 카펫에 칼날을 타고 내려온 시뻘건 핏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 * *

김형탁이 그 모습을 보고 좋다고 손뼉을 쳤다.

"와. 유정 씨! 칼로 그냥 조직원들을 다 썰어버릴 기세네요. 이런 수준의 액션은 할리우드 영화에서나 나오는 거 아니에요?"

그는 자신의 무릎을 치며 질렸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옆에서 보고 있던 이수현도 조용히 말을 거들었다.

"진짜 잔인하긴 한데 멋있네요. 저는 이제 저런 액션 연기 무리겠죠? 내일 모래면 마흔이라···.“

이수현이 부러운 눈으로 나유정을 쳐다보고 있었다.

"언니. 왜 무리에요. 충분히 가능하죠. 집이 좀 가까워서 저랑 같이 운동했으면 좋았을 텐데···."

"무리야 유정아. 난 방금 장면처럼 저 높이에서 떨어지면 바로 무릎 나갈걸?"

나유정은 더 대답하지 않고 빙긋이 웃기만 했다.

‘앗! 저 표정!’

나유정이 기분 좋을 때 짓는 표정이었다. 이른바 승리자의 미소!

‘쩝···. 유정 씨 젊은 게 자랑이에요? 연기로 승부를 봐야지?’

냉정하게 평가해도 둘의 연기력은 비슷했다. 이수현이 정적인 용이라면 나유정은 역동적인 호랑이였다.

말 그대로 용쟁호투!, 용호상박!

최종화에서 둘의 연기력은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었고, 그런 긴박한 호흡으로 시청자들을 심하게 몰입시키고 있었다.

나지혜는 불가사의한 움직임으로 회의실에 뛰어들어 총을 꺼내려던 이영민을 사선 베기로 순식간에 쓰러트렸다.

타앙!

그리고 마지막 남은 총알로 김태원의 이마에 구멍을 내버렸다.

드디어 만나게 된 나지혜와 한승호 사이에 침묵이 감돌았다.

"왜 그랬어요?"

차가운 눈으로 이 기괴한 사이코패스 조직의 수장인 한승호를 쳐다보는 나지혜.

"미안하다. 길게 설명할 수가 없어. 하지만 내 마음은 진심···. 크흑···."

가슴이 답답한지 목을 자꾸 만지며 호흡이 거칠어진 한승호가 나지혜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거짓말하지 말아요. 다정한 가면을 쓰고 뒤로는 사람들을 죽였잖아요!"

"하아···. 하아···. 난 그러지 않았어."

둘은 이런 상황에서도 감정적인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그걸 뒤에서 듣고 있던 김인애가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그만!! 당신은 지금까지 이따위 미친 짓을 하고도 그런 말이 나와요?"

그러자 한승호가 고개를 들어 그 특유의 눈빛으로 김인애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여보. 이제 와서 변명하고 싶지 않군. 쿨럭쿨럭···."

바이러스에 면역이 없는 한승호가 피가 섞인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막장 드라마답게 막판에 액션 스릴러에서 치정 멜로 드라마로 회귀라도 하려는 것일까?

푸욱···.

단숨에 한승호의 복부에 칼을 꽂아버리는 나지혜였다.

"후우···. 당신 변명은 듣고 싶지 않아. 증거는 이미 충분해.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고! 이런 짓을 벌인 너희들은 지옥에서도 용서받지 못할 거야."

"쿨럭쿨럭···."

한승호의 입에서 시뻘건 핏물이 주르륵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지옥이야. 너도 경찰이라 알잖아. 도시 외곽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일들을···. 크륵···."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한 눈으로 허탈하게 웃고 있었다.

"아무리 세상이 지옥이라지만 그래도 당신이 그것을 대신할 차악이 될 순 없어! 당신은 그냥 살인에 미친 사이코야."

나지혜는 한승호 일당의 불법적이고 아나키스트적인 행위를 도저히 이해하지도, 묵과할 수도 없었다.

"큭···. 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너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이 지옥을 바꿀 수 있었을···."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복부에 칼이 찔린 한승호는 거의 죽어가고 있었다.

"나의 꿈이···. 나만의 세상이···. 그르륵.."

악마들의 수장은 그렇게 죽어가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그가 그리던 유토피아가 보이는 것 같이 아주 평온한 표정이었다.

타앙!

갑자기 총소리가 들리고 나지혜의 복부에서 피가 번저갔다.

그녀는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총알에 꿰뚫린 자신의 복부를 손으로 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직 흥분제의 효과가 남아 있는 상태.

그녀는 한승호의 복부에 꽂혀 있는 칼을 빼서 쓰러져있는 이영민의 가슴에 칼을 박아넣었다.

"이 질긴 인간 백정 새끼···. 끝까지···."

나지혜는 이영민을 처리한 후 정처 없이 비틀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칼을 바닥에 꽂고 몸을 바로 세우려 했다.

하지만 속절없이 흘러내리는 피에 힘이 빠진 그녀는 벽에 기댄 상태로 자세가 천천히 무너졌다.

"하으···. 제길···."

그녀는 필사적으로 배의 총상을 누르고 눈을 뜨려고 했으나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지고 있었다.

문 앞에 있던 김인애가 바닥에 흥건한 피를 밟고 뚜벅뚜벅 걸어왔다. 그녀는 한승호와 나지혜에게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그들을 바라보는 김인애의 뺨에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영상에는 분위기에 맞는 격렬한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카메라가 페이드 아웃되며 그들에게 멀어지더니 빌딩 밖 위로 시점이 죽 당겨졌다.

여전히 평온해 보이는 서울의 화려한 위용과 공동화 현상이 발생해 완전히 슬럼화된 외곽 지역이 을씨년스럽게 교차했다.

"와아···."

"허어···."

배우들이 영화와 같은 라스트 신을 보고 감탄한 듯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거실에 무거운 적막감이 흐르고 있었다.

"새드 엔딩이네요. 다른 사람은 다 죽고 김인애만 산 거죠? 이거 찍을 때랑 뭐가 달라요? 반전 어디 갔어요?"

나유정은 내 얼굴을 쳐다보며 질문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 에필로그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나를 제외하고 3명이었다. 이준환 감독, 한성우, 이수현.

끝날 것 같은 화면에서 갑자기 자막이 등장했다.

"어? 뭐야? 안 끝났어?"

ⓒ 소광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