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89화 (89/263)

< 재계약 안될까요? (1)>

나는 아침 일찍 애마를 몰고 회사에 도착했다. 주말에 시청자들에게 욕을 먹었더니 부쩍 건강해진 느낌이었다. 특히 어제 박영관에게 온 톡을 보며 빙긋 미소를 지었다.

[박영관 : 형이 인간이야? 살려내. 살려내라고! ㅠㅠ 최악! 극혐!]

‘최악이라니? 이 녀석이 할 말 안 할 말 구별을 못 하네? 음···. 그런데 나 변태는 아니겠지?’

잡생각을 지우기 위해 머리를 흔들며 사무실로 들어서자 나우민 팀장이 아는 척을 했다.

“이 실장. 일찍 나왔네?”

그는 나에게 반말을 해서 그런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무래도 여긴 회사였으니까 말을 조심해야 했다.

“팀장님. 그냥 평소대로 하시죠? 우리가 남입니까?”

사실 이게 내 회사라면 이러면 안 되겠지만 나는 독립을 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나 팀장은 평소에도 나를 좋아하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런데 김하진은 왜 죽였냐?”

“팀장님도 그 소리 하시는 겁니까? 안 그래도 집에서 가족들한테 한 소리 들었는데···.”

“그러니까 왜 죽이냐고? 살려야지. 이거 진짜 새드 앤딩이냐?”

“그런 건 방송으로 확인하세요.”

“에이. 왜 그래. 나만 살짝 알려줘 봐. 우리끼리 너무한 거 아니냐?”

“형. 부모님한테도 줄거리 안 알려줬거든요?”

“넌 어쩜 그리 철저하냐? 스토리도 좀 슬쩍 흘리고 그래야 하는 거 아냐?”

“됐고요. 주변에 반응은 어때요?”

“다들 작가 욕하지 인마. 나지혜가 이제 제대로 된 남자 만나나 싶었는데 총에 맞고 죽어버리니 황당한 거지.”

“어이! 무슨 작당들이신가?”

이두박근을 꿈틀거리며 조형택 팀장이 계단을 올라오고 있었다.

“오! 조블리 팀장님. 오셨어요? 아침부터 계단에서 운동하시네.”

그는 나에게 다가오더니 표정을 굳힌 채 내 멱살을 잡았다.

“너 인마. 드라마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우리 어여쁜 마나님께서 오밤중에 펑펑 울게 만드냐고? 엉? 산후우울증 겨우 극복해서 이제 좀 괜찮아 졌고만···.”

“호쾌한 유정 씨 액션을 보고 스트레스 풀린다고 한 사람이 누군데?”

“그걸 이어가야지. 왜 중간에 살인 태클을 거는 거냐?”

“형. 울다 보면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돼서 스트레스가 오히려 풀리는 법이야.”

“그건 미친 변태 놈들이나 그러는 거지.”

“아이 씨. 이거 안 놔? 이건 심리학적으로 일리 있는 소리야. 괜한 말 하는 거 아니라고. 그리고 스토리는 이번 주에 최종화를 보면 알게 될 거야.”

나는 조블리 팀장의 팔을 뿌리치며 옷을 정리했다.

“형택이 형. 테리우스는 유니버설 J랑 계약했다면서요?”

“어, 어. 맞아. 거기가 제일 좋은 조건은 아니었는데 슈퍼노바가 거기라네? 자기들이 홍보를 잘해준다고 하더라.”

그렇구만. 유니버셜 J 측도 슈퍼노바 뒤를 생각해야 한다. 아마도 다른 큰 아이돌을 뺏겼기 때문에 테리우스를 차선책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미튜브를 찾아보니 일본 언론이나 TV에서도 테리우스가 이따금 소개 되는 것 같았다. 내가 워낙 테리우스를 쳐댔더니 미튜브 알고리즘이 그런 정보를 쏙쏙 빼서 나에게 배달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드라마가 인기를 끌고 히트할 조짐을 보이니 다들 계약을 하려고 안달 난 것이다.

“유니버셜이 우리 쪽 준비상태를 보고 놀랐다던데? 벌써 디지털 앨범까지 만들고 있다는 걸 듣고 엄청 좋아했다네. 타이밍이 딱 맞을 것 같다면서···.”

‘후후···. 역시 예상대로고만? 이거 조만간 일본에 강제 진출하게 생겼는데?‘

팀장들과 헤어져 사무실에 들어왔는데 대표이사부터 이사들이 차례로 내방에 들러서 이런저런 이야기와 나만의 세계 이야기를 하고 나갔다.

확실히 업계 사람들에게는 이슈긴 이슈인듯싶었다.

나는 팀원인 DJ. Nec과 오랜만에 함께 밥을 먹고 오후반차를 신청했다. 그리고 애마를 몰아 레테로 향했다.

내비게이션을 따라 레테에 처음 와봤는데 규모가 꽤 커진 것 같았다. 예전엔 작은 사무실이었던 걸로 알고 있었는데 요즘은 빌딩 한 층의 절반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최근 웹툰, 웹소설이 급격하게 성장한 것을 반영하듯 기업 자체의 외형이 상당히 커진 모습이었다.

‘음. 레테. 웹소설로 돈 좀 벌었나 보네?’

나는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최덕수 피디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허···. 이 자식 아직도 번호를 저장 안 해놨네? 무개념 새끼!’

“피디님. 쿠폰루팡입니다. 몇 층 어디로 가면 되나요?”

”어? 작가님. 안 오셔도 되는데 진짜로 오셨네. 흠···. 일단 11층 오른쪽 끝에서 두 번째로 오시면 됩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그를 찾아갔다. 오른쪽 끝 창문 쪽으로 다가가니 삼십 대 후반의 남자가 모니터를 쳐다보며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딱 봐도 외모부터 최덕수 PD라는게 느껴졌다.

약간은 벗겨진 머리에 마른 체형인데 배만 볼록 튀어나온 거미 체형의 사내. 평소에 움직임이 부족한 타입이 이런 스타일이 많았다.

“안녕하세요. 최덕수 피디님. 쿠폰루팡입니다.”

“어? 아, 안녕하세요?”

그는 나의 떡대를 보고 놀랐는지 약간 주눅이 든 것 같았다.

“계약 해지서를 작성하러 왔습니다.”

“네. 일단 여기 앉으세요.”

그의 게슴츠레한 눈이 나를 위에서 아래로 훑는 게 느껴졌다. 내 외형을 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봐야 아무것도 안 나오지 인마.’

오늘은 그냥 라이트 그린 색 티셔츠에 베이지색 면바지와 운동화를 평범하게 차려입고 나온 상태였다. 어딜 봐도 고급스러운 느낌은 없었다. 그냥 깔끔한 정도?

“감기 걸리셨어요? 마스크는 왜 쓰고 계세요?”

역시나 외모나 옷에서 별다른 특징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곧바로 평소 말투로 돌아온 최덕수 피디였다.

“평소에도 그냥 습관적으로 쓰고 다닙니다.”

“아···. 그러세요?”

"피디님 여기 건물 주차장이 꽉 차서 빌딩 앞에 공터에 주차해놨는데 혹시 단속하나요?"

“차 몰고 오셨어요? 뭐 번화가는 아니라 단속은 별로 안 하는 거 같던데···.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그는 의외라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마치 얘가 어디서 돈이 났지? 하는 그런 표정이었다.

“오해하지 마세요. 그냥 싼 거 하나 사서 타고 다니고 있습니다.”

“아···. 오해는요. 편한 대로 하고 다니는 거죠. 물론 그게 분수에 맞지 않으면 문제가 되겠지만요.”

그는 그 말을 하며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흐흐···. 역시 최덕수 PD는 태생이 까칠한 사람이다. 누가 꼰대 아니랄까 봐. 능력이 안 되면 차 타고 다니지 말라는 거네? 뭐 맞는 이야기긴 하지만 누가 누굴 걱정하나?

“피디님 혹시 결혼하셨어요?”

“아뇨. 아직 독신입니다.”

왜 그런 걸 물어보냐는 듯 나를 한번 째려보더니 서랍을 뒤져 서류를 하나 꺼내 나에게 쓱 하고 들이밀었다.

“여기 쿠폰루팡님 계약해지서입니다. 형광펜 칠해놓은 곳 있죠? 거기에 이름하고 주소 그리고 사인을 하시면 됩니다. 총 두부인데요. 하나는 작가님 가지시면 되고 저희는 계약해지서와 계약서를 동시에 보관하게 되는 겁니다. 아셨어요?”

나는 서류를 받아 들고 읽어보는 척하면서 슬쩍 질문을 해봤다.

“그런데 레테 많이 커졌네요? 예전에 이런 사무실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작가들도 많아진 거죠?”

“당연하죠. 최근 매출액만 보더라도 작가님이 활동하실 때보다는 몇 배 성장했고요. 유명하신 작가님들도 저희랑 많이 계약하셨죠.”

“흠···. 그렇군요. 사장님은 오늘 안 계시나요? 여기 다 작성했습니다.”

“아. 네. 다 작성되셨고요. 이제부터 계약은 해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왜 찾으세요? 잠시 나가셨는데 곧 돌아오실 겁니다.”

“아! 저랑 살짝 인연이 있긴 합니다. 레테 사장님도 작가셨잖아요? 그럭저럭 잘나가는 기성이셨죠. 저랑 단톡방에서 꽤 오래 알고 지내던 사이에요.”

“아···. 그러시구나. 전 몰랐습니다.”

그의 눈매가 살짝 이상해지는 것 같다. 설마 내가 사장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진 못한 듯했다.

“이 바닥 좁죠.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저야 대학교 때부터 활동했으니 인맥이 넓은 편이죠. 제가 피디님 말만 믿고 레테랑 계약을 한 건 아니에요. 사장님도 좀 알고 그래서 한 거죠.”

“그, 그러시구나.”

“제가 글 쓸 당시에 안 좋은 일도 있고 해서 멘탈이 좀 나간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계약한 작품은 신경을 못 썼네요. 죄송합니다. 피디님.”

나는 그에게 예전 일을 은근히 상기시키고 있었다. 빈정대면서 글 어쩌고 한 거 기억나니? 허구한 날 하꼬 작가들한테 그래와서 아마 기억이 안 날 수도 있겠구만?

“음···.”

그런데 기억은 나나 보다. 도와주지 못할망정 옆에서 헛소리나 지껄이던 자신의 모습이 말이다.

나는 슬쩍 일어나 주변의 다른 자리도 훑어보았다. 모두가 바쁘게 일을 하고 있었는데 유독 이질적인 자리가 눈에 띄었다.

‘어라? 뭐지? 그림을 그리는 사람도 있네? 웹툰도 하고 있는 건가?’

“피디님. 저기 뭐 하는 거예요? 웹툰 사업도 하세요?”

“아. 웹툰요? 제가 기안해서 추진 중인 사업입니다. 이번에 잘되면 정식으로 사장님께 요청해서 부서를 낼 작정입니다.“

그는 꽤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말했다.

“오···. 대단하십니다. 그러면 저기 작화가는 따로 구하신 건가요?”

“아니···. 뭐···. 요즘 실력 있는 웹툰 작가를 구하기도 힘들고···. 아직 초기라 모험하기는 좀 그렇고 해서 겸사겸사···.”

“응?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어차피 계약 해지된 마당에 시원하게 이야기 좀 해 줘보세요.”

“저기 그림 그리는 친구가 원래 웹소설로 우리랑 계약한 작가거든요. 선인세 줬는데 몇 개 말아먹고 쩔쩔매고 있는데, 우연한 기회에 저 작가의 패드를 보니 그림 같은 걸 취미로 그리는 모양이더라고요? 그래서 선인세 깔려면 웹툰 한번 그려보지 않겠냐고 해

서 하고 있는 겁니다.”

“음···. 실력은 있는 건가요?”

“글쎄요. 저야 뭐 전문가는 아니지만 그림이야 평타만 쳐도 되죠. 수준은 나쁘지 않은 것 같은데 결국 스토리가 좋아야 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제가 아는 동생 작품을 기반으로 웹툰화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거 제목이 뭔데요?”

“아···. ’SSS급 천마 스페이스 오디세이’라고···.”

으음···. 일단 제목만 들어봐도 심상치가 않다. 양산형 웹소설 아니면 파쿠리 작인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 만화책을 많이 읽었기 때문에 그림 그리는 사람을 약간 동경하는 그런 마음이 있었다. 호기심이 동해 집중하고 있는 웹툰 작가 뒤로 다가갔다.

‘응? 헉! 뭐야?’’

인물 작화 수준이 엄청 디테일하면서 화려한데 퀄리티가 거의 미친 수준이다. 그런데 제대로 웹툰을 그려보지 않은 것인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특색 없게 화면을 구성하고 배경이 너무 어지럽다. 유명 만화인 버서크의 초반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지금 그림을 그리고 있는 사람은 두꺼운 안경을 쓰고 살집이 있는 순박하게 생긴 청년이었다. 한 반에 서너 명씩은 있는 그런 덕후같은 모습이었다.

‘자, 잠깐···. 뭔가 범상치 않은데?’

나는 서둘러 아우라 스카우터를 가동시켰다.

'오! 뭐야! 대박!'

그의 몸에서는 커다란 보라색 아우라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아무래도 선인세를 갚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생각도 없는 웹툰 작가를 시작한 것 같았다.

‘어허! 실로 이런 곳에서는 썩기 아까운 인재로다.’

나는 일단 그를 눈여겨보았다. 딱 봐도 각이 나오는 게 월급이나 줘서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그 과실은 회사가 가로채려는 의도가 보였다. 왠지 불쌍하다. 이게 수렁이라는 걸 모르나 보다.

그렇게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마침 회사 입구가 열리며 한 중년인이 당당한 걸음걸이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혹시 대표님이에요?”

끄덕끄덕···.

최덕수 피디가 무의식중에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나는 비릿하게 웃으며 손을 번쩍 들었다.

“천광수 님!”

내가 소리를 내서 그를 부르자 레테 사장 천광수는 나에게 다가오며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혹시 누구···.”

“저에요. 예전 레테 작가 단톡방에서 활동하던 쿠폰루팡이요.”

“아아! 쿠폰루팡님! 어우야. 이거 처음 뵙습니다? 톡방에서는 꽤 많은 대화를 나눴었는데 말이죠?”

그의 미친 리액션이 작렬했다. 필명이 천광수, 이름도 천광수인 무협 작가 겸 매니지먼트 회사의 사장은 이제 영업맨이 다 되어 있었다.

사장이 나를 아는 척하자 최덕수 PD는 상당히 당황한 듯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득의의 미소를 지으며 마스크를 벗었다.

“어라? 어디서 뵌 적이 있는 것 같은데요. 루팡님?”

“하하하···. 그런가요?”

“잠깐만! 호, 혹시 요즘 나만의 세계를 쓴 이준형 작가님 아니에요? 슬기로운 덕질 생활하고요!”

“맞습니다. 제가 그 이준형입니다. 형님. 쿠폰루팡요.”

“와! 세상에 이런 일이! 쿠폰루팡님이 요즘 장안에 화제인 이준형 작가님이라니···”

나는 천광수 사장과 반갑게 악수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옆을 보니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최덕수 PD의 얼굴이 보였다.

‘어때? 나 이런 사람이야.’

살짝 유치하긴 하지만 맺힌 건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때? 처지가 역전됐지? 거봐. 사람 봐가면서 이상한 짓 하지 말라고 덕수 씨.’

최덕수 PD의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 소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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