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88화 (88/263)

< 집에서 뭐 하세요? (2)>

“왜 그래요? 또 속 안 좋아요?“

나는 굳어진 나유정의 얼굴을 보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아, 아니요. 그런 거 아니에요.”

블랙소울 멤버들은 이미 노래방 기계 설치를 끝낸 상황이었다.

“헤헤. 이거 내가 쓰던 모델이야. 인터넷으로 곡도 다 바로바로 업데이트되거든? 응? 이거 최신곡 업데이트도 다 끝나있네?”

“어라? 이거 저장된 애창곡들이···.”

“왜? 뭐 문제 있어?”

“그게 아니라 부른 곡들이 죄다 슈퍼노바랑 테리우스···. 그리고···.”

“하하하! 아 이거···. 준형 씨가 저번에 방송 나간다고 연습해서 그래.”

“여기서요? 매니저님이?”

아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내가 언제? 와 이걸 이렇게 돌려 막는다고? 이 여자 너무 무섭다.

“혜수 언니. 뭐해요. 같이 노래 불러요.”

“너희끼리 불러. 나는 왠지 노래 부를 기분이 안 난다.”

“왜? 아까 드라마 때문에?”

“응···.”

“작가님. 왜 그러셨어요? 적당히 하셨어야죠. 왜 하진이를 죽이고 그런 거예요. 우리 혜수 언니가 얼마나 좋아했는데···.”

“죄송해요. 이미 처음부터 그런 역할이었어요.”

리더 혜수가 아직도 드라마 생각이 나는지 술을 마시고도 그의 연기가 뇌리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아···. 진짜···. 오랜만에 쇼크 왔어요.”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쉰 후 다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혜수야 나랑 같이 마시자. 혼자 마시지 말고···.”

“유정 언니. 가슴이 너무 아파요.”

“그래. 우리 혜수가 감수성이 풍부하구나.”

둘은 약간 취했는지 껴안고 서로를 토닥이고 있었다. 확실히 혜수가 연기에 재능이 있어서 그런지 감수성이 풍부했다. 그런 모습을 보니 더욱 그녀가 탐이 났다.

갑자기 음악이 나오며 리나의 애절한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역시 그룹의 메인보컬다웠다. 독특한 음색과 파워풀한 가창력으로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와···.”

나는 그냥 멍하니 그녀의 라이브를 듣고 있었다. 세계 최고의 걸그룹의 노래를 가까운 거리에서 보다니. 매니저 겸 작가 되기 잘한 것 같았다.

“음···. 와 이거 되게 좋다. 나도 이런 거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연습실 말고 집에서 평소에 못 부르는 노래도 막 하고···.”

리나가 노래를 마치고 노래방 기계가 있었으면 하는 의견을 내비쳤다.

“리나야. 그냥 그거 가져.”

“응? 언니는 어쩌고?”

“난 잘 안 쓰거든.“

“정말? 그래도 돼?”

“당연하지. 마이크까지 다 가져가.”

“와우! 득템!”

“그런데 리나야. 너희 숙소에서 이렇게 해놓고 노래 부를 수 있니?”

“음···. 글쎄요?”

“자 일단 알겠고 우리 스타 작가님의 라이브를 들어볼까요?”

나유정은 내 얼굴을 보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뭐야? 왜 또 나야?

“와! 이준형! 이준형!”

블랙소울 멤버들이 모두 내 이름을 연호하며 노래를 부르라고 압박을 주고 있었다.

‘허···. 내가 그때 방송에서 슈퍼노바의 처절한 피눈물을 불러서 그렇지 음치는 아니라고!’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이크를 건네받았다. 나는 성시후의 내게 가는 길이라는 노래를 선택했다.

‘후후···. 내 진짜 노래 실력을 보여주겠어.’

간주가 지나고 내 노래가 시작되자 블랙소울 멤버들이 하나둘씩 실망하는 표정을 짓기 시작했다. 내가 노래를 그다지 잘한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방송에서 보여줬던 어이없던 모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에이. 뭐에요. 핵노잼! 처절한 피눈물 갑시다.”

“가즈아!”

“이게 마지막입니다. 목이 안 좋네요. 켁켁.”

사실 나는 유리 성대이기도 하다.

“에이. 이준형 약하다!”

알딸딸하게 맛이 간 나유정이 나 들으라고 크게 소리쳤다.

“아무래도 작가님이 그때 방송에서는 긴장하셔서 그랬나 봐요.”

“하긴. 그런 레전드 영상을 미리 계획하고 만들었을 리가 없지.”

모두가 실망하는 눈치였지만 나는 그런 것에 굴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흑역사는 없으니까.

“언니들···. 제가 SNS에 공약하나 올렸어요.”

안젤라가 휴대전화를 들고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너···. 혹시 술 먹고 사고 친 거 아냐? 이리 줘봐”

“사고 안 쳤어. 내가 무슨 트러블 메이커야?”

“응? 나만의 세계 시청률이 40%를 넘으면 유정이 언니와 그룹을 짜서 라이브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도록 하겠습니다? 뭔데 이거?”

“왜? 재밌잖아. 우리 유정이 언니도 끼워주자. 히히···.”

나는 살짝 걱정되어 나유정에게 물어봤다.

“안젤라 씨가 시청률 40% 공약 걸었다는데요? 라이브 하면서 댄스 가능하시겠어요?”

그녀는 내 반신반의하는 표정을 보고 아니꼬운지 내 얼굴을 째려봤다.

“지금 저 과소평가 하시는 거예요?”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그냥 걱정돼서 물어본 거지. 춤추는 거랑 라이브 하면서 하는 거랑 차원이 다르잖아요.”

“뭐야. 이준형 사람 무시하네? 당신. 그러는 거 아냐! 딸꾹.”

허허···. 나유정 취했네. 취했어.

“유정 씨. 주량 한참 넘은 것 같은데 이제 술은 그만 드시죠?“

“우리 작가님이나 걱정도 해주네? 히히···. 기분 조으다.”

으음··· 이런 점점···.

“오늘 내가 아끼는 동생들도 놀러 오고 기분도 좋으니 한 곡 뽑아야겠당.”

나유정은 갑자기 바닥에 떨어진 마이크를 잡더니 크게 소리쳤다.

“안젤라! 마지막 사랑인걸! 선곡 부탁해~~”

“오케이! 자 갑니다. 블랙소울 제5의 멤버가 부릅니다. 마지막 사랑인걸!”

간주가 나오고 나유정은 신이 났는지 저번에 열심히 연습했던 댄스까지 정확하게 추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블랙소울의 멤버들도 다 같이 일어나서 춤을 따라 추고 있었다.

드디어 노래 부분이 흘러나왔다.

“뜨어.. 너언.. 대체.. 어디일 보고 있느은 거뉘~”

첫마디가 나오자마자 거실에서 춤을 추고 있던 블랙소울 멤버 4명이 동시에 무너졌다.

“큭··· 푸하하하···.”

“언니이···”

“엄마야. 나 죽어. 어흐흐흑.”

모두 나유정의 수준 이하의 저세상 가창력을 듣고 빵 터지고 말았다.

‘이래서 아까 노래방 기계 나올 때 유정 씨가 그렇게 정색한 건가?”

이미 술에 취해 이성을 상실한 것 같은 그녀는 우리가 웃든 말든 노래를 꿋꿋이 이어가고 있었다.

와···. 미치겠다.

나유정은 진성 음치였다.

내가 본 사람 중에서도 최고의 음치!. 그것도 왠만한 연습으로는 교정할 수 없을 것 같은 수준이었다. 노래가 아니라 그냥 술 취한 동네 아저씨가 부르는 노래 같았다. 목소리도 얼마나 떨리는지···. 듣고 있기가 민망한 수준이었다. 그런데 웃긴 게 노래는 심각하게 엉망인데 춤은 또 칼처럼 딱딱 맞추니 그게 또 킬링포인트였다.

“하아 하아. 언니 너무 웃겼다. 배 찢어지는 줄···.”

“킥킥···. 유정이 언니는 우리 멤버로 들어오려면 립싱크를 해야겠어.”

아무래도 이것도 아이돌 굿즈와 더불어 평생 묻어줘야 할 비밀 같았다. 나는 블랙소울 멤버들에게 비밀을 지켜 달라고 부탁했다.

“욜~작가님. 또 매니저라고 담당 연예인 챙기는 거예요? 우리가 왜 그런 걸 이야기하고 다니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너희들 무조건 입 다물어라. 유정이 언니가 무서울 정도로 끔찍한 음치라는 사실이 돌면 그게 다 우리 탓이니까. 알았어?”

나는 노래를 부른 후 소파에 벌러덩 누워있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오늘 폭주했군. 이것도 숨겨왔던 비밀일 텐데···. 앞으론 술 조심시켜야겠다.’

나는 혜수에게 나유정을 맡기고 돌아가기로 했다.

그녀는 내가 나가려고 하자 현관까지 따라 나왔다.

“혜수 씨. 그럼 유정 씨 좀 부탁드릴게요.”

“네. 걱정하지 마세요. 작가님.”

“그럼···.”

“저···. 혹시···.”

나가려는데 그녀가 뭔가 할 말이 있는지 말을 얼버무리고 있었다. 나는 몸을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네. 말씀하세요.”

“작가님이 기획하고 계신다는 차기작요. 거기 제가 들어갈 수 있을까요? 물론 제가 능력이 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기회를 주신다면 열심히 해보고 싶습니다.”

오오···. 땡큐땡큐다. 그녀는 아직 자신의 잠재력을 모르고 있다. 걸그룹 준비만 해와서 그런지 연기 수업도 받지 않은 모양이었다.

‘음···. 비주얼 센터는 웬만하면 연기도 가르치는데···. YN엔터 대표님이 그 당시에 정말 칼을 갈았구나.’

블랙소울 전의 걸그룹도 탑이었지만, 각자 의견이 다르고 멤버들 사이가 좋지 못해 재계약을 하지 못한 거로 알고 있다.

“일단 오디션을 봐야겠지만 저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딱 봐도 혜수 씨는 모든 걸 다 잘하는 밸런스형 인재거든요.”

“가, 감사합니다. 작가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기분이 너무 좋네요. 악플러들은 저를 보고 이것도 저것도 아닌 애라고 욕하는데···.”

“그건 혜수 씨의 잠재력을 모르기 때문이에요. 연기하시면 그걸 깨닫게 되실 거에요.”

“작가님 말처럼 정말 그러면 좋겠네요. 하아···.”

“왜요? 대표님 때문에요?”

“네. 요즘은 5년 지나도 잘 안 시켜주실 것 같이 말을 하시더라고요.”

나는 고개를 숙이는 그녀를 보고 자신감 있게 말을 했다.

“혜수 씨가 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면 제가 대표님을 찾아뵙고 말씀을 드려보도록 하겠습니다.”

“저, 정말요? 감사합니다. 작가님.”

감사는 무슨? 오히려 감사할 사람은 나다. 세계 원탑이라고 불리는 걸그룹 리더가 내 작품에 손수 나온다는데 두 팔 벌려 환영해도 모자란 지경이다.

나는 혜수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며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블랙소울의 혜수라니!

이건 무조건 대박이다. 아직 확정은 안 됐지만, 뮤지컬 작품에 예비작가 윤하영, 프렐류드 메인보컬 다솜, 블랙소울 혜수 벌써 세 명의 예비 출연자가 내 멋대로 선정됐다.

‘어우. 벌써 2시 반이네. 쩝···. 일로도 바쁘고 글도 써야 하고 유정 씨 케어도 해야 하고 바쁘네. 바빠.’

운전하는데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 * *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오전 늦게 일어나 머리를 긁적이며 기계적으로 연예 뉴스를 확인했다.

[나만의 세계 시청률 38.5% 돌파, 김하진의 처절하고 비장한 죽음. 통곡한 시청자들.]

[SNS에 김하진에 대한 애도의 물결. 작가에 대한 원색적 비난.]

[김하진을 살려내라. 도 넘은 팬들의 반응]

[블랙소울 안젤라. 나만의 세계 시청률 40% 달성 시 나유정과 퍼포먼스를 하며 라이브를 하기로 공약!]

[바이크를 타고 질주하는 나유정, 음울한 디스토피아의 액션 히어로!]

[작가의 성향이 드러난 나만의 세계. 결국, 새드앤딩으로 끝나나? -데일리 연예서치-]

어제 방영된 13화에서 화제를 모았던 신인이 연기한 김하진이라는 캐릭터가 죽자 커뮤니티와 SNS에서는 날 선 반응이 줄을 잇고 있다. 주인공에게 철저하게 도움이 됐던 캐릭터를 이렇게 허무하게 죽일 수가 있냐는 격렬한 반응이 터져 나왔다.

김하진이 죽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울어 탈진 상태라는 이야기도 있었고, 같이 본 고등학생인 딸아이가 충격을 받았다고 화를 내는 시청자도 있었다. 이 드라마의 끝이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전개는 나만의 세계가 비극적 결말로 가는 전조가 아니냐는 의견이 솔솔 올라오고 있는 상태다.

엄청나게 화가 난 한 시청자는 이게 바로 작가의 변태적 성향 아니겠냐며 그는 아마 이런 반응들을 보면서 숨죽여 웃고 있을 것이라며 작가를 비난하는 글을 올려··· <중략>

장안의 화제인 이 드라마의 결론이 어떻게 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 데일리 연예서치 황정민 기자 -

‘뭐야? 웬일로 연예서치가 맞는 기사를 내보냈네? 내가 몰래 웃고 있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지? 아···. 아니구나. SNS 반응이네. 어쩐지···.’

나의 계획대로 김하진은 시청자들에 뇌리에 강렬하게 기억될 것 같았다. 이런 액션 배우는 할리우드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캐릭터였다. 더 알려져도 나쁠 게 없었다.

솔직히 나의 내면에서 예전 쿠폰루팡 시절 독자들의 뒤통수를 치고 욕을 먹던 그 버릇이 나오는 게 아닌가 하는 불안감도 살짝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김하진의 죽음은 고전 드라마인 태엽 시계와 동일한 클리세라고 생각한다. 웹소설과 영상은 받아들이는 게 상당히 다르니까 그 점을 잘 유념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토요일에 방영된 14화는 나지혜가 아는 조폭 끄나풀이 가끔 사용하는 은신처에 들르는 것으로 시작됐다. 텅 빈 눈동자의 나유정이 바이크에 내려 비틀거리며 거의 관리가 안 되는 오래된 고층 아파트의 펜트하우스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가 닫히려고 하는데 판초 우의를 입은 남자가 그녀를 따라 들어왔다. 1화에 나왔던 그 연쇄 살인마였다.

이 장면은 나유정과 내가 같이 아이디어를 내서 집어넣은 것이었다. 최상층 바로 아래 버튼을 누른 엘리베이터 연쇄 살인마는 기존과 같은 방법으로 나지혜에게 겁을 주고 위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하지만 나지혜는 무표정하게 한숨을 푹 내신 뒤, 등에 차고 있던 칼을 꺼내고 문이 열리자마자 칼을 들고 들어오는 살인마의 손목을 날려버린 뒤 목을 쳐버린다. 피가 쏟아지는 자신의 목을 잡으며 천천히 무너지는 연쇄 살인마. 번개 같은 2연 격이었다.

귀찮은 듯 발로 그를 밀어버리는 나지혜.

그녀는 쪼그려 앉아 살인마의 꺼져가는 동공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그 엘리베이터 연쇄 살인마는 누워서 한쪽 손으로 자신의 목을 잡고 있었다. 그는 의외로 앳돼 보이는 외모의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지혜의 입에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이 좆같은 세상!”

“큭···. 그륵그르륵···”

살인마의 입에서 피거품이 울컥울컥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며 김인애와 한승호 일당의 치열한 두뇌 싸움이 전개되고 있었다.

나는 방송을 다 본 후, 다음날 회사에 출근했다가 급한 일만 마무리하고 잠시 짬을 내서 레테의 최덕수 PD를 찾아가기로 했다. 계약해지도 하고 제대로 망신도 줄 생각이었다.

ⓒ 소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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