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87화 (87/263)

< 집에서 뭐 하세요? (1)>

두 손에 가득 먹을 것을 사 들고 나유정의 집에 도착했다.

“먹을거 먹을거!”

현관으로 나온 나유정은 신이 났는지 아는 척도 안 하고 내 손에 잔뜩 들린 꾸러미만 채갔다.

“거참 사람을 보면 인사 좀 합시다.”

나는 그녀에게 싫은 소리를 하고 거실을 슬쩍 쳐다보았다.

‘오오! 블랙소울이다.’

블랙소울.

YN 엔터 소속의 4년 차 걸그룹으로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슈퍼스타였다. 여자 슈퍼노바로 불리고 있으며 진짜 슈퍼노바가 입대하면 그 자리를 이어받을 가장 영향력 있는 그룹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기레기들이 슈퍼노바의 후계자가 테리우스라는 둥 하는 그런 기사를 내보내고 있지만 사실상 나는 블랙소울이 진정한 후계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룹을 이렇게 사적으로 보게 되다니!

물론 음악방송에서 스치듯 본적은 있었지만 이런 장소에서 만나는 건 약간 설레는 일이었다. 어쨌든 아이돌이 아니던가?

나는 열린 안방 문이 보이길래 순간적으로 움찔하고 말았다.

‘블랙소울 온다고 방을 다 치운 건가? 양이 많아서 힘들었을 텐데? 혹시 다시 전시하는 데 도와달라고 하는 거 아냐?’

인상을 찌푸리면서 거실로 들어서자 멤버들이 전부 나를 쳐다보았다. 음···. 나유정의 화려한 외모에도 면역된 나다. 걸그룹이라고 다를 게 뭔가?

“안녕하세요. 이준형입니다. 다들 뭐하고 계셨어요?”

“작가님. 안녕하세요.”

“앗! 언니 매니저님이다!

”작가님. 저 팬이에요!“

그녀들은 반갑게 나를 맞아주었는데 다들 평상복이나 추리닝을 입고 있었고, 그룹 단체인사가 아니라 개별적으로 인사를 나눴다.

네 명의 멤버들 사이에서 튀는 자주색 캐릭터 추리닝을 입고 있는 나유정의 모습이 유독 눈에 띄었다.

‘내가 사준 옷이네. 거봐. 추리닝이지만 새것을 입고 있으니까 얼마나 좋아. 맨날 늘어진 거만 입더니···.’

나유정이 적어도 4살 정도는 위지만 왠지 모르게 블랙소울과 위화감 없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그러고 있으니 5인조 그룹 같네요. 연습실에서 연습을 마치고 노닥거리는 걸그룹이요.”

“호호···. 거봐 언니. 아까 우리가 했던 말을 작가님이 그대로 하시잖아.”

“에이. 5인조 그룹이라니. 인터넷에서 제5의 멤버 어쩌고 하는 거 그거 다 그냥 한번 웃기려고 그러는 거야.”

“어라? 아닌데요? 여기 테리우스 제6의 멤버도 계시는데···.”

“어우···. 아뇨. 아뇨.”

나는 손을 미친 듯이 흔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킥킥···. 되게 재밌으시다.”

“작가님이 방송에서 슈퍼노바 춤추고 노래 부르는 거 봤어요. 그거 보는데 시작하자마자 빵 터져서 전부 방바닥에 쓰러진거 아세요?”

“와하하···.”

그걸 내가 알아야 하나? 젠장 흑역사를 또 언급하다니···. 도대체 안 본 사람이 있는 건지 모르겠다. 재밌다고 하는데 정색하면 갑분싸가 아니던가? 그냥 적당히 맞춰주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사실 잘 추는데 그냥 웃기려고 그랬습니다.”

“뻥 치시네?”

나유정은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며 비웃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무표정한 얼굴로 당당하게 행동했다.

“안 믿으셔도 상관없어요. 전 그냥 테리우스를 위해 이 한 몸 불사른 거밖에 없습니다.”

“와. 매니저님 진짜 대단하다. 진짜 우리 매니저였으면 좋겠어요.”

“얘들아. 너희가 이분의 실체를 몰라서 그래. 결혼하기도 전에 시집살이한다고 생각하면 돼.”

“됐고요. 사 온 거 얼른 먹기나 하세요.”

“와! 배고파. 맛있겠다!”

그들은 식탁에 차려놓은 음식들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자리가 부족해서 나는 조금 있다가 먹기로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내가 키우는 걸그룹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소파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멍하니 그 모습을 감상했다.

‘아. 이럴 게 아니라 블랙소울의 아우라를 한번 볼까?”

오랜만에 손을 들어 아우라 스카우터를 가동시켰다.

‘캬! 대박이네. 역시!’

명불허전이라는 말이 절로 튀어나왔다. 메인 래퍼 재은에게서 강렬하기 그지없는 분홍색 아우라가 빛나고 있었고 메인 댄서 안젤라에게서는 눈이 부실 정도의 흰색 아우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메인보컬인 리나에게서는 시뻘건 아우라가 치솟고 있었다.

‘흐미···. 아우라 크기 좀 봐. 후덜덜이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리더이자 다방면의 재주꾼이라고 알려진 혜수에게서는 진한 갈색의 아우라가 보이고 있었다.

‘오···. 카이스트 지령이 보다는 못하지만, 그에 못지않은 똥색(?)의 빛깔이네?’

슈퍼 걸그룹답게 4명이 전부 엄청난 아우라를 지니고 있었다. 특히 나는 리더인 혜수가 탐이 났다. 브라운 컬러였으니 4명 중 유일하게 연기 재능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였다.

래퍼 재은이 가창력과 댄스에 뛰어난 재능을 갖추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각자 포지션에 맞는 컬러를 보여주고 있었다.

‘혜수가 연기해본 경험이 있나? 노래도 잘하고 연기력도 있다면 내 작품에 출연시켜도 좋을 거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드라마 같은 곳에서 그녀를 본 기억이 나지 않았다. 러시아 혼혈이라는 안젤라에게도 밀리지 않는 비주얼을 가진 혜수가 내 작품에 나온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 화제성도 엄청날 것 같았다. 넘버원 걸그룹이 출연한 작품!

“혜수 씨. 혹시 연기해본 적 있으세요?”

“아, 아니요. 저희는 아직 솔로 음반 활동 빼곤 거의 다른 활동을 자제하고 있거든요.”

아아. 그렇구나. 그룹 전체가 이렇게 인기가 있고 돈을 버는데 굳이 따로따로 굴릴 필요가 없는 거지. 그리고 개별적으로 돌리다가 멤버 간 사이가 안 좋아져서 쪼개지는 그룹도 많으니까.

“작가님. 혹시 우리 리더 드라마에 캐스팅하시려고요?”

안젤라가 족발을 뜯다가 깜짝 놀란 듯 나를 쳐다봤다.

“와! 진짜? 진짜? 작가님 다음 작품 계획 있으세요? 언니 혹시 아세요?”

도리도리.

나유정은 모른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아직 내 차기작이 뭔지 모르는 상태였다.

나는 혜수가 욕심이 난 나머지 차기작에 관한 내용을 살짝 흘렸다.

“음···. 나만의 세계 이후 뮤지컬 드라마나 맘마미아 같은 영화를 하나 만들어볼까 생각 중이에요.”

“뮤지컬요? 저, 저요!”

메인보컬 리나가 조용히 있다가 나를 보며 손을 번쩍 들었다.

미안하다. 리나야. 넌 연기력이 없어서 음···. 탈락.

“혜수 씨 혹시 관심 있으세요?”

“저, 저요? 관심은 있긴 한데···.”

응? 이 미적지근한 반응은 뭐지? 나름 연속으로 드라마를 히트시킨 스타 작가인데···.

“아···. 리더. 대표님 방침 때문에 그러는구나?”

“아니. 그게 뭔데 그렇죠? 방침이라니요?”

“저희 대표님이 5년 차까지는 잠깐씩 하는 솔로 빼고는 개인 활동을 안 시키겠다고 하셨거든요.”

“아니 지금 4년 차인데···.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그냥 시켜주시지.”

나는 혜수를 출연시키고자 하는 욕심에 나도 모르게 속마음을 내뱉고 말았다.

“와. 작가님 우리 리더 뭘 보고 캐스팅을 하려고 하시는 거예요? 여기 유정이 언니도 있잖아요?”

안젤라가 나유정을 돌아보며 말을 하니 그녀가 사색이 된 얼굴로 손을 들고 고개를 흔들었다.

“아···. 난 그거 안 하려고···.”

“응? 왜요? 지금 작가님하고 언니 콤비가 얼마나 찰떡인지 모르세요? 연속으로 시청률 25%를 넘겼잖아요. 이게 얼마나 전무후무한 일인 줄 아시냐고요.”

사실 전 세계 수십여 개국에서 1위 찍는 블랙소울이 더 말이 안 되는데···.

어쨌건 러시아 엘프같이 생긴 안젤라가 완벽한 한국인처럼 말을 하니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잠깐? 생각해보니 이상하긴 했다. 나유정은 왜 작품이 뭔지 듣지도 않고 안 한다고 하는 거지?

“안젤라. 난 이제 좀 쉬어야지. 드라마를 연속으로 했잖아.”

“아 그럴 수 있겠네요. 몇 개월간 엄청나게 찍으셨으니···.”

음. 그래도 뭔가 이상하다. 요즘 나유정의 컨디션은 최상이라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는데 피곤하다? 이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다.

‘뭐 솔직히 나오기 싫으면 안 나와도 된다. 어차피 걸그룹 스토리라 나유정과는 연령대가 살짝 맞지 않는다. 물론 얼굴로만 보면 크게 무리는 없어 보이긴 하지만···.’

“이제 드라마 시작해요. 이거 먼저 감상하고 술 한잔하시죠.“

메인 래퍼 재은이 소파에 앉아서 소리쳤다. 나는 그녀들이 떠난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나만의 세계 13화는 나지혜와 김하진의 약간의 달달한 신과 김인애가 음지에서 조직을 와해시키려고 증거들을 모으는 내용이 나오고 있었다.

“언니. 김하진 역할을 하는 정혜성 씨랑 너무 잘 어울린다.”

“그러게. 같이 몸 쓰는 커플이네.”

“에이. 몸 쓰는 커플이라니 좀 어감이 그렇다?”

블랙소울 멤버들은 서로 킥킥거리면서 감상평을 말하고 있었다.

“러브러브 해피엔딩 모드로 가나요?“

김인애는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몰래 잠입을 한 상태였다. 그녀는 별장에서 잡히기 전에 동료 정신과 의사인 김태원의 출입카드를 복사해놓은 상태였고, 아주 오래전에 우연히 그가 키보드를 치는 장면을 슬쩍 보고나서 비밀번호를 외워버린 상태였다. 역시 멘사 회원다운 기억력이었다.

만약 김인애 자신의 출입카드나 아이디로 전산망에 접근한다면 무조건 잡힌다고 봐야 했다. 그만큼 이영민의 감시 체계가 철저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이미 일부러 잡히면서 초소형 녹음기와 동영상 촬영 기구를 이용해 일부 증거를 수집한 상태였다.

그의 컴퓨터를 조사한 김인애는 지금까지 김태원이 해놓은 짓을 알아차리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김태원은 불임클리닉에 근무 중인 김인애를 보러 자주 놀러 왔는데 그 목적이 기증받은 정자를 바꿔치기하기 위함임이 드러났다.

그는 자신의 클럽 조직원들과 자신의 정자로 일종의 실험을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인성을 상실한 과학자로서 궁금하던 것 즉, 유전으로 사이코패스가 생길 확률 실험이 순전히 재미를 위해서 10년 전부터 꾸준히 진행되고 있었다.

‘이, 이, 천인공노할 미친놈들.’

지금까지 김인애가 남성 난임 환자들을 위해 시행했던 임신 시술에 이용된 정자가 그 녀석들의 씨였을 줄이야. 하지만 김인애는 이 증거가 이 조직의 정체를 드러낼 중요한 단서로 판단했다.

정자를 공여받은 부부들은 주로 사회 고위층이 많았고 수백 쌍의 커플의 아이들이 이 사이코패스들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다는 빼도 박도 못 할 증거였기 때문이다.

공여받은 기존 유전자 분석 자료와 아이의 DNA가 서로 상이하다는 게 그 증거였다.

이 조직의 실체를 폭로하기 위한 증거를 잡고 주먹을 움켜쥐는 김인애···.

그리고 CCTV 해킹으로 조직에 꼬리를 밟힌 나지혜, 김하진 커플은 필사의 도주를 감행하며 불꽃같은 액션 연기를 보여주는데···.

결국, 도망치다가 서로 엇갈려 헤어지게 되고 나지혜가 사로잡힐 위기에 처하게 된다.

하지만 조직은 나지혜를 외곽의 공장 건물에 몰며 빠져나오기 힘들게 작전을 펼친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다시 살벌한 칼부림 액션이 펼쳐졌다. 하지만 중과부적. 나지혜는 위기에 빠지는데···.

“휴···. 김하진이다. 하진이가 왔어.”

“어, 어떡해. 느낌이 안 좋아.”

“그, 그러니까. 벌써 배경음악까지 좀···.”

블랙소울 멤버들은 뭔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는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화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나유정, 김하진 콤비의 합격술은 대단했다. 조직원들을 하나하나 처리하더니 이제는 몇 명 밖에 남지 않은 상황! 하지만 김하진은 이미 여러 군데 상처를 입고 있었다.

겨우겨우 조직원들 처치했는데 어둠 속에서 무표정한 이영민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안돼.”

타앙···.

이영민이 품 안에서 꺼낸 총구에서 불꽃이 튀었다.

“깍!”

“안돼!”

블랙소울 멤버들은 다들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화면이 느리게 흐르며 쓰러지는 김하진의 모습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그는 끝가지 쓰러지지 않고 나지혜를 돌아보며 어서 빨리 도망가라는 손짓을 했다. 순박한 그의 얼굴에 한줄기의 미소가 흘렀다.

그 일편단심에 여자 시청자들의 가슴이 미어지고 있었다.

타앙···.

“안돼···. 흑흑···.”

“하진아. 안돼···.”

안젤라의 나이보다 10살은 많은데 하진이라니··· 그녀도 드라마에 심하게 몰입한 것 같았다. 하긴 지금껏 쉴 새 없이 몰아쳤으니 그럴 만도 했다.

나지혜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이빨을 꽉 깨물고 창문을 깨고 밖으로 탈출한다. 마침 배달 오토바이가 근처에 있어서 그걸 가로채고 공장 창고와 멀어지는 나지혜였다.

등에 칼을 차고 눈물을 흘리며 어두운 도로를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는 나지혜의 모습이 멋있으면서도 처절하기 그지없었다. 드라마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준환 감독은 마지막 장면에 OST 중 슬픈 발라드곡을 넣어 슬픔을 극대화하고 있었다.

‘감독님. 이거 너무 태엽 시계랑 비슷한 거 아님? 약간 쌍팔년도씩 연출인 거 같은데···.’

그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멤버들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흑흑흑···.”

“흐허엉···. 하진아···.”

“작가님. 나빠요. 어떻게 이렇게 사람들의 뒤통수를 칠 수 있어요. 흑흑···.”

멤버들은 펑펑 울면서 돌아가며 나를 타박하고 있었다. 나유정도 편집된 것을 처음 봤기 때문에 그 장면을 보고 눈물을 찔끔 흘린 것 같았다.

“사범님 연기 좋았네요. 마지막 쓰러질 때 그 아련한 표정이란···.“

“작가님. 지금 그런 말 하실 때에요? 지금 SNS에 난리 났어요. 하진이 살려내라고···.”

흐흐···. 그걸 노린 건데? 애초부터 정혜성 사범의 역할은 그런 거였다고!

이제 김하진도 죽었으니 나지혜가 이판사판으로 2차 각성을 할 차례였다. 내일은 김인애의 폭로와 한승호 일당의 두뇌 싸움이 벌어지고 다음 주 최종화에서는 2차 근거지인 IT 회사의 빌딩에서 김인애가 합류한 최후의 결전이 있을 예정이었다.

‘음···. 이제 끝이군. 오늘은 욕을 먹어도 기분이 왠지 좋은걸?’

이러다 나도 사이코패스에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정 씨. 혹시 이 사람들 여기서 자고 가는 거예요?’

‘맞아요. 오늘 하루 우리 집에서 자기로 했어요.’

‘그럼. 안방은?’

‘그건 오기 전에 다 치워놨죠. 헤헤’

‘친구들한테는 이야기해도 되지 않나?’

‘평생 알리고 싶지 않은 게 사람마다 하나씩 있잖아요?’

‘알았어요. 그런데 드라마 때문에 분위기가 좀 그렇네요.’

‘이제 술 한잔 해야죠. 그럼 풀어지겠죠. 뭐.’

나유정은 거실 등을 끄고 무드 조명을 켰다. 그리고 거실 탁자에 술을 깔아 놓고 파티를 벌이기 시작했다.

블랙소울 멤버들과 그녀는 드라마도 잊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했다. 이제 21살이 된 막내 안젤라가 분위기를 살리며 재미있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나유정은 이렇게 친구들(?)과 술을 먹는 게 오랜만인지 약간은 오버 한다는 게 느껴졌다.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하고 이제 나는 가보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시간을 보니 벌써 새벽 1시였다.

“어, 어딜 가요? 혼자 내빼기 있음?”

“유정 씨 취했어요? 겨우 맥주 두 병밖에 안 마셨잖아요. 쯧쯧.”

“캬하하. 언니 너무 술 너무 약하다. 우리 리더랑 주량이 비슷하네.”

아닌 게 아니라 혜수도 얼마 안 마신 거 같았는데 얼굴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어? 유정이 언니! 집에 가정용 노래방 기계가 있네요?”

안젤라가 TV 아래에 있는 서랍에서 기기와 마이크를 발견한 모양.

“와! 우리 노래 부르자.”

“새벽인데 괜찮을까?”

“괜찮아. 요즘 고급아파트는 방음 엄청나게 잘돼 있어. 그리고 여긴 넓어서 뛰지만 않으면 돼.”

블랙소울 멤버들이 이야기를 하며 기기에 전원을 넣고 있었다.

“유정 씨 집에서 혼자 노래도 불러요? 저런 건 언제 사놓은 거예요?”

나는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지만, 그녀의 얼굴은 못 볼걸 본 사람처럼 경직돼 있었다. 마치 내가 그녀의 소중한 아이돌 굿즈들을 발견했을 때 놀란 그 표정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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