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로 진출해볼까? (2)>
"오! 정이든. 너 혼혈이었냐?"
"신기하네? 왜 숨긴 거야? 출생에 비밀이라도 있어?"
"그럼 엄마 못 만나는 거야?"
멤버들의 아주 사적인 질문이 이든에게 쏟아졌다. 원래 시끄러운 놈들인데 연습실이 한층 더 소란스러워졌다.
"조용!"
내가 소리를 질러 지방 방송을 끄게 한 후 정이든을 쳐다보았다.
"너 휴가 주면 해외 나간다는 게 영국이 아니라 일본 간 거야?"
"맞아. 나 일본 가서 엄마랑 있었어. 아빠하고 이혼한 거지 나랑 이혼한 건 아니니까."
"뭐 별다른 문제는 없는 거지?"
"당연하지.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다들 개인적인 삶이 있지 않아? 엄마는 엄마의 삶을 찾아간 거지. 나랑 엄마 사이 엄청 좋아. 요즘은 내가 나오는 드라마도 보는 것 같더라."
녀석. 겁나게 쿨하네. 그런데 엄마가 나 욕하시겠는걸? 드라마에서 병풍처럼 세워놨다고···.
"으음···. 그럼 일본어는 얼마나 하는데?"
"엄마가 한국말을 잘하지 못해서 영어랑 일본어로 대화했지. 그러니까 어려운 단어는 모르지만 대화하는 데 큰 무리는 없어."
"여···. 정이든 이 녀석. 작곡도 하더니 일본어까지 한다고? 거기다 바람둥이처럼 느끼하게 노래도 좀 하잖아. 버터 바른 것처럼···."
영관이가 놀라운 표정으로 정이든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영관.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잘하잖아. 왜 그 이야기는 쏙 빼냐?"
"음···. 작곡은 잘하는 거 같은데 일본어는 들어본 적이 있어야지. 저 녀석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별로 안 하니···. 우리가 알 수가 없잖아. 매일 썰렁한 말이나 해서 갑뿐싸 만드는 게 특기인데···."
테스트도 할 겸 일본어로 물어보니 곧잘 대답한다. 그리고 발음도 진짜 일본인 같고···.
"오! 뭐야! 우리 스타 작가님도 일본어 할 줄 아시네."
"이든아. 준형이 형 일본어 어떻냐? 발음은 딱 들어보니 된장 냄새가 풀풀 나는데?"
"단어 선택이 고급져."
"고급지다고?"
당연했다. 거의 활자 위주로 콘텐츠를 접해온 나다. 원서로 만화책을 봤고 애니메이션이나 기타 서적들도 본 적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내가 영어는 못해도 일본어는 약간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제2외국어가 일본어였다. 그런데 고급지다라는 건 좀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는 정이든과 일본어를 계속 주고받았다.
이든의 일본어 실력은 진짜였다. 하지만 바이랭구얼···. 아니 트라이랭구얼 특성상 어휘가 부족한 게 드러났다. 그런데도 훌륭하다. 멤버중에 일본인이 없는 것 치곤 최선의 대안이라고 생각됐다.
"오케이. 이든아. 넌 단어 위주로만 공부하면 될 것 같다."
"음···. 작곡할 시간도 없는데···."
"됐고···. 엄마랑 대화를 더 매끄럽게 할 수 있게 된다고 생각해라."
"형···. 그런데 문제가 있어. 우리가 시간이 너무 없다는 거지. 잘 시간도 없다니까?"
리더인 영관의 말대로 그들은 너무 바빴다.
스케줄을 한번 살펴봐야겠군.
"일본 진출 준비하자는데 시간이 없다고 미적거릴 거야? 사실대로 말해봐. 너 일본어 공부하기 싫어서 그러는 거지?"
"아, 아냐. 절대로 아님! 난 그냥 우리 멤버들의 건강과 복지를 위해 리더로써···."
내 송곳 같은 질문에 본심을 들켜버린 듯 당황한 표정의 박영관이었다.
"응. 헛소리하지마 인마. 내가 친히 너희들 스케줄을 좀 빼줄 테니까···."
"그, 그럼 우리 정산금이···."
"쉿. 그 입 다물라. 왜 스케줄을 줄여도 되는지 설명해주지."
나는 일본 시장의 중요성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일본 음악 시장은 거의 25억 달러 (2.7조) 규모에 육박하는 세계 제2위의 시장이며 아이돌 시장은 1.5조에 달한다. 정품 소비가 일상화된 일본 팬들은 음반, 사진, 각종 굿즈, 콘서트 등 소비력이 어마어마해서 케이팝 그룹에게는 최대의 해외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내 3대 기획사들도 나라 간 분위기가 어떻든 포기하지 않고 계속 진출을 시도하고 있었다. 같은 노래를 유일하게 일본어로 다시 발매하는 데 이쯤이면 말을 다 한 셈이다.
그리고 최근은 젊은 층 위주로 광범위하게 한류 문화가 퍼져 있는 상태이며, 넷플릭의 드라마가 국경을 허물고 반한 감정이 있는 일본의 중장년층까지 매료시켜 팬으로 만들고 있기 때문에 드라마로 일본에 알려지게 될 테리우스는 그 파급력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는 내 분석을 들려줬다.
"그, 그 정도야? 고작 드라마 한편 나온 건데?"
"고작이라고? 리다! 그건 좀 말이 심하잖아. 준형이 형 난 영관이 형처럼 생각 안 해. 내 맘 알지?"
"후후···. 그래 너희는 젊은 층뿐만 아니라 전 세대를 아우르는 스타가 될 수도 있다는 게 내 분석이다. 뭐 아니라면 그렇게 만들어야지."
음···. 약간 재수 없었나? 사실 구체적인 전략은 없다. 뭐 하면 되는 거지. 내 드라마에 더 때려 박아도 되는 거고···.
내가 이런 말을 요즘 너무 쉽게 하는 걸 보면 자신감이 높아지긴 높아졌나 보다.
"어때? 너희들 일본에서 스타가 된다는 게 어떤 건지 대충 이야기 들어서 알잖아? 최소 강남에 건물 있는 갓물주다."
"가, 갓물주.."
박영관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더니 그만 동공이 살짝 풀어지는 게 아닌가?
역시 사람은 경제적 이득이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되는 걸까?
"얘들아. 우리 무조건 2개월···. 아니 1개월 안에 일본어 초급을 마스터 하자! 일본 팬들이 저 멀리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너흰 느껴지지 않는 거니? 엉?"
박영관은 평소에 보이지 않던 리더쉽을 발휘하고 있었다.
"듣고 있어? 왜 호응이 없는 거야? 어? 한연준! 김훈! 이창민!, 정이든! 우린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제발 정신 좀 차리자 우리···.“
너만 정신 차리면 될 것 같은데···.
"형. 우린 제정신이야. 거울 좀 한번 봐봐. 형의 얼굴이 지금 어떤지···. 그야말로 수전노의 얼굴이야. 스크루지 영감 알지?"
"연준아. 알아듣기 편하게 그냥 돈미새라고 해. 돈에 미친 새끼! 넌 인마. 팬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의 따끔한 충고에 얼굴이 시무룩해지는 영관이였다.
"아, 아니···. 이왕이면 다홍치마, 도랑치고 가재 잡고···."
솔직히 나도 욕심난다. 하지만 절대 영관이처럼 티가 나면 안 된다. 실력을 어느 정도 갖춘 연예인은 그때부터 이미지 싸움이다. 돈은 유명해지면 그냥 따라오는 거라고 생각하는 게 제일 깔끔하다.
"먼저 할 일이나 해라. 돈은 그냥 자연적으로 따라온다. 그리고 정산은 내가 깔끔하고 철저하게 해줄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열심히 잘해봐."
"오케이! 알겠습니다. 행님! 전 이제 돈미새가 아니라 팬미새입니다."
탁···.
"아이! 왜 때려!"
나는 영관이의 뒤통수를 살짝 때려줬다. 그는 나를 보며 인상을 썼다.
"오두방정 그만 좀 떨어라. 동생들 부끄럽지 않냐?"
"돈을 좋아하는 게 죄는 아니잖아!"
"이게 어디서 드라마 패러디를 하고 있어. 넌 그냥 존재 자체가 죄야! 원죄!"
"이 씨! 같이 죽자! 죽어!"
영관이는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나도 질세라 영관이의 멱살을 같이 움켜쥐었다.
"켁켁···. 이 고, 곰탱이 매니저···. 무식하게 힘만 세 가지고···."
우리가 멱살을 잡고 옥신각신하고 있자 한연준이 중간에 끼어들어 우리를 중재했다.
"아오! 장난 좀 그만 쳐! 정신 사납다고!"
"그래 영관아 넌 돈 많이 좋아해라. 너 빼고 다른 애들은 돈 말고 연기를 사랑하게 만들 테니까."
"그, 그게 무슨 소리야?"
"뭐긴 뭐야. 너 빼고 새 드라마 캐스팅한다는 소리지."
내가 그 말을 하니 박영관의 얼굴이 삽시간에 굳어졌다. 그는 한쪽 무릎을 꿇는 시늉을 하며 고개를 숙였다.
"전하! 통촉하여주시옵소서···. 신하가 불민 하야···."
"흥! 어디서 들은 건 있어가지고···. 넌 연기나 좀 잘하던지?"
"아···. 형···. 나 좀 잘 좀 봐주라. 응?"
"에이! 이 팔 안 놔? 저리 안 가? 진드기야 뭐야?"
그렇게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어찌 됐든 열심히 일본어를 배우기로 했다.
"대성아. 오늘 몇 시부터 스케줄 있지?"
"지금 나가서 지방 행사하나 해야 하고 오후 4시부터 밤늦게까지 일정이 줄줄이 있습니다."
"그럼 중간에 테리우스랑 잠깐 회사 들를 수 있나?"
"그, 그건 무리일 것 같습니다. 외부 행사가 2시에 끝나긴 하는데 정확하게 언제 끝날지 모르겠네요. 일정이 너무 빡빡한데요?"
오늘 관련 회의를 하려고 하는데 테리우스도 참석하면 좋을 거 같은데 어쩔 수 없구만. 다음에 하든지..
"그래 알았어. 그냥 스케줄만 해라."
내가 그리 말하자 대성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녀석도 지금 상당히 힘든 모양이었다.
"대성아. 좀만 참아라. 내가 인원 보충해 줄 테니까. 알았지?"
"그리고···. 정이든?"
"응. 왜? 나 불렀어?"
"그래. 너 혹시 신곡 만들어 놓은 거 있냐?"
"곡이야 많긴 한데 당장 완벽하게 내놓을 만한 타이틀곡은 없는데···. 왜?"
"일본어로 곡을 하나 준비하는 게 어떤가 싶어서···. 아무래도 곡도 만드는 그룹이라는 걸 어필하려면 자작곡이 한 곡 정도 일본어로 들어가면 좋잖아."
"사실 DJ. Nec 형이랑 하나 만들던 게 있는데 발라드라···. 이건 안 되겠지?"
"제목이 뭔데?"
"항상 보고 싶은 엄마에게라는 곡이야. 갑자기 엄마가 생각나서 쓴 곡인데···."
아···. 왠지 아련한 느낌이다. 엄마가 그리워서 만든 곡이라니···.
이번에 발매된 신곡하고 그 곡을 일본어 가사로 바꾼 버전 그리고 일본 전용곡을 넣어서 미니 앨범을 미리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래. 상관없다. 그거 하나 넣자. 어차피 보너스 트랙이라 상관없을 거 같다. DJ. Nec이랑 얼른 완성해봐라."
"알았어."
"어? 형! 대박이다. 방금 기사 떴는데 이거 후폭풍이 좀 있을 것 같은데?"
가만히 휴대전화를 보고 있던 김훈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뭔데 그래?"
나는 그의 휴대전화를 건네받아 기사를 읽어보았다.
"응?"
[K 메신저 대표이사의 갑질! 비서실 직원 폭언, 폭행 논란!]
국민 메신저로 자리 잡은 K 메신저를 만든 카오스 사에서 현 대표이사가 비서실 직원을 폭행했다는 혐의로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그 대표이사는 신사적인 이미지와 달리 자신의 직원들에게 폭언과 주먹을 휘둘러왔다고···.
이에 참다못한 비서실 신입 직원이 경찰에 고소하고 동영상과 녹취 파일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카오스 사는 이 문제를 덮기 위해 전방위로 노력한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신고자는 오히려 왕따를 당하고 충격을 받아 정신적으로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중략>
한편, 이 사실이 커뮤니티에 퍼지고 나만의 세계에서 미친 사이코패스 IT 재벌을 연기한 배우 한기주가 새롭게 주목을 받고 있다. 그는 해당 기사를 링크하며 자신하고 비교하지 말라며 "나 아니에요~"라며 재치 있는 말을 전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의견을 당당히 피력했다.
최근 대히트중인 드라마 나만의 세계에서도 IT 재벌의 횡포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누리꾼들은 작가가 개인적으로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이를 겨냥해 쓴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중략>
"오호! 이거 대형 이슈인데? 이거랑 엮여서 드라마 홍보가 더 될 거 같다."
"맞지?"
"형. 진짜 알고 쓴 건 아니지?"
"당연하지! 그냥 운이야. 너무 공교롭잖아."
솔직히 다른 배우들은 다 주목을 한 번씩 받았는데 한기주 씨만 이득을 못 본 것 같았는데 이 사건으로 한기주가 연기한 캐릭터도 언급이 많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SNS로 재치 있게 대응도 잘했고···. 역시 안경파 배우인 그는 머리가 매우 좋은 사람인 것 같았다.
나는 기사를 읽으며 사무실로 돌아왔다. 테리우스는 이제 온종일 스케줄을 뛰어야 했다. 불쌍한 녀석들···.
‘음···. 내일은 일본 진출 관련해서 회의를 한번 해야겠군.’
나는 내일 오전에 회의하자는 메일을 작성했다.
[제목 : 테리우스 일본진출 준비 관련 전략회의 실시의 건]
안녕하십니까? 프로듀싱&콘텐츠 총괄본부 이준형 실장입니다. 테리우스 일본진출 준비 관련 사전 전략회의를 내일 오전 10시에 실시할 예정이오니 관련 부서 담당자들께서는 참석해주시기 바랍니다.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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