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84화 (84/263)

< 해외로 진출해볼까? (1)>

일요일에는 온종일 방안에서 글을 썼다. 그러다 휴식을 취할 겸 인터넷 기사들을 훑어봤다.

[나만의 세계는 시청률 고공행진 중! 36% 돌파!]

[전에 없었던 잔혹 액션! 모자이크 투성이었던 나만의 세계 11, 12화! 넷플릭에서는 무삭제로 본다?]

[당당한 나유정! 나만의 세계에서 상의 탈의 후 속옷만 입고 복근 노출!]

[대형 신인의 등장? 시청자들의 뇌리에 깊이 박힌 나만의 세계 김하진 역 정혜성. 그는 누구인가?]

[나만의 세계 김하진 역의 정혜성은 늦깎이 신인? 벌써 서른 넘어···. 극강 동안!]

[여성 팬 몰이? 일편단심 다정남 김하진 역의 정혜성을 만나다.]

나만의 세계에서 단연 눈에 띄는 신인인 김하진 역의 정혜성을 파주에서 만났다. 커다란 덩치에 순박하고 귀여운 얼굴을 한 그는 만나자마자 쑥스럽다는 듯 꾸벅 인사했다. 최근 자신이 주목을 받는 게 아직 익숙지 않은 듯 인기를 실감하지 못해 어안이 벙벙해

보였다.

특히 여성 팬들에게 굉장히 인기라고 소식을 전하자 그는 몸 둘 바를 모르며 얼굴이 금세 붉어졌다. 그는 드라마에 정상적인 남자가 자기뿐이라 그렇게 보이는 것이라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늦은 나이에 데뷔했음에도 극 중에서 신인답지 않은 준수한 연기력

을 선보이고 있는데···. <중략>

어라? 인터뷰까지 했네? 아직 회사도 없는 사람인데 기자란 직업은 참 대단하다. 어떻게 하루밖에 안 지났는데 찾아가 만났지? 참으로 대단해. 아마 우리나라 정치인 비리를 이렇게 파헤쳤으면 전 세계 청렴도 1위 국가가 됐을 거다.

기사의 내용은 간단했다. 보아하니 약속도 안 잡고 무작정 찾아간 듯싶었다. 하긴 약속을 잡기도 힘들지. 기획사도 매니저도 없으니까. 아무래도 매니저 한 명을 연결해줘야 할 듯싶었다. 하석우 실장한테 혹시 아는 사람 있냐고 물어볼까?

어쨌거나 내 예상대로 정혜성 사범의 인기가 쭉쭉 오르고 있었다. 다음 주말에 방영될 13, 14화에서 태엽시계 이정진처럼 잘 죽어(?)주면 금상첨화였다.

그는 앞으로 액션 배우로 대성해서 이준형 사단의 주축 멤버가 될 예정이었다.

*  *  *

다음날 나는 초췌해진 얼굴로 회사로 출근했다.

'으···. 너무 집중해서 썼나? 손목이 너무 아프네.'

아포칼립스물을 괜히 대본도, 웹소설도 아닌 이상한 짬뽕 스타일로 썼다는 걸 문득 깨달았다. 또 나의 순문학 병이 도진 것이다. 그것을 웹소설과 대본으로 쓰려니 아무리 미친 생산력의 나도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올해는 이 작품을 쓰면서 상당히 고

생할 듯싶었다.

'내 능력을 과신하고 드라마화를 너무 쉽게 생각했다.'

멍한 머리를 흔들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사무실로 이동했다. 복도를 걷어가는 길에 가수팀 김상효 실장 방이 보였다. 아무래도 그와 테리우스에 관한 이야기를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

똑똑···.

"예.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김상효 실장이 아침부터 골프채를 휘두르고 있었다. 호쾌한 스윙으로 그의 뱃살이 출렁이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실장님. 아침부터 운동 열심히 하시네요?"

"아···. 어제 업계 사람들하고 골프 좀 쳤지. 코를 납작하게 눌러주고 싶은데 실력이 영 늘지가···. 아···. 근데 이실장이 무슨 일이지?"

이 양반도 엄청난 내 흥행 성적을 의식하는지 최근 나를 대하는 말투가 상당히 고분고분해졌다.

"다른건 아니고 테리우스 때문에 들렀습니다."

"왜? 테리우스 잘나가잖아? 여기저기에서 찾는 곳도 많고 드라마 제의도 있고 행사도 많고 이제야말로 궤도에 올랐지."

"네. 고무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혹시 일본 반응 보셨어요?"

"일본 반응? 아! 넷플릭에 올라간 드라마 반응 좋다는 거?"

"그것도 그렇지만 드라마를 본 해외 팬들의 상당수가 테리우스의 팬으로 영입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일본에서요. 요즘 팬들이 부쩍 늘어난 거 같아요."

"아···. 그래? 경영지원 쪽은 별말이 없던데? 그런 정보를 주면 미리 우리도 대응할 텐데···."

역시 이 양반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매니저로 일만 하던 사람이라 전략이나 경영 감각이 전혀 없다. 또한 돈 냄새를 맡는 능력도 부족하다. 그냥 그냥 회사에서 끝까지 버틴 인물일 뿐.

김 실장은 내 얼굴이 급격하게 안 좋아지자 내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이 실장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아니에요. 일 보세요. 실장님. 전 이만···."

"아니···. 왜 말을 하다 말고 가? 무슨 일인데 그래? 말 좀 해봐."

거의 매달리다시피 하는지라 몸을 돌려 그에게 말을 했다.

"테리우스 애들 일본 진출 준비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어 좀 가르치려고요."

"엥? 시간이 없을 텐데···."

"아무튼, 조만간 회의를 한번 소집하려고 합니다.“

"회의?"

"네. 저 이제 진짜 가보겠습니다."

내가 프로듀싱&콘텐츠 총괄 본부 실장이긴 하지만 나유정과 테리우스의 매니지먼트에 아직도 한 발짝 걸쳐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도 내가 이런 말을 한다고 해서 월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놈의 회사는 뭐가 제대로 돌아가는 게 없다니까? 이런 건 마케팅이나 홍보팀에서 전략을 세워서 건의해야 하는 거 아냐?'

나는 경영지원본부 홍보팀으로 찾아갔다. 홍보팀장하고 대화해보니 자신들은 이미 각종 매체를 모니터링한 후 반응을 살펴 정리하고 메모보고서까지 올린 상황이라고 발뺌했다.

"어디 그 메모보고서 좀 볼 수 있을까요?"

나보다 몇 살 많은 홍보팀장이 얼굴을 굳히며 자기 책상 위에 있는 서류철을 뒤져 해당 자료를 나에게 건넸다. 전자결재를 출력한 것이었다.

"여기요. 보세요."

나는 건네받은 자료를 찬찬히 읽어봤다. 그 보고서에는 플랫폼별 테리우스에 대한 반응과 홍보 전략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방향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언급을 하고 있었다. 보니까 일은 하는 것 같긴 하다. 뭔가 실행이 제대로 안 될 뿐···.

"팀장님 조아린 씨가 누구죠?'

나는 갑자기 이 보고서를 올린 조아린 사원이 궁금해졌다. 아이돌 비지니스를 꿰뚫고 있는 직원인 것 같았다.

"아! 아린 씨요? 저희팀 경력직 사원인데 오늘 연차네요."

"이런···. 몇가지 묻고싶은데 어쩔 수 없군요. 팀장님. 혹시 안이사님은 뭐라고 하세요? 이거 전자결재 올리셨다면서요?"

"거기 밑에 이사님 의견 댓글 달려있습니다."

"테리우스 일정 체크해서 시간을 낼 수 있으면 차근차근 일본 진출 준비도 진행하면 좋겠네요?"

이거고만? 아무것도 안 하는 이유가···. 당연히 애들이 시간이 있을 리가 있나? 미용실에서 꾸벅꾸벅 조는 애들인데···. 시간이 없으니 일본 진출이고 뭐고 아무것도 진행되는 게 없다. 이건 내가 나설 필요가 있어 보인다. 조직이 너무나도 수동적이다.

"네. 그렇게 코멘트를 다셨네요."

나는 그 말을 하는 홍보팀장의 얼굴을 쳐다봤다.

"저기요. 팀장님. 테리우스 스케줄 확인해보니 꽉 차 있죠?"

"네."

"그래서 아무것도 못 하는 거죠?"

"아, 아니요. 꼭 그런 건 아닙니다."

아니긴? 고인 조직은 이런 곳에서 병목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냥 원래부터 이랬어 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음···. 제가 팀장님을 탓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이게 뭐 홍보팀만의 문제도 아니고요. 일단 일을 빠르게 진행하기 위해 각 부서를 소집할 테니 그때 참석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당황하는 홍보팀장을 뒤로하고 내 사무실에 들어와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펜을 들어 노트에 글자를 썼다.

[고인물 XM Ent.]

나는 펜으로 엑스 표를 그리며 생각에 잠겼다.

회사 건물과 시스템만 대기업을 흉내 낸 앙꼬 없는 찐빵과 같은 기획사. 재벌 CA 그룹 계열이라고 중형 기획사로 분류되지만 알고 보면 CA 미디어가 자체 배우들을 챙기기 위해서 기존 회사를 인수해서 급조한 매니지먼트 회사였다.

지금은 없는 전 대표이사가 의욕적으로 아이돌을 추진해서 테리우스라는 절반의 성공을 거뒀으나 최근 추진한 여자 아이돌은 학교폭력 논란으로 데뷔가 엎어지고 CA 미디어 쪽의 눈칫밥을 먹고 있었다.

물론 최근 나유정과 테리우스가 나로 인해 떡상하면서 이미지를 어느 정도 끌어올리긴 했다.

사실 CA 그룹, 미디어계열은 각종 오락 채널과 뮤직넷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앞세워 오디션을 히트시키고 자체 매니지먼트를 키워 기획사의 영역으로 진출하려는 야심이 있었지만, 국내 기획사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현재는 연예기획사의 지분을 사들이거

나 산하 레이블로 다수의 회사를 편입시키는 방향으로 노선을 변경한 상태였다.

그런 정책으로 졸지에 공중에 붕 뜬 회사가 바로 XM Ent.였고, 특명을 받고 XM에 온 전 대표이사의 위치도 애매해져 다시 본사로 복귀한 상태였다. 현재 XM은 약간 방치상태 비슷하게 유지되는 중이었다.

물론 배우 쪽은 기존대로 매니지먼트를 오랫동안 해온 가락이 있어서 그럭저럭 굴러가고 있었다. 하지만 배우 기획사답게 세계로 뻗어 나가는 케이팝 아이돌의 변화 속도를 전혀 좇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CA 간판을 보고 들어온 젊은 직원들은 유능해 보여 큰 문제가 없지만, 위에 포진한 고인물들이 문제였다. 이사진은 일단 다 글러 먹은 상태고 그나마 하석우 실장이 감각이 있어 쓸만하고 나머지는 휴···. 그냥 말을 말아야 한다.

프로듀싱팀이라고 있던 사람들도 좋게 봐줄 수가 없었다. 총괄이라는 한상훈 이사도 마찬가지였다. 예전에 잘나가던 작곡가라고 하는데 최신 아이돌 트렌드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떨어졌다. 아무래도 그의 인맥을 이용하려는 속셈이었는데 그를 데려왔던 전

대표이사가 없어지니 그걸 활용하려는 사람도 없는 실정.

나는 이마를 손으로 탁 짚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와! 노답! 개노답이다!"

사실 나도 매니저 생활을 할 때는 잘 몰랐던 사실이었다. 글을 쓰고 콘텐츠 업계를 공부하다 보니 이런 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나름 거대한 계획을 세우다 보니 세부적인 전략이 보이기 시작했다.

생각과 관점의 차이가 엄청난 변화를 만드는 것 같았다. 웹소설이나 쓰고 매니저 노릇이나 하던 내가 이제는 아예 경영자의 관점에서 사고하고 있었다.

'3대 기획사와는 운영방식에서 몇 수는 뒤지고 있다. 이럴 바엔 차라리 덕후들이 필요한 시점이야.'

내가 생각에 잠겨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기고 있는데 대성이에게 톡이 왔다.

[실장님. 테리우스 애들 데려왔습니다. 연습실에 있어요.]

[알았어. 수고했다. 바로 내려갈게.]

연습실에 들어서니 테리우스 멤버들이 보였다. 멤버들은 샵에서 꽃단장을 하고 온 모양인지 조금 있다가 빡빡한 스케줄을 돌아야 하는 것 같았다. 김훈과 정이든은 귀에 무선 이어폰을 꽂고 음악을 듣고 있었고, 한연준은 역시나 웹소설을 읽느라 휴대전화를 보

고 있었다. 그리고 연준이의 무릎에 머리를 대고 누워있는 박영관이 보였다.

"어! 형! 오셨어요?"

거울을 보며 춤을 점검하고 있던 창민이가 왠지 모르게 존댓말을 하며 나를 맞았다.

"어. 그래. 창민아 너 춤 선 살아있네?

"하하···. 당연하죠."

"그런데 너 왜 갑자기 존댓말 쓰냐?"

"어? 내가 존댓말 했어? 요즘 형이 너무 잘나가니까 나도 모르게 주눅이 들었나 봐. 나도 나만의 세계를 보는데 말이 안 나오더라. 우리 형이 이런 드라마를 썼다니 믿기지 않더라고···. 그래서 나도 모르게 존경의 의미로 존댓말이 나온 거 같네? 하하!"

"자식..."

나는 팀에 에너자이저 역할을 하고 있는 창민이의 등을 두드리며 멤버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애들은 내가 온 것을 눈치채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형···. 오셨어요?"

"허? 박영관까지? 혹시 너희 단체로 약 먹었니? 왜 갑자기 전부 다 존댓말을 하는 거야?"

"몰라. 그냥 이제 반말이 잘 안 나와. 이상해. 처음 보고 형 왔어? 이렇게 말을 못 하겠다니까?"

"웃긴 놈들···. 너희도 인기 많아졌어."

"그건 알겠는데···. 왜 존댓말이 나오는지 모르겠네. 진급해서 그러나? 아니면 유명 작가님이라 그런 건가?"

영관이는 자기도 영문을 모르겠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알려줄까?"

한연준이 휴대전화를 바지에 넣으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뭔데?"

"그건 바로 아우라야.“

"아우라?"

"응! 준형이 형의 보이지 않는 기가 사람을 옥죄는 거야. 무협지에 무형지기라는 게 있어. 그게 뭐냐면···."

"야. 훈아. 저 녀석 주둥아리 좀 막아라. 한연준! 너 이제는 무협지까지 보냐?"

"우욱···. 하, 하지 마. 숨 막혀!"

"야! 입을 막으라니까 왜 헤드록을 걸고 난리냐?"

"에이! 그만하고 들어보라니까? 이 무형지기라는 건 그냥 예를 든 거야. 준형이 형이 카리스마가 생긴 거라고! 사람들이 대단한 사람인 양 우러러보는 그런 시선과 본인의 자신감이 결합한 형태라고···."

한연준이 김훈의 팔을 뿌리치며 소리쳤다.

"연준아. 너 혹시 심리학과 가려고 하는 거냐? 어디서 주워듣고 나불대니?"

"겁나 날카로운 분석을 해도 못 알아먹으니 난 가만히 있어야겠다. 참새가 대붕의 뜻을 어찌 알겠는가! 쯧쯧! 한심하도다."

"한연준 요즘 아주 헛소리 고풍스럽게 잘하네?"

리더 박영관이 이제 질렸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내 친구 중에 대봉이라고 있어. 배대봉"

정이든이 아는 이름 나왔다고 말을 하자 모두 이건 뭐지? 하는 이상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다들 이제 그러려니 하는 수준···.

"자! 다 모였으니 이야기 하나 할게. 너희들 슬덕이 일본에서 인기 있는 거 알고 있지?"

"일본이 아니라 다른 나라도 반응 오던데?"

"그래 그런데 너네 특히 일본에서 좀 강하더라."

"근데 왜? 우리 일본 진출해?"

"할 수 있으면 해야지. 아직 구체적인 컨택은 없지만 아마도 일본 음반 회사에서 준비 중일지도 몰라. 그런데 너희들 일본어 하는 사람 있냐? 없지?"

"역시···. 응? 뭐야 정이든 왜 손들어? 넌 영국파잖아. 내가 말하는 건 일본어야 일본어."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올린 손을 천천히 내렸다. 항상 무표정하지만 쿨한 표정인 정이든이었다.

"영국파? 맞아. 나 영국에서 살다 왔지. 그런데 우리 엄마가 일본 사람이야."

"응? 뭐라고?"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엄마가 일본인이라니?

"정말이야? 그런데 왜 말 안 했어? 너 프로필 가족관계에 엄마 안 썼잖아.“

정이든은 귀찮다는 듯 귀를 후비며 입을 열었다.

"아빠랑 엄마 영국에서 이혼했어. 그래서 나는 아빠랑 한국에 왔지. 홍대에서 놀다가 길거리 캐스팅된 거고···. 엄마는 동생이랑 일본에 살아."

"헐···."

일본 진출에 생각지도 못한 무기가 생겼다. 정이든의 부모님이 국제커플이었다니! 물론 이혼하셨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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