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흑역사를 지워줘 (1)>
"이게 뭐라고 자꾸 이렇게 기사가 뜨는 거야. 아···. 이 기레기들. 진짜···. 일부러 소파 망가졌다고 SNS에 올리기까지 했는데···. 짜증 나."
결혼 임박설? 어쩌고 하는 기사를 클릭했다. 인기 뉴스에 떠 있어서 큰 이슈라도 된 거 같지만 그냥 클릭질 유도 기사였다.
[한 커뮤니티에 나유정과 이준형 작가가 광명 이데아 매장에서 가구를 구매하고 쇼핑을 즐겼다는 목격담이 올라왔다. 원글 작성자에 따르면 분위기가 좋아 보였다며 둘이 사귀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댓글에는 이미 나유정이 SNS
로 소파가 부서진 사진을 올렸고 해당일에 소파를 구매한 후기를 올렸기 때문에 괜한 억측은 금물이라는 반응이었다. <중략>
제목의 결혼 임박설? 과 같은 내용은 눈을 씻고 봐도 없었고 그냥 누가 글을 올렸는데 오해였더라 하는 아무 내용 없는 기사였다. 시답지 않은 기사였음에도 불구하고 파쿠리 기사가 여럿 양산되어 여기저기에 퍼져나갔다.
‘어휴! 이런 것도 언론이라고···. 쯧···.’
나는 기사를 신경질적으로 꺼버리고 시청률 대박, 역대급 캐릭터의 탄생이라는 기사를 쓱쓱 읽어봤다. 기사들이 하나같이 드라마에 찬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 기사를 읽으니 기레기가 쓴 내용이 머릿속에서 눈 녹듯 사르르 사라졌다.
‘후···. 뽕이 차오른다. 이런 게 진정한 기사지. 기자님들 정말 고생하시는 거 같네. 이렇게 정확한 기사 쓰기 힘들 텐데 말이야.’
나를 비난하는 기사를 쓰면 기레기로 급전직하요, 찬양하면 퓰리처상 급 기자로 격상되고 있었다. 기사를 빠르게 훑어보니 나유정이 연기한 나지혜에 대한 기사들이 많았다. 그만큼 강렬한 캐릭터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은근히 나의 천재성을 언급하는 기사들도 눈에 띄고 있었다. 그런 훌륭한 기사들은 눈에 띄자마자 바로 스크랩한 후 링크까지 저장했다.
"좋아. 좋아. 아주 좋아."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격하게 끄덕인 나는 마지막으로 슬덕이 넷플릭에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기사를 읽어보았다.
[슬기로운 덕질생활 차세대 스타들의 인기 몰이?]
사랑의 불시착륙, 이태원 클래식에 이어 대박의 냄새를 풍기는 드라마가 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슬기로운 덕질생활이다. 이 드라마는···. <중략> 한편, 드라마에 주연급으로 출연한 남자 아이돌 그룹인 테리우스의 인기도 덩달아 동반 상승 중이다.
급한 촬영 일정 때문에 테리우스의 노래로 드라마를 찍었는데 이게 바로 인기로 이어지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테리우스의 기존 앨범들이 일본 레인뮤직 스트리밍 차트에 이름을 올렸고 이들의 신곡 ‘내가 빛나더라도’는 Top 100, 10위 권에 진입한 상태다.
업계관계자들은 국내에서 1티어로 당당히 올라선 그들이 거대한 시장인 일본에서도 한국과 비슷한 성공을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해하고 있다···. <중략>]
나는 그 기사를 보자마자 곧바로 형택이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 이슈 메이커 작가 양반! 아침부터 무슨 일이신가? 기사보니까 어제 땡땡이 쳤더구만?]
"여보세요. 조형택 씨. 착각도 참 대단하십니다. 그게 어떻게 땡땡이입니까? 엄연히 소속 연예인 관리죠."
[유정 씨가 어젯밤에 올린 SNS 글을 보면 그냥 쇼핑하고 거의 논거 같던데? 싸구려 음식도 먹이고···.]
"저기요. 싸구려 음식 말고 어제 맛있는 집밥도···. 음···."
[응? 집밥이라니? 그게 뭔 소리야? 네가 밥까지 차려줬냐?]
"아, 아니···. 그런 게 있어. 어쨌건 내가 전화를 건 이유는 테리우스 때문이야. 형 최근 기사 봤어?"
[요즘 테리우스 기사가 어디 한둘이냐? 난리도 아냐. 지금 우리 애들 완전 1티어로 자리매김했다.]
"그거 다 내 덕분인 거 아시죠?"
[여보세요? 아아, 이거 전화 감도가 이상하네. 여보세요?.]
"조블리 선생! 장난 그만 치시지? 오늘 기사 보면 슬덕이 일본에서 반응이 괜찮다고 하거든? 혹시 우리 애들 일본어 잘하나? 내 기억엔 공부하는 꼴을 못 본 거 같은데?"
[어. 너도 알겠지만 이든이가 영국에서 살다 와서 영어를 멋들어지게 하는데 다른 녀석들은 영···. 특히 일본어는 아예 모를걸?]
"아이···. 이놈의 하꼬방 같은 회사가 있나. 지금까지 그런 거도 안 가르치고 뭐 한 거야?"
[야 인마. 솔직히 노래랑 춤을 지금 수준 정도로 하는 것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연준이 봐라. 얼마나 급했으면 그냥 바로 투입했겠냐고···.]
"하긴···. 그 실력에 데뷔하는 것도 용했지."
[아 맞다. 일어는 네가 좀 하잖아.]
"그건 그냥 애니···. 아니 생활 일본어지."
솔직히 어렸을 적 만화와 애니를 많이 봐서 그런지 흥미를 가지고 일어 공부를 좀 한 적이 있었다. 학창 시절 말고는 공부한 적 없지만, 일본어가 쉽고 어순이 같아서 그런지 아니면 넷플릭에서 애니를 가끔 보고 있어서 그런지 지금까지도 실력이 그럭저럭 유
지되고 있었다.
[그런데 일본어는 갑자기 왜? 일본 진출이라도 하려고?]
"형. 혹시 모르는 거잖아. 애들 일본어 좀 가르쳐. 내가 경영지원본부에 이야기해놓을게."
[음···. 애들 요즘 엄청 바쁜데 그게 가능할까? 드라마 이후 여기저기서 수요가 좀 많아야지.]
"그 녀석들 공부 안 하면 나한테 데려와. 내가 맴매해줄 테니까!"
수다스러운 남자 박영관의 종아리를 걷어놓고 회초리로 찰싹찰싹 때리는 상상을 했다.
[맴매는 무슨···. 미용실에서도 꾸벅꾸벅 조는 놈들인데 그게 될까?]
"일단 나중에 회사 오면 연락 좀 해줘. 정신 교육 좀 시켜놓을 테니까."
[그래. 알았어. 나 오늘도 두영이랑 행사가고 있다. 캬···. 누구는 주말에도 뺑이 치는데 이 실장님은 주말에 쉬시기도 하고···. 참 팔자 좋으세용!]
"회사에 돈을 그리 벌어다 줬는데 주말에 못 쉬면 바로 퇴사각임."
[그건 인정. 준형 실장아. 그만 끊는다. 일단 네가 말한 일본어 교육은 한번 이야기해볼게.]
"예. 수고해요. 형"
나는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들 일어났어?"
어머니가 브런치를 만들고 계셨다. 나는 곁으로 다가가 어머니의 어깨를 슬쩍 감싸 안았다.
"여사님 뭐 하시나?"
"샐러드랑 샌드위치 만들어."
"와우! 맛있겠다. 이 양상추 신선한 거 보소?"
"형은 벌써 나갔어. 주리랑 유정 씨 좀 깨워라. 밥 먹자."
"알았어요."
"어제 새벽 늦게까지 이야기하는 거 같더라."
"어휴. 피부 거칠어지는데···. 어제 그렇게 일찍 자라고 했건만!"
어머니는 내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보고 살짝 웃으셨다.
주리 방 앞에서 일어나라고 소리를 쳤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준형아. 그냥 들어가서 깨워. 주리 오늘 점심에 약속 있다는 거 같던데?"
어쩔 수 없이 문을 열고 안을 보니 나유정과 동생은 서로를 껴안고 자고 있었다.
"참나. 무슨 애들도 아니고···. 이 사람들아! 얼른 일어나요!"
"으, 으음···. 누구···."
* * *
브런치를 먹고 나유정을 마포에 데려다주었다. 오후에 인터뷰가 있어서 대성이에게 연락해 놓은 상태였다. 그녀는 차 안에서 이제야 기사를 봤는지 기레기를 저주하며 짜증을 내고 있었다.
"내가 어제 이데아 방문 후기를 SNS에 안 올렸으면 또 진짜로 결혼이니 뭐나 하면서 난리를 쳤을 거 아니에요?"
"그렇죠. 어제 SNS를 올린 게 신의 한 수였어요."
"역시 준형 씨의 촉은 대단해요. 이런 사태를 예상하고 미리 계획을 짠 거잖아요."
"뭐 그 정도야 충분히 예상 가능한 일이었죠. 워낙 대스타(?)를 모시고 있다 보니 조심, 또 조심 해야죠."
"하긴···. 제가 대세긴 대세죠. 어제 드라마 반응을 보니 아주 난리도 아니던데···."
그녀는 귀찮다는 듯 거만하게 팔짱을 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
"후후···. 이제 김다연 씨는 안중에도 없죠?"
나는 일부러 예전 친구였다는 부부의 비밀에서 한초희 역할을 한 김다연의 이름을 꺼냈다.
"아? 걔요? 말도 마세요. 손절한지 오래니깐···. 그런데 저랑 걔랑 같은 급으로 비교하시는 건 아니죠?"
그녀는 아직도 김다연을 은근히 견제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살짝 유치한 것 같았는데 면전에 대고 솔직하게 말할 순 없는 노릇.
에이 기분이다! 오늘은 그냥 나유정의 기분을 최대한 맞춰주기로 했다.
"비교라뇨. 애초부터 급이 달랐는데···."
"흐음···. 굳이 비교하자면?"
"글쎄요. 태양 앞에 반딧불?“
"딩동댕···. 그것은 정답!!"
리어 미러로 나유정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게 보였다.
‘어제 선물 역할을 꽤 잘해줘서 맞춰주는 겁니다.’
웃음에는 전염성이 있다고 하던가? 그녀의 미소를 보고 나도 모르게 따라 웃고 말았다.
그녀를 마포에 내려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별다방에 들러 윤하영을 만났다. 그녀는 여전히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하면서 글을 쓰고 있었다.
주기적으로 톡으로 궁금한 걸 물어봤는데 요즘은 수익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내 드라마를 잘 보고 있다며 상당히 부러워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커피 한잔을 마신 뒤 집에 도착했다.
집에서 쉬고 있으니 넷플릭 이민영 총괄 디렉터에게 전화가 왔다.
"어? 안녕하세요? 디렉터님 휴일에 쉬지도 않으시고 전화를 다 주셨네요?"
[작가님. 쉬시는데 죄송합니다. 통화 가능하신가요?]
전화로 이민영 총괄 디렉터의 다급한 음성이 들려왔다.
"네. 말씀하세요. 그런데 어디 운동이라도 다녀오셨어요? 숨이 차신 거 같은데요?"
[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실은 제가 좀 바빠서 보내주신 걸 못 보다가 어제 드라마를 보고 짬을 내서 글을 봤습니다.]
"아. 네. 괜찮아요. 읽을 만하셨어요?"
[이, 이거 혹시 다른 누구한테 보여주신 건 아니시죠?]
"네. 맞아요. 왜 그러시죠?"
[이 작품 무조건 저희가 가져갑니다. 예약 걸었습니다.]
이민영은 아주 확고하게 그냥 가져간다는 표현을 썼다. 뭐지? 그렇게 재밌었나? 대작 스멜?
"아니 그거 정식 대본도 아니고 그냥 웹소설처럼 연재하던 건데요?"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대본을 다시 쓰실 거잖아욧?]
"응? 아니. 왜 소리를 지르시고···. 뭐 어쨌건 소설이 끝나면 대본으로 다시 쓰긴 할 거예요. 그건 얼마 안 걸리고요."
[아···.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그만···. 제가 어제 새벽까지 그 글을 읽고 초조해서 잠을 못 자다가 방금 일어났습니다.]
"그런 건 굳이 말 안 하셔도 되는데···."
[어, 어쨌든 조만간 저희가 확실한 조건을 들고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예. 그러시든지요."
[작가님! 그 작품 절대! 다른 사람 보여주면 안 됩니다.]
"아···. 알았어요. 이제 그만 좀 하세요."
[아무튼, 쉬시는 데 죄송합니다. 이만 전화 끊겠습니다.]
음···. 총괄 디렉터가 이렇게 흥분해서 전화하는 걸 보니 내 작품이 재미있긴 재미있나 보다.
나는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누르고 달동네로 들어갔다. 내 최근 작품은 아직도 조회수가 시원치 않았다. 오늘 써놓은 걸 올리면 25화고 딱 1부의 끝이다.
극중에서 중요한 사람들은 다 구출을 했고 슈퍼 쉘터에 옮겨 놓은 상태였다. 일단 써 놓은 25화를 올리기 위해 글을 복사한 후 작가의 말에 1부가 끝이 났으며 내일 비공개로 전환한다는 말을 써놨다.
올리자마자 따라오는 대부분 사람이 순식간에 다 읽은 것 같았다. 알림 설정이라도 했는지 조회수가 곧바로 200을 돌파했다.
‘세상의 멸망은 나만 아는’은 조만간 드라마 사전계약 때문에 비공개 처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어차피 무료 글이었고 시나리오 같은 느낌이라 별로 읽은 사람도 없었다.
다만 골수팬들이 문제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괴작판독기가 살짝 걸렸다.
괴작판독기가 후원한 돈이 자그마치 3백만 원이 넘었다.
‘에이. 돈이 많나 보지. 어차피 나중에 드라마로 보면 되잖아.’
나는 애써 그의 존재를 뇌리에서 지웠다.
반면 댓글들은 왜 2부를 연재하지 않느냐며 난리가 났다. 심한 사람은 욕까지 남기는 중이었다. 어떤 이성적인 독자는 나에게 대본 같은 묘사가 아니라 웹소설처럼 좀 각색해서 올리라고 조언했다. 그럼 자신이 추천을 해주겠다며···. 지금도 재미있긴 하지만 글
의 스타일이 애매해서 추천할 수 없다고 했다.
지금 읽어보니 솔직히 좀 애매하게 쓰긴 썼다. 웹소설도 아니고 대본도 아니고···.
‘음. 웹소설 형태로 다시 쓰고 그걸 대본으로 바꿔야겠군.’
그러다 내 서재의 작품 목록에 아직도 남아 있는 헌터물과 연예계물이 눈에 띄었다. 헌터물은 그나마 수익이 많이 났던 작품이었고 내용도 적당히 참신하면서 웹소설 방식에 영합한 작품이라 괜찮은데 다른 연예계물은 지금 보면 낯부끄러운 뇌피셜 소설이었
다.
‘아! 쪽팔려. 이건 진짜 흑역사다.’
프로듀서가 걸그룹을 키우고 경연도 하고 하는 그런 소설이었는데 손발이 오그라들었다.
‘젠장! 이건 무조건 비공개로 돌려야 된다. 일단 유료로 따라오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봐야겠군. 2년이 넘은 작품이라 웬만하면 없을 것 같은데? 레테 출판사의 내 담당 이름이 뭐였더라?’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이름이 생각났다. 그야말로 내가 만났던 최악의 편집자! 그 녀석 아직도 거기 있으려나?
‘그래! 레테 최덕수 PD!’
나는 휴대전화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해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가더니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응? 여보세요? 누구세요?"
전화기 너머로 트레이드 마크인 느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라? 이 자식 내 전화번호를 지웠어? 허···. 역시나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구만? 슬픈 예감은 절대 틀린 적이 없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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