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81화 (81/263)

< 나는 선물이다 (3)>

"오빠. 유정이 언니 사람이 왜 이렇게 소탈해?"

남의 집에 와서 큰일 보면 그게 소탈한 거냐? 어이없네.

"소탈? 까탈이겠지."

"무슨 소리야. 보고도 몰라? 유정 언니 사람 엄청 좋네. 진짜 오늘 실물로 보고 완전 팬 됐어. 내가 알던 그런 도도한 연예인이 아니야."

"준형아. 의외다. 난 얼굴만 봐서는 너무 화려하게 생겨서 엄청 도도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수수하면서 예의도 바르고 심성이 참 곱더라. 어떻게 잘 좀 해봐."

"엄마! 잘하긴 뭘 잘해봐. 그런 소리 좀 하지 마."

"어휴. 저 등신···.“

”아니. 왜 귀한 아들한테 등신이래···.“

우리는 그렇게 티격태격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 20분쯤 흘렀을까? 나는 화장실 문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뭐야? 왜 안 나오지?'

나는 목소리를 높여 물어보려다가 입을 다물고 톡으로 문자를 보냈다.

[유정 씨. 왜 안 나와요?]

잠시 후 그녀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큰일 났어요. 비상사태에요ㅠㅠ]

[비상사태? 그게 무슨?]

[지금 변기에 물이 안 내려가요. 막혔는지 흘러넘칠 거 같아요! ㅠㅠ]

[네? 잠시만요. 내가 갈게요.]

[악! 안돼요. 오, 오지 말아요. 주리 씨 좀···.]

[알았어요. 잠시만 기다려요.]

”후···.“

나는 주리에게 다가가 귓속말을 건넸다.

‘야! 막내야. 유정 씨한테 문자 왔는데 변기에 물이 안 내려간대···.'

'진짜?’

끄덕끄덕···.

‘언니 당황스럽겠다. 아니 이 집 남자들은 도대체 뭐 하는 게 없어. 내가 변기 안쪽에 부속품 고장 났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신경 쓰는 인간이 하나도 없어요. 못 고치면 기술자라도 좀 부르던가! 어휴.'

맞다. 우리 집이 고층이기도 하고 변기도 수압이 약한 원피스 타입이다. 원래부터 시원치 않았는데 요즘 들어서 정도가 심각해져서 아예 물탱크가 높아 수압이 강한 투피스 타입으로 바꿀 예정이었다.

화장실의 문이 빼꼼 열리더니 사색이 된 나유정의 얼굴이 보였다. 화장실에서 얼마나 전전긍긍했을까? 나 같아도 진짜 당황했을 거 같았다.

"죄, 죄송해요. 주리 씨.“

그녀는 민망한지 얼굴이 거의 시뻘겋게 불타는 고구마가 되어 있었다.

"언니 괜찮아요. 오히려 민망하게 해드려서 저희가 죄송하네요. 물 내려가는 게 시원치 않아서 변기를 바꾸려고 하거든요."

*  *  *

한바탕 변기 소동이 지나가고 간단한 생일 파티가 진행되었다. 잠깐 거실의 불을 끄고 케이크에 불을 붙인 후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드렸다.

”엄마 생일 축하드려요. 제가 저번에 명품백을 사드려서 이번엔 현금으로 드리려고요. 엄마 계좌에 시원하게 천만 원 쐈어요.”

“우와! 대박! 우리 오빠 통 커졌다.”

“아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니? 엄마도 돈 많은데 이렇게 많이 안 줘도 돼”

어머니는 말은 그렇게 사양하셨지만, 얼굴엔 한가득 미소가 담겨있었다.

“준형아. 아빠 생일도 곧이다. 기대해도 되냐?”

아버지는 손가락을 비비며 어머니와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10시 40분이 조금 넘은 시각.

우리는 '나만의 세계' 11화를 보기 위해 거실에 둘러앉았다. 이렇게 다 모여 있으니 뭔가 기분이 이상했다.

이상한 기분을 털어버리기 위해 그녀의 귀에 대고 작게 소곤거렸다.

'시원합니까? 속은 좀 괜찮아요?'

그러자 나유정이 내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강하게 꼬집는 게 아닌가?

'끄악···.'

그녀의 얼굴은 아직도 약간 붉게 상기된 것 같았다.

"며느···. 아니 유정 씨 오늘 미친놈들 소굴로 쳐들어가는 날이죠? 아악!"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등짝 스매싱을 맞고 등을 문지르고 계셨고 나는 옆구리를 잡고 꺽꺽대고 있었다.

"네. 아버님. 오늘 진짜 고생해서 찍은 액션 장면이 몽땅 다 나올 예정이에요."

"진짜 기대되네요. 저번 주 보니까 액션 장면이 장난 아니던데요?"

의외로 액션 영화광인 형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TV의 볼륨을 조금 더 올렸다.

드디어 드라마가 시작됐다.

얼굴에 피가 튄 나지혜가 머리를 휘날리며 별장으로 돌진했다. 이빨을 꽉 깨문 모습에 왠지 모를 비장미가 느껴졌다. 모조리 다 죽여버리겠다는 표정이었다. 음울한 별장의 모습과 회색빛 세기말적 디스토피아가 절묘하게 연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김하진이 긴가민가하며 그녀 뒤를 열심히 쫓고 있었다.

”와! 언니 진짜 카리스마 대박!“

”호호···.“

나유정은 자신도 내심 자랑스러운지 자신감 있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까 화장실에서 대형 사고를 쳐놓은 주제에 갑자기 너무나 당당해진 모습이었다.

앞으로 TV 드라마 역사상 전설로 남을 것 같은 이십여 분짜리 액션 영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드라마에선 다시 없을 만한 잔혹 액션이랄까? 비위가 좋지 않다면 편하게 볼 수 없을 정도로 수위가 아주 강력했다. 그야말로 분노의 핏빛 칼부림 액션!

먼저 지하로 숨어든 그들은 적과 조우하고 이내 싸우기 시작했다. 나지혜를 감금한 적 있던 사이코패스 집단은 그녀의 칼에 그야말로 초토화되고 있었다.

적들의 팔다리가 날아가는 건 약과였고 목젖 베기, 배를 째기, 머리가 데굴데굴 구르다가 발에 차이고 거기다 눈 찌르기까지···. 괜히 19금이 아니었다.

'와! 액션 죽인다. 진짜 리얼하게 연출 잘했네. 나즈마 서먼 저리 가라네. 칼을 들고 그냥 붕붕 날아다니잖아?'

합기도 고수로 나오는 김하진도 나지혜와 천천히 보조를 맞춰가고 있었다. 실제로 만나는 사람들이 전부 무기를 소유하고 있자 나지혜의 말이 맞다고 판단했는지 안색이 변해 적극적으로 합을 맞추는 김하진이었다.

그리고 각종 기구가 비치된 무시무시한 해체실과 소각로에 수북이 쌓인 뼈들을 보자 그마저도 눈이 뒤집히고 만다.

”이 천인공노할 놈들! 이 새끼들은 인간이 아니야!“

경찰청에서부터 계속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비효율적이고 무식하게 대쉬만 하던 순박한 선배 김하진!

그도 드디어 각성모드로 진입했다.

어떻게 보면 스토커나 다름없지만 원래 잘생기면 순정남 아니겠는가? 세상이 뭐 그런 거지.

화면으로 보는 정혜성 사범의 카리스마도 나유정 못지않았다. 신선한 얼굴이라 그런지 나유정과 대비되어 시청자들의 뇌리에 강하게 기억되고 있는 것 같았다.

”준형아. 저 사람 누구야? 액션 연기 왜 이렇게 잘해?“

”역시 액션 영화광의 눈은 속일 수 없고만?“

”왜?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데 그래?“

”저 형. 정두형 무술 감독하고 같이 일하는 액션 스쿨 강사야. 내가 자질을 알아보고 조연으로 뽑은 거야.“

"네가 뽑았다고? 배우에 대해 뭘 안다고?"

"준호 씨. 준형 씨 글 쓰는 거 말고 사람도 엄청 잘 봐요. 신인인데 한눈에 자질을 딱 알아본다니까요?"

옆에서 계속 혼자 키득거리고 있던 나유정이 대신 정색하며 설명했다. 그래도 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 형은 유정 씨가 액션 연기 배울 때 강사였어. 한눈에 봐도 배우상이라 연기 한번 시켜보니 잘하더라고 그래서 추천했지."

”그렇구나. 어쩐지···. 몸놀림이 다르더라니. 딱 봐도 전문가네.“

”여기 나오는 액션도 저 형이랑 정두형 감독이 만든 거야.“

”움직임만 봐도 아예 클래스가 다른데?“

형의 말대로 둘의 콤비네이션은 무시무시했다. 공격과 수비가 마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들어갔다. 좀 과장되게 느껴질 만큼의 합격술이었다.

"형. 좀 과장되게 보이지 않아?"

"음···. 저 합격술이 살짝 그런 게 있긴 한데···. 나지혜랑 김하진도 계속 맞고 다치고 있어서 그런지 밸런스는 괜찮은 거 같아."

"그럼 다행이고···."

사실적인 액션 장면에 소름 끼치는 음향까지 입혀 놓으니 정말 영화 아저씨가 생각날 수밖에 없었다.

11화에 대한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었다. 나와 형, 주리는 최고의 액션이라고 감탄하고 있었고, 부모님은 너무 잔인한 장면에 눈살을 찌푸리고 있었다.

반면 나유정은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을 틀어막고 발을 동동거리며 좋아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잔인한 장면에 얼굴을 찌푸리고 계시던 두 분은 나유정의 그런 소녀 같은 모습을 보고 이내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유정 씨. 저게 그렇게 좋아요?"

"네. 어머니. 저도 완성본은 처음 보거든요. 감독님이 진짜 연출 잘하셨네요. 당장 액션 영화감독을 하셔도 될 거 같아요."

"아! 배우들도 최종본을 못 봤구나."

"찍을 때랑 화면으로 편집돼서 나오는 게 또 많이 달라져요. 찍을 땐 그저 그랬는데 편집의 힘으로 살려놓는 경우도 많아요."

"참 신기한 세상이네. 우리야 그냥 드라마만 봤지. 자세한 건 모르니까."

액션은 점점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갑자기 나타난 인육 살인마 이혁의 잭나이프에 가슴 위쪽을 베이고 옆구리를 찔린 나지혜가 칼을 바닥에 꽂고 비틀거리고 있었다.

"으윽···."

"지혜야! 안돼! 조금만 버텨!"

뒤에서 조직원들을 상대하던 김하진이 발을 동동 구르며 그녀를 안타깝게 부르짖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 다 뒤져!"

1 : 3으로 싸우던 김하진이 엄청난 괴력으로 적들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이 쌍 X이 돌았나? 감히 이 성스러운 곳에서 칼춤을 춰? 저번에 그냥 처리했어야 하는데···. 꼭 이렇게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니까?"

이혁은 나이프에 묻은 피를 혀로 핥고 있었다. 화면을 보고 있던 주리가 나유정의 팔짱을 꼭 끼며 몸을 움츠러들었다.

"옴마야. 어떡해. 저 사람 진짜 미쳤나 봐. 저번에 그 인육 먹던 사람이지? 얼굴 너무 무섭다."

"왜 그래 얼굴은 잘생겼잖아. 그리고 그냥 연기인데 뭘?"

"몰라. 그냥 싫어. 보기만 해도 소름 끼쳐."

'건호야. 좀 적당히 하지 그랬냐. 음 이건 아닌가?'

주위가 다 연기파 배우들이라 이건호의 연기력도 자기도 모르게 동반 상승한 것 같았다. 그런데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비호감 이미지까지 동반 상승 중이었다.

'쟤 저러다 평소에 사람 하나 패는 거 아냐?'

2 : 4의 불리한 싸움이었지만 나지혜와 김하진은 가공할 합격술로 4명을 차례차례 쓰러트리고 있었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발악하는 중간보스 이혁을 번쩍 들어 올려 같이 벽으로 처박히는 김하진.

"지혜아. 빨리! 끝내버려."

나지혜는 비틀거렸지만, 칼을 위로 들고 이건호의 목에 마무리를 꽂아 넣었다.

콰득···.

묘하게 뼈가 걸리는 소리가 들리며 이혁의 목과 입에서 피가 줄줄 쏟아졌다.

"어우! 징그러워."

재미있게 보던 주리도 갖은 인상을 쓰며 손으로 눈을 가렸다. 생명이 꺼진 이혁은 눈도 감지 못하고 목이 꿰뚫려 벽에 붙어 있었다.

"헉헉···."

힘을 거의 다 쓴 김하진은 바닥에 철퍼덕 눕고 말았다.

나지혜는 아직도 중간보스 이혁을 증오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이혁을 바라보는 옆모습이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먼지와 피가 범벅되어 더러울 데로 더러운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이혁의 얼굴로 가져갔다. 그러더니 부릅뜨고 죽은 이혁의 눈꺼풀을 강제로 내렸다.

"눈 깔어. 이 새끼야."

상스러운 대사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카리스마가 미친 듯 폭발하고 있었다.

"와.. 대박!."

"허.."

나와 형 그리고 주리가 그 카리스마에 압도된 나머지 동시에 감탄사를 내뱉었다. 옆을 보니 역시나 고개를 흔들며 좋아 죽으려는 나유정의 모습이 보였다.

'내가 만든 캐릭터지만 진짜 멋있긴 멋있다.‘

이런 드라마를 내가 만들었다니···. 가슴이 뿌듯해 지고 있었다.

"언니! 갭 뭐에요. 오늘 이렇게 친근한데 드라마에서는 완전 카리스마자너···."

"주리야. 언니 좀 멋있었니?"

"완전!"

주리는 나유정을 쳐다보며 엄지를 척하니 내밀었다. 그걸 본 나유정은 블랙소울에게 배운 애교 하트를 발사했다. 잔인한 장면에 눈살을 찌푸리시던 부모님도 나유정의 애교를 보고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띄고 계셨다.

이런 모습에 그녀를 마치 딸처럼 친근하게 느끼시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상했던 하루가 가고 다음 날

연예 포털에는 세 가지의 기사로 도배가 되었다.

[역대급 캐릭터가 등장했다. 드라마 액션의 신기원을 연 '나만의 세계' 신드롬. 35% 시청률을 돌파하다.]

[나만의 세계의 나유정, 이준형 작가와 광명 이데아 매장에서 가구 쇼핑? 결혼 임박설?]

[슬기로운 덕질생활의 넷플릭 흥행이 심상치 않다? 일본에서 순위 급상승! 테리우스도 덩달아  각광받아.]

ⓒ 소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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