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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79화 (79/263)

< 난 선물이다 (1)>

금요일 아침 나는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나갈 채비를 하고 모자를 챙겼다. 오늘 회사에 잠시 들렀다가 나유정을 데리고 광명 이데아 매장에 들러 쇼핑을 할 예정이었다.

거실로 나가자 엄마가 부엌에서 아침밥을 차리고 계셨다.

"아들! 오늘 왜 이렇게 빨리 나가니? 밥은 먹고 가지 그래?"

"어. 엄마 나 오늘 무지 바빠서 일찍 나가봐야 해. 다녀올게요."

"응? 무슨 일인데 그래. 오늘 온종일 바쁜 거야?"

"응. 아마도? 나 진짜 간다."

"그···. 그래. 조심히 가."

어머니의 얼굴이 평소와는 약간 다른 거 같았지만 나는 밖으로 나가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차를 몰고 회사에 들러서 잠시 얼굴을 비춘 후 나유정의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미리 나갈 채비를 하고 있으라고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내 놨다.

집에 도착해보니 그녀는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우! 깜짝이야. 어디 범죄 저지르러 가요?"

"왜요. 사람 많은 곳에 가려면 이 정도 변장은 해줘야 못 알아보죠."

그녀는 챙이 큰 벙거지 스타일의 모자에 선글라스, 마스크 그리고 얇지만 긴 코트를 입고 있었다.

"허.... 무슨 가제트 형사예요? 그렇게 입고 나가면 오히려 더 시선만 끌어요. 그냥 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 나오세요."

"그래도 될까요? 또 스캔들 기사 같은 거 나면 어떡해요?“

그녀는 저번 저번처럼 이상한 기사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같이 가구를 사러 가다니.

오해받기 딱 좋은 그림이었다.

"그러니까 머리를 써야죠. 다 방법이 있습니다."

"무슨 방법요?"

"일단 저기 부서진 소파 사진을 찍어서 SNS에 올리세요. 그냥 별 말하지 말고 오랫동안 사용하던 소중한 소파가 부서졌다. 딱 그 정도요. 그리고 매장에 다녀와서 거기서 찍은 사진이나 소파 사진 올리고 매니저랑 같이 갔다 왔다고 다시 올리면 되죠."

"아하! 미리 사실대로 먼저 까발리는 거구나? 오히려 그게 별말이 없겠네요."

"당연하죠. 그냥 평범한 옷에 그냥 모자 하나만 쓰세요. 혹시 알 없는 안경테 없어요?"

"좀 두껍지만 가벼운 거 있어요."

"그거 쓰시고 마스크를 턱에 살짝 걸치세요. 사람들이 많이 밀집해있는 공간에서 쓰시면 될거에요."

그녀는 내 조언대로 평범한 흰색 티셔츠와 청바지를 걸치고 나왔다. 거실의 전신거울에 비춰보니 영락없는 일반인 커플 같아 보였다. 나도 회색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모자를 눌러 쓴 상태였기 때문이다.

"딱 봐도 그냥 젊은 커플이 가구나 사러 온 것처럼 보이겠네요."

"네? 커플이요?"

나유정이 고개를 돌려 내 얼굴을 슬쩍 쳐다봤다.

"말이 그렇다는 겁니다. 말이!"

"그 말 하고 기분이 엄청 좋은 거 같은데···."

"헛소리 좀 그만하시고요. 얼른 나가요. 10시에 매장 개점이니 지금 가도 약간 늦어요."

"아니! 거기가 어떻길래 이렇게 서두르는지 모르겠네."

"있어요. 엄청나게 커서 개미지옥이라고 불리죠. 구경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를걸요."

"참나. 가구점이 거기서 거기지.... 뭘 그렇게 신기할 게 있다고···."

*  *  *

"우와! 대박! 뭐가 이렇게 많아요? 이 상어 인형 너무 귀엽다. 껴안고 자면 딱 맞겠다. 저 이거 살래요."

"뭐 그러세요.“

그녀는 이런 곳에 처음 온 촌 동네 아이처럼 눈이 휘둥그레진 상태였다.

신기할 게 뭐가 있냐며 심드렁하던 그녀는 막상 어마어마한 매장 크기에 놀라더니 입구부터 쫙 늘어선 저렴한 상품들을 보며 마치 아이처럼 좋아했다.

돈이 엄청 많고 재신이 붙었다고 할 만큼 돈 관리를 철저히 하는 그녀였지만 정작 쓰는 거엔 취미가 없는 것 같았다. 집안에 물건들도 하나 같이 인터넷으로 대충 주문한 것들이 태반!

비싼 가구를 사는 것보다는 적당히 인테리어를 바꿔가며 재미를 느끼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유정의 나이는 이제 27세고 그런 비싼 가구들을 쓰기엔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가구들이 테마별로 인테리어된 쇼룸에 들어서자 감탄을 하더니 이것저것 구경을 하거나 편한지 테스트해보는 그녀였다.

푹신한 침대에 벌러덩 누운 나유정이 공중에 떠 있는 예쁜 조명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었다.

”예쁘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죠? 주말에는 사람 많아서 짜증 내는 사람도 많은데, 평일에 오면 그럭저럭 괜찮아요. 이렇게 쇼룸 구경도 편하게 하는 거죠."

"진짜 재밌어요. 이런 곳 처음 와봐요. 백화점 같은 데서 드라마를 찍긴 해봤는데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이런 걸 처음 봤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약간 안쓰럽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어렸을 적부터 완벽하게 통제를 당하며 살았다던데···. 아역으로 성공한 후 학교에 다니다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겨 어머니와 함께 외국 유학을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거기서도 엄마의 간섭은 끊이질 않았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걸 이겨내고 연예계에 복귀해서 스타가 된 걸 보면 진짜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았다. 뭐 어쨌든···. 이런 경험을 자주 좀 시켜줘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1시 좀 넘어서 들어와서 잠시 구경을 했더니 벌써 2시였다.

"배 안 고파요?

"와! 정신없이 구경했는데 벌써 두 시가 넘었네요? 식당 어디 있어요?"

"쭉 나가다 보면 끝에 있어요. 갈까요?"

나와 그녀는 카트를 밀고 걸어가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사람도 생각보다 많지도 않고···. 이렇게 편한 줄 몰랐어요. 그냥 돌아다녀도 되는군요."

"신기하죠? 유정 씨가 알아야 하는 게 의외로 사람들이 남에게 관심이 별로 없어요. 특히 이런 곳은 물건을 사러 온 거기 때문에 다들 물건만 쳐다보고 다니거든요. 유정 씨가 시끄럽게 하고 티 내고 다니지 않으면 편하게 구경할 수 있는 거죠."

"지금껏 괜히 쫄았네요. 그냥 돌아다닐걸···."

"그래도 혼자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뭐 지금 보면 연예인이 아니라 그냥 딱 일반인 같긴 한데···."

"뭐에요? 한번 모자랑 안경 벗어 볼까요? 어떻게 되는지?"

"워워···. 그런 식으로 시선을 끌면 난리 난다고요.

우리는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해 배를 채웠다. 식당엔 사람이 꽤 있었기 때문에 나유정은 마스크를 살짝 올리고 시선을 끌지 않도록 조심하고 있었다.

"싸긴 한데 맛은 별로네요."

그녀가 나에게 속삭이듯 말을 걸었다.

"그냥 싼 맛에 옵니다. 가끔 괜찮은 것도 있고요. 그리고 아직 볼 게 널렸어요. 옆에 종합 쇼핑몰도 있어서 다른 것도 살 수 있고요. 아! 제가 거기서 뭐 하나 사드릴게요."

"오호! 기대할게요."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나머지 매장을 천천히 돌아봤다. 내가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다 보니 지치지 않고 같이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끝에 모든 쇼핑을 완료했다.

모던하고 편안해 보이는 소파와 건어물녀 전용 마약 빈백(목에 거는 쿠션까지 달려있었다.) 인형, 거실용 테이블, 신기하게 생긴 노트북 거치대, 각종 인테리어 소품 등등···. 작은 것들은 내 차에 실어 놓고 소파는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와! 힘들었지만 재밌었다."

"기분 좋죠? 유정 씨한테는 푼돈이겠지만 나름 이것저것 맘대로 살수 있는 게 장점이에요."

"정말 시간 순삭이네요. 벌써 여섯 시에요. 솔직히 매장을 다 본 것도 아닌 거 같은데···."

"잠시만요. 옆 쇼핑몰에 가서 뭐 좀 하나 삽시다."

나는 예전에 왔다가 봐둔 캐릭터 샵에 들렀다.

"여기 뭐예요. 와! 귀엽다. 캐릭터 샵? 근데 인형 다 샀는데 여긴 왜?"

"이거요! 짜잔!"

"우와아아!"

내가 그녀에게 보여준 것은 귀여운 캐릭터가 들어간 연두색 추리닝 세트였다. 항상 입고 있는 낡은 추리닝이 눈에 걸려서 스타일을 좀 바꿔주고 싶었다. 뭐 그래 봐야 추리닝이지만···.

"대박! 너무 귀여워요! 색깔도 맘에 들고······."

"그 색을 좋아하는 것 같던데···. 홈웨어라고 스판 같은 느낌이라 엄청 편할 거예요. 파란색하고 자주색도 같이 사셔도 되고···."

"물론 색깔별로 다 사야죠. 짠돌이 선생이 사주시는 건데···. 헤헤···."

이데아 매장에서는 별다른 시선을 끌지 못했지만, 이 캐릭터 샵은 종업원이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나는 이내 모자를 눌러쓰고 사이즈를 주문했다.

계산을 마치고 나오는데 종업원이 계속 우리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혹시 알아봤나? 뭐 상관없다. 어차피 SNS에 갔다 왔다고 올릴 테니···.’

나유정을 내 차에 태우고 집으로 가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

"와! 피곤한데 오늘 너무 재밌었다."

"하하···. 원래 이런 재미로 구경 다니는 거죠."

"우리 얼른 집에 가서 밥 시켜 먹고 드라마 봐야죠. 그거까지 하면 오늘 진짜 보람찬 하루가 될 거 같아요."

나는 좋아하는 나유정을 보고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는 춥지도 않은 것 같은데 벌써 비닐을 뜯어 연두색 추리닝을 걸치고 있었다.

‘맘에 드나 보네.’

그렇게 운전을 하며 쇼핑몰을 빠져나오는데 갑자기 여동생 주리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뭐 동생이랑 비밀 전화를 할 것도 아니고···.’

나는 뒤를 슬쩍 본 뒤 그냥 통화 버튼을 눌렀다.

차 스피커로 주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주리야. 무슨 일이야?"

"오빠! 지금 어디야?"

"나 지금 광명 이데아 갔다가 이제 들어가려고.“

”언제쯤 오는데?“

”퇴근 시간이니 한 두 시간 정도 걸리겠지?“

"내가 월요일에 오늘이 엄마 생신이라고 했어. 안 했어? 생일 파티하게 일찍 들어오라고 했지!"

"아!...."

"오빠. 잊어버리고 있었지? 요즘 뭐하고 정신 빼놓고 다니는 거야?"

"야! 미리 좀 알려주지!"

"아니. 새벽부터 나가놓고 무슨 소리야."

"전화나 메시지는 폼이냐? 알았어. 일단 끊어."

방귀 뀐 놈이 성낸다고 동생에게 말을 그렇게 하고 미안함이 밀려왔다. 가족들하고 잘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것인지···.

하아···. 그래서 아침에 엄마 표정이 이상했던 거다.

"후···."

"왜 어머니 생신을 잊어버리시고 그러세요?"

"음···. 지금 불난 집에 부채질합니까?"

"얼른 가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생각해보니 여기서 마포를 거쳐 분당까지 가려면 시간이 장난 아니게 걸릴 것 같았다. 미치겠네. 이거···.

"차 돌려요. 분당으로 갑시다."

"네?"

나는 분당으로 가자는 나유정의 말을 듣고 내가 혹시 잘 못 들은 것인지 두 귀를 의심했다.

"이제 퇴근 시간일 텐데 이쪽으로 가면 엄청 늦을 거 아네요. 준형 씨 집으로 바로 가자고요."

"아니. 그럼 유정 씨는 어쩌고요, 집에 가셔야죠. 거기서 어떻게 가시려고요."

"가긴 어딜 가요? 생일파티를 한 다음에 데려다주든지 하면 되죠. 어머니 생일 선물로 연예인 데려왔다고 하시던가···."

"뭐요? 유정 씨를 선물이라고요?"

"왜요. 부족해요? 남들은 절대 받지 못하는 선물인데?"

"저기요. 저희 어머니도 테리우스 애들 많이 봐서 연예인에게 면역 생기셨거든요?“

”후후....“

그녀는 추리닝의 지퍼를 목 끝까지 쫙 올리더니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지금 떠오르는 신인과 대세 배우를 비교하시는 건가요?"

"아니···. 뭐 유정 씨 보면 좋아하시긴 하겠지만···."

"그럼 됐네. 분당으로 갑시다."

허 참. 이거야 원···.

자신을 선물이라며 당당하게 말을 하는 나유정을 보고 살짝 어이가 없었지만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려 분당으로 향했다.

*  *  *

"요 앞 마트에 들러서 뭐라도 사 갈까요?"

"그, 그러시게요?"

그녀는 집 앞 마트에 내려서 주스 세트를 사 왔다. 헉···. 저거 우리 엄마가 별로 안 좋아하는 건데....

"가요. 어디에요?"

아씨···. 이거 괜찮으려나? 가족들이 오해하면 어쩌지? 여기까지 온 마당에 어쩔 수 없지 뭐.

"여기 아파트 12층이요."

"이 작가님 괜찮은 곳 사시네."

그녀는 고개를 들어 아파트를 한번 휙 둘러봤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 집은 꽤 괜찮은 지역에 자리 잡고 있었다. 부동산에 감각이 약간 있는 수학 선생님인 어머니가 무리해서 지역을 옮겨 다니며 겨우 정착한 곳이다.

"갈까요?"

"잠시만요. 저 화장 좀···."

나유정은 손으로 나를 제지한 후 차 안의 조명을 켜서 간단하게 화장을 고쳤다.

그녀는 기초화장을 마무리하고 나를 똑바로 바라봤다.

"어때요? 이제 연예인 같나요?"

끄덕끄덕···.

내가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이다. 자연스러운 화장법 말이다.

"가요."

나는 지하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12층을 눌렀다.

"괜찮으시겠어요?"

"괜찮아요."

담담해 보이는 표정의 나유정이었다.

띵....

누군가가 위에서 눌렀는지 엘리베이터가 1층에서 멈췄다. 문이 열리더니 할머니 한 분이 들어왔다.

"어? 아랫집 총각. 이제 퇴근하나? 응? 옆에는 누구야?"

억. 하필이면 윗층 사시는 할머니를 만나다니!

"아! 안녕하세요. 할머니. 집에 놀러 온 친구예요."

"아···. 여자친구?"

"아, 아니요. 아니에요."

"아니긴 뭐가 아니여? 색시가 참 예쁘게 생겼어.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 마냥 곱네."

"감사합니다. 할머니."

"응? 색시 그런데 왜 이렇게 손을 떨고 있어? 날씨도 더운데···.“

”..........“

띵....

"가보겠습니다. 올라가세요."

우리는 황급히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왔다.

"휴···. 하필이면 딱 거기서 위층 할머니를 만나네요."

"괜찮아요. 저도 못 알아보시는데요."

"그런데 손은 왜요?"

"뭐가요? 할머니가 눈이 좀 안 좋으신가 보죠."

"아. 뭐···. 일단 들어가시죠."

나는 도어락 비밀번호를 눌러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어? 오빠 일찍 왔네? 늦는다고 안 했나?"

주리가 거실에서 TV를 보고 있다가 현관 쪽으로 나오며 우리를 보고 석상처럼 굳어버렸다.

"오···. 오빠···."

"준형이 왔니? 어서···. 응?"

부엌에서 나오시던 어머니도 덩달아 석상처럼 굳었다.

뭐야. 다들 왜 그래 유정 씨가 메두사라도 되나?

당황하고 있는 두 모녀를 보고 한발 앞으로 나가더니 세상 밝게 미소를 지으며 꾸벅 인사를 하는 나유정이었다.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나유정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으음. 그녀가 우리 집에서 식구들하고 같이 밥을 먹으며 피비린내 나는 드라마를 시청하게 될 줄이야. 뭐 내가 관리하는 연예인이니까 이상할 게 없긴 하지만···.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괜히 데려왔나?

나는 앞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인사를 하는 세 명의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소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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