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78화 (78/263)

< 빅데이터가 선택한 남자 (2)>

"감사합니다. 작가님. 대본은 오늘 보내주시는 거죠?“

그녀의 얼굴에 기대감이 살짝 엿보였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오늘 꼭 보내드릴게요."

"그런데 작가님. 아까 아포칼립스 물이라고 하셨는데 간략한 스토리를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이 여자 집요하다.

그냥 집에 가서 보내준 거 읽어보면 되지. 쩝······. 아니. 잠깐만. 생각해보니 지금 쓰고 있는 게 1부라 작품에 대해 썰을 더 풀어줘야 할 것 같긴 했다. 넷플릭은 일단 인기가 있으면 시즌제로 제작되기 때문이다.

"네. 그냥 간략하게 말씀드릴게요. 일단 주인공은 대전 국립과학수사원에 소속되어 있는 검시관입니다. 의사죠. 어느 날 뭔가에 물린 시체가 들어오게 되는데···."

이민영은 내가 하는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가 물린 시체라는 단어가 나오자 눈빛을 강하게 빛냈다.

"잠시만요! 좀비가 나오는 이야기인가요?"

나는 말을 끊고 들어오는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왜요? 너무 흔한가요?"

"아, 아뇨. 좋아서요. 좀비물은 유행을 타지 않는 글로벌 트렌드입니다. 그런 스토리는 두 팔 벌려 격하게 환영하죠."

아······. 그런 건가? 이 양반 엄청 흥분했네?

"예. 뭐 어쨌든 좀비 아포칼립스가 빵하고 터집니다. 그런데 주인공이 약간 이상해요. 자기는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완벽하게 준비를 해놓은 상태인 거죠."

"왜요? 왜 주인공만 그렇죠?"

"음. 그게 1부에는 안 나오지만.... 거대한 떡밥입니다. 주인공이 엄청 특별한 사람이거든요. 출생의 비밀 같은 건데.... 이건 대본으로 확인하세요. 사실 좀 길어요."

"네. 네."

"그는 계룡산에 지하 벙커를 인수해서 그 위에 슈퍼 쉘터를 건설해놓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사고가 터지자 동료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평소에 좋게 봐뒀던 사람들을 구출하기 위해 중무장을 한 후 군수용 SUV를 타고 그들을 구하기 시작합니다. 아 참 주인

공이 건설해놓은 슈퍼 쉘터에도 비밀이 가득 숨겨져 있······."

"자, 잠시만요. 이게 1부인 건가요? 호, 혹시 이 1부가 드라마로 따지면 1시즌인 거죠?"

"네. 맞습니다. 1부가 1시즌이죠."

그 말을 들은 이민영은 초조한 표정으로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 그럼 작가님은 이 작품을 몇 시즌으로 생각하고 계신 건가요?

"7시즌이요."

"7, 7시즌이욧?

이민영 총괄 디렉터가 깜짝 놀란 듯 소리를 꽥 질렀다.

"어우 깜짝이야. 귀청 떨어지겠어요. 왜 그러세요."

"아, 아니 7시즌이라고 너무 담담하게 이야기하셔서 그렇죠. 저 진짜 깜짝 놀랐어요. 그런데 아직 다 안 쓰신 거죠?"

"뭐 깜짝 놀랄 것까지야.... 지금 이제 1시즌 후반부를 쓰고 있습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2시즌은 언제 쓰실 작정이신지요?"

"2시즌이 아니라 7시즌까지 모두 올해 다 집필할 예정입니다."

"네에?! 콜록콜록...."

이민영은 더 깜짝 놀란 모양인지 먹던 음식이 목에 걸린 것처럼 기침을 했다. 그러더니 테이블 위에 호출 버튼을 급하게 눌러 시원한 콜라를 하나 주문했다.

그녀는 종업원이 가져온 콜라를 컵에 콸콸 따르더니 그냥 쉬지도 않고 벌컥벌컥 마시는 게 아닌가?

"꺼어억...."

"아니. 지금 뭐하시는······."

나는 황당함을 금치 못해 얼굴을 찌푸리고 말았다.

"죄, 죄송해요. 콜라를 원샷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실례를 했네요. 아휴 창피해라."

그래도 창피한 건 아는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실실 웃고 있는 그녀였다.

"왜요. 뭔데 그리 웃는 겁니까?"

"그게 갑자기 내년 말이나 그다음 해에 연달아 찍은 이 시리즈가 폭탄 드랍 되는 게 생각나서요."

이 양반아. 내 필명이 연쇄 폭참마요. 폭탄 드랍이 뭔지 진짜 보여드릴까?

"내년 아시아에 진출 예정인 디플러스를 처음부터 죽이려고 그러시나?"

"헤헤.... 들켰나요? 어차피 일반적으로는 한 명이 두 플랫폼의 서비스를 이용하진 않거든요. 킬러 콘텐츠가 있으면 당연히 우리 쪽으로 승기가 넘어옵니다."

"음. 디플러스도 마블링 작품과 폭스사 이전 작품들도 있으니 만만치 않을 텐데요?"

"어차피 신규 작품의 폭발력이 훨씬 강합니다. 이미 볼 사람은 다 본 옛날 작품들보다 이런 신규 킬러 콘텐츠의 파급력이 어마어마하거든요."

"흐음...."

그런데 이분은 이미 나랑 계약한 것처럼 말을 하네?

"저기요. 총괄 디렉터님. 저한테 간단한 스토리만 듣고 제 작품이 잘 나갈지 어떨지 어떻게 아십니까? 지금 너무 나가신 거 아닌가요?"

"후후후······."

그녀는 포크로 탕수육을 푹 찍어 들고 질겅질겅 씹더니 나를 바라보며 느끼하게 웃었다.

"작가님. 저요. 총괄 디렉터가 되기까지 딱지치기하면서 올라온 거 아닙니다. 두 작품 이상 히트작이 있는 잘 나가는 유명 작가 작품은 보통 어느 정도 퀄리티가 있더군요. 그런데 작가님 같은 신인이면 쓰고 싶은 스토리가 너무 많아서 문제죠. 이야기해주신 거

말고 재미있는 내용이 줄줄이 나올 거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뭐야? 빅데이터를 쓰는 게 아니고 무당을 고용해 쓰고 있는 건가? 느낌은 무슨 느낌이야? 나 원 참.

나는 이민영 디렉터의 말을 듣고 약간 의아했다. 이거 말만 빅데이터지 순전 감 아냐? 그냥 꽂히면 하는 거 아니냐고.

그리고 누가 순순히 계약해준다고 한 적 있었나? 김칫국을 사발째 드링킹하고 계시네. 쯧쯧.

"저기 죄송하지만."

"네네."

"제가 계약을 한다고 한 적 있었나요?"

"네?"

이민영은 자신의 실수를 인지했는지 곧바로 얼굴을 굳혔다. 내가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자 쑥스러운 뜻 헛기침을 하는 그녀였다.

"작가님. 확실한 건 작품 자체만 보고 저희보다 파격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곳은 없을 거예요. 업계 최고라고 확신합니다."

".... 내년에도 그럴까요? 디플러스가 들어올 텐데요. 한국인이 좋아하는 마블링 코믹스도 있고...."

내 말을 듣고 있는 그녀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그, 그 대신 저희가 제일 먼저 찾아왔잖아요. 그 가능성을 알아봤다는 게 대단하지 않습니까? 인간은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목숨까지 바친다는 말도 있잖아요."

"저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조건만 좋으면 장땡인 스타일인데요? 아마 아실건데요. 첫 작품이 떴어도 정체를 꼭꼭 숨겼습니다. 명예 따위는 개나 줘버린 지 오래죠. 솔직히 제 정체도 기사가 터지는 바람에 공개된 거고요."

".........."

"총괄 디렉터님. 일단 오늘 집에 가셔서 제가 보내드린 대본부터 한번 봐주세요. 그 후에 조건을 내미셔도 늦지 않습니다. 솔직히 이 작품에 대한 드라마화는 저조차도 언제 진행할지 별다른 계획이 없었던 겁니다. 넷플릭에서 디렉터님이 찾아온 김에 그냥 한

번 말씀드려본 거예요."

나는 표정이 어두워진 그녀에게 약간의 희망을 남겨줬다.

"그럼 제가 오늘 꼭 읽어보고 좋은 제안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녀는 주먹을 꽉 쥔 채 의지를 불태웠다.

내 작품이 진짜 맘에 든 건가? 희한하네. 거대 공룡인 후발주자들의 추격 때문에 진땀을 흘리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이렇게 급한 걸까?

나야 뭐 조건이 제일 좋은 쪽으로 가는 게 좋다. 그런데 솔직히 아시아에서는 넷플릭과 같이하는 게 좋긴 하다.

디플러스가 내년이나 들어온다는 소리가 있지만, 가입자를 얼마나 모을지 미지수였다. 콘텐츠는 시간이 갈수록 가치가 떨어진다. 나왔을 때 최대한 많은 사람이 보는 게 최고였다.

"작품 이야기는 뭐 이 정도만 하시죠. 대본은 디렉터님에게만 보내드릴 테니까요."

"네. 정말 감사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우린 이제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에게 평소에 궁금해하던 내용을 물어보기로 했다.

"앞으로 전 세계의 콘텐츠가 이런 대형 플랫폼으로 이동하는 흐름이 가속화될 거라고 보시나요?"

"이런저런 말들이 아직 많지만······. 네.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단호하시네요?"

"제가 넷플릭에 근무해서 그러는 게 아니고 그게 사실이니까요. 작가님은 깨톡이 왜 글로벌 플랫폼과 격차가 벌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것도 갈수록요?"

"그거야 깨톡은 한국만 쓰잖아요."

"맞아요. 그거랑 똑같은 논리에요. 이런 인터넷 기반의 사업들은 사람들과 연결되면 연결될수록 가치가 불어나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글로벌 플랫폼에 대항하기 쉽지 않을 겁니다."

"음. 연결될수록 가치가 불어난다.... 뭐 맞는 말이네요."

나도 정확히 같은 생각이다.

"물론 넷플릭이 시장을 다 먹고 독점으로 간다.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방송국 같은 기존 업체들은 좀 힘들어지겠지만 몇 개의 플랫폼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시장을 이끌어 나가겠죠. 뭐 그렇게 적절히 유지되지 않을까요?"

"그렇군요."

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일부만 동의하는 편이다. 독점은 무조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독창성 어쩌고 하지만 시청자가 좋아하고 클릭 수가 높은 작품들 위주로 지원을 늘린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리고 점점 불리한 조건을 강요하기도 하

고······.

‘한 업체가 시장을 장악하는 것도 좋지 않지. 몇 개 업체가 경쟁하는 게 베스트다.’

"작가님. 아까 말씀드린 건데요. 혹시 독립할 생각 있으세요? 계속 나유정 씨 매니저를 하시면서현장 다니시는 것도 그렇고 계속 매니저 경험 쌓으시는 거 보면 왠지 가능은 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거참 많이도 알아보셨네."

그녀가 나에 대해서 얼마만큼 조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말이 강하게 나와버렸다.

"아! 제가 좀 성급했네요.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아니 뭐 그 정도는 아니고...."

"저희가 조건을 최대한 맞춰 드리려고 하니 너무 노여워하지 마세요. 가능하면 제작사도 알아봐 드리니까요. 몇 년간 같이 작업해왔기 때문에 노하우와 데이터베이스가 충분합니다."

"오...."

이건 좀 꿀이다. 그래도 나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대답했다.

"그런 건 좋네요. 다양한 정보를 주시면 고맙죠. 아! 그리고 넷플릭은 웹툰이나 웹소설 서비스 안 합니까? 영상 옆에 구매 버튼 만들어서 팔면 좋을 거 같은데요? 번역도 하고...."

"호호. 안 그래도 본사에서 여러 가지로 생각 중이라고 하더군요. SNS 기능을 넣을지 쇼핑몰 같은 걸 넣을지 아직 결정된 바 없답니다. 아직 그런 게 조심스러운지라······."

"SNS 기능요?"

"네. 뭐 어차피 사람들이 많이 머무르는 곳은 어떤 형태로 변해도 이상하지 않거든요. 깨톡으로 메시지만 주고받는 거 아니잖아요?"

"허....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의외로 패이크북의 경쟁자가 될 수도 있겠군요.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나 드라마 정보 공유하면서요."

"맞습니다."

나는 오늘 이민영 총괄 디렉터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세상은 무섭게 빠르게 변하고 있고, 변화하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자리였다.

하지만 그녀와의 만남은 나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 계기이기도 했다. 역시 당분간은 콘텐츠 크리에이터들이 힘을 얻는 시대가 올 거라는 사실도 확인했고 말이다.

‘과연 넷플릭이 얼마나 배팅을 할까?’

이렇게 빨리 이야기가 진행되니 나도 약간 겁이 나는 것도 사실이다.

‘이준형 마! 넌 언제나 글로 먹고살 수 있잖아! 뭐가 걱정이야! 그냥 지르는 거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걸그룹 최신곡을 들으며 볼륨을 더 높이고 있었다.

‘블랙소울.... 이상하게 정은 안 가는데 노래는 너무 좋단 말이지.’

어떻게 이런 퀄리티의 곡을 계속 뽑아내는 거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니 나도 YN 엔터의 그 프로듀서와 별다른 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히트작을 낼 테니까.

7시즌에 이르는 드라마는 아직 대본도 완성이 안 됐다. 일단 차기작을 슬슬 검토하면서 글을 써야 할 것 같았다.

아무래도 나의 독립은 좀 더 빨리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응?"

나유정에게 전화가 왔다. 이 시간에 웬일이지?

"여보세요. 유정 씨? 오늘 CF 잘 찍으셨어요?"

[네. 그건 그렇고 소파 사러 가자고 했잖아요. 언제 가요?]

"아! 유정 씨 이번 주 금요일에 스케줄 없죠? 그날 아침 일찍 가서 매장 좀 둘러보시죠. 이것저것 사고 밥도 먹고."

[그리고 드라마 모니터링도 하고요.]

"알았어요. 이번 주는 유정 씨가 엄청나게 고생한 액션 장면이 나오겠군요."

[꺄악······!]

"아오! 깜짝이야!"

갑자기 돌고래 고주파 소리를 내는 나유정이었다.

"하하. 그렇게 좋습니까?"

[그럼요! 흥분돼서 미칠 것 같아요!]

솔직히 나도 흥분된다. 어떤 식으로 편집이 됐을까?

아마도 전무후무한 잔혹 액션으로 한국 드라마 역사에 길이 남지 않을까?

ⓒ 소광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