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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74화 (74/263)

< 대우가 달라졌어요 (2)>

하석우 실장과 간단히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하 실장은 드라마 이야기와 나에 대한 칭찬을 무한 반복했다. 그래서 나는 그의 진로에 대해 속내를 떠보기로 했다.

은근슬쩍 차기작에 관한 이야기나 현재 콘텐츠 제작 환경이 바야흐로 중흥기를 맞이하고 있다며 지금이 독립하는 적기가 아니냐며 슬쩍 운을 띄워봤다.

그 말을 들은 하 실장은 눈빛을 빛내더니 미소를 지었다.

'후후··· 그럼 그렇지.'

하석우 실장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열심히 해서 대표이사라도 한번 해보려는 모양인데 XM Ent.에선 정말 답이 없다.

하 실장을 싫어하는 대표이사가 자리에 떡하니 버티고 있고, 어차피 바지사장이라 로열패밀리가 아닌 이상 대표이사로 올라가지도 못한다. 이건 김인환 대표가 나한테 슬쩍 알려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차리려는 회사에 오면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초반에는 무려 대표이사다.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 따라 4년 이상 매니저를 해야 연예기획사를 차릴 수 있는데 나는 아직 경력이 안 된다. 물론 꼼수를 부리면 얼마든지 가능하긴 하지만 사업

을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니고 안전하게 가는 게 좋다.

우선 회사는 대리인을 내세우고 나는 최대주주로 콘텐츠 제작만 하면 된다. 일반 기획사 업무는 유능한 하 실장에게 맡겨 놓으면 되니까.

나는 하 실장에게 무언의 동의를 얻은 후 그의 사무실을 나와 내 방으로 이동했다. 컴퓨터를 부팅시키고 오늘 올라온 기사들을 천천히 읽어 갔다.

[나만의 세계 대한민국 드라마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이렇게 하면 하드코어한 작품도 성공할 수 있다!]

[할리우드 못지않은 제작의 퀄리티. 나만의 세계가 증명하다! 대한민국 콘텐츠의 강한 생태계와 밝은 미래]

[나만의 세계 이수현의 재발견. 대중은 몰랐던 그녀의 진짜 연기력. 숨 막히는 메소드 연기에 소름이 끼쳤다.]

[김형탁의 180도 이미지 변신. 뛰어난 사이코패스 연기로 찬사를 받다!]

[연기력을 폭발시키는 주, 조연들! 시청자들에게 신선함을 주다. 하지만 정작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는 한성우와 나유정이 반전이라면 반전.]

[이 신선한 조연은 누구인가? 나유정을 오매불망 짝사랑 역할의 정혜성, 젊은 사이코패스역의 이건호를 만나다.]

[점점 진화하는 대가(大家). 부부의 비밀, 나만의 세계를 연출한 이준환 감독을 만나다.]

[슬기로운 덕질생활로 대박 난 이준형 작가. 이번에도 제대로 사고 쳤다.]

[원 히트에 연예인 매니저라고 무시하던 사람들 다들 어디 가셨나? 우려의 시선을 실력으로 해결한 이준형 작가!]

정말 난리도 아니었다. 내 작품이 그렇게 임팩트가 강했나? 기사를 읽는 나조차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었다. 그냥 평소에 하던 각종 망상을 드라마 대본으로 옮겨 놓았을 뿐인데 대중들에게 이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다니?

사실 드라마 대본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배우의 미숙한 연기와 감독의 잘못된 연출로 얼마든지 졸작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예외는 있다. 그건 바로 나다.

나에겐 재능을 꿰뚫어 보는 아우라 스카우터가 있기 때문에 절대 실패할 리 없는 것이다. 좋은 배우와 능력 있는 감독은 다 내꺼다!

‘내꺼야. 내꺼야. 흐흐흐....’

내가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빙구처럼 웃음이 나오는 거야?

아마 누가 보면 실성한 사람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이제 재미만 있다면 어두운 작품도 인기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는 기사가 특히 마음에 와닿았다.

뭔가 내가 선구자가 된 기분이었으니까.

그리고 배우 이수현.

너무나 뛰어난 연기 때문에 악역을 전전하고 스타가 되지 못한 비운의 천재. 이제는 어느 정도 나이를 먹어서 그냥 그저 그렇게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히나 싶었지만, 드라마 나만의 세계로 극적인 반전에 성공했다.

그녀의 뛰어난 심리묘사는 여성 시청자들을 충분히 매료시킬 만했다. 많은 시청자가 아예 그녀에 빙의해서 똑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평가가 잇달았다.

그녀에게 여러 개의 대형 CF가 몰려들고 있다는 소식의 기사도 눈에 띄었다.

이수현은 어쩌면 연기력만 놓고 보면 나유정보다 뛰어날 수도 있었다. 지금 시점에서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물론 나이가 한참 어린 나유정이 그녀와 비슷한 수준이라는 건 어쩌면 더 놀라운 일이긴 했지만···. 어쨌든 이수현은 시청자들에게 아주 강

렬한 인상을 남겼다.

근 20년 동안 연기를 했어도 가지지 못한 명예를 내 작품을 통해 드디어 얻게 된 것이다.

이수현은 톡으로 감사하다며 장문의 글을 보내왔다.

쩝. 내가 뭐라고....

나는 그 글을 읽으며 기분이 좋아졌다. 악역 전문 배우가 나에게 이렇게 기쁨을 주다니. 매번 드라마에 출연해 고구마를 먹이던 그녀가 이번에는 힐링이 되고 있었다.

그리고 김형탁을 비롯한 조연들의 연기도 화제가 되었다. 그는 이제 어리바리한 캐릭터에서 벗어나겠다며, 진짜 다행이라는 문자를 보내왔다. 귀여운 게임 캐릭터 이모티콘이 도착해서 피식 웃음이 났다.

역시 형탁이 형은 어쩔 수 없는 덕후였다.

그리고 계속 안 될 걸 알면서도 당당하게 고백하는 나유정 바라기 정혜성 사범도 여성 시청자들의 큰 주목을 받았다. 그도 드라마가 흥행하자 자신을 발탁해준 나에게 고맙다며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는 길거리에서 자신을 많이 알아본다며 신기해하고 있었다.

야 이 사람아. 당신 잠재력은 그 정도가 아니라고. 나중에는 사람 많은 곳에는 가지도 못할걸?

현재 최정상급 인기스타인 한성우와 나유정의 비중이 살짝 작게 나와서 언론들과 대중들이 의아해하고 있지만 결국 이슈가 되는 건 이수현을 포함한 이 세 사람이다. 이 부분은 전혀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다. 배우들도 마찬가지여서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은 없

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찬사!

국뽕이라고 하던가? 요즘 이런 미튜브 채널이 대단한 상승세인데 나도 모르게 그와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 뽕···. 아니 자뻑이라고 해야 하나? 크흠. 자제하자.

이런 찬사를 좀 당연하게 생각해야 쿨한데 말이지. 음.... 펀앤쿨 작가 어떤가?

뚜루루루···.

"아이 깜짝이야."

갑자기 사무실로 전화가 오는 바람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콘텐츠 총괄본부 이준형 실장입니다."

"아! 안녕하십니까! 작가님. 넷플릭 코리아의 이민영 총괄 디렉터입니다.“

"아.... 예."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는 약간 거리감이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민영 총괄 디렉터는 정말로 사근사근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내 작품을 잘 봤다고 칭찬하면서 적극적으로 자신을 홍보하고 있었다. 그리고 혹시 만날 수 없겠냐고 물어왔다.

"물론 없던 시간도 내어드려야겠죠? 하하!"

"감사합니다. 실장님. 그럼 조만간 날짜를 잡고 연락드리겠습니다."

나는 그녀와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고 전화를 끊었다.

'와! 신기하다. 내가 넷플릭의 총괄 디렉터 전화를 받다니!'

참 인생사 새옹지마네.

방구석 웹소설 작가로 사회생활을 경험하러 기획사에 들어온 나였다.

그런데 이제는 드마라를 히트시킨 것도 모자라 넷플릭 한국 책임자의 전화까지 받은 것이다. 감개무량했다.

흐음. 넷플릭이라···.

내가 듣기론 슬기로운 덕질생활도 넷플릭과 협상이 잘돼서 좋은 조건으로 전편이 올라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 조만간 여러 나라 언어로 번역돼서 올라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당연히 나만의 세계는 넷플릭의 자금이 일정 부분 투입된 작품이었기 때문에 본방송이 끝나면 전편이 넷플릭에 걸리게 된다.

최근 특정 작품은 아예 방송이 끝난 후 곧바로 업로드되는 것들도 있다고 하는데 나만의 세계는 그런 계약이 아니었다.

과연 넷플릭 코리아의 총괄 디렉터는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궁금했다.

혹시 나에게 드라마 제작 제의를 하려는 거 아냐?

안 되는데······.

넷플릭은 지금 말고 내가 독립한 후에 아포칼립스 작품을 제작하는 데 도움만 주면 된다.

앞으로 내 사업에 있어서 이 OTT 업체들이 상당히 중요하다. 투자비를 지원받고 내 작품들을 아예 오리지널로 걸 수도 있다.

귀찮은 방송국들의 입김이나 각종 규제를 무시하고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린 ‘조선 킹덤’처럼 내 작품도 그리될 수도 있는 거다.

"하으으···."

몸에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일이 잘 풀리니 온몸에 활력이 감돌았다. 모든 일이 재미있고 자신감이 샘솟았다.

회사에서 월급 도둑질을 하고 있으니 저녁에 나유정이 두영이와 함께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아! 오늘 댄스 레슨 있죠?"

"네. 선생님이 너무 재미있게 잘 가르쳐주셔서 요즘 춤에 재미 좀 붙였어요. 그런데 준형 씨는 안 해도 돼요? 공약할 때 같이 하기로 했잖아요. 30%도 곧 뚫어버릴 것 같은데요?"

"유정 씨. 대중들은 저한테 관심 없습니다. 유정 씨만 해도 충분해요. 만약에 완벽하게 소화하잖아요? 난리 날 거예요. 이건 정말 믿으셔도 됩니다."

"아, 알았어요. 제가 절대 인기를 얻기 위해서 그러는 거 아니에요."

"어우 당연히 그러시겠죠."

말은 그렇게 했지만, 눈을 게슴츠레 뜨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푸훗 아니긴? 난 다 안다고. 그런데 설마 동경하는 아이돌 꿈을 꾸는 건 아니겠지?'

나는 두영이를 퇴근시키고 유상준 안무가에게 수업을 듣는 그녀를 지켜봤다. 3주째가 돼가고 있는 댄스 수업은 나유정의 빠른 안무 습득 능력으로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제는 학교 동아리 애들이 축제할 때 선보이는 수준은 되는 것 같았다.

"와! 유정 씨는 어렸을 적에 걸그룹을 하셨어야 해요. 이렇게 빠르게 배우는 사람은 진짜 오랜만입니다."

"정말요? 헤헤···."

나유정은 유상준의 칭찬에 기분이 좋은지 배시시 웃고 있었다. 정말로 그녀는 빠르게 춤을 배우고 있었다.

민소매 티와 검은색 레깅스를 입고 춘 그녀의 댄스는 꽤 그럴싸했다. 운동을 열심히 한 그녀는 요즘 물을 만난 듯 자신감이 뿜뿜한 상태였다.

내가 녹화된 영상을 유심히 보고 있으니 나유정이 쓱 다가와 무심하게 옆구리를 툭 하고 쳤다.

"아저씨. 뭘 그렇게 자세히 보고 있어요? 좋아 죽겠어요?"

"켁. 무, 무슨 헛소릴······.“

"에이! 서비스다. 내가 핸드폰에 담아줄 테니 집에 가서 몰래 봐요."

"아니! 이 사람이 사람 잡네. 필요 없거든요?"

"나중에 잠잘 때 생각나니까 내 말 들어요.“

나유정은 슬쩍 미소 지으며 내 눈을 바라보더니 한쪽 눈을 감으며 윙크했다.

"우웩...."

"자신을 속이면 안 돼요.“

"뭐래?“

그리고 이번 주 금요일 저녁

드라마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나유정의 집에 도착했다.

"과연 오늘 시청률 30%를 돌파할 것인가? 두구두구두구···."

"그러게요. 긴장되는군요. 최근 30% 넘는 게 없다시피 하는 실정인데···."

"이준형 작가 선생! 오늘 신화를 쓰나요?"

"저기요. 집어치우실래요? 정신 사나우니 조용히 좀 해봐요. 진짜 오늘 텐션 뭡니까?"

이번 주 5, 6화는 한승호를 안심시키기 위한 이수현 위장 연기와 한승호 몰래 친구들의 과거 이력을 추적해가며 이들이 나눈 이야기의 실체를 깨닫는 중이었다. 그들은 무려 20년 전부터 이 계획을 추진해오고 있었다. 영재학교에서 만나 도원결의를 하며 끈끈

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었다.

김인애가 이 조직의 실체를 까발리기 위한 결정적인 물리적 증거가 없었다. 그 정도로 이 조직의 움직임은 비밀스러웠다. 불법으로 도청한 사실은 증거로 채택되기 힘들며, 물증이 없기에 그냥 장난이라고 해버리면 아주 손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녀는 주위에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없자 결국 나유정을 찾아가서 진실에 대해 말하고 모든 것을 한승호 탓으로 돌려버린다.

나지혜가 도저히 믿지 않자 녹음 파일을 들려주는 김인애였다. 그 녹음 파일을 듣고 나지혜는 엄청난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지금까지 자기가 겪은 이상한 일들이 퍼즐처럼 맞춰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번 주는 이수현과 나유정의 연기대결이 볼만했다. 서로를 전혀 믿지 못하는 대화와 연기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피부로 느껴졌다. 경력이 한참 부족한 나유정의 연기도 이수현과 비교해서 절대 꿀리지 않을 정도로 훌륭했다.

그렇게 흥미를 더해가는 나만의 세계는 시청률 30%를 돌파했다.

30%라는 신드롬급 인기를 증명하듯 엄청난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렇게 출연 배우들이 시청률 30% 공약을 하나둘씩 SNS로 올리기 시작했고 나유정도 찍어두었던 걸그룹 커버 동영상을 조용히 업로드했다.

[제목 : 유정이가 추는 블랙소울의 ‘마지막 사랑인걸’]

안녕하세요. 유정이에요. 시청률 30% 공약 실천합니다. 못하더라도 예쁘게 봐주세용!

그녀의 춤에 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정말 궁금하기 그지없었다.

ⓒ 소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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