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린 그런 사이 아닙니다. (2)>
[유정 씨. 일단 SNS에 해명 글 올리지 마시고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제가 회사랑 이야기 좀 해볼게요.]
그렇게 메시지를 보내고 시원한 물을 한잔 마시고 있는데 XM Ent. 김인환 대표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이준형입니다. 대표님."
"이 실장. 요즘 너무 바쁜 거 아닌가?"
의외로 김인환 대표의 목소리는 나쁘지 않았다.
"예. 제가 드라마 촬영장을 따라다니느라······. 얼굴 뵌 지 좀 됐습니다. 대표님."
"괜찮아. 괜찮아. 우리가 이 실장 때문에 번 돈이 얼마인데? 계속 그대로만 하면 돼요. 그나저나."
"아. 기사 보셨어요?"
"봤지. 늦게까지 집에 같이 있었다는 기사던데 사실인가?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거예요."
"늦게까지 집에 있었다는 건 사실이지만 사귀거나 하는 사이는 아닙니다."
"하하. 그렇지? 그래. 우리 이 실장이 그럴 리가 없지. 공과 사가 명확한 사람인데!"
"그렇게 명확한 사람은 아닙니다만······."
"에이! 아니긴? 어쨌든 내일 출근하면 관련해서 회의를 좀 할 테니까 유정 씨랑 같이 봅시다."
"네. 대표님. 그런데 오늘 언론 대응 안 해도 되는 건가요?"
"아! 경영지원본부 박기용 실장이 그러는데 오늘 하루는 묵히자는 의견이야."
"왜 그걸 저랑 상의 안 하고 바로 대표님하고 상의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직접 전화를 주신 것도 그렇고요."
"자넨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 다른 실장들이나 이사들이 자네를 어려워하니까 그렇지."
내가 어렵다고? 이게 무슨 소리지?
"솔직히 우리 회사 이익만 따져봐도 대표인 나보다 공적이 더 크지 않나."
"아······. 뭐."
너무나 명확한 사실이라 그런지 아니라고 겸손을 떨기에도 애매했다.
"올해부터 유정 씨 매출이 급격하게 늘어났고, 테리우스는 앞으로 국내 A급 남자 아이돌로 캐시카우 역할을 할 건데 그게 다 자네가 알아서 만든 거 아니겠나? 내가 다 알고 있다네. 물론 자네의 잠재력을 알아본 내 안목도 무시 못 하지만······."
음. 마지막 멘트는 안 넣으면 안 되나?
"아무튼, 회사에서 자네 포지션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고 있으니 괜히 섣불리 독립한다고 그러거나 하지 말게나. 나야 조만간 본사로 갈 사람이고 앞으로 자네 위주로 회사가 돌아가야 할 게 아닌가? 나도 이쪽 사업을 알아가고 있지만, 한계가 있더라고. 여기 이
사들도 마찬가지야. 업계에 너무 오래 있어서 업무는 빠삭한데 미래 트렌드를 잘 못 읽는 것 같아."
나는 김 대표가 하는 말을 묵묵히 듣고 있었다. 말은 그럴싸하지만, 이 사람 말은 그냥 걸러 듣는 게 좋다. 어차피 바지사장이다.
"대표님. 일단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렇게 김 대표와 통화를 마친 후 일단 하루 정도는 반응을 보기로 했다. 솔직히 연예인과 매니저 사이니까 그냥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넘어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지만 내 생각과는 반대로 일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누군가가 올린 한 장의 사진이 인터넷 연예 커뮤니티에 싹 퍼지면서 여론이 바뀌기 시작했다.
[나유정과 이준형 작가의 달달한 사진]
그 한 장의 사진은 내가 웃으며 그녀에게 커피를 건네고 있는 사진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그때 이준환 PD가 옆에서 농담하는 바람에 같이 웃었던 거 같은데 정말 내가 봐도 감탄할 만큼 기가 막히게 찍힌 사진이었다. 마치 영화 포스터로 쓰일 그런 장면이었으
니까.
의자에 앉아서 커피를 건네받는 나유정도 활짝 미소를 짓고 있었는데 올린 사람이 포토샵이라도 했는지 엄청 블링블링하게 보정을 한 것 같았다.
"허어······. 이거야 원. 오해할 만하겠는데?"
그 사진 밑에 달린 댓글들은 더 가관이었다.
- 어머 어머······. 미쳤다. 딱 봐도 사귀는 거 아님? 아니라면 둘 다 어떻게 저런 미소가 나와?
- 맞음. 이준형 작가가 나유정을 쳐다보는 눈빛이 너무 달달함. 꿀이 뚝뚝 떨어짐.
- 나유정 표정 봐. 엄청 행복해 보인다. 둘이 너무 잘 어울림. 사귀면 좋겠다.
- 이 사진은 영화 포스터로서도 될 듯. 제목은 스타와 매니저의 사랑으로 하자.
억... 미치겠다. 저게 뭐가 꿀이 떨어진단 말인가!
사람들은 나유정의 실체를 모른다. 어제 안방 화장실에서 일을 보려고 할 때 나를 노려보던 실물 크기의 슈퍼노바 쿠션 때문에 깜짝 놀랐었다. 나유정은 그런 사람이다.
갑자기 유럽의 모 자동차 회사의 소형차가 생각난다. 디자인은 예쁜데 편의 장치가 없고 너무 좁은 그 차!
사람들은 그걸 예쁜 쓰레기라고 부른다.
물론 나유정이 쓰레기라는 건 절대 아니다. 그냥 느낌적인 느낌?
그렇게 하루 동안 우리의 기사가 인터넷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 * *
월요일 아침.
나는 나유정을 데리고 회사로 출근했다. 회사로 들어가자 나와 아는 사람들은 뭔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지나가고 있었다.
어이! 아니라고! 우린 그냥 연예인과 매니저 사이라고!
할 말은 많지만 참는다. 으······.
매니저실 앞에서 만난 조블리 형택이 형은 내 어깨를 잡은 뒤 나를 보고 살짝 윙크했다. 곧바로 나의 냥냥 펀치가 그의 복부에 꽂혔다.
"억······."
"쓸데없는 소문에 관심 끊으세요. 일합시다. 일!"
바로 뒤에 지원팀 순규 씨가 역시나 하는 눈빛으로 눈을 흘기고 지나간다.
제길! 그래 맘대로 생각해라. 회사에서 이 정도인데 다른 사람들 반응은 안 봐도 뻔했다. 그렇게 우리는 소회의실로 들어갔다.
이미 자리에는 김인환 대표와 경영지원본부 박기용 실장 그리고 JTVC의 이선정 서브 PD가 나와 있었다. 우리는 서로 인사를 한 후 회의를 시작했다. 먼저 박기용 실장의 브리핑이 이어졌다.
박기용 실장은 경영지원팀의 실세로 홍보팀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그의 분석에 따르면 이번 스캔들의 영향력은 제로이며, 사실이 아니므로 그냥 소속사 차원에서 간단한 부인만 하면 될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로 이 스캔들은 유정 씨의 이미지에 전혀 타격이 없습니다. 오히려 팬들은 연애를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너무 오랫동안 모태솔로 험험···. 죄송합니다. 아무튼, 여배우들은 스캔들이 나면 확실히 타격이 있는데
요. 유정 씨는 특이한 경우입니다. 안타까운 정보가 너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달까요? 광고주 쪽에서도 별말이 없는 거로 봐서는 큰 문제라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장기계약을 하자는 광고주까지 있었습니다."
"참나! 누가 모태솔로라는 거에요? 진짜 어이가 없네."
나유정도 그 이야기는 짜증이 나는지 팔짱을 끼고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이선정 피디님. JTVC 쪽 반응은 어떠세요?"
"네. 박 실장님. 일단 저희 쪽은 이런 이슈에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사진이 쫙 깔렸고 분위기도 좋았습니다. 자체 분석으로는 시청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다행이네요."
"하지만 실제 확인 결과 그냥 오보임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일단 소속사 차원에서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 단순 배우와 매니저 관계하고 부인을 해야 할 듯싶습니다."
"되도록 간단하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이슈가 좀 이어졌으면 좋겠네요."
"저기요. 이 피디님. 말씀하시는 게 좀 그렇네요? 저흰 뭐 안중에도 없습니까?"
"아! 죄송합니다. 너무 작품 쪽으로만 생각했네요. 사과드립니다. 그런데···."
"그런데 뭐요?"
"작가님은 좋은 거 아닌가요? 최고 인기 여배우하고 스캔들인데···. 남들이 부러워할 거 같은데요?"
"네? 뭐라고요? 하······."
나는 어이가 없어서 한숨을 쉬고 오른쪽에 앉아 있는 나유정을 슬쩍 쳐다보았다.
그런데 그녀는 마치 당연한 이야기라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러면서 나를 보며 ‘맞잖아요?’라고 말하는 듯 눈을 부릅떴다.
하아······. 말을 말자.
"회사 입장을 발표할 때 이준형 매니저는 아무 사심이 없다고 강하게 코멘트를 넣어주세요. 이건 진짜입니다. 꼭이요!"
내가 갑자기 강하게 나오자 박기용 팀장이 움찔하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고, 나유정은 아니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둘은 연예인과 매니저일 뿐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회사의 공식 입장이 기사로 연예면 메인 기사에 걸리자 대중들이 실망하는 분위기였다.
특이한 형태의 커플이 탄생하는 줄 알았는데 아무런 사이가 아니라는 말에 흥미가 사라진 것 같았다.
대부분 반응이 매니저가 담당 연예인과 같이 있는게 무슨 큰 문제냐는 반응이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반전되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조용해지나 싶던 이슈가 다시 한번 올라온 데일리 연예서치의 기사로 재점화 되었다.
[아무리 매니저라지만 새벽 3시에 집에서 나왔다? -데일리 연예서치-]
이 기사의 논점은 아무리 친한 연예인, 매니저 사이지만 혼자 사는 여자 집에서 새벽 3시에 나오는 게 말이 되냐는 내용이었다.
하루 전 기사에서는 이준형이 나온 시간대가 적혀 있지 않았지만 두 번째 기사에는 집에서 나온 시간이 새벽 3시 20분이라고 똑똑히 적혀 있었다.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유정이 기사를 보고 또 한 번 짜증을 내고 있었다.
"어휴! 기레기들 진짜 집요하네요. 어떻게든 이슈 만들어서 클릭을 유도하잖아요. 아니라고 해도 못 믿네. 아니 안 믿는 거겠지만···."
"진정해요. 유정 씨. 우린 별로 타격 없다고 그러잖아요."
"그래도 얄미워 죽겠어요. 진짜로!"
솔직히 말하면 나도 좀 짜증 나는 게 사실이다. 아니라고 해도 계속 어그로를 끄는 기레기들!
"어떻게 한 방 먹여줄 수 없을까요?"
나유정이 씩씩거리며 분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글쎄요···. 그때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증인을 세울 수도 없고···. 아!“
머릿속에서 뭔가가 번쩍하고 떠올랐다.
"왜, 왜요? 뭐 생각났어요?"
"잠깐만 핸드폰 좀 줘보세요."
나는 그녀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아 배달의 만족 앱을 실행시켰다. 그리고 아지매 족발로 들어가 그날 리뷰를 쭉 훑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날 밤에 아지매 족발을 시켜 먹은 사람 여러 명이 배탈이 났다는 리뷰를 동시에 올린 걸 확인했다. 그리고 나유정이 짜증을 내면서 리뷰를 달아놓은 페이지도 보였다.
"이거 증거로 올리면 되겠네요."
나는 그녀에게 혹평 리뷰를 들이밀었다.
"네? 그게 무슨···."
"우리 그날 족발 먹고 배탈 나서 죽다 살아났잖아요. 여기 여러 명이 리뷰를 남긴 증거도 있고 유정 씨도 좀 과격하긴 한데 증거를 남겼네요."
"아···. 그 별점 테러하면서 쓴 거 말하는 거죠?" 제가 뭐라고 썼었죠?"
"장사 똑바로 하라고요. X 터져서 죽을 뻔했다는···. 변비 해결해줘서 고맙수다. 이렇게 남겼네요."
"어머! 제가 그렇게 썼다고요? 설마요······."
이 뻔뻔하기 그지없는 여인네 보소? 이것도 살짝 순화한 거다.
"좀 강한 문구는 블라인드 처리해서 올리면 될 거 같은데요. 이걸 증거로 올립시다."
그녀는 살짝 고민하는 것 같더니 조심스럽게 운을 띄웠다.
"미안한데요. 그 글은 준형 씨가 올린 거로 하면 안 될까요?"
"뭐 그럽시다."
"고마워요. 헤헤헤···."
아무리 그래도 연예인인데 X 어쩌고, 변비 어쩌고 하는 건 이미지에 좋지 않다.
나유정이 반박 글을 SNS에 올리려다 아이디어 하나를 추가했다. 뭔가 더 재미있게 올리기로 한 것이다.
"크로스 카운터 알아요?
"알죠. 왜요?"
크로스 카운터! 복싱 용어인데 ‘크, 크로스 카운터!!’ 하면서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유머 짤이었다.
크로스 카운터란 상대의 주먹을 막지 않고 그냥 그대로 반대 팔로 역 펀치를 날리는 기술이다.
팔이 교차하기 때문에 크로스 카운터라고 하는데 더블 K.O도 간간히 나오기 때문에 양패구상하는 짤로 많이 쓰이곤 했다.
예전 인터넷에 알프스 소녀 하이디와 클라라가 서로 크로스 카운터 펀치를 날리는 짤이 유행하기도 했었다.
"처음에 이걸로 약간 어그로를 끌려고요."
나유정의 의견대로 셀프로 찍은 크로스 카운터 짤을 SNS에 먼저 올렸다.
[제목 : 저희는 이런 사이입니다.]
나와 나유정이 연인처럼 반갑게 다가서더니 갑자기 서로의 얼굴에 펀치를 먹이는 움짤이었다. 그 사진 위에 글자까지 입혀 놓았다.
"크, 크로스 카운터?"
그리고 팔로워들이 재미있다고 떠들기 시작하자 두 번째 게시물을 올렸다.
[제목 : 그래서 우린 그런 사이 아닙니다.]
안녕하세요. 유정이에요. 모 이상한 신문이 자꾸 우리를 괴롭히는데요. 저희는 절대 그런 사이가 아닙니다.
토요일 밤에 모니터링을 하기 위해 이 작가랑 같이 드라마를 시청했습니다. 그런데 야식으로 먹은 족발이 상했는지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들락거리느라 어쩔 수 없이 새벽에 집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증거로 그날 밤 준형 씨가 썼던 배달의 만족 리뷰를 증거로 첨부합니다. 저희 말고 여러 명 배탈 났더군요.
연예서치 기자분들!! 괜히 저희 따라다니시느라 시간 낭비하고 힘 빼실 필요 없으세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제목에 있습니다. 아시겠어요? ㅎㅎ
* * *
그날 나유정이 올린 SNS는 그야말로 핫이슈가 되어 인터넷을 떠돌며 여러 커뮤니티를 점령했다.
그리고 그 효과인지 뭔지 모르지만, 다음에 방영된 3, 4화의 시청률은 그야말로 대박을 쳤다.
[JTVC 나만의 세계 4화 시청률 28% 돌파!]
[나만의 세계. 4화 만에 전작의 시청률을 이미 추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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