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69화 (69/263)

< 두근두근 차기작 (4)>

오늘은 토요일이었지만 나만의 세계 마무리 촬영이 있는 날로 오후에 촬영 스케줄이 잡힌 상태였다.

문자에 반응이 없는 나유정이 이상해서 아침 일찍 그녀의 집을 찾았다.

도어락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 보니 머리를 올려 묶은 건어물녀 차림으로 소파에 앉자 어제 방영된 1화를 스트리밍으로 보고 있는 나유정이 보였다.

"하으으음······. 왔어요?"

나유정은 밤에 뭐 했는지 피곤한 얼굴로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했다. 나는 속으로만 혀를 차며 티를 내지 않았다.

물론 미간이 살짝 좁혀지긴 했다.

"1화 보고 계시네요? 어제 안 봤어요?"

"당연히 어제 본방 사수했죠. 그런데 제가 나오는 건 마지막에 잠깐이라······."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나유정은 2화부터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한다. 1화 마지막 부분에 떡밥으로 잠깐 출연하니까.

"여기 앉아요. 같이 보면서 리뷰 좀 하게요."

그녀는 자기 옆자리를 손으로 팡팡 내리쳤다. 나는 그녀 옆으로 앉으며 소파에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잠도 많이 안 잔 거 같은데 무슨 리뷰에요? 오후에 촬영하려면 낮잠 좀 자야 하는 거 아니에요?"

"노노노~ 괜찮아요. 요즘 운동을 열심히 해서 체력을 길렀더니 진짜 피곤한 걸 모르겠어요."

나유정의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살짝 펑퍼짐한 운동복을 입고 있었지만, 예전과는 다른 라인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제 톡을 보냈었는데 왜 대답 안 했어요?"

"아. 어제 다른 거 하다가 배터리 나간 줄 몰랐어요."

"난 또. 아침부터 괜히 일찍 왔네. 무슨 일 생겼는지 알았잖아요."

그러자 그녀는 내 얼굴을 힐끗 보더니 피식 웃었다.

"뭐야. 걱정돼서 일찍 왔어요? 진즉에 좀 그렇게 관리 좀 하시지 그랬어요. 앞으로 톡을 종종 씹어야 하겠네?"

"그래요. 그렇게 한번 해보세요. 아예 톡을 안 보낼 테니까요. 유정 씨 전담으로 두영이를 아예 박아버리면 되죠?"

나는 그녀와 잠시 농담을 주고받으며 멈춰 놓았던 영상을 재생시켰다.

"이 피디님이 진짜 화면 잘 뽑은 거 같더라고요. 제가 딱 의도하던 그 뭐랄까 세기말적인 그런 분위기가 나왔어요."

"아하. 그런 분위기구나. 설정은 신선하다는 반응이 많던데요? 그런데 스토리는 좀 진부하다는 이야기가······."

혹시 나유정이 잠을 잘 못 잔 이유가 드라마에 대한 반응을 새벽까지 뒤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스토리 이야기를 하면서 말꼬리를 흐리고 있었다. 별로 좋은 소리가 없었나 보다.

"원래 1, 2화는 뭐 어쩔 수 없죠. 대놓고 전작하고 비슷하게 간다고 선언했는데······."

화면으로 1화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검은 바탕에 흰색 글씨가 천천히 등장했다가 사라졌다.

[AI가 발전하고, 글로벌 플랫폼 위주로 득세하는 시대가 다가오는 근미래]

[세계 경기침체를 막기 위한 거대한 양적 완화로 돈의 가치가 떨어져 자산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부익부 빈익빈이 심해진 시대]

[완벽한 치안을 자랑하는 나라들도 국가공권력이 일정 부분 망가진 상태로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첫 번째 장면은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고급스러운 모던 스타일의 단독주택이 보였고, 집 안에는 실크로 된 흰색의 옷을 입고 저녁을 차리고 있는 김인애의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식탁 위에 좀 더 진화된 플랙서블 스마트폰으로 뉴스가 천천히 지나가고 있었다. 음식을 다 준비하는 그녀가 핸드폰을 집어 들더니 HOME 애플리케이션을 터치했다.

그리고 식탁 위의 조명을 한번 쳐다보더니 약간 고민을 하다가 검지로 색상 팔레트를 찍어 분위기에 분위기에 맞는 컬러로 조명 색을 바꾸었다.

카메라가 집안을 비추고 있었는데 최고급 디스플레이가 달린 냉장고와 박막형 TV 등 최신 전자제품들이 비치되어 있었다.

"캐시. 음악 부탁해.“

[알겠습니다.]

이수현의 말에 카오스사의 인공지능 스피커에서 상황에 맞는 잔잔한 피아노 선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방문이 열리며 샤워하고 방금 옷을 갈아 입은듯한 한승호가 수건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이수현은 바로 시원한 과일 야채즙을 그에게 대령했다.

"드세요."

"고마워."

훤칠한 외모의 한승호는 김인애를 살짝 감싸 안고 이마에 입맞춤했다. 그러자 그녀는 행복한 듯 배시시 웃었다.

"은별이 여름 캠프는 잘 도착했대?"

"네. 친구들하고 엄청 재미있나 봐요. 대답도 잘 안 하고 전화를 끊으려고만 하더라고요."

"이제 그럴 나이잖아. 11살인데······."

"은별이가 없어서 그런지 오랜만에 둘이서 오붓하네요.“

"그렇군."

그녀를 바라보는 한승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둘은 식탁에 앉아서 저녁을 먹으며 대화를 시작했다.

"와! 진짜 영화 같다. 저기 통유리 밖에 주차된 차 좀 봐요. 무슨 미래형 자동차 같아요.“

나는 처음부터 세기말적인 느낌의 부익부 빈익빈 상황을 연출하고 싶었다. 고급 주택단지에 사는 부자들의 최신 생활상을 보여주기 위해서 협찬도 나름 최첨단 제품들로 공을 들인 것이다.

"유정 씨는 여기 안 와봐서 모르시는구나. HK모터스에서 나온 콘셉트 전기차에요. 스포츠카처럼 완전 멋있죠? 그리고 집 안에 있는 것들은 전부 국내 굴지의 전자회사에서 협찬을 받은 최신형 제품이거나 최근에 개발한 신제품들에요. 카오스의 최상위 인공지

능 스피커도 그렇고요.“

"대박!"

나는 호들갑을 떠는 나유정의 모습을 보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이런 것도 전부 협찬으로 받아내는 것도 능력이죠. 외국계 기업 제품들을 쓴다고 했더니 적극적으로 도와줬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드라마를 촬영하기 전부터 유정 씨가 오지게 홍보를 해놔서······. 크흠."

"헤헤 역시 제가 나서니까 수월하잖아요? 역시 럭키 걸!"

".........."

뭔 말을 못 하겠다. 요즘 기분이 아주 좋은지 칭찬을 자주 하면 안될 것 같다.

우아한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부부는 차를 마시고 침실로 들어가 야릇한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한승호의 품에서 기쁨에 어쩔 줄 모르는 김인애의 얼굴이 클로즈업되며 그녀의 독백이 이어졌다.

[그는 내게 너무나도 과분한 사람이었다.]

"오, 옴마야."

영상을 보고 있던 나유정이 손으로 눈을 가리는 시늉을 했다. 물론 손가락 사이로 구멍이 뻥뻥 뚫려 있었지만.

"갑자기 웬 순진한 척입니까? 얼마 전 저거보다 훨씬 수위가 높은 베드신을 찍어 놓고선?"

"그, 그건 연기잖아요. 내가 하는 거 하고, 남이 하는 거 보는 게 같아요?"

"저거도 연기 아닌가? 그리고 말이 좀 그렇습니다?"

"아무튼, 1화부터 엄청 자극적으로 가네요."

"에이. 이게 뭐 자극적이에요. 애들도 이정도 수위는 보고 그냥 웃어요."

"됐고. 얼른 보기나 해요."

장면은 빠르게 전환되어 도시의 어느 외곽지역 슬럼화된 고층 아파트가 나오고 있었다.

빗속을 뚫고 엘리베이터에 도착한 30대 초반의 여자가 1층에서 자신이 사는 20층 버튼을 눌렀다. 이곳은 공동화 현상이 일어나서 주민들이 많이 살지 않는 낡은 아파트였다.

갑자기 올라가던 엘리베이터가 3층에서 멈추더니 비옷(판초 우의)을 머리까지 뒤집어쓴 한 남자가 물을 뚝뚝 흘리며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적으로 깜짝 놀란 여인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으나 18층을 누르는 그 남자의 등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남자가 등을 보이고 있지만, 왠지 모르게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가 한쪽 손을 품 안에 집어넣고 있는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띵....

18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며 남자가 천천히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모습을 본 여자는 자기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

스르르릉...

엘리베이터의 문이 반쯤 닫히는 순간.

갑자기 밖으로 나갔던 비옷의 남자가 휙 돌아서며 품속의 칼을 빼내며 그 여자를 보며 악마처럼 웃었다. 그러면서 그는 계단을 이용해 위로 빠르게 달려 올라갔다.

엘리베이터에 여인은 소리를 지르며 패닉에 빠졌지만 19층 위로 사는 사람은 그 여인 혼자뿐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연쇄 살인사건에 관한 기사가 뉴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 뉴스를 남의 일인 양 듣고 있는 한승호와 김인애였다. 어차피 이곳은 최첨단 보안 시설이 탑재된 동네였으니까.

"여보. 또 바빠지는 거 아니에요? 요즘 왜 저렇게 강력 사건들이 많은지···."

"정말 큰 일이야. 범죄는 자주 발생하는데 일손은 부족하고······."

한승호가 걱정을 하는 가운데 고급스러운 식기류와 식탁의 인테리어는 살인사건이 일어난 음습하고 슬럼화된 고층 아파트촌과 비교되며 묘한 긴장감을 주고 있었다.

"와! 아까 살인마 진짜 무섭다. 저놈 20층에서 기다리려고 18층에서 내려서 위로 뛰어 올라가잖아요. 악질이네. 근데 저거 도시 괴담에 나오는 약간 싼마이 느낌이······."

"어허. 말조심 좀······."

나는 이준환 감독과 상의해서 잔인한 장면이 안 나오게 살짝 스릴러 느낌을 첨가했다. 아무래도 복선을 미리 깔아놓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시청자들 뒤통수를 치는 것보다는 이렇게 처음부터 암시를 하는 게 나중을 위해 좋긴 하겠네요.“

역시나 베테랑 연기자 다운 의견이었다. 그녀는 역시 극의 흐름을 잘 꿰뚫고 있었다.

"흐음. 엘리베이터 신 연출이 잘됐네요. 역시 이 감독님 감각이 대단하시네."

"전작에서 이런 비슷한 거 넣으시고 욕 많이 먹으셨죠. 킥킥."

"아! 그거······.“

"뭔지 아시겠죠?"

"그런데 유정 씨가 저기 있었으면 20층에서 문이 열리자마자 칼싸움이 났겠네요. 비옷을 입은 회칼을 든 미치광이 사이코패스 대 대 무기상에서 몰래 빼돌린 진검을 든 여자라······."

"오! 죽이러 왔다가 저한테 살해당하는 살인마 설정 괜찮네요."

"그 아이디어를 중간에 넣을까요? 피디님한테 한 컷 더 찍자고 해서 넣죠? 어차피 사회 분위기를 알려주려는 초반 장면이라 저 살인마가 나중에는 안 나오거든요?"

"무심하게 연출해서 넣으면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레전드짤이 될 거 같은 소재인데요? 예를 들면 이런 거잖아요. 여자를 죽이려고 회칼을 들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길 기다리는데 웬 미친 여자가 문이 열리자마자 진검을 무심하게 휘두르는 거죠. 갑자기 미친

놈의 목에서 피가 콸콸! 헤헤······. 전 찬성이요."

나는 나유정의 말에 살짝 미간이 찌푸려졌다.

‘피가 콸콸이라니.... 쩝.’

어쨌든 후반부에 이런 의외의 장면을 추가해서 넣기로 했다.

그리고 중간부터는 김인애가 직장에서 일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녀는 최고의 병원에 딸린 불임클리닉 전문의 겸 생명공학 박사였다.

화면에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김태원이 등장했다. 그의 모습은 선해 보이는 반듯한 이미지의 정신과 의사였다. 어떻게 보면 약간 순박해 보이기까지 하는 모습이었다.

"와. 형탁 선배님도 배역 진짜 잘 어울린다. 어떻게 이렇게 딱 맞는 섭외를 한 거지? 되게 신기하네."

"JTVC 스튜디오 캐스팅 디렉터가 능력이 좋은 것 같더라고요."

나는 리모컨을 들고 중요하지 않은 부분은 뒤로 쓱쓱 넘기기 시작했다.

"잠깐만요. 왜 넘기는 거예요?"

"스토리랑 상관없는 부분은 넘기려고요. 어차피 본 거잖아요."

"준형 씨 가끔 보면 드라마나 영화 볼 때 막 건너뛰면서 보던데 왜 그래요?"

"아니···.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서요. 안 그래도 볼 건 많고 시간은 없는데 그렇게 하는 게 효율적이잖아요."

"으······. 극혐!"

"극혐이라니!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영상의 미학! 미장센 몰라요? 작가라는 분이 너무하시네."

"전 원래 웹소설 작가라 스토리가 제일 중요합니다. 미장센 같은 거 넣었다간 하차한다는 소리만 들어요."

"치···. 어쩐지 그래서 대본에 그런 설명이나 묘사가 딱 들어갈 것만 들어가더라니···. 안 되겠네. 내가 좀 봐주든지 해야겠어요."

"저기요. 됐고요. 그런 건 감독님이 알아서 하시라고 놔두는 편입니다만?"

"이건 작품에 대한 모독이에요. 모독! 영화 보면 엔딩 크레딧도 봐주는 섬세함! 작가님 이름도 올라가는데 어때요? 관객들이 그런 디테일까지 챙겨주면 기분이 좋지 않겠어요?"

"글쎄요. 난 별로. 그냥 돈 내고 많이 봐주면 장땡······."

"그, 그만. 말이 안 통하네! 어휴!"

이 아가씨야. 난 여러 가지 쓰는 것도 바쁘다고! 내가 무슨 감독이야? 안 그래도 차기작 구성하는 거 머리 아파 죽겠다고.

나는 나유정을 무시하고 중요한 장면을 쭉 돌려봤다.

후반부에 한승호가 출근해서 바쁘게 일하고 있는 경찰청의 분위기가 나오고 있었다.

부익부 빈익빈 사회가 공고해져 민심이 흉흉해지고 강력범죄가 끊이질 않고 있다는 설정으로 엄청나게 바쁜 경찰청 내부가 그려지고 있었다.

그 모습 또한 부자 동네와 모습이 겹치며 뭔지 모를 어두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드디어 마지막 장면에서 살인사건이 급증해 야근을 해야 한다는 남편을 놀래주기 위해 경찰청을 찾아온 김인애.

지하 주차장에서 한승호와 나지혜의 이상한 장면을 목격하게 되는데······.

1화가 이렇게 끝이 났다.

"음······. 1화 괜찮네요. 아무리 봐도 전작하고 별로 비슷하지 않은 것 같은데요?"

"하하. 나름 차별화를 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유정 씨 시청률 보셨어요? 21% 나왔어요."

"아······. 큰일이에요. 잘못하면 공약을 수행하게 생겼어요."

그녀도 그게 걱정이 되는지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하면 되잖아요. 배우면 되죠. 연습실에 가서 안무가 선생님께 좀 배워보고 테리우스 애들한테도 알려달라고 할 수도 있고요."

"몰라요. 자신 없어요."

"유정 씨가 뭘 모르시네. 남자 아이돌 녀석들 걸그룹 엄청나게 좋아하거든요? 왜 맨날 기사로 나오잖아요. 끼리끼리 사귄다고. 유정 씨가 걸그룹 댄스를 완벽하게 추잖아요? 그럼 남자 아이돌들이 좋다고 난리 날 거 같은데···. 흠···."

"서, 설마요."

그녀는 반신반의하고 있었지만 이미 안무가와 만나 악수를 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옳지! 걸려들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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