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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67화 (67/263)

< 두근두근 차기작 (2)>

원독 어린 표정을 하고 있는 나유정의 모습을 보니 오금이 떨려왔다.

현재 나지혜는 자신의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이유가 한승호 때문이라고 잘못 알고 있었다.

김인애는 교묘한 조작으로 둘을 완벽하게 갈라놓은 것도 모자라 악의를 품게 만든 것이고 도저히 혼자서 이 단체를 상대할 수 없자 나지혜를 이용해 이 집단의 실체를 파악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처음에는 갑자기 나타난 한승호 부인의 말을 믿을 수 없었지만, 조사를 해보니 하나둘씩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러다 사이코패스 집단에 발각되고 별장의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녀는 말라비틀어진 비누에 물을 묻혀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었다. 물이 뚝뚝 떨어지는 반라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물론 앞은 수영복으로 공사를 다 해놓은 상황이라 상당히 웃기긴 했지만, 카메라에 담긴 뒷모습은 치명적이고 고혹적이었다.

화장기 없는 얼굴의 나유정.

개인적으로 나는 그 모습을 최고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원판이 워낙 훌륭한 배우였다. 스물 일곱 살이지만 피부가 마치 스무 살 대학생처럼 빛이 났다.

아닌가?

아마도 씻기 전 모습이 너무 꾀죄죄해서 비교되며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물로 샤워를 해서 옅은 수증기가 피어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서 강렬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허···. 미치겠네. 왜 이렇게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리지?'

아직 서른도 안 된 배우가 이 정도의 묵직한 연기력을 보여주다니 정말 놀랄 일이었다.

그녀는 샤워를 마치고 속옷과 몸에 밀착되는 흰색의 민소매 티셔츠를 입었다.

어두컴컴한 주광색 불빛 아래 벽에 걸려있던 깨진 대형 거울을 천천히 응시했다.

으음···.

카메라에 담긴 그녀의 표정과 자태는 그야말로 여전사와 다름없었다. 그간 열심히 몸을 단련해온 효과가 여기서 나타나고 있었다.

하얗지만 전신의 날렵한 근육질이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자연스럽게 음영으로 드러났다. 마치 전신에 섀도를 바른 듯한 감탄스러운 장면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와! 진짜 몸 열심히 만들었다. 유정 씨 진짜 미친 거 아냐?'

나는 그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며 순수하게 감탄을 하고 말았다. 정말 너무나도 멋진 모습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사실은 원래 그녀가 스포츠 브라를 입고 자신의 복근을 보여주자고 계속 고집을 부렸지만 나와 이준환 감독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미 예정에도 없던 찬물(?) 샤워장면을 선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꾸 면도칼로 머리를 자른다고 우겼는데 그것도 과하다고 못

을 박았다.

그래서 타협을 한 모습이 바로 이 장면이었다. 흰 민소매 티를 입되 하체는 속옷만 입고 있는 모습으로 변경을 한 것이다.

원래 장난처럼 말했던 오마주 그대로 가면 너무 영화 아저씨가 떠오르기 때문에 감독과 상의를 한 후 변경을 한 것이다.

면도칼로 머리카락을를 자르는 것을 말리다 즉흥적으로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이 감독과 상의를 하기 위해 그에게 다가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조용히 말을 했다.

'감독님. 어차피 나중에 나유정이 최종 복수를 약간 주저하는 신이 나오잖아요. 그 당위성을 이 장면하고 연결하면 어떨까요? 이 장면에서 머리를 자르지 못한 것은 미련이 남아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거죠.'

'오! 그거 더 자연스러운데요? 디테일이 들어가니 더 극적인 것 같습니다. 작가님 말씀대로 바로 수정하시죠."

대본이 수정되는 바람에 나유정은 그 부분을 다시 숙지하고 연기를 해야 했다.

거울에 비친 나지혜가 자신의 몸에 난 상처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면도칼을 들어 머리카락을 자르기 위해 자세를 잡았지만, 갑자기 예전에 한승호가 침대 위에서 자신에게 속삭였던 말이 떠오르고 만다.

[넌 머릿결이 너무 예뻐.]

손에 들고 있던 면도칼이 바닥에 떨어지고 다시 한번 오열을 시작하는 나지혜. 그녀는 한승호에게 심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사실을 알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았다.

흐윽··· 흐윽···

자신의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비틀거리는 연기를 하는 나유정이었다.

"으아아악!"

그러다가 노성을 지르고 주변의 물건을 때려 부수다가 다시 이성을 되찾았다.

"헉헉···. 개 같은···. 다 죽여버릴 거야."

이판사판! 극단까지 치달은 상황이었다. 이미 상대방은 미친 살인귀 집단이다. 살아있어서는 안 될 사회악 같은 존재! 하지만 공권력은 미치지 못한다···.

김인애도 마음에 안 들지만 자신 대신 잡혀버린 그녀를 구출하고 협력해서 그 미친놈들을 없애야 했다. 별장의 지하 감옥에 갇혔던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죽어가고 사라졌는지 간접적으로 목격한 나지혜.

그녀는 누명을 벗어야 했다. 앞으로 이렇게 살 순 없었다.

그녀는 결국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고 뒤로 묶었다. 이게 바로 그녀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복선이었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바닥에 던져둔 진검을 집어 올렸다.

스르릉···.

번쩍이는 칼날에서 시퍼런 예기가 흐르고 있을 정도로 관리가 잘된 명품이었다. 예전 불법 무기상을 잡았을 때 그 날카로움에 홀려 몰래 빼돌려 놓은 질이 아주 우수한 놈이었다.

보기만 해도 홀려버릴 정도여서 가끔 집에 있을 때 오랫동안 멍하니 그 검을 쳐다보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나지혜는 도를 들고 칼날을 주의 깊게 훑어보았다. 도인에 빛이 반사되어 번쩍이고 있었다.

탁!

그녀는 다시 도(刀)를 칼집에 꽂았다. 절도 있는 그녀의 동작에 나는 그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어디선가 훔쳐 온 후드 집업 트레이닝 복을 걸쳤다.

사실 디자인만 보면 어디서 훔쳐 올 만한 옷은 아니었다. 어쌔신 후드 집업 택틱컬 웨어로 군용품을 파는 곳에서 살 수 있는 옷이었다.

멋진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의상팀에서 가져온 복장으로 몸에 붙는 파충류의 표피 질감이 살짝 들어간 짙은 남색 집업 후드티였다. 그리고 바지는 타이트한 검은색이었다. 적당히 멋지다는 느낌이 드는 복장이었다.

카메라가 그녀의 얼굴을 45도 위에서 클로즈업했다. 입을 꽉 다문 그녀의 얼굴에서 분노와 광기를 읽을 수 있었다.

"컷!"

나유정은 이준환 감독에게 한방에 오케이 사인을 받았다.

"와!"

스태프들 사이에서도 찬사가 터져 나왔다. 카메라 감독은 팔에 소름이 돋았는지 팔뚝을 쓰다듬고 있었다.

"어우. 놀래라. 찍으면서 이런 느낌은 오랜만이네. 대박인데?"

이런 현장의 의견이었지만 나유정의 생각은 다른 것 같았다.

"다시 한번 처음부터 다시 할 수 있을까요?"

"지금도 잘했습니다. 충분합니다. 유정 씨."

"아니. 감독님 한번만요! 제가 하나를 빼먹은 게 있는데 그거 좀 추가해야 할 거 같아요."

"노노··· 정말 잘하셨어요. 빠르게 촬영하기로 하셨잖아요."

"그래도 좀 더 완벽하게···."

이준환 감독은 고집을 부리고 있는 나유정을 말리지 못하자 나에게 S.O.S를 쳤다.

"유정 씨. 충분해요. 저 소름 돋았어요. 정말 강렬한 연기였는데 뭘 다시 한다는 거예요."

"아니···."

"됐어요. 지금도 약간 한기가 도는 거 같은데 찬물로 또 샤워할 거예요?"

나는 큰 샤워 수건으로 그녀를 덮어주며 어깨를 감쌌다.

그녀의 얼굴을 보니 아직 반쯤은 그 배역에 빠져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우리가 못하게 하자, 마치 화가 난 사람 같았다.

"유정 씨! 정신 차려요. 다음 장면 찍어야 한다고요."

"아, 알았어요."

나는 그녀를 달래 겨우 진정시키고 따뜻한 커피 한잔을 내밀었다.

호록···

"아. 살 거 같다. 고마워요. 이 매니저."

커피를 한 모금 마시더니 나를 보고 이 매니저라고 부르며 미소를 짓는다.

"언제는 작가였다가 이렇게 서비스 할 때는 매니저라고 하고 자꾸 왔다 갔다 하네요?"

"그거야 준형 씨 위치가 애매하니까 그러는 거죠."

"음. 그럼 이제 현장에 안 나와야 하겠네. 명색이 실장인데."

"그, 그럼 내 연기는 누가 모니터링 해요? 안돼요."

"아니 여기 감독님도 계시고, 동료 배우분들도 계신데요?"

나는 장난스럽게 그녀의 얼굴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작가임에도 현장에서 스태프처럼 구르고 있는 건 내가 그녀의 매니저이기도 했지만, 현장을 눈으로 직접 보고 배우려는 의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작품이잖아요."

"예? 우리···. 작품요?"

"이렇게 드라마를 찍게 된 건 나한테도 일정 부분 지분이 있잖아요. 그럼 작가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소속 배우를 돌봐야죠. 연기도 봐주고."

뭔가 대화가 이상하게 흐르는 느낌이었다. 단순히 호칭 문제 때문에 이야기를 시작한 건데 갑자기 지분 문제까지 이야기하는 그녀였다.

"연기는 제가 뭐라고 평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에요. 유정 씨는 연기에 대해서 저한테 물어볼 필요가 없습니다. 지금 연기하는 모습 자체가 그냥 나지혜인 것 같아요."

"·········."

그녀는 내 말에 무슨 대답을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왜요? 왜 말을 하다 말아요?"

"그, 그냥 편해요."

"네? 그게 무슨?"

"옆에 있으면 편하다고요. 김 매니저님보단.···"

음. 뭔가 분위기가 애매하다. 황급히 분위기를 전환할 필요가 있는 거 같다.

"하하. 편한 몸종이 필요합니까?"

"모, 몸종이라니요. 그게 무슨···."

"아무튼, 현장에 자주 나올 테니까 그리 알아요. 두영이한테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다시 촬영 장소가 바뀌었다. 그다지 멀지 않는 곳이었는데 사이코패스 집단의 아지트로 쓰이는 별장 건물 주위였다.

그녀가 감금되어 있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지옥과 같은 장소였다.

"레디 액션!"

이 감독의 외침으로 촬영이 다시 시작되었다. 나지혜는 높은 곳에서 별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는 칼이 들려있었다.

그녀는 칼을 꽉 움켜쥐었다. 그리고 품속엔 권총까지 준비한 상태였다. 그녀가 후드를 잡고 머리에 뒤집어쓰려는 순간!

"지혜야!"

몸을 일으키던 나지혜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들어 뒤를 돌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나지혜를 짝사랑하던 덩치 큰 순정남 김하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나지혜가 실종된 날부터 휴대폰 위치 추적을 해가며 인근을 뒤지는 중이었다.

그는 지금까지는 가끔 짧게 나와서 나지혜에게 대시하던 역할이었지만 이것을 기점으로 주요한 조연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항상 그녀의 주변을 맴돌고 뒷모습만 보기 일쑤였던 숫기 없는 사내.

심지어 그는 나지혜가 한승호와 불륜관계인 것을 알고도 미련을 못 버리던 고구마 같은 남자였다.

정혜성 사범도 그렇게 후반부 조연으로 거듭나는 중이었다. 상당히 오랜 기간 연습을 해서 그런지 나유정과 실랑이를 벌이는 연기가 아주 훌륭했다.

그녀와 함께 악의 조직을 붕괴시키는데 일조하는 경찰청 합기도 고수로 매우 중요한 역할이었다. 막무가내인 나유정을 지켜보는 그의 얼굴은 왠지 비극적인 결말을 암시하듯 약간은 우울하고 씁쓸한 모습이었다.

나는 대본 리딩 후 정혜성을 따로 불러 캐릭터를 섬세하게 잡아준 적이 있었다. 물론 그전에도 전반적으로 훌륭했지만 내가 잡아준 디테일로 인해 해당 캐릭터에 대한 싱크로율이 확 올라갔다.

당장 그 찰떡같은 모습이 촬영 현장에서 확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좋았어! 혜성 씨도 연기는 출중하네. 이대로만 가면 인기 끌겠다.'

나는 다른 배우들도 신경을 썼지만, 특히 나유정과 정혜성의 연기에 좀 더 많은 공을 들일 수밖에 없었다. 초반에만 조금 이야기했을 뿐 역시 뛰어난 잠재력을 보유한 인재라 그런지 빠르게 자기 자리를 찾아갔다.

촬영장은 일정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고 차기작은 순조롭게 모든 게 진행되고 있었다.

*  *  *

시간이 흘러 드라마 나만의 세계 제작발표회가 있는 날이었다.

이미 현장에는 엄청나게 많은 취재진이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경쟁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기분이 좋아졌다. 제작발표회의 열기는 바로 시청자들의 관심과 다름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자들이 쓸데없는 것 좀 안 물어봤으면 좋겠다.'

솔직히 내가 방송에서 추태를 부린지 2개월이 흘렀으니 이제는 사람들이 그걸 잊어버렸으면 했다.

ⓒ 소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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