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근두근 차기작 (1)>
"오라버니.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안돼!"
제기랄! 제기랄! 드라마로 시청률 1위도 찍어보고 이제 좀 잘나가나 싶었는데 일이 이렇게 되다니···. 김우주 이 녀석은 나하고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런 걸 올린 걸까?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김우주가 아니라 팔로워들이 문제였지만 나에게 그딴 건 신경 쓸 수 없는 문제였다.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해야 했다.
"으으으···."
내가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자 막내가 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오빠. 그런데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거 같아."
"야. 지금 내가 범지구적으로 창피를 당하게 생겼는데 그걸 위로라고 하냐?"
"범지구적은 무슨? 오빠가 무슨 아이돌이라도 되는 줄 알아? 그건 그냥 한때야."
"큼···. 그러면 좋겠다만! 처지를 바꿔놓고 생각해봐라. 곧 동창회 모임 있다는데 창피해서 어디 나가겠냐?"
"그건 좀 안쓰럽긴 한데 꼭 나쁜 면만 있는 건 아니야."
"무슨 소리야?"
"오빠. 김우주의 팔로워가 6백만 명이거든? 지금 팔로워들에게 테리우스가 언급되고 있어."
"요즘 케이팝 아이돌이라면 세계적으로 놀잖아. 어차피 인터넷으로 공개되는데···."
"아니 테리우스 이번 뮤비 조회수 봐봐. 지금 폭등 중일걸? 효과가 괜찮은 거 같은데?"
나는 주리의 말을 듣고 테리우스의 뮤직비디오를 검색해봤다.
"어? 그러네? 1천 5백만?"
정말로 어제보다 조회수 증가추세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금껏 뮤직비디오 조회수가 누적으로 천만을 넘긴 게 없었는데 일주일도 안돼서 최고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더군다나 외국인들의 뮤직비디오 리액션 영상이 눈에 띄게 많아진 게 느껴졌다. 이번 뮤비는 귀족풍의 소공자 스타일이라 아시아권 여자들의 반응 영상이 많은 것 같았다.
'이런 게 슈퍼노바 효과인 건가?'
아무래도 내 동영상을 링크하면서 테리우스의 영상으로 흘러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테리우스의 화려한 외모에 홀리는 것이다. 거기에 칼군무와 김훈의 뛰어난 보컬은 덤!
"그리고 이거 봐봐. 솔직히 근본도 없는 찌라시 쓰레기 기사긴 한데. 이런 소문도 돌고 있어."
"으응?"
[제목 : 슈퍼노바 막방 사진 공개, 테리우스와 친분 과시하는 것은 의도가 있다?]
오늘을 끝으로 공식활동을 종료하고 본격적인 유럽, 미주 월드투어를 시작하는 슈퍼노바가 MBS 뮤직코어에서 테리우스와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다른 그룹 사진을 올리지 않기로 유명한 그들이 테리우스의 사진을 올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항간에는 어떤 의미가 담긴 게 아니냐 하는 추측들이 나오고 있다.
슈퍼노바는 조만간 멤버 전원이 동시 입대를 한다는 소문이 있는 가운데 차기 남자 아이돌의 패권 향방에 영향을 주기 위해 테리우스와 친분을 과시하는 게 아니냐는···. (중략)
- 야! 기레기야. 슈퍼노바의 제이디랑 김우주가 슬기로운 덕질생활을 너무 재미있게 봤다고 작가랑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같이 올린 건데 사실을 호도하지 마라! 어디서 이런 쓰레기 같은 기사를 쓰냐?
- 잭팟엔터에 동생 그룹 있지 않았어요?
- 걔들은 아직 멀었지.
- 아냐. 이 기사가 일리가 있는 게 국내 3사 남자 아이돌들이 자신들의 지분을 가져가지 못하게 하는 수법인 것 같기도 하거든? 테리우스야 드라마로 반짝했지 3대 기획사 팬덤하고 비교하면 아직 멀었잖아. 자기들이 복귀하기 전까지 3사를 견제하기 딱 좋지.
- 아닌데? 테리우스도 잠재적인 경쟁자야. 정이든이 곡 만든 이번 곡 들어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 앨범도 지금 20만 장인가 팔았을걸?
- 허허. 여기에도 음모론자가 있네. 제이디랑 김우주는 진짜 슬덕 팬이라고! 말귀를 못 알아먹냐?
'엥? 무슨 이런 기사가···. 말도 안 돼!'
나는 그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말 그들은 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보고 또한 투데이 아이돌에서 내가 저지른 추태를 보고 웃겨서 인사차 온 거다.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일축했지만 하나의 게시물이 불러일으킨 파장은 꽤 컸다.
첫째, 테리우스의 해외 인지도 상승. 특히 슈퍼노바의 팬덤의 호의를 얻을 수 있었다.
둘째, 국내에서는 은근슬쩍 3대 기획사 남자 아이돌과 함께 1티어로 묻어가는 효과가 생겼다.
사실 해외에서의 인지도야 수익으로 크게 연결이 되지 않으니 아직은 큰 영향력은 없었지만 두 번째 효과 즉, 공식적으로 1티어 그룹으로 불리게 됐다는 게 상당히 긍정적이었다.
"뭐지? 나비효과인가? 그런데 이거 사진 찍은 지 몇 시간이나 됐다고 벌써 이런 글들이 올라오고 뮤비 조회 수까지 움직이냐?"
"그게 슈퍼노바 효과인 거지. 내 생각엔 오빠가 한 일이 그렇게 헛되지는 않은 거 같아."
"전문가 나셨어요?"
누가 그걸 모르나? 당장 내 앞에서 사람들이 킥킥거리니까 문제지.
"얼른 머리나 말리고 자라. 용돈 좀 줄까?"
"히히···. 오라버니 알라븅!"
일요일인 다음날 테리우스의 음원 성적은 5위권을 돌파하더니 3위까지 치고 올라갔다.
단톡방에서 박영관의 비명이 들려왔다. 자기가 흘린 눈물에 홍수가 나서 둥둥 떠 있는 이모티콘으로 창을 도배했다.
테리우스는 오늘도 음방에 출근을 한 상태였다. 형택이 형은 흑역사가 된 내 영상의 링크를 자꾸 띄웠다.
[조형택 : 전설의 3연 삑!]
[조형택 : 자 오늘도 웃으며 시작합시다. 대한민국을 초토화한 전설의 3연 삑싸리입니다.]
[이준형 : 거! 그만합시다. 질렸네요. 하나도 안 웃깁니다.]
[박영관 : 난 기분이 우울할 때 이 영상을 보지.]
[이준형 : 그럼 안 본다는 거잖아. 너 조울증 아냐?]
[박영관 : 아니! 오늘 1등 못하면 볼 거야. 기분이라도 좋아져야지.]
[조형택 : 오늘은 기대할 만하겠더라. 슈퍼노바도 없는 말이지.]
테리우스는 형택이 형의 말대로 SBC에서 처음 1위를 수상했다. 나는 그 모습을 TV 생방송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다섯 명은 한연준을 제외하고 다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정이든은 울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지없이 울어버리네. 감성 보컬 맞네.‘
박영관은 소감을 한마디도 말하지 못하고 펑펑 울기만 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오고 말았다.
"어휴. 리더란 놈이 쳐 울기나 하고···. 젠장. 내가 저기 가야 했는데···."
그나마 제일 멀쩡한 한연준이 소감을 말하기 위해 마이크를 잡았다.
"먼저 저희를 아껴주시는 우리 캔디즈 여러분. 너무 감사드립니다. 팬분들 덕분에 저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고마운 분들이...."
음악방송에서 1위를 하면 의례적으로 하는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앞으로 저희가 보여줄 새로운 모습들이 많습니다. 성원에 꼭 보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저희를 시어머니처럼 돌봐준 우리 이준형 매니저 작가님."
그는 살짝 울컥한 듯 고개를 쳐들고 말을 멈췄다.
"너무 고맙고···.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테리우스는 절대 그걸 잊지 않겠습니다."
"자식··· 훌쩍."
잊지 않고 나를 언급해주다니 감동이었다.
테리우스는 동료 가수들에게 축하를 받으며 앵콜곡을 불렀다.
나는 TV를 끄고 상념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조용히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이제는 한시름을 놓은 것 같았다. 앞으로 테리우스는 1티어 그룹으로 견고한 인기를 구가할 것이다. 지금 보니 해외에서도 슬슬 반응이 오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테리우스 알아서 잘 굴러갈 테니 내 할 일만 하면 된다.'
* * *
테리우스는 공중파 1위를 휩쓸고 완전한 1티어가 되어 정말로 미친듯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었고, 나의 차기작 '나만의 세계' 촬영도 순조롭게 이어지고 있었다.
벌써 드라마의 화려한 배우 라인업이 공개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배우 한성우의 드라마 복귀가 큰 화제가 되었다.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 연예란 메인 페이지에 게재되며 대중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대본이 너무 좋았습니다. 이 작품은 출연료를 떠나 무조건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출연하는 배우분들도 정말 저보다 다들 뛰어나세요. 잘 몰랐는데 이수현 씨도 연기를 정말 잘하시더라고요. 진짜 깜짝 놀랐습니다. 나유정 씨는 말할 것도 없고요."
이 인터뷰를 보고 많은 사람이 '나만의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 * *
나는 이준환 PD와 적극적으로 협력해서 수정할 건 수정하고 일을 아주 빠르게 진행하고 있었다.
이미 2/3 정도 촬영이 완료된 상황이었다. 이제는 편집하는 게 중요해서 촬영과 동시에 초반 화를 편집하는 중이었다.
나는 나유정의 매니저를 자처해서 자주 촬영장을 찾았고 제작 현장을 배우고 배우들의 연기를 점검했다.
그리고 오늘 중요한 신 촬영이 있어서 같이 현장에 나와 있었다.
"편집 잘 부탁드립니다. 피디··· 아니 감독님."
나는 책임감을 부여하려고 일부러 감독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물론 그의 아우라를 보면 당연히 끝내주는 결과물을 만들게 분명했다.
"준형 씨. 제가 일해본 어떤 작가와도 비교가 안 되네요. 적극적이고 피드백 빠르고 아이디어도 좋으시고···"
"무슨 과찬을 그렇게 하십니까? 전 감독님이 어떻게 그렇게 빠르게 착착 찍으시는지 모르겠던데요?"
"아! 원래 제 스타일이 그래요. 그런데 이번엔 자금도 빵빵해서 그냥 현질로 진도가 팍팍 나가고 있는 거죠."
"에이 그거야 감독님께서 전작을 히트시켜서 넷플릭도 그냥 믿고 거금을 맡긴 거 아니겠습니까?"
"하하. 그런 건가요? 그런데요. 작가님. 걔들이 어떤 애들인데요. 대본도 꼼꼼히 봤습니다. 내용이 좋으니까 통과된 거고요."
촬영 전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흠···. 오늘 유정 씨가 잘해야 할 텐데요."
"유정 씨 몸 상태는 어떤가요? 좋아야 할 텐데요."
"아주 기합이 팍 들어가 있어요. 사실 이거 비밀인데요. 저번에 4화 촬영할 때 이수현 씨 연기를 보고 충격을 받았나 봐요."
"아? 그 졸도 신요?"
"맞아요. 저도 보고 와. 그냥 소름이 확 올라오더라고요. 사실 방송국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 연기를 저한테 보여줬거든요."
"정말요?"
이준환 감독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네. 그런데 그때보다 더 완벽해졌어요. 거기에 음향 감독님이 배경음을 까시면 진짜 대단할 겁니다."
"그렇죠. 저도 찍을 때 진짜 깜짝 놀랐어요. 완전 메소드 연기라···. 뭐 일단 편집을 잘해야겠네요."
오늘 나유정은 한승호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고 깊숙이 숨겨놓았던 진검을 꺼내 들고 김인애를 살리기 위해 적진으로 쳐들어가기 직전 신들을 찍기로 되어 있었다.
이것은 애초부터 영화 아저씨의 오마주로 들어간 신이었다.
김인애의 기지로 겨우 감금시설에서 풀려난 나지혜는 가까스로 탈출하게 되고 자신이 살던 조부모의 예전 농가 주택으로 돌아온다.
아무도 살지 않는 쓰러져 가는 집이라 관리를 안 해서 거의 난장판이었다. 원래 살 때부터 수도도 옆집 라인을 썼던 곳이라 물만 나오고 있었다. 그것도 오직 찬물만······.
오랫동안 씻지 못한 그녀가 집으로 들어와 샤워하고 상처를 치료하는 장면을 연기해야 했다. 병원에라도 가면 정보가 새어나가 정보원들이 바로 덮치는 설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굳이 안 넣어도 된다고 했는데 감독의 꼬임에 빠져 샤워장면까지 덜컥해버린다고 한 나유정이었다. 나는 혀를 찼지만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그녀의 매니저로서 꼭 해야 하겠느냐고 몇 번이나 만류했지만 그녀는 요지부동이었다. 임팩트에서 이수현에게 밀리고 싶지 않다는 경쟁심이 발동한 모양이었다.
나는 흥미로운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이준환 감독을 쳐다보았다.
'또 살살 경쟁심을 끌어내서 꼬드겼겠지? 하여간 수도 좋아.'
아무리 19금 드라마라지만 전신을 노출할 수 없었고 옷 안에 수영복을 입고 바로 가슴 아래 라인하고 뒷모습, 그리고 허벅지부터 다리까지 찍기로 했다.
이른바 남자배우들이 몸을 헬스로 펌핑한뒤 한 컷 넣는 서비스 신 같은 장면이었다. 물론 처절한 느낌으로 연기를 해야 했기 때문에 그런 것들과는 약간 달랐지만 말이다.
촬영이 시작되고 나유정이 촬영장으로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리고 겉옷을 벗기 시작했다.
촬영 스태프들이 침묵에 휩싸였다.
나유정은 오래 씻지 못해 거지꼴이었지만 옷을 입고 있어서 몸은 그렇게 더럽지 않았다. 탄탄하지만 뽀얀 살결이 카메라에 담기기 시작했다.
얼굴과 머리카락은 거의 거지꼴에 여기저기 옷도 찢어져 상처투성인 나지혜···. 누렇고 더러운 호스에서 그녀의 머리와 얼굴로 물이 콸콸 쏟아졌다.
아무리 초가을이었지만 찬물로 샤워하는 건 만만치 않은 연기였다.
그녀의 체온과 차가운 물이 만나 몸 주변으로 약간의 물안개가 발생했다.
그녀의 전신을 비추던 카메라가 드디어 얼굴을 클로즈업하자 물기를 머금은 나유정의 눈동자가 애처롭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던 그 순간 그녀의 두 눈에서 강렬한 안광이 피어올랐다.
"한승호. 이 개. 새. 끼."
김인애 때문에 모든 것을 알게 된 나지혜였다. 사랑하던 감정이 분노로 치환되는 고난이도의 연기였다.
으드드득···.
그녀의 입에서 이빨을 꽉 깨무는 소리가 들렸다.
나유정은 마치 무저갱의 뇌옥에서 갓 깨어난 무협지의 고수 같아 보일 정도였다.
‘우와! 나유정 연기 미쳤다.’
ⓒ 소광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