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리우스 제6의 멤버 (3)>
투데이 아이돌의 MC 워치콘과 김주철의 진행으로 방송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늘은 어떤 팀이 오시는 거죠? 설마 또 남탕입니까?"
"불길하지만 스태프들의 표정을 보니 역시나 그런 것 같네."
"어이! 제작진들. 너무하시는 거 아닙니까? 지금 몇 주째입니까?" 그만두는 꼴 보고 싶으세요?"
[오늘이 마지막 - 다음 주 원스 출연!]
작가가 글씨를 크게 써서 스케치북을 흔들었다.
"오케이. 접수 완료고요. 자 오늘도 재미있게 녹화해볼까요?"
"엇! 남자 아이돌이라 살짝 실망했는데요. 이번 주는 약간 다릅니다. 바로 요즘 핫 이슈의 주인공들입니다. 테리우스 어서 오세요."
"하나둘셋! 안녕하세요. 테리우스입니다."
"오 테리우스! 최근에 드라마가 끝났죠? 거기 출연해서 요즘 아주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난 얘네들 노래를 모르겠어. 고공행진이고 뭐고."
"치콘이 형. 저희 오자마자 왜 그러셔요. 요즘 저희 잘나가고 있습니다.“
"와! 리더 박영관 멘트치는 것 봐. 벌써 많이 닳고 닳았어요. 저번에 처음 와서는 그냥 허둥지둥 쩔쩔맸는데 말이죠."
"에헴. 솔직히 저희가 이제 그럴 군번은 지났지요."
"응. 군대는 안 가니?"
"그, 그 이야기는···."
"자! 인기를 무섭게 얻고 있는 테리우스가 드디어! 놀라지 마세요. 무려 새로운 미니앨범으로 컴백을 한다고 합니다."
"자 박수!"
"와아아!"
두 MC의 재미있는 진행으로 녹화가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 애들도 이제 방송 경험도 많이 했고, 무엇보다 드라마의 히트로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히트가 아주 컸다. 가는 곳마다 대우를 받으니 자연스럽게 자존감이 올라간 것이
다.
신곡 홍보를 하는 코너를 지나 랜덤 댄스 코너까지 꽤 훌륭하게 해내고 있었다.
좋아 좋아. 역시 예능은 자신감이다. 하는 사람들이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면 보는 사람도 한결 편하니까.
"자. 다음은 `우리 TMI 뉴스` 코너입니다."
"네. 요즘 테리우스에 대한 인터뷰가 하도 많아서 그냥 하면 재미없을 것 같아 저희 제작진과 두 MC가 의견을 내서 포맷을 살짝 바꿔보겠습니다."
"지금 테리우스의 인기에 일등 공신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아! 그분이요. 지금껏 연예계에 없던 캐릭터잖아요. 저기서 은근슬쩍 지켜보고 계시네요."
카메라가 옆으로 돌며 스태프들 옆에서 팔짱을 끼고 있던 나를 비추고 있었다.
"와! 자세 거만해."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황급히 팔을 풀고 손으로 입을 가리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형들! 저거에 속으면 안 됩니다. 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요. 저거 다 가증스러운 연기에요."
저저... 박영관 미친 녀석. 진짜로 너만 정산 나중이다.
그랬다. 나는 제작진의 요청에 응하고 말았다. 어쨌건 홍보가 많이 된다면 내 몸을 불살라야지. 내 새끼들을 일단 띄워야 했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없을 기회다. 물이 들어왔을 때 노를 저어야 한다. 나를 희생해서 테리우스를 띄우기로 했다.
"저분이 테리우스의 제6의 멤버라고 알려진 매니저 겸 작가님 아닙니까?"
나는 워치콘의 물음에 제6의 멤버는 절대 아니라며 손을 흔들며 도리질을 했다.
"일단 화제의 인물을 모시고 방송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어서 오세요."
나는 대본에 나와 있지만, 억지로 끌려들어 가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기했다. 애들아 이런 게 진정한 연기란다.
"이분이 바로 요즘 화제의 인물인 작가 겸 매니저이신 테리우스의 시어머니라고 합니다. 자. 인사하시죠."
"네. 안녕하세요. 테리우스의 매니저 이준형입니다. 반갑습니다."
"이분이 그 제6의 멤버라는?"
"아, 아뇨! 절대 아닙니다. 큰일 날 소리입니다."
나는 워치콘의 말에 쌍수를 들어 아니라고 항변했다.
"외모도 그렇고··· 어디 보자. 입고 있는 옷은 얘들보다 더 고급인데요? 어떻게 된 겁니까?"
김주철은 나를 위에서 아래로 쭉 훑어보더니 불쑥 말을 꺼냈다.
"차도 외제차에요."
"박영관! 말 좀 가려서 해야지? 피디님 이건 좀 편집해주세요."
"잠시만요. 준형 씨! 팩트 체크 좀 해봅시다. 테리우스 너희들은 혹시 정산은 받았니?"
"아뇨. 아직 땡전 한 푼 못 받았어요."
"뭐죠? 준형 씨! 뭡니까? 애들은 10원도 못 벌었는데 왜 혼자 외제차를 굴리고 다니시는 겁니까?"
아이고 정신없다. 내가 나갔던 JTVC 예능은 장난이었구나.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네. 원래 사람이 뭔가 구린 구석이 있으면 자신이 없는 법이다. 그냥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전 글을 써서 돈을 벌었습니다. 그걸로 산 거죠."
"아! 드라마 말이군요? 그럼 이해가 가네요."
"네. 그것도 있고 웹소설도 있고 아무튼 글로 돈을 벌어서 산 거라 얘네들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고 테리우스도 이번 활동부터 정산에 들어가니 곧 형편도 넉넉해질 거고요."
"뭐야. 괜히 몰아갔네. 영관이가 잘못했네."
"저는 잘나간다고 말씀드린 거밖에 없는데요?"
박영관이 천연덕스럽게 순진한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 후 MC들의 진행에 따라 테리우스와 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한 내용을 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테리우스 여러분과 이 매니저님은 거의 형제나 가족과 다름없는 거네요?"
"맞습니다."
우리는 간략한 소개가 끝난 뒤 각자 현재의 상태에 대해 TMI(Too Much Information) 뉴스를 발표하고 있었다. 각자 자신의 최근 상황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리고 나에 대한 차례가 돌아왔다.
"저도 합니까?"
"당연하죠. 제6의 멤버신데요."
"아닙니다만."
"말씀해보세요."
"아. 개인적인 걸 말해도 되는 건가요?"
"그거 하라고 만든 코너예요."
아! 솔직히 대강의 정보만 알고 있는 상황이다. 원래 대본이 있지만 이런 예능에서는 가이드 라인이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건 기본이고 특히 내가 프로그램에 갑자기 들어가면서 대본은 더욱 기능을 상실하고 말았다.
"제 차기작으로 JTVC 드라마 ‘나만의 세계’가 모두 캐스팅되고 드디어 이번 주부터 촬영을 들어갑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릴게요."
"어우. 방금 드라마 이름을 말하길래 깜짝 놀랐는데 다행히 같은 회사인 JTVC 작품이군요. 다행입니다."
"방송사고 나는 줄 알았습니다만, 생각해보니 녹화 방송이라 상관없죠?"
"엄청난 배우들이 출연하니 꼭 체크 부탁드리겠습니다."
"아이고 홍보 참···. 잘하셨고요. 이제는 코너 속의 코너죠? `테리우스를 프로듀스!`라는 새로운 컨셉의 코너입니다. 아시다시피 테리우스는 XM Ent. 소속이죠. 바로 뮤직넷과 같은 모기업을 가지고 있는 회사라 저희가 맘대로 아이돌 메이커 101의 포맷을 이용
해서 코너를 만들어봤습니다."
"네. 잠깐 들어보니까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3개 조로 나눠서 각각 노래, 댄스, 연기를 펼쳐서 순위를 매기고 그 총합이 가장 낮은 팀이 최종 우승 즉 선발되는 것입니다."
"꼭 듀오 아이돌 메이커 101 같은데요? 벌써 준비가 끝났다는 신호가 들어왔습니다."
그렇게 `테리우스를 프로듀스`라는 코너가 시작됐다. 나는 뽑기로 연준이와 짝꿍이 됐다. 그리고 영관이는 이든이와 창민이는 훈이와 짝이 됐다.
"저기요? 그런데 왜 제가 이걸 해야 하나요? 전 아이돌도 아닌데요.“
나는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무작정 열심히 하려는 마음을 먹고 있었지만, 재미를 위해 빼는 척을 하고 있었다.
"준형 씨. 지금 보세요. 인원이 모자라잖아요. 딱 6명이면 3팀으로 떨어지는데요? 솔직히 얼굴로 꿀리시지는 않잖아요?"
"뭐 제가 영관이보다는 낫고 훈이 정도 급은 되죠."
"아···. 또 무슨 소리세요!"
영관이가 잘나가다 뜻밖의 자신에 대한 디스를 듣자 약간 흥분하고야 말았다.
"자. 이제 지방 방송은 좀 끄시고 집중하도록 합시다. 첫 번째 대결은 노래 대결입니다. 저 앞에 노래방 기계가 있습니다. 가장 높은 점수가 나오는 팀이 우승입니다.
카메라에 내가 당황한 표정으로 손으로 머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나오고 있었다.
사전에 이야기는 들었지만, 꼭 처음 듣는 것처럼 연기하고 있었다.
`어차피 예능방송인데 그냥 재미있게 하자. 뒷일은 생각하지 말자. 예능방송에서는 어차피 재미있는 게 장땡이다.‘
먼저 1조인 영관 X 이든이 한 조가 된 `영이야 놀자`팀이 마이크를 잡았다. 영관이는 그냥 평범한 보컬이지만 이든이 꽤 감성적인 보컬이라 노래 실력이 출중한 편이었다. 그는 요즘 유행하는 잔잔한 랩이 섞인 미디움 템포의 힐링곡을 멋지게 불러 환호성을 받
았다.
두 번째 창민 X 김훈이 한 조가 된 `상남자`팀이 두 번째 곡을 불렀다. 메인보컬이 속해 있는 조라 그런지 제작진들이 걸그룹 노래를 틀어줬는데 그걸 또 훈이가 미친 가창력으로 아주 잘 소화하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나와 연준이가 한팀이 된 `온리준형`팀의 순서였다.
큰일이었다. 나는 춤과 노래에 자질이 전혀 없는 폐급이었고, 연준이는 춤만 평균수준이지 노래는 잘하지 못해 파트가 별로 없는 멤버였기 때문이다.
당황하고 있는 연준이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나만 믿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냥 살짝 귓속말로 코러스만 넣으라고 말을 해뒀다.
`괜히 상품 가치가 높은 연준이가 메인으로 노래를 부르게 해서 안티팬들에게 욕을 먹게 할 순 없지.`
나는 마음을 다잡고 연준이 대신 망신을 당하기로 했다.
`제발! 쉬운 노래로 좀···.`
하지만 제작진들은 무정하게도 나의 마지막 기대를 저버렸다. 모니터에 나온 곡의 이름은 슈퍼노바의 `처절한 피눈물` 이었다. 이 곡은 키가 높기로 유명한 곡이었다.
`미, 미친···`
어쩔 수 없었다. 이판사판이다. 장중한 배경음이 깔리고 신비한 분위기의 EDM 사운드가 흘러나왔다.
"내 처절~한 눈물··· 마지막 노래를 불러 줘어어어 허~ 아“
악! 삑사리!
한껏 분위기를 잡다가 몽환적이고 섹시한 분위기로 노래를 시작했으나, 첫 번째 마디와 넷째, 다섯 번째 마디에서 연달아 음이탈이 나며 체면을 구기고 말았다.
듣도 보도 못한 초반 음이탈에 두 명의 MC와 다른 팀들 멤버들이 배를 잡고 그대로 바닥에 와르르 쓰러졌다.
"크하하하···."
"으허허허···."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한껏 근엄한 표정을 유지한 채 어디서 본 동작이 생각났는지 어설픈 춤까지 살짝 춰가며 노래를 이어갔다.
"내 처절...한 눈물을... 너는 알고 있을까? 뜨거운~ 한숨..을 모두 가져가아아아하···"
"으하하하···. 나 죽는다."
"푸하하하···"
더구나 국어책을 읽는 듯한 근본 없는 랩에 사람들이 아예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자괴감이 차올랐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누군가는 노래를 해야 했고, 어차피 나는 가수도 아니니 노래를 좀 못한다 한들 아무런 타격이 없는 것이다.
한연준도 웃겨 죽겠는지 노래를 부르다 말고 무릎을 꿇고 눈물을 찔끔 흘리며 끅끅대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처절한 노래가 끝이 났다. 보다 못한 MC들이 중간에서 커트해준 것이다.
"하아. 하아. 와···. 제가 요 몇 달간 이렇게 웃어보긴 처음입니다. 실력이 이래서 제6의 멤버에서 탈락한 거군요. 웃겨서 배가 찢어지는 것 알았어요. 잠시만요. 테리우스 멤버들은 매니저분이 이렇게 음치이신 거 아셨나요?"
"노, 노래를 못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로 못할 줄은 몰랐습니다."
메인보컬인 훈이가 그나마 정신을 차리고 MC의 말에 대답했다.
나는 너무 억울했다. 차라리 앞선 두 곡을 나에게 줬다면 이렇게 개판을 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극악의 난이도의 곡을 틀어주면 어쩌자는 건가.
"저기요."
나는 대화에 끼어들기 위해 살짝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네. 준형 씨 말씀하세요."
"제가 노래를 썩 잘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쓰레기급은 아닙니다. 선곡이 미스났어요."
"큭큭···. 선곡 미스요?"
"아니! 어쩌자고 그런 어려운 곡을 틀어줍니까? 이거 제대로 부를 수 있는 사람 별로 없어요!"
하지만 나의 주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다른 팀의 훈이와 이든이 아주 멀쩡하게 잘 소화를 해서 뻘쭘한 상태가 됐다.
"이런데도요? 다들 잘하는데요? 에이~ 매니저님이 너무 억지를 쓰신다."
"·········."
인상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이 계속 카메라에 잡히고 있었다.
흐어어···. 아놔···.
"형 잘했어. 레전드 뽑았다. 진짜."
연준이가 어두운 표정의 나를 안고 등을 토닥여줬다. 아무리 내 새끼들을 위해 망가지기로 마음을 먹었다지만 왜 이렇게 씁쓸한 걸까?
"헉!"
생각해보니 아직 라운드가 2개나 남아 있는 상태였다.
특히나 악몽과 같은 댄스 대결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야. 그래도 댄스라면 연준이도 중간은 가잖아. 연준이를 믿자."
하지만 나의 예측은 무참히 빗나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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