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리우스 제6의 멤버 (1)>
이준환 PD와 헤어지고 회사에 도착해서 곧바로 연습실을 찾았다.
어제 사전 정산을 해준다는 말 때문이었을까? 테리우스는 옷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열심히 안무를 맞추고 있었다.
박영관의 얼굴에는 비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오오! 내 새끼들 열심히 하고 있네?"
"형 왔어? 우리 이제 거의 완벽하게 된 거 같은데?"
나를 부르는 리더 박영관의 표정이 자못 심상치 않았다.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군인의 모습처럼 비장했다.
"영관아. 얼굴에 힘 좀 빼라. 돈이 그렇게 좋냐? 눈이 벌게가지고···. 그리고 넌 인마 예능감 빼면 시체인데 그렇게 무게감 잡을 거야?"
"형. 그러니까! 리다가 미쳤나 봐. 갑자기 스파르타로 바뀌었어. 오늘 아침부터 무슨 군대 교관처럼 저런다."
"이창민! 너 이 자식아.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서 그러는 거야? 우리의 첫 정산이 걸려있는 커다란 분수령이라고!"
"리다 형! 그래. 말 잘했다. 난 지금 땀이 분수처럼 나오고 있다고!"
막내 온 탑 한연준까지 볼멘소리를 내고 있었다.
"야. 영관아 작작 해라. 그쯤 했으면 됐다. 아까 보니까 싱크로율이 완벽하더라. 좀 쉬어. 물도 좀 마시고."
"하···. 쓰읍. 아직 부족한 거 같은데."
"빤쓰까지 다 젖었다고!"
"알았어. 알았어. 좀 쉬자."
나는 물을 마시는 애들을 쭉 둘러보았다. 아버지와 같은 마음이 이런 걸까? 항상 약주를 드시고 늦게 들어오시면서 내 볼때기를 잡으시며 혀를 차시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음···. 이건 아닌가?
'얘들아 이제 1티어 가야지.'
드라마를 그렇게 히트쳐놓고 똥 같은 곡으로 이미지에 먹칠할 뻔했지만 이제 사정은 달라졌다. 컴백곡은 아무리 생각해도 무조건 스트리밍 차트 10등은 예약이다. 작곡팀 쓰리콤보의 곡은 그 정도로 훌륭했으니까.
"우리도 이제 티저 영상 올려야지?"
나는 명색이 프로듀싱&콘텐츠 총괄본부 실장이다. 테리우스의 일정은 이미 다 체크하고 있었다.
"어. 그거? 이번 뮤직비디오 찍을 때 같이 찍어서 거의 작업 끝났을걸?"
"안무 연습하는 Dance Practice 영상은 오늘 찍을 거냐?"
"응. 조금 있다가 마케팅팀 미애 누나가 찍으러 온다고 했어. 그리고 티저 영상 말고 하나 더 올릴 거야."
"뭘 더 올려?"
"브이로그 같은 건데 형도 나와야 해.“
이 자식들 뭔가 꾸미는 것 같은데 뭔지 모르지만, 불길한 예감이 엄습하고 있다.
"싫어 인마. 안 그래도 식당가니까 내 얼굴 알아보고 사인까지 해달라더라."
"안돼. 형이 좀 도와줘야 해. 우리를 그냥 버려둘 건 아니지? 우리도 이슈에 편승 좀 해보자."
"무슨 편승을 한다는 거야?"
"몰라서 물어? 최근까지 형하고 유정이 누나하고 핫이슈였잖아. 방송 딱 두 번 밖에 안 나왔는데 그 궁금증이 해소될 거 같아? 그걸 여기서 더 진솔 담백하게 푸는 거지."
"어쭈? 웃기시네? 누가 나간대? 박영관! 아주 기획자 나셨어요? 이참에 가수 그만두고 미튜브 편집해라."
"에이···. 형 왜 그래. 좀 찍자. 응?"
"싫어. 인마. 내가 무슨 연예인이냐?"
"형님. 이 비천한 목숨 한 번만 살려주십시오."
갑자기 리더 박영관이 내 앞으로 오더니 무릎을 꿇었다.
"왜? 내 구두라도 닦을 작정이냐? 무릎은 왜 꿇고 그래?"
"원하신다면 구두라도 닦겠어요."
"뭐냐. 그 연기력은? 평소에 좀 그렇게 절실하게 해보지 그랬냐? 그동안 왜 연기를 그따위로 했어?"
갑자기 박영관이 몸을 번쩍 일으키더니 내 멱살을 잡았다.
"그건 당신이 내 캐릭터를 사실과 다르게 촐랑이로 묘사했기 때문이지. 그걸 모르시진 않겠지?"
"헛소리! 나는 평소에 내가 느끼는 그대로를 캐릭터에 녹아냈을 뿐이다."
"거, 거짓말이다! 이 사기꾼아!"
"뭐래."
나는 영관이의 손을 떼어내고 다른 멤버들을 훑어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친 연준이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자신도 동의한다는 뜻이었다.
"거짓말 못 하는 연준이 좀 봐라. 맞는다고 고개를 끄덕이잖아."
"한연준 뒤져!"
갑자기 영관이가 연준이를 덮쳤다.
"으악! 그레이 외계인의 습격이다.! 살려줘···. 캑캑."
"누가 그레이야!"
박영관이 초크로 한연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하아···. 이 녀석들 맨날 이런 식이다. 정적인 나유정을 상대하다가 오랜만에 이 비글들을 상대하려니 기가 쭉쭉 빨려 나간다.
나는 레슬링을 하는 둘을 떼어낸 뒤 진정을 시켰다.
"대성아. 카드 줄 테니까 애들 먹는 음료수로 좀 사 와라. 너도 먹을 거 있으면 먹고."
"예. 실장님. 금방 다녀올게요."
옆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던 막내 매니저 대성이가 힘차게 대답을 한 후 카드를 채갔다.
"저, 저것이 바로 한도가 넉넉하다는 실장님들의 법인카드로구만. 갑자기 최고급 한우가 먹고 싶어졌어."
"뭐가 이쁘다고 사주겠니? 일등이라도 하면 모를까?"
"그러셔요? 그까짓 거 해드리면 되죠? 콜?"
"한우가 뭐야? 더한 것도 해주지."
"그거 절대 무르기 없기다. 오키?"
"그래 알았어! 인마. 하여간 박영관 저건 무슨 고기 못 먹어서 죽은 귀신이 붙었나."
"아무튼, 브이로그에 출연해줘야 해. '꼭'이야."
"아니···. 거기서 내가 뭐하면 되는데?"
"그냥 인터뷰 좀 하고···. 컴백곡 댄스 강의 좀 받고···."
"뭐? 댄스 강의?"
어이가 없어서 한마디를 하려는데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불렀다.
"저기요? 안녕하세요. 실장님. Dance Practice 영상 촬영하러 왔습니다."
드디어 마케팅팀에서 영상을 촬영하러 두 명의 직원이 연습실로 찾아온 것이다.
테리우스는 젖은 연습복을 갈아입고 각자 춤을 추기 편한 사복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그들은 다시 살짝 몸을 풀더니 단번에 촬영을 마쳤다.
'흠. 진짜 멋있구나. 내 새끼들이라 그런 게 아니라 확실하게 물이 올랐어. 드라마 촬영을 하고 카메라 마사지를 많이 받아서 그런지 다섯 명 모두 미모가 후덜덜하네. 아! 영관이는 빼야지....'
"자! 이제 브이로그 갑시다. 이 작가님 빨리 오세요."
"아이···. 안 한다니까 그러네. 꼭 그래야겠냐?"
나는 다섯 명의 얼굴을 주르륵 훑어보았다. 하지만 이 녀석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내가 나와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아···. 알았어."
이 녀석들 1티어가 될 때까지는 있는 힘을 다해서 밀어줄 작정이다. 사람들이 이런 브이로그를 얼마나 보겠는가. 하자 그냥.
"앗싸!"
"우선 장소를 옮기시죠. 이 작가와 테리우스의 대담이 있겠습니다. 자! 모두 회의실로 고고!"
박영관 저놈 신났네.
우리는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서 영상을 찍기 시작했다.
"자! 오늘은 중요한 손님이 있습니다. 많은 분께서 아직까지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속 시원히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른바 [테리우스와 함께 대담을!] 이라는 코너입니다."
"오늘 게스트가 누구죠?"
"최근 아주 핫한 인물이고요. 황당한 포지션으로 여러분을 놀라게 해드렸던 분입니다."
"오! 궁금하네요. 리다. 그분이 누굴까요?"
"네. 그분은 바로 요즘 엄청난 화제를 일으킨 드라마죠? 슬기로운 덕질생활을 집필하신 이준형 작가입니다. 어서 오세요."
"네. 안녕하십니까? 작가 겸 매니저 이준형입니다."
상당히 민망했지만, 이왕 결심한 김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주기로 했다. 물론 이런 도움은 이번 컴백이 마지막일 것이다.
나는 천연덕스럽게 카메라를 보며 인사를 했다. 그래도 방송물 한번 먹었다고 왠지 이런 게 익숙한 것 같았다.
"요즘 아주 얼굴이 번쩍번쩍하십니다? 작가로 성공하시고 거의 외모가 연예인들 따귀를 후려치는 수준으로 업그레이드가 되셨어요? 옷도 고급으로 쫙 빼입고 다니시고···."
역시나 박영관이 처음부터 공격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음···. 사실 외모는 원래 제가 영관이보다 나았죠."
"커헉···."
"푸히히···."
"처음 등장부터 범상치 않더니 그냥 뼈를 때려버리시네."
정신이 혼미해진 영관이를 대신해 둘째인 훈이가 상황을 조율해 나갔다.
"그게 사실 아닙니까?"
나는 당연하다는 듯 영관이를 살살 긁고 있었다.
"크흠···. 짜증이 살짝 나려고 하는데요. 어쨌든, 오늘 출연해주셔서 감사하고요. 여러분들 이거 이 작가님이 출연을 안 한다는 걸 저희가 억지로 끌고 온 겁니다. 얼마나 튕기는지···. 정말 말도 못 합니다."
"거만해졌어요."
"뭐가 거만해! 와···. 날조 보소?"
이런 식으로 나와 테리우스는 티키타카를 이어갔다. 항상 하던 대로 진을 빼버리는 정신 나간 대화였다.
"아무튼, 글은 어떻게 된 겁니까? 왜 숨긴 거에요?"
"숨겼다기보단 다들 혼자 하는 취미가 있잖아요. 그런 거죠.“
"작가 지망생들한테 또 욕을 실컷 얻어먹을 생각이신가 보네요. 그따위로 말을 하시는 거 보니···."
"사실인데 뭐 어떻게 합니까? 그리고 연준이는 알고 있었어요. 제가 글을 쓴다는 것 말이죠."
"막내 한연준 씨. 그게 사실입니까?"
"맞습니다. 저는 다 알고 있었습니다. 형들이 무관심한 거지요. 저는 항상 이 작가님께 관심이 많았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된 겁니다."
"한연준 어디서 개수작임? 은근슬쩍 아부하네? 와 역시 사람은 잘나가야 하나 봐."
"저는 온리 이준형입니다."
"큭···. 저도 사실 츤데레처럼 이러지만 사실은 제 마음의 고향과 같은 분이죠. 테리우스의 시어머니이자 제6의 멤버죠."
"응. 아냐."
"아! 형! 왜 그래. 내 맘 알잖아요."
"그런 애가 아까 옷이 찢어지게 멱살을 잡니? 배역이 맘에 안 든다며 진상을 부렸습니다."
"에이···. 말도 안 돼요. 제가 어떻게 감히 이 작가님에게 그러겠어요."
"죄송하지만 제가 똑똑히 봤습니다. 그리고 저를 죽일 기세로 목을 졸랐습니다."
바로 한연준의 폭로가 이어졌다.
"크크큭···."
"푸헐···."
급기야 박영관의 얼굴이 시뻘게지기 시작했다. 말을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은 그였다.
"어허. 이제 날조와 농담은 그 정도만 하시고요. 다음 코너로 테리우스의 춤을 배워보자 입니다. 1호 아바타는 바로 이준형 작가 선생님입니다."
나는 연습실로 다시 이동해서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차피 뮤비 티저가 내일 저녁 공개가 되기 때문에 티저 부분의 춤을 배워보기로 한 것이다.
"이거 꼭 해야 합니까?"
"당연하죠! 명색이 제6의 멤버 아닙니까?"
"큰일 날 소리! 무슨 제가 제6의 멤버에요!. 제발 어디 가서 그런 소리 좀 하지 마세요."
"됐고요. 얼른 메인 댄서에게 춤이나 배워봅시다. 이창민 조교 앞으로!"
"앞으로!"
하아··· 왠지 오늘 새로운 흑역사를 쓸 것 같은 분위기였다.
춤을 대충 배우긴 했는데 완전 아마추어라 그런지 모양새가 상당히 우스꽝스럽게 나오는 것 같았다.
그렇게 허둥지둥 춤을 배우고 동영상 촬영이 끝이 났다.
이 동영상은 편집을 거쳐 내일 뮤직비디오 티저가 올라갈 때 동시에 올리기로 했다.
"형! 고생했어요. 형은 춤에 자질이 없네. 킥킥···."
창민이가 내 어깨를 두드리며 슬쩍 미소를 지었다.
"너도 춤 선생은 못 하겠다. 왜 그렇게 못 가르치냐?"
"형. 몸치인 본인 탓을 좀 해보시지?"
"쳇!"
그렇게 진이 쭉 빠지는 하루가 갔다.
그리고 다음 날 뮤직비디오 티저와 함께 올라온 하나의 동영상은 인기 급등 영상으로 선정되어 미튜브의 대문에 걸리게 되었다. 현재 티저 영상보다 조회수가 몇 배는 높게 나오고 있었다.
그 영상의 제목을 본 나는 충격으로 몸이 굳어버리는 것 같았다.
[테리우스 제6의 멤버 영입? 그의 충격적인 댄스 실력! feat. 천재 작가]
'윽. 왜 이따위 영상을 왜 수십만 명이 보는 거야? 인기 급등 뭐냐고!‘
그렇게 테리우스의 컴백에 관한 홍보는 나로 인해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물론 그 영상에 달린 댓글은 그리 유쾌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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