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57화 (57/263)

< 최강 미남자를 잡아라 (3)>

"여보세요. 작가님. 늦은 새벽에 죄송합니다."

아니 이건 너무하는 거 아니냐고···. 그래도 내 워너비이신 형님이라 참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약간 다급해 보였다.

"네. 이준형입니다. 이 늦은 새벽에 어쩐 일로···."

"염치를 무릅쓰고 말씀드릴 게 있어서요. 마지막 이거 혹시 저를 위해서 넣으신 건가요?"

으응? 이게 무슨 소리지? 그럴 리가 있나. 하지만 나는 사기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음···. 뭐 부인할 순 없군요."

"하···. 이건 정말 저를 위한 배역이군요. 보다가 어린애처럼 울었습니다. 옛날 생각나서요."

"새벽에 울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하하···. 그 소리를 들으니 갑자기 현실로 돌아오는군요. 그리고 제가 무례하게 무슨 짓을 했는지도 알겠고요."

"아닙니다. 예전부터 좋아하던 배우가 그런 말을 해주니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아···. 다름이 아니고 혹시 제가 이 배역을 좀 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죠. 저야 쌍수를 들고 환영합니다."

지금 성우 형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내가 무의식중으로 한승호라는 캐릭터를 창조하면서 그를 생각하면서 쓴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지만 원래 사람의 뇌라는 게 이렇다. 모든 자기 좋은 쪽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작가님. 좋은 작품 만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내일 혹시 JTVC 스튜디오로 나와주실 수 있나요? 얼른 계약하는 게 좋겠습니다. 여기저기 대본을 뿌려놔서 혹시 내일 아침 일찍 배역을 하겠다는 사람이 나오면 곤란할 거 같거든요."

"내일 아침 언제 가면 될까요? 아침 7시? 8시?"

"아, 아뇨. 한 9시? 아니다 10시쯤 오시면 되겠네요."

"너무 늦는 거 아닌가 싶은데···."

"괜찮아요. 성우 씨. 제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남자 주인공 캐스팅이 불가능하거든요."

"아! 그렇구나. 그럼 내일 거기서 봬요."

그와의 통화가 끊어졌다.

목소리를 들어보니 성우 형님께서 몸이 살짝 달아오르신 것 같다. 그에게서 왠지 모르게 순수한 면이 느껴졌다.

예전에 후배 연기자가 인터뷰해놓은 것을 읽어보면 스태프도 잘 챙기고 상당히 인간적인 면이 돋보이는 배우라는 언급을 한 적이 있었다. 그것도 한두 명이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기성 배우인 한성우, 이수현, 나유정, 김형탁, 한기주.

그리고 내가 발탁한 신인 배우 정혜성.

후유···. 대박이다. 이 정도의 중량감이면 거의 영화를 찍는다고 해도 다소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호화로운 캐스팅이었다.

자! 이제 캐스팅도 완료됐으니 촬영만 남은 건가?

이미 JTVC 스튜디오가 캐스팅만 완료되면 곧바로 촬영이 시작될 수 있게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마쳐놓은 상태!

'첫 끗발이 개 끗발.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것은 나에게 해당 사항이 없다. 쭉쭉 나간다. 나는 아직 배가 고프다.'

한성우의 전화로 잠이 깨버린 나는 컴퓨터를 켜고 의자에 앉았다.

워드프로세서의 커서가 어둠 속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그리고 파일 하나를 클릭했다.

[파일 제목 : My Plan]

나는 우연히 시작한 드라마 제작에 관한 공부로 몇 년간 큰 기회가 온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글로벌 스트리밍 플랫폼 공룡들의 피 튀기는 경쟁으로 콘텐츠만 좋으면 제작비 전액이 지원되는 환경이 되어가고 있었다.

특히나 그 공룡들은 아시아 제일의 제작 노하우를 보유한 한국의 프로그램 제작업체들에 대해 신뢰를 보내고 있는 상황!

이미 넷플릭에서는 전 세계 TOP 10 에 한국 드라마가 다수 포함되고 있어 이를 결과로 증명하고 있었다.

콘텐츠만 좋으면 의외로 쉽게 독립의 기반을 다질 절호의 기회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신성 넷플릭, 디즈니를 등에 업은 방송국 연합인 할루, 구골플렉스의 미튜브···.'

정말 거대한 공룡이긴 하다. 저 글로벌 플랫폼은 승승장구하고 있지만, 국내 방송사들은 매년 엄청난 적자를 보고 있다.

앞으로 방송국은 미래가 불투명하다. 조직은 너무 비대하고 마인드는 고루하다.

사람들은 지속해서 다른 디바이스, 플랫폼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그들은 계속해서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사람들이 넷플릭이 하도 많이 보니 페이크북의 경쟁자가 되고 있다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었다. 동영상 플랫폼 기업들이 그 정도로 커지고 있다.

황당할지도 모르지만, 사람들이 오래 머무르는 곳이 바로 허브가 될 수 있고 넷플릭은 개인 간 SNS 기능만 추가하면 각자가 즐기는 콘텐츠들을 공유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소통을 할 수 있게 된다. 그게 시발점이 된다면 페이크북에게는 엄청난 경쟁자가 탄생

하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들이 플랫폼에 귀속되는 건 아니라는 의견도 있다.

공룡들이 서로를 견제하는 한 결국 양질의 콘텐츠를 가진 자가 얼마든지 힘을 낼 수 있다. 나는 그곳에서 내 가치를 높여 리스크는 줄이고 수익은 극대화할 것이다.

내가 되고 싶은 건 평범한 작가나 기존 방송국에 얽매인 프로듀서나 제작자 따위가 아니었다.

단순 일반적인 연예기획사가 아니다. OSMU(One source multi-use)를 기반으로 한 제작사 겸 기획사다.

정점에 콘텐츠 크리에이터인 내가 끊임없는 대박 작품을 쏟아내면, 촬영팀은 그것을 활용해 이른 시간 안에 양질의 작품을 찍어낸다.

그리고 내가 아우라 스카우터로 발굴해낸 배우, 가수들은 내 사단으로 귀속되고, 해당 작품에 출연하여 인기를 얻는다.

또한, 영상화가 힘든 작품들은 웹툰 화를 진행한다. 아마도 이게 좀 난항일 것 같다. 요즘 실력 있는 웹툰 작가들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뭐 어쨌든 그것은 천천히 진행해야 할 듯싶었다.

내가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제작에 대해 계속 배우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일차적으로 제작 환경을 꿰뚫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예인 관리나 웹툰은 이차적인 문제였다. 일단 좋은 작품을 제작하는 게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현장을 돌며 인맥을 넓히고 뛰어난 인재들을 봐두고 있는 단계였다.

이미 현장을 돌며 가능성이 있는 젊은 제작자들을 스카우트하기 위해 일부 선별해 놓은 상태였다.

아···. 자야 하는데 내가 지금 무슨 망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워드프로세서에 작성하던 플랜을 저장하고 종료를 눌렀다.

‘성우 형님 때문에 잠 다 잤구만.....’

*   *   *

다음날

나는 아침 일찍 회사에 들러 업무를 처리하고 JTVC 스튜디오로 향했다. 정문으로 들어서는데 갑자기 어제 하던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여기도 방송국이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만든 곳이라는 사실···.

방송국은 수십억씩 대규모 적자가 누적되는데 이런 제작사는 영상을 제작해서 미튜브에만 올려도 몇억씩 가볍게 수익이 났다.

'정말로 최근에 판이 급격하게 바뀌고 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이준환 PD의 사무실로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작가님. 어쩐 일로 이렇게 일찍 말도 없이 오셨어요?"

이준환 PD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프라이즈를 해드리려고요. 이렇게 아침부터 일찍 달려왔습니다."

"예? 그게 무슨···."

"에헴. 여긴 손님이 왔는데 커피도 안 주시나요?"

"아하하··· 당연히 드려야죠. 귀한 손님이신데······."

그가 내어준 커피에 향긋한 헤이즐넛 향이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헤이즐넛.

"저랑 취향이 비슷하시네요. PD님."

"작가님도?"

"네."

"신기하네요."

"요즘 회사 생활 어떠세요?"

"뭐 그냥 제작하는 재미로 사는 거죠. 힘든 건 방송국에 있을 때나 똑같아요. 윗사람들이 여기도 두 명이나 있어서···."

"혹시 독립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나는 낮은 목소리로 그의 의중을 묻고 있었다.

"크흠. 그렇게 목소리 안 까셔도 돼요. 아무도 없는데요. 솔직히 여기저기 이적 오퍼가 많아요. 그런데 돈은 더 주는지 몰라도 여기랑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여긴 다 아는 사람들이라 편하기라도 하지."

"PD님이 의외로 좀 소탈하시네요."

"돈이야 이미 꽤 괜찮게 벌어서 크게 불만 없습니다. 물론 더 있으면 좋겠지만요."

"그렇군요."

나는 이준환 PD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사람은 스카우트하기 힘들 거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빈틈을 노리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저나 본론을 얼른 이야기하시죠? 왜 오셨어요?"

"아···. 좋은 소식을 들려주기 위해서죠. 지금 주차장에 도착했다고 하네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피디님."

내가 톡을 확인하면서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하하···. 이거야 원···."

갑자기 문밖에서 어머! 까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음···. 역시 최강의 미남자답네. 그냥 아우라로 사람을 홀리는구나?'

갑자기 문밖에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누군가가 사무실 문을 열었다.

끼이익···.

"어?"

이준환 PD는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나고 말았다. 방금 등장한 사람은 자타공인 최강 미남 자리를 20년간 지켜왔던 한성우였기 때문이었다.

"오셨어요? 이리로 오세요. 여기 나만의 세계를 감독하실 이준환 PD님이십니다."

"안녕하세요. 배우 한성우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이, 이준환입니다."

이준환 PD는 드라마만 찍어서 그런지 실제 성우형을 만난 적이 없었나 보다. 그의 실물을 영접하고 입이 쩍 벌어졌다.

"좀 일찍 왔는데 두 분이 먼저 오셨네요."

"어, 어떻게 오시게 돼, 된 거죠?"

"배우가 배역 이야기하러 왔지 뭐라도 팔러 왔겠어요? 하하."

가만 보면 아재 개그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았다. 외모만 30대로 보이면 뭐하랴. 속은 이미······. 크흠!

나도 젊은 나이치고는 아재로 분류가 되고 있으니 조금은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설마···. 한승호 역이요? 성우 씨가요?"

"맞습니다. 감독님. 제가 한번 출연해보고 싶습니다."

"허···. 저라면 무조건 성우 씨를 쓰고 싶은데···. 갑자기 이거 곤란한데요. 으음···."

"PD님. 갑자기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냥 캐스팅하시면 안 돼요?"

"저희가 이제 거의 예산이 빠듯해지고 있어서 성우 씨 같은 특급 스타의 출연료를 못 드릴 것 같아서요."

아 그렇구나. 아무리 적다고 해도 최소 억 단위일 텐데···.

그러자 한성우가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알아서 주셔도 됩니다. 기존 배우를 염두에 두시고 책정했던 예산 내에서 처리하세요. 저야 이미 평생 먹고 놀 재산을 모았는데요."

'헐···. 대인배!'

얼마나 내 작품을 하고 싶었는지 느껴졌다. 돈은 됐고 배역이나 달라는 소리였다.

"그, 그렇게 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당황하고 있는 이 PD에게 눈치를 췄다. 얼른 계약서를 가져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도 내 손짓을 알아들었는지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책상에서 계약서를 꺼냈다."

"그런데 매니저님은 어디 가셨는지요? 계약인데 직접 하셔도 되나요?"

"괜찮습니다. 요즘 제가 일 벌이면 회사에서 기사로 소식을 접하기도 하니까요. 하하···"

음? 형! 이건 아닌 거 같은데···.

"물론 농담입니다. 제가 바로 이쪽으로 오라고 했어요. 곧 올 겁니다."

우리는 매니저가 올 때까지 배역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성우 형은 정말로 열정적이었다. 마치 자신이 감독이 된 것 같은 열성을 보였으니까....

그렇게 한승호 역까지 캐스팅이 완료됐다.

돌아가는 길에 이준환 PD가 배웅을 나왔다.

"작가님. 진짜 고맙습니다. 한성우 씨라니요. 한시름 놨네요. 이제 흥행은 땅 짚고 헤엄치기입니다."

"제 작품인데 당연히 도와드려야죠. 어제 유정 씨랑 CF를 찍는데 갑자기 필이 딱 오지 뭡니까?"

"하···. 역시···. 제가 여러 작가님하고 일해 봤지만 정말 생각이 트이셨어요.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네요."

"제가 명색이 본업이 매니저 아닙니까?"

"예에? 하하하··· 누가 들으면 웃습니다. 작가님."

"정말인데요···. 흠."

그는 나이가 많았지만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럼 조심히 가시고요. 대본 리딩 현장에서 뵙겠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PD님."

나는 내 새로운 애마에 시동을 걸었다.

'이 PD는 진짜 탐난다. 탐나."

오후에는 테리우스 애들하고 같이 데뷔곡 최종 점검을 하기로 되어 있어서 서둘러야 했다.

ⓒ 소광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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