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강 미남자를 잡아라 (2)>
나유정과 한성우는 마치 부부인 것처럼 다정하게 CF를 찍고 있었다. 둘 다 순수한 백색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냉장고의 품격까지 올라가는 것 같았다.
'성우 형님이 나이 들었다는 느낌이 안 들어서 그런가? 둘이 엄청나게 잘 어울리네? 극에서도 둘이 불륜을 저지르니 자극적인 신들을 좀 더 넣어야겠는걸? 어차피 19세 이상 관람가니 상관없겠지?'
나는 드라마에 좀 더 욕심을 내기 시작했다. 아직 한성우가 출연한다고 한 것도 아닌데 김칫국만 드링킹하는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장장 5시간가량의 촬영이 끝이 났다.
아침부터 쉬지 않고 찍어서 오후 2시 정도가 됐다. 다들 점심을 건너뛰고 촬영해서 그런지 배가 고픈 눈치였다.
"유정아. 내가 밥 사줄까? 오랜만에 봤는데 그냥 헤어지기도 뭐하네. 안 그래?"
한성우의 말에 나유정은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아주 좋아. 식사하면서 자연스럽게 꼬셔봐야지.
"뭐 사주실건데요?"
"너 먹고 싶은 거 아무거나."
"스페인 요리 어때요? 요 옆에 레스토랑 있던데?"
"좋지. 거기 가자."
우리는 촬영 감독에게 인사를 하고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일행은 한성우의 매니저까지 총 4명이었다.
"Eat well live well이라···."
"잘 먹고 잘살자는 뜻이네요."
"여기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스페인 퓨전 요리 잘한다네요."
"난 잘 모르니까 유정이 네가 좀 시켜줄래?"
"피···. 오빠는 맨날 그러더라. 귀챠니즘 환자 같으니라고."
나유정은 알아서 마늘 새우 타파스, 해산물 빠에야, 갈릭 오일 파스타, 이베리코 목살 스테이크까지 다양하게 주문했다.
"그래. 유정이 너 요즘 표정이 상당히 괜찮아진 것 같다?"
"갑자기 그게 무슨 소리예요?"
탁!
나유정은 시원한 물을 한 모금 마시며 잔을 테이블에 소리 나게 내려놓았다.
"아니. 성격이 명랑해진 것 같아서···. 너 그 드라마 출연 잘했다. 원래 배우들도 배역 성격이나 기분 따라가잖아."
그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 이 작가님이 여러 가지 좋은 일 해주셨네요."
"아닙니다. 제가 뭘요. 유정 씨가 드라마를 하면서 원래 성격을 찾아간 거죠."
"작가님. 그거 아니에요. 얘가 예전에 얼마나 날카로웠는데요. 영화 같이 찍었는데 친해지는 데 거의 한 달이나 걸렸어요."
아. 맞다 둘이 어떻게 아나 싶었는데 영화를 함께 찍은 적이 있었구나. 꽤 흥행한 작품이었지만 제목이 가물가물했다.
"유정이 넌 부부의 비밀 속편에 출연하기로 했다며? 드라마를 그렇게 연달아 찍어도 돼? 힘들 텐데···."
"네. 괜찮아요. 슬덕은 솔직히 찍는 데 오래 걸리지도 않았어요. 그리고 사람은 역시 바쁜 게 좋은 거 같아요. 솔직하게 말하면 예전에 비하면 바쁜 줄도 모르겠어요. 제가 알아서 조절을 잘하거든요."
"그래. 유정이가 이제 그럴 나이가 됐구나. 대견하네."
"오빠는 CF 말고 뭐 하세요? 앞으로 일정 같은 거 있으세요?"
"음···."
그가 말을 하려는 사이 주문을 했던 음식이 나왔다. 가게 직원은 서빙을 하면서 나유정과 한성우에게 사인을 받아갔다.
그런데 내 사인은 왜 받아 가는 거야? 나를 아나? 방송이 무섭긴 무섭구나.
"드시면서 이야기하시죠?"
내가 포크를 들면서 말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주린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맛있다. 오빠. 이제 뭐 하시냐고요."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안 나왔고 차기작으로 영화를 찍으려고 검토 중이야. 감독으로···."
"이분 또 감독병 걸리셨네. 또 대차게 말아 드시려고···."
"아니야. 저번 작품 괜찮았어. 네가 몰라서 그렇지."
"맞습니다. 빈부 격차 사회를 향한 통렬한 메시지가 강렬했던 작품이었죠."
내가 갑자기 대화에 끼어들어 한성우를 거들었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돌려 호기심이 있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혹시 보셨어요?"
"네. 우연히 넷플릭에서 봤습니다. 성우 씨 작품을 검색한다고 했는데 그게 나오더라고요. 멋모르고 봤는데 상당히 직관적이고 여운이 많이 남더군요.“
이건 정말이었다. 성우형 언제 나오지 하면서 봤던 단편 영화였다.
나는 여기서 끊지 않고 바로 타이밍 좋게 말을 이어갔다.
"제가 이번에 쓰는 작품도 그런 비슷한 내용입니다."
내가 그 말을 하자 한성우는 눈을 반짝이며 호기심을 가졌고, 나유정은 그게 무슨 소리지 하는 표정이었다.
"비슷한 내용이라? 대략적인 내용을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한성우의 입에서 부드럽지만, 카리스마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어우. 여자들은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살살 녹겠구만. 왜 이 형이 배우들의 배우인지 몸소 실감하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나만의 세계'에 관한 줄거리를 요약해서 설명했다.
행복 -> 불륜 -> 복수 -> 스릴러 -> 국가 전복을 노리는 막장으로 치닫는 스토리를 천천히 설명했다.
"흠. 상당히 흥미롭네요. 그거 작가님 전부 혼자 쓰신 건가요? 작품의 밀도가 상당하군요."
"맞아요. 오빠. 그거 제가 부부의 비밀 같은 작품을 써오라고 숙제 내준 거예요. 일주일도 안 돼서 써서 가져왔더라고요."
"아니! 참나···. 유정 씨. 제가 언제 숙제를 했다고 그래요. 무슨 초등학생입니까? 담임 선생님한테 일기나 독후감 숙제 내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티격태격하고 있으니 한성우가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하. 두 사람이 참 잘 어울리네요."
"네에? 오빠! 실례예요."
나유정이 한성우의 말을 듣자마자 펄쩍 뛰었다.
"유정이 너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는 말 모르니?"
"모, 모르는데요? 오빠. 오랜만에 만나서 자꾸 이상한 이야기 할 거예요?"
"어휴···. 저 모쏠···."
그는 나유정을 보며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이때다 싶어서 둘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 성우 씨."
"응? 네. 작가님. 말씀하세요."
"혹시 제 작품에 주인공을 해보실 생각 없으신가요?
"네?"
"유일하게 배역이 정해지지 않은 역할이라서요."
"저한테는 출연 의뢰도 안 들어왔는데···."
"아! 맞다. 왜 내가 그 생각을 못 했지? 오빠 저랑 같이 작업해요. 대본이 진짜 잘 나왔어요."
"출연 의뢰가 가지 않은 것은 성우 씨가 드라마를 오래 안 하셔서 대본을 아예 안 돌렸다고 합니다."
"음? 난 안 한다고 한 적 없는데 다들 이제는 알아서 안주는 거구나. 드디어 의문이 풀렸네."
"예? 그게 무슨···."
"아니. 제가 예전에 드라마 찍으면서 너무 고생해서 이런 식이면 다시는 안 한다고 했던 적이 있었어요. 드라마 촬영 쪽이 너무 열악해서···. 과로사로 죽을 것 같더라고···."
"뭐···. 우리나라 환경이 그렇죠. 지금은 조금 나아지고 있는 것 같긴 한데요. 어떻게 보면 시청자 반응 보면서 실시간으로 찍는 거라······."
"난 그거 진짜 아닌 거 같아서···. 그런 식으로 촬영하면 절대 안 하려고 해요."
"성우 씨 그런 무리한 촬영은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곧 촬영에 들어가야 하는데 촬영 일정 자체는 그렇게 타이트하지 않습니다."
"으음···. 그런데 사이코패스라니···. 중식이 형이 절대 하지 말라던데 본인이 그거하고 나서 진짜 힘들었다고."
"후······. 제가 대본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일단! 읽어보시고 대답해 주셔도 늦지 않습니다."
나는 자신 있었다.
마지막 반전의 주인공이 바로 한승호니까. 그는 지금 대략적인 스토리만 들었을 뿐.
한성우를 캐스팅하기 위해 오직 이준환 PD만 알고 있는 그 마지막 내용을 풀어야 할 것 같았다.
"흐음···. 고민되는군요."
"이메일로 보내드릴 테니 집에 가셔서 일단 편하게 읽어보세요."
나는 주저하는 한성우를 보고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지금 이 작가님 얼굴 보니까 뭔가 있는 거 같은데요? 아니면 이렇게 자신감이 넘칠 리가 없거든?"
"·········."
연예인 중의 연예인이라고 불리는 한성우!
나는 그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고 있었다. 나도 잘생긴 편(?) 이었지만 어쩜 인간이 이렇게 생길 수 있단 말인가?
내가 보기엔 할리우드 배우보다 훨씬 잘 생겼다. 방송국에서 우연히 본 토미 크루즈보다도 실물이 몇 배는 뛰어난 인간이다. 카메라가 그의 전신에 흐르는 아우라를 담아낼 수 없다는 게 아쉬웠다.
생각해보니 아우라 스카우터를 안 켰군. 지금 선글라스도 없는데 살짝 고민이다. 에라 모르겠다. 꾹 참고 보자.
나는 한성우의 아우라를 점검해보려고 스카우터를 가동했다.
'으음···.'
그의 몸에서 탁한 노란색 아우라가 뻗어 나오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출중한 연기력에 창의력까지 겸비한 사내였다.
그가 감독 활동을 하는 게 다 이유가 있었군. 하지만 노란색이 강한 걸 봐서는···. 창의력은 흠.... 이하는 생략한다.
스카우터를 안 켜도 자체 발광하는 최강의 남자인데 거기에 아우라까지 더해지니 난리도 아니었다. 도저히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나는 황급히 손으로 머리를 만지는 척하며 스카우터를 꺼버렸다.
"꼭 대본을 읽어보시고 명함에 있는 번호로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래요. 뭐 요즘에 남는 게 시간이고···. 오늘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아! 우리 매니저한테 메일 주소 알려달라고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오빠. 긍정적으로 생각해봐요. 언제 나랑 또 연기해보겠어요. 그것도 이렇게 젊은 저랑 불륜을 저지르는 역할인데···. 오빠 이제 나이를 생각해야 해요. 앞으로 이런 연기 어려울 수···."
"쓰읍···. 쉿!"
나는 황급히 개소리를 시전하고 있는 나유정의 입을 틀어막았다.
"죄송합니다. 성우 씨. 요즘 유정 씨가 슬덕 나혜리 역에 빙의한 상태가 잘 안 풀리네요."
"하하···. 저는 괜찮아요. 보기 좋은데요?"
어쩜 우리 성우형은 웃는 것도 이렇게 클래스가 다르실까···. 같은 남자지만 갑자기 자괴감이 들기 시작한다.
"두 분 사이가 참 뭐라고 해야 하나···. 천생연분? 아! 그런 사이는 아니라고 했죠?"
"오빠!! 자꾸 이상한 소리 하실 거에요? 얼른 이제 들어가세요. 집에서 대본이나 보시던가."
"그래. 알았어. 알았다고."
"오빠. 그리고 대본 보다가 새벽에 준형 씨한테 전화 걸지 말아요."
"그게 무슨 소리니?"
한성우가 나유정의 뜬금없는 소리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알게 되실 거에요."
우리는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는 나유정을 데리고 회사로 돌아왔다. 연습실에서는 테리우스가 신곡 퍼포먼스를 최종적으로 점검해보고 있었다.
연습실에 컴백곡 '내가 빛나더라도'가 빵빵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리고 돈을 꽤 많이 들여서 제작한 안무가 노래와 싱크로율이 아주 잘 맞는 것 같았다.
"어? 형 오셨어요?"
"오! 이 작가님!"
"형! 얼굴 좀 자주 보자. 왜 그렇게 바빠요?"
다섯 명의 멤버들은 음악을 끄고 나에게 우르르 다가왔다.
"유정이 누나도 오셨네."
"그래. 얘들아 안녕~"
"누나! 요즘 운동 많이 한다면서요."
"톡에 보내주신 영상 봤는데 액션 장면 대박이던데요?"
리더인 영관이가 나유정에게 관심을 보이자 내가 그의 뒤통수를 한 대 치며 핀잔을 줬다. 물론 장난으로 아주 살짝···.
"아 인마. 너희는 그만 관심 끊고 다음 주에 컴백 잘해서 순위에나 들 생각이나 해."
"아. 왜 그래 형. 반가워서 그러는데. 우리 너무 힘들어서 그래. 이놈의 회사에서 행사를 어지간히 돌려야지. 흑흑...."
"맞아 형. 우리 하루에 잠을 3~4시간밖에 못 자."
"조금만 참아라. 이 올챙이 적 생각 못 하는 녀석들아. 너희 못 들었냐? 이번 컴백 활동부터 정산해준다고 하더라."
"지, 진짜? 벌써?"
"어. 요즘 CF랑 행사 열심히 돌았더니 그렇게 된 거야. 거봐. 너희가 열심히 하니까 결과가 좋잖아. 진짜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어야 해."
"이상하네. 벌써 우리 비용 다 깐 거야? 그럴 리가 없는데?"
XM Ent.가 괜찮은 회사인 이유가 이런저런 초기 투자 비용을 전부 아이돌에게 부담시키지 않는 정책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수 쪽 사업을 하기 위해 투자됐던 비용들은 그냥 회사 초기 투자비로 비용을 다 털어버린 것이다. 진짜 중소기획사들은 이런 것들까지 전부 부담해서 활동 5년 차가 돼도 정산을 못 받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정산을 다 한 건 아닌데···. 아마 곧 너희한테 투자한 돈은 다 회수할 거 같다고 하더라. 그래서 경영지원팀이 미리 정산해주기로 했나 보더라. 급에 맞춰서 대우해주겠다는 거지.“
"와! 하느님! 드디어! 어흐흐흑···"
"리더라는 놈이 또 또···. 오버한다. 오버해."
"돈을 펑펑 버는 형은 몰라. 내가 모를 줄 알아? 형 외제차 샀다며? 진짜 내가 집에 가면 얼마나 민망한 줄 알아? 연예인이면 뭐해. 10원 하나 버는 게 하나도 없는데!"
"곧 정산해주니까 다들 기대해라. 너희 드라마로 빵 떠서 행사 단가가 아주 짭짤해. 불만 품지 말고 성실하게 해."
"그런데 짜증 나는 게 행사 다니면 우리 노래를 관객들이 잘 모르더라. 우리 일정 따라온 팬클럽 애들이나 알지."
"인마. 그러니까 이번 곡을 히트시키라고! 너 내 귀 못 믿어? 형이 10등 안에 든다고 했어. 안 했어?"
"했··· 지."
"너희들은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그러면 자다가도 떡이 나와."
"형. 난 생크림 빵!"
"또 어떤 녀석이 분위기 싸하게 만드냐."
"누구긴? 자칭 천재 프로듀서 4차원 아이스맨 정이든이지."
"크흠···. 아무튼 열심히 연습해라. 다음 주엔 형이 너희 매니저 좀 해줄 테니까!"
"악! 오랜만에 시어머니 경보 발동인가?"
"까불고 있어!"
그렇게 나는 테리우스 애들과 저녁밥을 시켜 먹고 나유정을 데려다준 뒤 퇴근을 했다.
살짝 피곤해서 컴퓨터를 켜지 않고 샤워만 한 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나는 눕자마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얼마나 잤을까? 머리맡에 있던 핸드폰이 징징거리며 진동하기 시작했다.
실눈을 뜨고 액정에 시계를 보니 새벽 3시였다.
에이··· 누구야. 이 새벽에!
”여보세요. 누구···."
"이 작가님. 접니다. 하, 한성우요.“
”성우 씨?“
헉! 설마 하던 나유정의 예상대로 새벽에 전화가 걸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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