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강 미남자를 잡아라 (1)>
이건호의 자유 연기가 시작됐다. 우연인지는 모르겠지만 범죄자 연기를 하는 것 같았다.
"너 이 새끼. 나보다 서열 높다고 존댓말을 하라거나 폼 잡을 생각하지 말어. 뒤진다. 나보다 잘났다고 깝죽거린 새끼들 바로 공구리쳐서 인천 앞바다에 수장시킨 지 오래니까."
오오! 차가워 보이는 외모에 저 번뜩이는 눈. 그리 크지 않지만 날카롭게 귓가를 파고드는 음성.
마치 범죄자에 빙의한 것 같은 감정이입 연기였다.
'꼭 본인 같잖아? 살짝 섬뜩한데 이거?"
그런데 특이한 게 정말 귀에 쏙쏙 들어오는 미칠듯한 딜리버리다.
뭐지? 이 자식 이거···. 랩을 해야 할 것 같은데? 크게 소리친 것도 아닌데 목소리가 왜 이렇게 잘 들리지?
내가 음악방송에서 라이브를 하는 수십 명의 아이돌 래퍼를 봤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정말 마법 같은 보이스였다. 옆을 힐끔 살펴보니 이준환 PD도 뭔가를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게 아닌가?
"이상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흐음. 예상외의 연기력이었다. 이 녀석은 내 작품이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시간만 있으면 분명히 뜬다.
그럴 바엔 내 작품으로 안 좋은 이미지를 듬뿍 먹여주면 좋을 것 같았다.
막내 매니저인 순둥이 김대성을 괴롭힌 녀석! 나에게 피해를 준 것도 없는데 너무 가혹한 걸까?
이건호의 바뀐 매니저인 레슬링 국가대표 상비군 출신 덕근이 형한테 물어보니 자기에게 함부로 하는 건 아직 없는 데 불만이 많다는 소리를 들었다.
덕근이 형 외모를 보고 함부로 대할 사람은 대한민국에 거의 없을 거다. 그냥 귀만 봐도 딱 알 수 있다.
어쨌든 하는 짓을 옆에서 지켜보면 양아치와 다를 바 없다는 팩트 체크를 해줬다.
나는 옆으로 고개를 숙이고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이준환 PD에게 귓속말을 했다.
"의외로 괜찮은데요?"
"그러네요. 특히 대사 전달력이 뛰어나네요."
"김하진 역할보다는 이혁 역할이 진짜 딱 맞을 것 같은데요?"
"저도 딱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만···. 저쪽에서 그 역을 할지 모르겠군요."
"저희가 바람을 넣어야죠."
"네?"
나는 이준환 PD를 보며 살짝 윙크했다. 그는 내 얼굴을 보며 씩 미소를 지었다.
2000년대 초반 경찰이 사이코패스를 쫓아 정의구현을 한다는 줄거리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있었다.
그는 섬뜩한 악역을 120% 소화하고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나 CF와 협찬이 모조리 끊기고 그딴 영화는 찍지도 말라는 많은 악플에 시달렸다. 그 후 부모조차 등을 돌린 연기 후유증으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는 사례까지 있을 정도로 배우에게는 양날의 검인
연기였다.
사이코패스 집단의 행동대장 이혁! 식인까지 하는 최악의 살인마다. 내가 쓰면서도 이건 좀 너무한데? 라며 멈칫한 캐릭터였다.
이런 극악의 조건을 극복한 뒤 뜨게 된다면 뭐 그건 저 녀석의 재능으로 봐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인성 쓰레기는 나중에 언제든지 사고를 치게 되어있다. 내가 2년간 매니저를 하면서 보고 들은 사실이었다.
"이제 오디션을 끝낼까요?"
"그러시죠. 수고하셨습니다. 작가님."
오디션이 끝난 후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정혜성이 캐스팅되었다.
그리고 이건호는 따로 사무실에 남아서 나와 이 PD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건호 씨. 죄송합니다. 아쉽지만 탈락입니다."
그 말을 들은 그의 표정은 미미하게 꿈틀댔다.
"왜 그렇습니까?"
내가 왜 탈락이야? 라는 표정이었다.
"건호 씨보다 그 배역에 더 어울리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 사람은 연기도 건호 씨처럼 잘했지만, 액션 연기도 완벽하게 준비가 되어있더군요. 얼른 촬영을 해야 하는지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액션 훈련은 최소 한 달, 길면 두 달도 걸리거든요. 이미 액션 듀오 콤비인 나유정 씨는 1개월 전부터 혹독한 훈련
을 받고 있습니다."
"·········"
"하지만 건호 씨의 연기력이 아깝더군요."
이준환 PD는 내 지시에 따라 연기를 꽤 잘하고 있었다.
"맞아요. 특히 그 목소리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 정도로 대사 전달력이 뛰어난 사람은 드물어요. 마치 딜리버리가 좋은 래퍼 같달까?"
나도 옆에서 추임새를 넣어줬다. 그랬더니 이건호의 표정이 어느 정도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김하진 역할 말고 이혁이라는 연기하기가 매우 어려운 악역이 있는데···. 신인들로는 힘들 것 같아서 기성 배우를 찾아보려고 하거든요. 그런데 그 역할로 건호 씨가 상당히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이혁이요?"
"네. 사이코패스 역이죠. 연기하기 힘드실 거예요. 만약 무리 없이 역할을 해낸다면 연기력은 무조건 인정받을 겁니다."
'잘한다. 이 PD! 연기 인정 받는 건 모르겠는데 금전적으로 크게 손해를 보겠지.'
"그, 그게···. 아직 소속사랑 이야기가 안 돼서요."
"아. 물론 그러시겠죠. 그러면 상의를 해보시고 오늘까지 연락을 주세요. 아니면 저희도 기성 배우분들께 배역 의뢰를 해봐야 하니까요."
"아, 알겠습니다."
"참고로 이 작품은 전편인 부부의 비밀보다 더 큰 화제가 될 작품이 분명합니다. 그것만 명심하시면 됩니다."
이건호가 이준환 PD의 말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갑자기 나를 쳐다보았다.
뭐 인마. 성인인데 본인이 하고 싶음 하는 거지. 누구보다 너한테 딱 맞는 역할이라 연기하기 편할 건데?
나는 어떤 시그널을 주지 않고 그냥 미소만 지었다.
그는 내 미소를 본 후 뭔가를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나며 꾸벅 인사했다.
"PD님 작가님 제가 가서 상의해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요. 잘 생각해보세요. 그럼···."
나는 아무 말 안 했다. 그냥 네 목소리 좋다고만 했다.
그렇게 이건호를 끝으로 모든 이들이 돌아갔다. 나유정이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감독님 아까 이건호라는 신인이요. 이혁 역할에 너무 잘 어울리는데요?"
그녀도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이준환 PD와 나는 서로를 쳐다보며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나유정은 왜 둘이 웃고 있는지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다음날 나는 나유정과 함께 CF 촬영장으로 가고 있었다. 차도 뽑았겠다 내 차로 그녀를 데려다주기로 했다.
"제 차 어때요? 스포츠 세단치고는 승차감 좋죠?"
"네···."
"차에 별로 관심이 없나 봐요?"
"없어요."
"그럼 뭐에 관심이 많은데요."
"영화, 드라마 보기, 독서···. 그리고 요즘엔 장르 소설도 보고요."
그녀가 손가락을 접어가며 자신의 취미를 말하고 있었다.
"오! 드디어 본격적으로 보시는구나."
"적당히 조절해서 보고 있어요. 준형 씨가 추천해준 작품들도 좋은데요. 전 역시 로맨스나 로맨스 판타지가 좋던데요?"
"네. 그럴 거예요. 아무래도 여성분들은 그쪽을 선호하시죠. 그런데 어떻게 보면 본인 직업과 다 연관된 거네요?"
"제가 그렇죠. 뭐. 아 참 그런데 어제 이혁 역할은 어떻게 됐어요?"
"이건호 씨가 하기로 했습니다. 소속사 가서 엄청 난리를 쳤나 봐요. 하겠다고···. 결국 말리지도 못하고 대표님이 본사 누구한테 전화 받으시더니 그냥 하라고 하셨다네요."
"흠···. 회사에서는 상품성이 떨어지니까 말릴 수도 있겠네요."
그녀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왜요? 뭘 그렇게 쳐다봐요?"
"꼬드겼죠?"
"꼬드기긴 뭘 꼬드겨요. 난 그냥 목소리 좋다고 말한 것 밖에 없어요. 본인이 이준환 PD 말 듣고 한다고 하는데 뭐···."
"후후···. 뭔가 구린내가 나는데···."
"어허! 대배우가 어찌 그런 망측한 단어를 쓰십니까?"
우리는 그렇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촬영장에 도착했다. 오늘 찍을 CF는 최고급 냉장고였다. 촬영장에 가보니 나보다 큰 초대형 냉장고가 번쩍이고 있었다.
"오! 진짜 비싸 보인다."
"안녕하세요. 감독 정찬성입니다. 반갑습니다. 유정 씨. 지금 보시는 제품들은 L 사의 최고급 냉장고입니다. 가격만 천만 원이 넘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준비가 아직 덜 끝나서요."
"와! 진짜 고급스러워요. 어라? 속이 보이네? 뭔가 우주적인 느낌이다. 오! 발만 가져다 대도 문이 열려요. 나도 한 대 살까?"
나유정은 자신이 홍보할 제품을 바라보며 놀라고 있었다.
"저렇게 큰 거 놔서 뭐하게요. 음식물들이 다 거기서 천천히 썩어갈 텐데요. 또 거대한 식자재들의 무덤만 늘리는 꼴."
이미 큰 냉장고를 보유하고 있는 그녀였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면 상한 반찬이나 먹다 남은 배달음식, 그리고 유통기간이 몇 년은 지나버린 소스 등이 가득했다.
"조용히 좀 하시죠?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누구 없으니까 하는 말입니다. 유정 씨 들으라고요. 거기 있는 거 막 꺼내먹지 마세요. 잘못 먹고 병원 가니까···."
"메···."
그녀는 나를 쳐다보며 혀를 쏙 내밀었다.
걱정을 해줘도 저 저···. 확 그냥···. 참자 참어. 일반적인 삶을 살지 못한 사람이잖냐.
"오늘은 단독으로 촬영하는 건가?"
"제 매니저 맞아요? 요즘 실장으로 승진했다고 아주 업무에 소홀하군요."
"크흠···. 단독이냐고요."
"아니에요. 남자 배우도 있어요."
"누구···."
"그게 어? 저기 마침 오시네요."
그녀가 손을 들어 문 쪽을 가리켰다. 나는 그녀의 손끝을 따라가 시선을 옮겼는데 그곳에는 '그'가 매니저랑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와우! 한성우잖아?
영화배우 한성우!
40대 중반의 나이로 180대 후반에 큰 키에 훤칠하고 남자다운 미남자로 특유의 깊고 그윽한 분위기의 눈빛에 반항아적인 느낌까지 있는 배우였다. 실물을 보면 그야말로 깜짝 놀란다는 배우 중의 배우였다.
허···. 실물 뭐야. 미쳤잖아? 이 형 화면빨 진짜 못 받는구나.
나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옆에서 나유정이 팔꿈치로 툭툭 나를 건들었다.
"뭘 그렇게 뚫어지라 쳐다봐요?"
"잘 생겼잖아요."
"흐음···. 성우 오빠가 잘생기긴 했죠. 남자들이 그렇게 좋아한다던데?"
"맞아요. 남자들의 워너비죠."
"오빠!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나유정이 앞으로 걸어 나가더니 한성우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아무래도 안면이 있는 듯했다.
"그래. 유정아 오랜만이다. 이게 몇 년 만이지?"
"글쎄요. 한 4~5년 정도 된 거 같은데요?"
"넌 어떻게 더 이뻐졌니?"
"오빠도 그대로 신데요 뭘···. 아! 인사하세요. 제 매니저이자 슬기로운 덕질생활을 집필한 이준형 작가예요."
"안녕하십니까? 이준형입니다."
"으음···. 이분이 요즘 그 화제의 인물이시구나. 안녕하세요. 한성우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의 호기심 어린 눈빛이 내 전신을 훑고 지나가는 것 같다. 그는 영화배우지만 감독으로도 데뷔한 사람이다. 그만큼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매니저가 슬기로운 덕질생활 재밌다고 해서 봤는데 진짜 글을 잘 쓰셨던데요. 보면서 감탄했습니다. 그리고 연출도 군더더기가 하나없고 편집도 끝내주던데요. 그거 김호진 감독님이 연출하셨죠?"
"네. 맞습니다."
"역시···. 유정이 같은 실력 있는 배우와 훌륭한 대본 그리고 감각 있는 감독까지 삼위일체가 되니 성공할 수밖에요···."
"뭘요. 감사합니다.
"그거 저번 주엔가 끝났죠? 시청률이 24%였나? TVM 신기록 아닌가요?"
"네.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운이 좋았죠."
한성우는 나를 다시 빤히 쳐다보았다. 젠틀한 그의 시선에 빨려 들어갈 것 같다.
어으···. 나 남자인데 음···. 정말 외모 때문에 연기력이 묻힌다는 마성의 남자다웠다.
"준형 씨. 죄송합니다만 겸손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 정도 예산으로 그런 성과를 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자부심을 느끼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오빠. 또 이렇게 진지하게 갈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진지충이라고 놀리잖아요."
"내가 또 그랬니? 나 그런 사람 아닌데? 우리 유정이는 알잖아."
"체···. 알긴요. 맨날 밥 먹다가 체하게 만들어 놓고···."
"배우분들 곧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준비 부탁드립니다."
촬영 감독의 사인에 나유정과 한성우가 각자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멀찍이 떨어져서 CF를 촬영하는 두 배우의 모습을 물끄러미 구경했다. 그러자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한성우 씨가 남주인공인 한승호 역할을 하면 딱 맞는데 이거? 혹시 JTVC 스튜디오에서 대본 돌렸나?'
이준환 PD에게 톡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혹시 한성우 씨한테 대본 보냈나요?]
CF를 찍는 그의 모습을 보면 볼수록 엘리트 경찰로서 대통령까지 노리는 젠틀함과 중후함이 느껴진다.
그리고 불우했던 어린 시절까지 한승호의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상당했다. 그는 이런 자신의 어릴 적 배경 때문에 사회문제에도 많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승호라는 캐릭터는 이 나라가 마음에 들지 않아 전복시키고 사회 개조를 시키려는 야망을 가슴에 품고 있는 인물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승호 역은 이 양반이 해야 해!'
'한성우, 이수현, 나유정이라···. 크···. 미치겠다. 진짜 엄청난 작품이 나올 것 같아.'
나는 세 명이 동시에 등장하는 포스터를 떠올리자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아났다.
"띵···."
갑자기 핸드폰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준환 PD : 한성우 씨는 10년 전부터 드라마 출연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본도 안 돌렸어요. 왜요?]
오케이! 그렇단 말이지? 어찌 됐건 한성우는 내가 무조건 출연시키고 만다.···.
별생각 없이 썼던 대본인데 주연 배우들을 생각하니 갑자기 가슴이 떨려왔다.
진정하자. 이준형. 네 작품이 어디 가서 꿀릴 수준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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