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54화 (54/263)

< 자네 이 배역은 어떤가? (2)>

드라마 '나만의 세계' 김하진 역 오디션이 열리는 날이었다.

이 김하진 역은 시청자의 눈물샘을 터트릴 배역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중요했다. 게다가 내가 신신당부해서 알려지지 않은 신인급으로 캐스팅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원래 주연 배우들이 전부 다 기성 배우들이었기 때문에 신선함을 주기 위해서는 무조건 신인급을 넣어야 밸런스가 맞았다.

JTVC 스튜디오에서 오전 9시부터 오디션이 열리고 있었다. 심사위원석에 김현도 CP, 이준환 PD, 나, 나유정, 캐스팅 디렉터 김준성이 앉아 있었다.

응? 나유정? 그녀가 왜 심사위원석에 있을까?

그것은 그녀가 부득불 자신도 오디션을 참관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김현도 CP가 아예 심사위원으로 격상시켜줬다.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 싱글벙글하고 있는 나유정.

요즘 너무 캐릭터를 바꿔서 살짝 걱정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뭐 어쩌랴 본인이 좋다고 하는데 말릴 수가 없었다.

"자 이제 한번 시작해 볼까요? 일단 100명 이상 프로필이 왔는데요. 크흠. 저희가 서류 면접으로 1차로 걸러서 30명만 뽑았습니다."

'어? 언제 걸렀지? 혜성 씨 혹시 바로 서류 탈락한 거 아냐?'

나는 이준환 PD의 말에 놀라 앞에 높여 있던 프로필들을 뒤적여 보았다.

"후유···."

정혜성 사범은 다행히 30명 안에 들어와 있었다.

'내가 프로필을 멋지게 만들라고 스타일도 만들어 줬는데 떨어지면 이상하지. 그리고 이 프로필도 나유정이 직접 가져다 냈는데···. 아무렴.'

내가 갑자기 한숨을 내쉬자 이준환 PD가 내 얼굴을 힐끔거렸다. 그 모습을 보고 손을 들어 신경 쓰지 말고 진행하시라는 동작을 취했다.

그렇게 신인 연기자들은 2인 1조로 해서 각자 명찰을 목에 걸고 오디션장에 입장했다.

"1차 오디션은 자유 연기를 잠시 보여주시면 되시고, 연기 끝나시면 말씀해 주세요. 그럼 1번부터 시작하실까요?"

"네! 안녕하십니까. 저는···."

배우들의 연기가 시작됐다. 나는 이런 오디션이 처음이라 하나하나가 다 신기해 보였다. 다들 나 빼고 뭔가 전문가의 눈으로 배우를 보는 것 같았다.

물론 나는 아우라 스카우터라는 사기 스킬이 있었지만, 일단 그 아우라는 잠재력일 수도 있기 때문에 우선 연기를 볼 때는 꺼놓기로 했다.

그리고 아우라의 부작용인 눈뽕 때문에 당황하지 않으려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연기를 보다가 연기가 끝나면 선글라스를 내리고 아우라 체크! 이런 형태로 오디션이 진행되고 있었다.

신인배우들의 연기를 한명 한명 보고 있으니 그 수준이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배우는 준비해 온 자유 연기를 하는데도 너무 어색해 보고 있는 내가 다 민망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역시 엔터 강국,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배출한 나라답게 배우 대부분이 뛰어난 연기를 펼치고 있었다.

때로는 비주얼로는 큰 관심을 못 받던 사람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깜짝 놀라는 일도 있었다.

1차 자유 연기가 끝나자 심사위원의 말에 따라 본인의 특기도 보여주었다. 대부분이 노래나 춤, 개그나 무술까지 다양했다.

잠시 쉬는 시간에 내가 긴장을 풀지 않고 있자 나유정이 한마디 했다.

"작가님? 어디 아프세요? 왜 그렇게 표정이 굳어 계세요? 배우들 연기가 별로인가요? 다들 좀 부자연스럽긴 하죠?"

응? 이게 무슨 소리지? 이 정도가 별로인 건가? 나는 괜찮아 보이던데?

"그게···."

"원래 좀 그래요. 학교에서 연기를 배운 사람들이 연극 톤으로 연기를 하거든요. 그게 실제 드라마 연기랑 좀 달라요. 좀 편안하게 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힘을 잔뜩 넣고 있네요."

나는 나유정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녀의 말을 들어보니 참가자들이 약간씩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옆에서 이준환 PD도 거들었다.

"일부 참가자들은 그냥 틀에 박힌 자유 연기를 하고 있네요. 저런 공식화된 연기보다는 리스크가 있더라도 좀 더 자신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는 연기를 하는 게 좋은데 말이죠."

"아니면 특기를 보여줄 때 자신의 본래 매력을 확 드러낼 수 있는 것들을 하면 좋죠."

그의 말에 나도 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차피 드라마 속 배우는 자신의 스타성을 보여줘야 하는 법이니까.

나는 괜히 아는 척하려다가 망신만 당할 거 같아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나는 신기해서 시간이 가는 줄 몰랐지만 이미 이런 걸 자주 본 것 같은 이 PD와 나유정은 수준이 실망스러운지 얼굴이 점점 찌푸려지고 있었다.

옆에 앉은 이준환 PD의 메모지를 보니 명단에 하나씩 코맨트를 달고 있었다.

[연기는 수준급이나 외모가 캐릭터와 어울리지 않음]

[외모는 좋으나 발성이나 발음이 좋지 않음]

시간이 흘러 드디어 정혜성 사범의 차례가 됐다. 그는 방에 들어서며 나와 나유정을 보자 쑥스러운지 멈칫했다.

그 모습에 내가 선글라스를 벗고 인상을 쓰고 그를 째려보며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신호를 보냈다.

내가 고개를 옆으로 까딱거리자 그는 이내 정신을 차린 듯 집중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십니까? 28번 정혜성입니다. 나이는 31살이며 파주에 살고 있습니다."

그렇게 자기소개를 마친 정혜성의 자유 연기가 시작되었다.

그가 펼친 연기는 부부의 비밀에서 남자 주인공이었다. 자신의 불륜을 공개적으로 폭로한 아내를 돌려세운 뒤 분노를 쏟아내는 장면이었다.

"꼭 이래야 했어? 여기까지 와서 난장판을 만들어야 했냐고! 너 원래 이렇게 교양 없는 여자였어? 이렇게 엉망으로 만드니 분이 풀려?"

오오! 혜성 씨 카리스마 뭔데? 발음도 좋고 연기도 진짜 매끄럽잖아?

"더 할 게 뭐가 남았어? 이혼? 앞으로 아들 볼 생각 하지 말라고? 네 아들이기도 하지만 내 아들이기도 해. 가족까지 버릴 생각은 없었다고!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잖아!"

그야말로 내로남불! 철면피 같은 연기였다.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지만, 애 딸린 유부남이 그걸 실제 행동으로 옮기면 쓰나.

'와···. 연기 뭐야. 나유정이 개인 교습 해주더니 진짜 많이 늘었네. 지금까지 나온 참가자 중에선 원탑이네! 원탑.'

그의 연기는 놀라웠다. 역시나 아우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에게서 발산되는 아우라는 범상치 않은 수준이었고 그 잠재력이 나유정에 의해 실제로 짧은 시간 안에 개발된 것이다.

"후···. 혜성 씨. 잘하셨어요. 혹시 다른 보여주실만한 특기가 있나요?"

"네. 저는 각종 무술 유단자로 국내 입식 격투기 챔피언 출신입니다. 한번 보여드릴까요?"

"오! 보여주세요."

이준환 PD가 정혜성에게 반했는지 얼른 보여줄 것을 재촉했다. 정혜성은 쭈뼛쭈뼛 쑥스럽다는 모습을 취하며 머리를 긁적이더니 이내 수트 상의를 벗고 파이팅 자세를 취했다.

그의 프로 같은 자세에 모든 사람이 일순간 긴장하기 시작했다.

'크으···. 저 갭 보소. 평상시는 미련 곰탱이 같다가도 자세를 잡으면 상남자다. 상남자.'

슉슉! 슉슉! 후욱!

앞 가드 자세에서 번개 같은 원투 펀치 콤비네이션이 터져 나왔다. 로우킥, 하이킥을 가리지 않고 화려한 발차기까지 선보였다.

항상 신체를 극도로 단련하던 정 사범이었기 때문에 가까이서 보는데 그 엄청난 스피드에 오금이 저렸다. 정말로 한 방이라도 맞으면 그냥 나가떨어질 것 같은 공포스러운 바람 소리였다.

옆에서 이준환 PD의 침 삼키는 소리가 내 귀에까지 들려왔다.

피디님. 보세요. 이 사람밖에 없어요. 진짜 대박입니다. 외모면 외모, 실력이면 실력!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잖아요.

거기다가 캐릭터와 싱크로율이 100%니 이건 말 다 했다. 떨어지는 게 이상한 수준이었다.

정혜성은 여러 가지 기술들을 보여준 뒤 갑자기 벽을 향해 달려가더니 벽의 모서리를 두 번 밟고 점프해서 540도 돌려차기까지 보여줬다.

"우와! 허허허허···."

"와···."

주변에서 스태프들까지 어이가 없다는 듯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는 국가대표 태권도 시범단에서나 보던 아크로바틱 발차기를 보여준 것이다.

김현도 CP와 이준환 PD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파쿠르도 보여드릴까요? 그런데 장소가 좁아서···. 여기 옥상 같은 데 있나요?"

"파, 파쿠르까지는 안 보여주셔도 됩니다. 혜성 씨 특기는 충분히 봤어요."

다시 뒤통수를 매만지는 순수한 모습에 가산점 10점이 부여되었다. 내가 사전에 넌지시 그런 태도를 하면 좋을 거라는 조언을 했는데 그는 내 지시를 충실히 따르고 있었다.

'어이구. 정 사범도 내 새끼지. 내 새끼. 내가 하라고 했던 걸 120% 보여주는구나. 아우 기특하다 기특해.'

나는 선글라스를 다시 눌러쓰고 그의 아우라를 측정했다. 선글라스로 눈부심이 사라지니 너무 편안했다.

그의 아우라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역시! 대단하군. 나유정의 80% 정도 되려나?'

액션 배우가 이 정도면 뭐 거의 적수가 없다고 봐야 했다.

"후! 대단하네요. 정혜성 씨. 도대체 지금까지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야 나타나셨어요? 허허···."

그야말로 극찬이었다.

물론 특기로 무술을 보여준 참가자도 몇 명 있었다. 그러나 정혜성의 수준은 어나 더 레벨!

이 예비스타 정혜성은 이미 내가 선점한 상태였다. 캐스팅되면 당분간 어디랑 계약하지 말고 연기만 하라는 조언을 했다.

연기만 잘하면 내 작품으로 스타가 돼 있을 거고 내가 독립해서 회사를 차리면 이준형 사단의 한 축으로 오래도록 쓰일 거라는 말도 해준 상태였다.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지만 이미 나를 은인처럼 생각하면서 형님으로 모시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JTVC 스튜디오 관계자들의 눈에는 이미 하트가 맺혀있었다. 그야말로 캐스팅은 떼놓은 당상인 것 같았다.

그가 나가고 이준환 PD가 나유정에게 되물었다.

"유정 씨! 이 정혜성이라는 분 유정 씨가 프로필 주셨잖아요. 도대체 어떻게 아시는 겁니까?"

이 피디가 엄청 흥분한 게 눈에 딱 보였다. 옳지! 대어를 건졌다 싶었겠지. 후후후···

"제 무술 교관이세요. 정두형 무술 감독님 아시죠? 같이 일하시는 분이세요. 예전부터 액션 연기 있을 때 봐주신 분이에요."

"오······. 그렇군요."

"그리고 최근에 나지혜 역할 때문에 훈련을 받는데 여기 이준형 작가님이 혜성 씨에게 연기를 한번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네? 이 작가님이 발굴하셨다고요?"

"아니···. 발굴까지는 아니고···."

"허 참. 작가님은 어떻게 그렇게 배역을 보는 눈이 좋으세요? 혹시 계약 때 우겨서라도 넣고 싶다고 한 배우가 혜성 씨?"

"네. 맞습니다. 솔직히 자질이 범상치가 않더군요."

"허···. 그럼 그냥 추천을 해주시지. 굳이 이런 오디션까지 할 필요도 없었잖아요. 그냥 봐도 김하진 역에 딱 맞는대요."

"아뇨.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공정하게 뽑는 게 맞죠. 이거 오디션 다 녹화된 거죠? 거기 카메라 잘 돌아가고 있나요?"

내 물음에 한 스태프가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이제 마지막 남았는데 빨리 끝내시죠."

"그, 그러시죠."

이준형 PD는 뭐에 홀린 듯 어리벙벙한 표정이었다.

그렇게 임팩트가 있었던 정혜성의 오디션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이건호가 들어왔다.

김인환 대표가 특별히 부탁한 XM Ent.의 신인 연기자였다.

'이건호!'

나는 선글라스를 끼고 그를 바라보았다.

'오. 그래도 아우라 괜찮은데? 연기력은 좀 있구만. 완전 허당은 아닌데?"

확실히 얘도 범상치 않은 포스를 풍기고 있었다. 키도 크고 모델처럼 쭉 빠진 몸매였다. 인상은 김대성의 말처럼 차도남 스타일!

머리가 작아서 그런지 몸의 비율이 상당히 좋아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XM Ent 소속의 신인 연기자 이건호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응 그래. 넌 합격!

인성은 쓰레기지만 나름대로 연기력도 있고 외모는 인조인간 하주영보다는 살짝 못하지만 나름 최악의 사이코패스인 이혁의 역할에 100%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건호야. 너 헬스 좀 해서 근육 펌핑 좀 해야겠다?'

이건호는 심사위원들을 쳐다보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나는 그를 보고 선글라스를 쓱 내린 뒤 입꼬리를 올리며 웃어줬다.

그는 내 미소를 보고 그게 어떤 신호인 줄 아는 모양이었다.

ⓒ 소광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