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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51화 (51/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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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정말인가요? 확정이 안 됐다는 게?"

"네. 사실입니다."

"그럼 최소윤 씨가 내정됐다는 것은 그냥 소문인가 보군요."

"뭐. 비슷합니다."

살짝 애매하게 말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굳이 이수현이 대타라는 것을 밝힐 필요까지는 없어 보였으니까.

"계약이 잘 안 됐군요."

"예?"

"작가님 저한테 굳이 둘러대실 필요 없으세요. 저에게는 늘 있는 일이에요."

"·········."

그녀는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씩 들어 올렸다. 나이가 30대 후반인데 아직도 상큼(?) 터지는 미소였다.

이수현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마치 자신은 이제 그런 건 초월했다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다.

"그 문제는 자세히 말씀드리긴 좀 그렇군요."

"훗···. 알겠습니다. 작가님. 오늘 여기 오신 거요. 혹시 저 보러 오신 건가요?"

헉···. 뭐라고 하지. 약간 창피한데? 에라 나도 모르겠다. 그냥 일관성 있게 구라를 치자.

"아···. 그건 아닙니다만."

"그렇군요. 혹시나 했어요."

"하지만 만나 뵙게 돼서 너무 좋았습니다."

"저도요. 작가님."

"그런데 수현 씨. 혹시 말이죠."

"네. 말씀하세요. 듣고 있습니다."

"아직 제 작품에 출연하실 의사가 있으신가요?"

"당연하죠. 무조건이요. 올해 거기에 매진해서 제 최고의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은 게 소원이에요. 물론 배역이 주어진다는 전제하에서지만···."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수현 씨의 의사를 저희도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작가님. 한 가지만 더 말씀드릴게요. 저는 순번이 어떻게 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그런 건 이미 잊고 산 지 오래입니다. 다만 이것만 알아주시면 돼요."

"어떤···.?"

"저는 어제까지 계속 작가님이 쓰신 캐릭터를 분석하고 있었어요. 그게 요즘 제가 하는 일이에요. 4화 이후의 내용도 알고 싶지만 정말 꾹 참고 있습니다. 물론 배역이 다른 사람에게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흥행이 우선이니까요. 그런데요. 작가님. 만약 일이 잘 안 풀리셨을 때 저를 생각해주시고 찾아주시면 됩니다. 그것만 알아주시면 돼요."

"알겠습니다. 수현 씨."

이수현은 마치 인생사를 초월한 듯한 담백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은 최선의 노력을 하겠지만 그 이외의 것은 하늘에 맡긴다는 자세였다.

어떻게 보면 이 아싸리판에서 순진한 것일 수도 있고 바보 같은 짓일 수도 있지만 언제든지 자신은 준비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자신이 있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했다.

'이수현···.'

대단한 연기자다. 연기력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 나는 이제 자리에서 일어나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려고 했다.

핑···.

갑자기 살짝 어지럼증이 찾아왔다. 두 눈이 흐려지는 느낌이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작가님. 괘, 괜찮으세요?"

이수현이 내가 이상한 증세를 보이자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있었다.

하···. 이놈의 눈썰미, 그리고 직업병.

그랬다. 그녀를 유심히 보고 있자니 나의 심미안이 발동한 것이다. 다시 시야가 정상적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대략 3~4kg 정도만 더 찌면 그녀의 베스트라고 느껴진다. 그녀는 지금은 너무 마른 상태다.

행복한 아내, 엄마와 어울리지 않는 약간은 신경질적인 이미지로도 비칠 수 있었다.

"괜찮습니다. 속으셨죠? 저도 수현 씨처럼 연기 한번 해봤습니다. 하하하."

"네? 풉···."

다행히 개드립으로 상황을 잘 무마시켰다.

아아···. 이 이야기를 할까 말까? 아무리 작가라지만 초면에 몸무게를 늘려보라고 하는 건 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에이 나도 모르겠다. 그냥 지르는 거지 뭐.'

"수현 씨."

"네. 작가님."

"제가 한 가지만 충고··· 아니 조언··· 쓰읍. 이것도 아닌데 아! 부탁 하나만 드릴게요."

"얼마든지요. 저한테 도움 되는 거라면 뭐든지 환영입니다."

"지금도 좋아 보이시긴 하는데요. 체중을 3~4kg 정도만 늘려보시는 게 어떨까요?"

"몸무게요? 제가 지금 너무 말라보이나요?"

"어우···. 아닙니다. 보기 좋으신데요. 그런데 김인애 역할은 약간 몸무게가 더 나가도 될 거 같아서요. 처음에는 상당히 행복한 역할로 나오니까요."

"아아···. 알겠습니다. 이 작가님."

이수현은 내 말을 듣고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체중 이야기는 솔직히 민감하기도 하고 부담스럽긴 했는데 의외로 흔쾌히 받아드리는 그녀였다.

'수현 씨. 제 심미안을 믿어보세요. 뚝배기가 깨지고 나서는 상당히 정확합니다."

얼마 전 정혜성 사범도 스타일링을 바꿔 환골탈태 시켜놓은 나다.

"그럼.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저도요. 작가님. 좋은 충고 감사드립니다."

그녀는 나에게 인사를 하며 끝까지 깍듯했다. 나이가 내가 거의 10살 정도는 아래인데 말이다.

'정말 천성이 선한 사람이구나.'

그녀를 등지고 돌아서는데 내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그렇게 방송국 지하주차장으로 빠져나와 차를 몰고 회사에 잠시 들렸다가 내일 외근을 나갈 거라며 한 본부장에게 보고했다.

'으···. 오늘도 열심히 일했네. 길 막히기 전에 얼른 퇴근해야겠다.'

자잘한 연예인 매니지먼트에서 해방되니 조금은 편한 것도 사실이었다.

당분간은 이것저것 많은 경험을 해봐야 한다. 내 나이 이제 스물아홉. 아직 많은 것에서 부족했다.

*  *  *

다음날 오전 늦게 일어나 준비를 하고 오후 1시를 지나 대전 유성으로 출발하려는 중이었다.

나는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주차돼있는 내 중고 애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 이 게으름을 어찌할꼬. 똥차 타고 대전까지 가야겠네.'

바쁘기는 했지만, 솔직히 자동차 판매장을 들러볼 여유 정도는 있었다. 순전히 내 게으름에서 비롯된 참사였다.

내일 무조건 매장에 들러 고급 외제차를 한대 뽑기로 했다. 평소에 봐둔 경제적(?)이고 디자인 괜찮은 녀석으로 말이다.

그래도 서울을 벗어나 고속도로를 달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휴게소에 들러 잠깐 배를 채우고 대전에 도착했다.

평일 오전이라 그런지 그럭저럭 일찍 도착한 것 같았다. 오후 3시가 살짝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배우 강다혜는 오늘 모교인 카이스트 축제에 초대되어 무대 공연 시상을 한다고 했다. 아마도 시상하면서 장학금도 전달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차를 주차하고 넓은 교정을 한가하게 걸어봤다. 모자를 쓰고 캐주얼한 복장을 한 채 이곳저곳을 둘러봤다.

예전에 행사차 한번 온 적 있었지만, 그때는 너무 바빠서 정신이 하나도 없던 시절이라 생각나는 게 별로 없었다.

'오···. 역시 대학이 좋긴 좋아.'

물론 학교에 다니는 분 중에는 죽을 맛인 사람도 있겠지만 졸업한 지 몇 년이 지나서 그런지 옛날 감성에 사로잡혔다.

이미 카이스트 내에서는 각 동아리가 주축이 되어 노점이나 주점을 운영 중이었다. 나는 한 곳에 들러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사 들고 대학의 동쪽인 행정 본관 앞 잔디밭에 도착했다. 옆에는 호수도 있어서 꽤 경치가 좋은 곳이었다.

'저기에 무대가 있구만.'

그래도 한번 와봤다고 기억이 나는 것 같았다. 카이스트는 축제 무대가 다른 대학에 비해서 그리 크지 않았던 거로 기억했다. 역시나 아담한 사이즈의 무대가 보였다.

아무래도 오늘 초대가수가 별로일까? 아직은 무대 주위가 한산했다. 나는 잔디밭에 자리를 잡았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행사에 강다혜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자 무대 위에 여러 가지 공연들이 펼쳐졌다. 밴드나 댄스팀들이 출전해서 경연을 펼치는 것 같았다.

옆에 있는 학생들이 수군거리는 것을 들어보니 아마도 순위를 정해서 수상자를 뽑는 것 같았다.

이제는 완연히 주위가 어둑해지고 시상식 게스트로 초대된 강다혜가 스태프의 안내를 받으며 무대 위에 있는 좌석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와아!"

사람들도 강다혜가 올라오는 것을 눈치챘는지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무대 앞의 관객들을 보며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오우! 대박! 다혜 누님. 너무 아름다우세요.'

나는 강다혜를 잘 보기 위해서 살짝 앞에 있었는데 그녀의 얼굴이 아주 잘 보이고 있었다. 40대에 가까웠지만, 여전히 우아한 미모를 뽐내고 있었다.

역시 외모로 우리나라 탑을 찍었던 분 다웠다. 그런데 놀라 자빠질 것은 그런 압도적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과학고, 카이스트 출신이라는 거다.

뭔 이런 이레귤러가 있단 말인가? 하늘은 참 불공평한 것 같았다. 어찌 저런 규격 외의 존재를 만드셨는지···.

아···.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던가? 크흠···.

민망하군.

각설하고 이제 강다혜의 능력을 점검해볼 시간이다.

꿀꺽···.

이게 뭐라고 이렇게 긴장된단 말인가. 아우라 스카우터를 가동 시기키 위해 손을 들었는데 약간 떨리는 것 같기도 했다.

이놈의 스킬은 눈뽕이라는 심각한 부작용 때문에 자주 쓰기가 꺼려졌다.

'스카우터 ON!'

"헉?"

내 단말마의 비명에 앞에 서 있던 여자 둘이 동시에 뒤를 돌아보며 나를 째려봤다. 나는 그들을 향해 손을 들어 아무것도 아니라고 알려줬다.

'뭐지?'

이게 어찌 된 노릇일까? 아우라 스카우터를 가동했지만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음. 아우라 어디 갔지?

'에이 설마···. 잘못 본 거겠지.'

나는 다시 심호흡했다.

내 눈으로만 보는 거라 어떻게 보면 주관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거다. 그리고 내가 정말로 잘못 봤을 수도 있었다.

그녀가 관객석을 바라볼 때 눈에 잔뜩 힘을 주고 그녀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으으윽···.'

얼굴에 너무 힘을 줬나?

미간에 내 천자가 딱 생기고 나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지만, 강다혜에게 뻗어 나오는 아우라를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나는 혹시나 내가 이상한 게 아닌가 싶어서 계속 집중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없다.

전혀 없다.

1도 없다.

무슨 최신가요 제목도 아니고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허탈했다. 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나도 모르게 갑자기 다리가 풀렸지만, 이제는 인파가 붐벼 공간이 빡빡해지고 있어서 마음대로 철퍼덕 앉을 수도 없었다.

"하아아···."

자꾸 주위에서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기 시작했다. 웬 덩치 큰 놈 하나가 와서 자꾸 죽상을 하며 한숨을 내쉬는데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군가는 어디서 본 것 같은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니···. 박영관보다 못하다니···."

하찮은 아우라였지만 영관이는 캐릭터빨로 조연이라도 할 수 있겠지만, 그녀는 도대체 어떻게 배우 생활을 했을까?

정말로 연기에 자질이 하나도 없는데 순전히 뛰어난 머리를 사용해서 한계를 극복 한 게 아닐까?

연기를 감정으로 하는 게 아니라 머리로 한다고? 말이 되나?

하지만 그걸 어느 정도 가능하게 한 사람이 바로 아우라가 제로인 강다혜였다.

'후유···. 가자. 집에 가자. 시간만 날렸네. 제기랄!"

강다혜가 구제 불능의 연기력으로 판명 났으니 이제는 무조건 이수현을 캐스팅해서 띄우는 수밖에 없었다. 이준환 PD도 그녀의 연기력을 극찬했으니 반대는 하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되겠네. 수현 씨 캐릭터에 힘을 좀 더 실어줘서 최소윤보다 더 인기 있는 1티어 급으로 만들지 뭐.'

나는 온몸에 힘이 빠진 해파리와 같은 상태로 왼쪽 부근 출구의 인파를 헤치며 관객석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다 무의식중에 이상함을 느끼고 무대 위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걸그룹 원스의 댄스곡에 맞춰 춤을 추고 있는 학생들이 보였다.

"으응?"

왼쪽 끝부분에서 춤을 추고 있는 한 여자아이에게서 아주 진한 똥색 아니··· 다크 브라운? 컬러의 아우라가 마치 레이저 광선처럼 강렬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억···. 저거 뭐야?!'

강다혜에게 아무런 아우라를 못 느껴서 스카우터가 꺼진 줄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 자리에서 바로 멈춰서고 말았다.

뒤쪽에서는 내 덩치에 무대가 가려져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이씨! 앞에 뭐야!"

나는 그 외침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뒤를 봤는데 그 사람은 내 얼굴을 보자마자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그럴 만했다. 내 얼굴은 마치 정신병원에서 막 탈출한 사람 같아 보였을 테니까.

그리고 나는 내 손을 내려다봤다. 손아귀에 땀이 흥건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다시 무대를 쳐다보았다. 오오!! 눈이 아플 정도다. 역시나 잘못 본 게 아니었다.

'3대 기획사여 보고 있는가? 당신들의 연습생을 능가하는 뛰어난 인재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안하지만 내가 먼저 찜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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