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50화 (50/263)

PICK ME (5)

다른 배우들을 공식적으로 만나는 것은 부담스러웠다.

최소윤에게 당해보니 차라리 내 능력을 십분 이용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우라 스카우터의 사기적인 능력을 이용하는 거다.

'어디 보자. 스케줄이 다들 어떻지?'

톡을 보니 이수현은 오늘 오후에 SBC 관찰 예능을 찍을 예정이고, 강다혜는 내일 모교인 카이스트 축제 행사에 게스트로 초대된 상태라고 했다.

일단 이수현부터 확인해보자.

마침 방송국에 있다고 하니 곧바로 가서 확인해볼 작정이었다. 나는 내 중고차를 몰아 방송국 주차장에 도착했다.

'어휴. 차를 바꾸든지 해야지. 쩝. 통 시간이 안 나네.'

사실 귀찮아서 미루고 있는 거였다.

차를 주차하고 방송국 방문증을 끊고 들어갔다. 방송국을 지나가다 아는 스태프를 만나서 인사도 하고 대화를 나눴다.

틈틈이 방송국에 깔아놓은 인맥이고 그들은 예전하고는 전혀 다른 차원의 대접을 해줬다.

기존에는 그냥 일개 매니저였다면 지금은 당당히 히트작이 있는 작가 취급을 해준 것이다.

사람은 역시 잘 나가야 하는가 보다. 겉으로는 동등하게 대우해주는 것 같지만 느낌은 전혀 달랐다.

여기인가? 녹화장에 들어갈 수는 없었기 때문에 멀찍이 떨어져 그녀가 녹화를 끝내고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얼추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들어갔기 때문에 오래 기다리는 일은 없었다.

드디어 멀리서 그녀가 나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오케이. 이제 나오는구나. 한번 체크를 해볼까?'

솔직히 그녀는 보나 마나 연기력이 출중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그래도 내 눈으로 확인하는 게 필요했다.

아우라 스카우터를 가동시키려는 순간.

"어이! 이준형 작가 선생!"

나는 뒤에서 나는 큰 소리에 놀라 그냥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평소 알고 지내던 음악방송 스태프였다.

목소리가 너무 커서 문을 통해 걸어 나오던 이수현과 눈이 딱 마주쳐버린 것이다. 그녀는 나를 알아봤는지 눈이 왕방울만 하게 켜져 버렸다.

'큭···. 제기랄! 이게 무슨 추태란 말인가. 쥐새끼처럼 몰래 왔다고 생각할 거 아냐.'

난감했다. 이미 뒤에서는 평소에 가끔 담배를 같이 태우던 FD(스튜디오 진행 관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FD님. 오랜만입니다."

"오우···. 이게 누구야. 이 작가님! 나 방송 보고 진짜 깜짝 놀랐잖아요."

나는 그냥 적당히 말장난을 섞어가며 그와 말을 주고받다가 일이 있다고 하며 자리를 황급히 피했다.

이놈의 인싸력. 인맥을 너무 깔아놔도 문제였다.

계단을 이용해 위층으로 올라가는 도중 뒤에서 나를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기요. 잠시만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보니 이수현이 헉헉거리며 나를 따라오는 게 아닌가!

하아···. 꼬이는구만 젠장.

이대로 내빼는 것도 모양새가 우스워 보여서 몸을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

"헉헉···"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나를 쫓아왔는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네. 무슨 일이시죠?"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도리어 이수현 씨가 나에게 묻고 싶은 말을 내가 먼저 가로채버렸다.

"이, 이번에 JTVC 드라마를 쓰신 이준형 작가님이시죠? 헉헉···"

"맞습니다. 제가 이준형입니다. 혹시 이수현 씨?"

"네. 이수현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작가님을 뵙게 되다니 일진이 너무 좋은데요?"

어느 정도 거친 숨이 잦아들었는지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말을 하는 이수현이었다.

'와! 외모가 단아하고 약간 청초한 면이 있구나. 키도 상당히 큰 편이고···.'

아무리 인지도가 조금 떨어진다고 하지만 확실히 연예인은 연예인이었다. 사람들이 이름은 바로 떠올리기 힘들지만, 얼굴을 보면 다들 아는 배우였다.

살짝 마른 감이 있었지만 두 눈이 빛나고 있어서 매우 긍정적인 에너지를 풍기는 배우였다.

"아. 저도 사실 여기서 수현 씨를 보게 돼서 반갑기도 하고 약간 당황스럽네요."

"여기서 이럴 게 아니라 구내 카페라도 가서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지금 이 시간이면 사람들도 별로 없거든요?"

그녀는 좁은 계단이 불편한 듯 고개를 좌우로 두리번거리더니 장소를 옮기면 어떨지 제의해 왔다.

"아···. 네···. 그, 그러시죠."

그렇게 이수현 씨와 계획에 없었던 단독 미팅을 졸지에 해버리게 생겼다. 카페에 도착한 우리는 각자 메뉴를 시키고 약간 구석진 테이블에 앉았다. 그녀는 톡으로 누구랑 계속 채팅을 하는 중이었다.

"아! 제 매니저요. 차에서 기다리라고 해놨어요. 중요하신 분이 오셨다고 했죠."

"네···. 중요한지는 모르겠지만요."

그녀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미소만 보내고 있었다. 그녀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와 미소를 보고 있으려니 뭔가 힐링? 아니 정화가 되는 느낌이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저는 오랜만에 예능에 게스트로 출연했어요."

"아···. 저는 아는 PD님이 계셔서 만나고 나오는 길입니다."

구라가 술술 나왔다. 사기도 나같이 신뢰(?)를 주게 생긴 사람이 잘 치는 법이다. 그냥 1초도 안 돼서 거짓말이 술술술···.

나와 이수현은 본론은 이야기하지 않고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드라마 잘 봤다, 연기 잘 봤습니다. 등등···. 서로의 속셈은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슬기로운 덕질생활은 정말로 재미있게 봤어요. 유정 씨가 연기를 잘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 캐릭터가 본인인 것처럼 연기하더군요. 솔직히 엄청 놀랐습니다."

그거 본인 맞는데···.

"저도 수현 씨가 나온 역할들을 모니터링 해봤습니다."

"와! 영광스럽네요. 작가님이 손수 제 영상들을 보셨다니요. 연기를 놓지 않고 꾸준히 한 보람이 있네요."

"어우···. 연기를 놓다니요. 수현 씨 연기 잘하는 건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서 아주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물기를 머금고 있는 안개꽃과 같은 모습이었다.

'어떻게 이런 얼굴에 악의 모습이 공존한다는 거지? 실제로 보니 이해가 안 가는데?"

그녀는 나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담한 눈빛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이수현에게서 평정심 같은 게 느껴졌다. 독실한 크리스천이라고 했던가? 뭐 아무튼···.

"초면에 죄송한데요. 혹시 쓰신 차기작의 주연 배우로 최소윤 씨가 내정됐다는 소문이 돌던데 사실인가요? 조심스럽게 여쭤봅니다."

헐···. 최소윤 씨의 매니저 말이 맞았다. 이미 업계에 암암리에 소문이 돈 것이다.

"아···. 그런 이야기를 실제로 나눈 적이 있긴 합니다만···."

나는 일부러 모호하게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어느 것도 결정된 바가 없었지만, 그녀에게 직접 그게 아니며 아직 공석이라고 쉽사리 말도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여러 대안이 아직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약간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이자 그녀의 얼굴이 굳어지는 게 보였다.

'어?'

그녀는 손을 덜덜 떨더니 얼굴이 삽시간에 흙빛이 되었다. 얼굴 근육이 팽팽하게 땅겨지며 창백한 얼굴에 뺨이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켰다.

'어어?'

툭···. 급기야 핸드폰을 테이블에 떨구더니 의자를 뒤로 밀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녀는 떨리는 손을 들어 입을 막았지만, 눈동자가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리고 물기를 머금은 두 눈에 경악이 서려 있었다.

헉···. 그 소식이 그렇게 충격이란 말인가. 그렇게 그 배역이 하고 싶었을까?

'어라?'

휘청···.

급기야 그녀는 뒷걸음을 치며 몸을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주위를 살폈지만, 이쪽을 주시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괘···. 괜찮으신···."

나도 모르게 엉거주춤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입을 막고 휘청휘청하더니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았다.

마치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마주한 것처럼 두 눈은 눈물을 당장이라도 쏟아낼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리고 그녀는 오열할 것 같은 포즈로 상체가 무너지고 있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듯한 모습으로 말이다.

"죄, 죄송합니다. 사, 사실은···"

나는 정말 어찌할 줄 모를 정도로 당황하고 말았다. 캐스팅 소식이 그녀에게 그 정도로 충격을 줄 거라는 것을 몰랐으니까. 하지만···.

"헤헤헤···"

고개를 숙였던 이수현이 눈을 들어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빙긋 웃는 것이 아닌가?

"음?"

"아휴···. 이 주책. 작가님을 보니 꼭 이 연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여, 연기요?"

바닥에 주저앉았던 그녀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 모습을 얼떨떨하게 바라보던 나도 다시 의자에 앉고 말았다.

"네. 4회 마지막에 만년필에 녹음된 충격적인 내용을 듣고 쓰러지며 실신하는 장면이요."

"아! 아아아아···."

와! 미친!!!

그녀는 내 말을 듣고 그 장면을 떠올린 뒤 아무 준비도 없이 김인애 역할을 연기한 것이다.

그야말로 메소드 연기의 정석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연기를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냥 삽시간에 캐릭터에 빙의를 한 수준의 연기였다.

허어···.

나는 팔을 들어 봤다. 날씨가 벌써 더워져서 반소매를 입고 있는 상태였는데 팔뚝에 소름이 돋아나 있었다. 그 정도로 깜짝 놀란 것이다.

미쳤다. 미쳤어. 연기력 뭐야.

나는 곧바로 생각할 틈도 없이 아우라 스카우터를 가동했다.

'어흐흑···."

나는 나도 모르게 아까 그녀처럼 입을 틀어막고 말았다.

그녀의 몸에서 그야말로 눈이 아플 정도로 엄청난 양의 샛노란 광휘가 투사되고 있었다.

정화의 빛으로 사기꾼인 나를 준엄하게 꾸짖고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으윽···."

나는 괴로운 듯 그녀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말았다. 그리고 후다닥 아우라 스카우터를 꺼버렸다.

후유···. 이제야 살 것 같다.

이 정도까지 노란색 아우라가 강렬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절대로 이수현 씨 앞에서는 스카우터를 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잠시 어지러워서요. 평소에 빈혈이 좀 있는지라···."

큰일이다. 구라가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기 시작한다. 이러면 안 되는데···.

"아. 다행이네요. 작가님이 갑자기 그러시길래 전 작가님이 제 흉내를 내시는 줄 알았어요."

"네에?? 흉내요? 그럴 리가요."

"왜요. 외모만 보면 연예인 하셔도 무방하게 생기셨는데요. 전 연기를 배우신 줄 알았어요."

"아···. 뭐 대학교 때 연극 동아리에 있긴 했습니다."

물론 예쁜 여학생이 많다는 소문을 듣고 가입한 것이긴 했다. 어쨌든 연기도 살짝 배우긴 배웠다. 선배들에게 엄청나게 혼나긴 했지만 말이다.

살짝 찔리는구만. 어쨌든.

"후후···. 아무튼 아쉽네요. 작가님. 저도 사실 그 작품 욕심이 많이 났거든요."

"그러시군요."

"네. 솔직히 국내에 내로라하는 제 나이 또래의 여배우들이라면 무조건 해보고 싶은 역일 거예요. 그만큼 어렵기도 하고 대단한 역할이죠. 그런데 최소윤 씨로 내정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포기하고 있었어요. 사실 제가 이런 건 또 전문이거든요. 예전부터 원하던 배역을 별로 맡아본 적이 없어서요."

그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이 약간 쓸쓸해 보였다. 워낙 연기를 잘해서 악역을 전전한 연기 천재.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내 감정은 무조건 이수현으로 해야 한다고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하마터면 그녀의 연기를 보고 '수현 씨 우리 함께합시다' 하면서 손을 덥석 움켜쥘 뻔했으니까.

살짝 남아있던 나의 이성이 그 행동에 급브레이크를 건 것이다. 아직 다른 카드인 강다혜도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허···."

"자꾸 왜 그렇게 한숨을 쉬세요?"

그녀는 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나는 민망한 듯 그녀의 시선을 회피하며 머리를 긁적였다.

왜 한숨을 쉬냐고? 그거야. 당신의 연기력이 엄청나니까!

나는 잠깐 시간을 벌며 정신을 수습해야 했다. 그래도 알려줄 건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이대로 오해하고 있다가 덜컥 다른 작품이라도 계약하면 큰일이었다. 일단 살짝 시간을 벌어놔야 할 것 같았다.

"크흠···. 수현 씨."

"네."

"수현 씨가 잘못 알고 계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잘못 알고 있다고요?"

"네. 사실 배역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이 찢어질 듯 커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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