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48화 (48/263)

PICK ME (3)

[제목 : 프로듀서님 저 회귀했어요.]

나는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라 워드프로세서에 미친 듯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제목은 '프로듀서님 저 회귀했어요'라는 작품으로 뮤지컬이 가미된 웹드라마 형식의 스토리였다.

미드 '글리' 같은 스타일 말이다.

흙수저 5인조 걸그룹 '러브원'의 센터 심채원은 소형 기획사에서는 보기 힘든 노래와 연기가 모두 되는 인재였다.

그녀는 평소에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독립해서 차린 기획사에 들어간다. 그 회사의 대표 겸 천재 프로듀서인 유준은 고군분투하며 아이돌 그룹을 키워낸다.

심채원은 프로듀서 유준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 행복을 느끼고 있었다. 순전히 아이돌 팬심으로 걸그룹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었다.

3년간 무명 그룹 생활을 하던 러브원은 우연히 찍힌 하나의 동영상으로 떡상을 하게 된다.

그 전설의 시작은 한 지역의 행사장이었다.

지치고 피곤한 몸을 이끌며 지방 행사장에서 열심히 자신들의 노래를 홍보하던 러브원.

갑자기 술에 취한 아저씨가 무대로 올라오게 되는데···.

그룹의 센터인 심채원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을 껴안으려는 아저씨를 업어치기로 매쳐 부드럽게 바닥에 꽂아버렸다.

그야말로 군더더기가 없는 예술적인 한판이었다. 그녀는 어렸을 적부터 선수 출신인 아버지에게 기술을 전수받은 유도인이었던 것.

그 동영상은 "무대에 난입한 취객을 제압한 헐벗은 유도소녀"로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하더니 삽시간에 러브원을 무명 아이돌에서 화제의 그룹으로 탈바꿈시켰다.

거의 3년이 넘어가는 위태로운 시기에 터진 로또였다.

의외로 프로듀서 유준의 곡이 좋다는 사실이 입소문을 타고 차트를 역주행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역주행으로 1위까지 등극하며 1.5티어 그룹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 심채원에게만 인기가 집중된 탓일까? 그룹의 팀워크는 계속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멤버들 사이의 유대감이 무너지며 공식활동을 제외하고는 말도 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 버렸다.

채원은 억울했다. 자기가 잠도 못 자가며 그룹을 알렸는데 멤버들은 자신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시기, 질투만 일삼으며 자신을 스트레스받게 했다.

그로 인해 프로듀서 유준에 대한 팬심과 의리를 저버리고 5년간의 계약 기간이 끝나자마자 재계약을 하지 않고 자신의 매니저와 함께 배우 전문 매니지먼트로 이적해버리고 만다.

한참 막 수익을 창출할 시기에 러브원은 해체되고 유준은 신용불량자가 됐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도 아메리카 TV에 나가거나 미튜버로 전직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하지만 인기란 마약에 취해버린 심채원. 전 소속사에서 당했던 억울함만을 기억한 채 그녀만 홀로 연기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원래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던 그녀는 가수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마음에 걸림돌이 있어서 그랬을까 아니면 외로워서 그랬을까? 그녀는 평소 다니던 보육원에 기부도 많이 하고 봉사 활동도 늘리게 된다.

그런 어느 날 영화 촬영 도중 액션 장면을 찍다가 발을 헛디뎌 3층 높이에서 추락하고 머리와 목을 심하게 다쳐 식물인간 상태가 돼버린다.

그리고 6개월 만에 깨어났으나 의식만 있고 몸은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지옥과 같은 상태가 됐다. 누구도 자신이 깨어난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자신의 매니저가 병실에 들렀다. 잠시 채원을 보는 듯하더니 이내 걸려온 전화를 받기 시작한다.

"어···. 새됐다. 이년 깨어날 기미가 안 보여. 내가 1년 이상 작업을 쳐서 데려왔는데 이제 아무 소용없게 돼버렸어. 이제 승진도 하고 날개 좀 다나 싶었는데 일이 터져버렸네. 아···. 내 인생 왜 이러냐. 왜 자꾸 꼬이냐고···. 짜증 난다. 요즘엔 회사에서 눈칫밥 먹고 있다. 병원비 많이 나온다고···. 보험? 몰라 복잡해. 뭐가 제대로 안 돼 있더라. 지금 같으면 콱 뒈져 버렸으면 좋겠는데···"

채원은 심한 충격을 받았다. 자신을 위해 헌신하던 매니저가 멤버 사이를 이간질하고 자신을 이 모양 이 꼴로 만든 장본인이라니···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눈꺼풀도 움직일 수 없었다. 오직 소리만 들릴 뿐···.

어둠 속에서 울부짖고 있는 심채원.

하지만 그날 저녁 병실에 한 명의 사내가 찾아왔다. 프로듀서 유준. 한때 신용불량자라는 소문이 돌았던 그였다.

유준은 채원을 한동안 빤히 바라보았다.

"채원아. 오늘 러브원 저작권도 다 넘겼다. 하하···. 웃긴 게 뭔 줄 아니? 너 사고 나고 음원이 더 잘나가. 채권자들이 혈안이 돼서 그걸 넘기라고 하네? 하하···. 넌 이렇게 됐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네. 하아···. 이제는 우리의 모든 것들이 사라졌어. 회사도, 그룹도, 너희가 부른 노래들까지···. 그냥 내 기억 속에만 남아 있어. 미안하다. 미안해. 내가 너무 순진해서 너희를 지키지 못했구나. 으흐흑···"

프로듀서 유준은 초췌한 얼굴로 나타나 채원의 손을 꼭 쥐며 흐느낀다.

그 모습에서 그녀는 모든 걸 깨닫게 된다. 누가 자신에게 소중하고 누가 뱀처럼 자신을 이용했는지를···.

'아니에요. 오빠. 제가 잘못했어요. 다 매니저 오빠가 꾸민 일이에요. 제 말이 들리지 않나요?'

어둠 속에서 그녀의 진심이 담긴 깨끗한 발라드가 터져 나온다.

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노래다. 언제까지 이런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할까. 그녀는 슬프게 절규했다.

그 날밤 꿈에 누군가가 나타났다. 아니 거친 손이 자신의 손을 잡는 것을 느끼는 채원이었다.

"채원 씨. 그동안 고마웠어요. 채원 씨 덕분에 우리 애들이 밝게 자라고 있어요. 그 캄캄한 곳에서 답답하지요?"

그 손의 주인공은 보육원 원장 선생님이었다.

"채원 씨를 다시 한번 살게 해드릴게요. 이런 착한 분이 지옥과 같은 고통을 당하게 둘 순 없습니다. 제 영력을 사용해서라도···."

갑자기 환한 빛이 터져 나왔다.

심채원이 눈을 뜬 곳은 예전에 사용하던 숙소였다. 옆을 보니 리더 언니가 침대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지방 행사를 하러 가기 전날로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꺄악! 나 돌아왔어! 엄마아···. 으아앙···."

쾅!

그녀는 기쁨에 소리치며 침대에서 일어나다가 머리를 박고 말았다. 그녀가 누워있는 곳은 바로 2층 침대의 아래 칸.

"채원아. 침대 안 부서졌냐? 넌 왜 자꾸 2층 침대를 돌머리로 부수려고 하니?"

역시 시니컬한 리더 언니다운 멘트였다. 지속된 실패로 패배감에 사로잡힌 러브원 멤버들. 하지만 오늘부터는 달랐다.

"언니이~ 사랑해···."

"얘가 아침부터 뭘 잘못 먹었나. 왜 이래? 아하하··· 간지러···"

그녀는 리더를 껴안은 상태로 눈빛을 빛내고 있다. 다시 힘찬 댄스 노래가 나오고 그녀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우리는 무조건 뜰 거야!"

노래가 끝나고 심채원은 이빨을 꽉 깨물고 주먹을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멋지게 업어치기를 하고 뜬다. 그리고 꼬인 실타래를 내가 풀고 말겠어. 그리고 우리 프로듀서님과 멤버들, 그리고 회사도 살려야 해."

회귀한 심채원의 두 번째 삶이 시작됐다.

'프로듀서님 저 회귀했어요! 제가 다 바로 잡을 거예요. 모두다!'

*  *  *

대략적인 플롯을 짜고 살을 붙인 나는 어디에 어떤 곡을 배치하고 어떤 내용으로 곡을 써야 하는지 꼼꼼히 점검했다.

'으아아···. 됐다! 이제 시간 날 때마다 대본을 하나씩 완성해야겠네.'

왠지 뮤지컬로 드라마를 만들면 재미가 있을 것 같다.

타이틀곡도 제작하고,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부르는 아름다운 발라드곡도 만들고 중간중간에는 신나는 경쾌한 곡, 그리고 프로듀서에게 연정을 품은 간질간질한 댄스곡에 보육원 아이들과 함께하는 단체 성가대의 감동적인 엔딩송까지!

나의 머릿속에서는 마치 뮤지컬 영화 맘마미아의 'Honey Honey''처럼 프로듀서에 대한 사랑을 신나게 표현한 곡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시스터 액트의 'I Will Follow him' 같은 성가 엔딩송이 찬란하게 펼쳐졌다.

재미있는 스토리와 멋진 곡들이 어우러지는 신나는 뮤지컬 드라마!

멋진 곡은 쓰리콤보가 만들면 됐다. 곡은 천재 프로듀서 이든과 DJ Nec이 담당하면 되고, 아! 물론 가사는 내가 끝내주게 써주면 된다.

드라마 작가가 뮤지컬 곡까지 쓰니 그야말로 드라마와 곡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다.

"어우. 온몸에 소름 쫙 돋는다. 진짜 재밌을 것 같은데? 흐음···."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 드라마의 성패는 아이돌급 실력을 갖춘 배우들이었다. 아니 배우급 연기력을 갖춘 아이돌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이런 영감을 떠올린 것은 바로 윤하영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붉은 빛인 줄 알았던 그녀의 아우라는 알고 보니 주황색이었다.

그게 뜻하는 바는 그녀가 연기와 노래에 대한 재능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제 확실히 혼합된 컬러의 구분이 가능해진 상태였다.

솔직히 그녀가 아르바이트 하기 전 뭘 했는지 물어보진 않았으나 왠지 이쪽 업계에서 뭔가를 준비하던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내가 좀 많은 걸그룹 멤버들을 봤어야지.

처음부터 감이 오긴 했다. 이 업계에서 충분한 실력을 갖추고도 먼지처럼 사라지는 인재들이 어디 한둘인가?

요즘은 재능, 노력, 실력은 기본이었다. 그 기본 위에 뛰어난 외모를 갖추거나 인기 작곡가에게 히트곡을 받거나 혹은 거대 기획사 등에 업히는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극소수의 예외가 존재하긴 했다. 내 새끼 테리우스.

얘들은 내가 그냥 머리끄덩이를 잡아서 1티어로 등극시키기 직전이다.

곧 이든의 곡과 함께 컴백을 하게 된다면 무조건 1티어 입성이 아닐까 싶었다.

'역시 나는 극소수의 예외이자 규격 외의 존재인가?"

갑자기 어깨가 으쓱해진다. 아무리 머리를 좀 다쳐서 그렇다지만, 내 본래 실력은 어디 가는 게 아니다. 아무렴.

좀 오글거리는군. 뭐 어때. 사실인데.

뭉친 어깨를 풀기 위해 팔을 빙글빙글 돌려봤다. 시계를 쳐다보니 새벽 2시였다.

'아우우우···. 몇 시간째 이러고 있는 거야. 내일 출근도 해야 하는데 쩝···."

나는 이만 마무리를 하고 자기로 했다. 나유정의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면 본격적으로 대본을 쓰며 구상을 해 볼 작정이었다.

그녀도 바빠질 테니 운전은 대성이에게 맡겨놓고 나는 회사에서 계획을 구상해보기로 했다.

다음날

회사에 출근한 나는 프로듀싱&콘텐츠 총괄본부의 실장실에서 느긋하게 커피를 즐기며 최소윤을 제외한 3인 (송지현, 강다혜, 이수현)의 영상을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점검 중이었다.

실장이 되니 개인 사무실이 있다는 게 너무 좋은 것 같았다.

원래 다른 회사는 임원 정도 되어야 방도 있고 그랬는데 XM Ent.는 워낙 건물을 크게 지어놔서 방이 남아도는 것이다. 그래서 실장급까지 개인 사무실을 쓰고 있었다.

'이도훈이 이놈 감히 지금까지 실장 방을 쓰고 있었어? 어이없네.'

이도훈 프로듀서는 결국 내 예상대로 한 이사에게 욕을 먹더니 사표를 제출하고 회사를 그만뒀다.

사실 테리우스에 빨대를 꽂으려 한 게 이도훈만이 아닐지도 몰랐지만, 일단 그가 사표를 낸 시점에서 추적을 멈추기로 했다.

어쨌거나 그가 죄다 뒤집어쓰고 그만둔 것만 해도 큰 성과가 아닐까 싶었다.

'너무 좋은데 이거?"

개인 사무실이 있다는 게 이렇게 좋다니. 매일 도서관 메뚜기처럼 자리를 옮겨 다니던 게 엊그제 같았는데 불과 몇 달 만에 처지가 달라져 버렸다.

예전에 사놓았던 고급 스피커를 집에서 가져와 컴퓨터에 연결해서 소리를 들으니 정말 살 것 같았다.

집에서는 민감한 형 때문에 사용하지 못하던 놈이었다.

학창 시절 이어폰을 너무 사용해서 청력이 안 좋아 진 후 나이 들어서는 스피커를 선호했다.

그 스피커를 통해 3인의 음성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송지현.

하아··· 연기력은 나무랄 데가 없는데 이미지가 완벽하게 반대다. 젠장.

강다혜.

흐어어··· 외모는 여지없이 완벽한데 최근에 출연한 작품의 연기를 봐도 노답임은 분명해 보였다.

무슨 자신감으로 지원한 것인지 궁금해지는 수준. 말을 말자.

그리고 마지막 이수현.

흐음···. 확실히 자연스러운 연기다. 여러 작품을 다 둘러봤는데 못하는 연기가 없었다.

선한 역할부터 악역까지 너무나 자연스럽다. 아니 그냥 그 역할에 빙의한 것 같다.

그 캐릭터에 모자라지도 과하지도 않은 수준. 그녀의 얼굴에는 선과 악의 얼굴이 공존했다.

과연 이준환 PD의 칭찬처럼 대단한 배우였다.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았지만, 연기력에서는 원톱이라는 배우.

PD들이 무조건 예비 픽으로 뽑아놓고 캐스팅을 시작한다는 게 농담이 아니었다.

그녀의 연기는 상대 여배우와 같이 나오는 장면에서 명백히 드러났다.

상대가 연기력이 괜찮다는 평을 듣는 배우였지만 같은 앵글에서 대사를 치러보면 그야말로 공자 앞에서 문자쓰는 격이었고 수준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이렇게 좋은 배우였나?'

하아···.

감탄은 나오는데 이슈나 흥행에서 명백한 열세였다.

무조건 흥행이 1위였다.

나에게 배우들의 연기력은 두 번째 문제로 흥행을 하지 못하면 연기력이건 뭐건 다 쓸모없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작가니까 가능한 생각일지도 몰랐다. 영상이 잘 나오면 좋지만 난 어쨌든 대본으로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나? 인지도가 너무 달라. 이 정도 차이면 연기력이건 뭐건 이미 무용지물이야. 도저히 격차를 메울 수 없다.'

나는 마우스로 창을 꺼버렸다. 그리고 그녀에 관한 생각도 휙 하고 날아가 버렸다. 마치 휘발성 메모리처럼···.

결국, 최소윤으로 가야 하는 건가? 어쩔 수 없네. 이준환 PD를 믿는 수밖에···.

그렇게 주연 여배우 계약을 하기 위한 시간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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