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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47화 (47/263)

PICK ME (2)

"아, 안녕하세요?"

등장한 인물의 압도적인 자태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그만 의자에서 일어나 버렸다.

"저 누군지 아시죠?"

미팅 자리에 나타난 사람은 다름 아닌 최소윤이었다. 이준환 PD를 보고 살짝 미소지은 최소윤은 나를 보며 환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그럼요. 소윤 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솔직히 말해 약간 당황한 상태였지만 까짓거 뭐 작품을 쓴 사람은 나인데 내가 누구에게 쩔쩔맬 사람은 아니지 않은가?

물론 캐스팅 권한은 PD의 몫이 크다. 하지만 작가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

"앉으시죠."

자리에 앉은 최소윤은 확실히 일반인과 달랐다. 아우라 스카우터를 켜지 않은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 아우라 같은 게 느껴지는 듯했다.

'이런 게 바로 후광이라는 건가······."

그녀의 170cm를 훌쩍 넘는 모델 같은 키에 40대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관리된 몸매 그리고 피부 상태도 최상이었다.

거기다 입고 있는 고급스러운 저 의상들. 내가 명품 브랜드를 잘 모르다 보니 설명할 순 없겠지만 분명히 엄청 비싼 옷임은 틀림없었다.

솔직히 감탄이 나왔다. 이런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그녀는 얼마나 노력을 하고 있을까?

"어디 다녀오시는 길이세요?"

"아! 네. 친구가 영화 시사회에 초대해서요."

"누구······."

"김정우 씨요. 최근 영화 개봉하거든요."

"아! 기사로 본 거 같네요."

"저 엄청나게 배고픈데 음식 좀 시켜도 되죠?"

"물론입니다."

이 PD는 소윤 씨의 메뉴를 시켰다. 그리고 음식이 나오자 차 막히는 이야기부터 날씨, 식도락, 친구 영화 개봉 이야기 등 사소한 잡담을 하며 분위기를 풀어갔다.

그러다 최소윤은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봤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 같았다.

"작가님 TV로 뵙는 것보다 훨씬 잘생기셨네요. 키도 훤칠하시고요."

"아······. 네. 칭찬 감사합니다."

"유정이는 좋겠어요. 이런 천재 작가님이 매니저라니. 듣자 하니 벌써 나지혜 역할로 캐스팅 확정이라죠?"

그녀는 진짜로 부러워하는 것 같았다. 표정으로 솔직한 감정이 물씬 전해져 온다.

"조금 말씀드리긴 조심스럽긴 한데요. 애초에 유정 씨를 그 역할로 세팅해놓고 대본을 쓴 거라 그렇습니다. 언론에도 대서 특필되어 지금 바꾸기도 쉽지 않고요."

폭탄처럼 행동하는 나유정에게는 자꾸 농담처럼 오디션 이야기를 들먹였지만, 그 역할로 나유정을 박아놓고 쓴 건 사실이다.

"제가 여기서 이의를 제기하는 게 아니고 그냥 부럽다고 편하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어차피 제가 나지혜 역할을 할 것도 아니고요."

"아···. 그렇겠네요. 그런데 유정 씨를 아시나요?"

"잘은 모르고 사석에서 한 두 번 본 적 있어요. 예전에 배우들 모이는 자리였는데 인사 좀 하고 말을 좀 나눈 정도? 유정이 정도면 저하고 그리 차이 나지 않고 거의 주연 위주로 작품을 하는지라 작품에서 만날 일이 좀처럼 없죠."

"하긴···. 두 분 다 인기가 많다 보니 만나시기 쉽지도 않겠지만 드라마의 연령대나 장르도 겹치지 않아서 더 볼 일이 없으셨겠네요."

"어머? 작가님 저 나이 많다고 흉보시는 거예요? 저 서운합니다."

최소윤은 짐짓 삐진 표정을 지으며 서운함을 표시했다. 하지만 그것은 누가 봐도 장난인 걸 알 수 있는 표정이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세요? 유정 씨가 언니 아닌가요?"

나의 접대성 개드립이 작렬했다. 항상 나이 지긋하신 분들께 써먹는 단골 멘트였다. 대학교 때 연극 동아리였기 때문에 나름 연기력도 쓸만했다.

"후훗···."

빵 터질만한데도 그냥 가벼운 웃음으로 넘겨버리는 저 여유. 아 평소에 자주 이런 소리를 들어서 면역이 된 건가? 그녀의 상태를 보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죄송합니다. 오버했습니다."

"아니요. 위트있으시네요. 재미있었어요. 이런 마인드를 가지셔서 그런지 글이 생생한 것 같아요. 슬기로운 덕질생활을 보면서 많이 감탄했습니다. 어쩜 그렇게 답답한 부분이 없이 시원하게 쭉쭉 가는지 보자마자 작가가 누군지 궁금했어요."

"감사합니다. 소윤 씨."

나는 겸손한 척 의뭉을 떨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그런 게 필요 없어 보였다. 내 대본에 진심으로 감탄을 한 모양이었다.

"작가님 차기작을 꼼꼼히 읽었습니다. 딱 4화까지만 주셨는데요. 뒤가 궁금해서 실례를 무릅쓰고 이준환 PD님을 닦달해서 이 자리에 나오게 됐습니다. 언짢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전혀요. 괜찮습니다. 어차피 한 번씩 뵈어야 할 분들인데요. 이렇게 먼저 찾아주시니 좋습니다. 전 적극적인 사람이 좋습니다."

"호들갑을 떨어서 걱정했는데 이미지가 좀 좋아졌을까요?"

그녀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내가 긍정적인 신호를 준 영향인 듯했다.

"호감도가 +1 상승하셨습니다."

"네? 겨우 1이요?"

우리는 회를 마저 먹으며 이런저런 가벼운 이야기를 나눴다. 왜 매니저를 하고 있느냐는 고정 레퍼토리서부터 대본은 더 보여줄 수 있냐는 은근한 요구까지···.

살짝 부담되는데 이거?

일단 그녀의 능력치를 한번 볼까?

일단 화제성과 흥행성을 겸비한 배우다. 파격적인 연기를 별로 보여 준 적 없는 소윤 씨였기에 잠재 능력이 매우 중요했다.

옆을 살짝 곁눈질로 보니 이준환 PD가 우리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고 있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이 PD는 이미 최소윤으로 주연 배우를 낙점한 것 같은 모양새다.

'흐음~ 일단 한번 보고···.'

나는 손을 들어 아우라 스카우터를 가동시켰다.

"으음···."

나는 고개를 들어 그녀의 모습을 지긋이 응시했다. 최소윤은 내가 갑자기 신음을 내며 자신을 쳐다보자 얼굴에 머가 묻었냐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였다.

그녀의 아우라는···. 뭐라고 해야 하나.

어중간했다.

테리우스의 리더 박영관처럼 아우라가 있는 듯 마는 듯이 하는 것도 아니고 나유정이나 한연준처럼 황금색 아우라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스타일도 아니었다.

그냥 그냥 적당한 수준. 많지도 적지도 않은 아우라였다.

실망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되기도 했다. 주연 배우가 배역을 소화 못 해서 망할 염려는 없어 보였으니까.

하지만 크게 칭찬을 받을 수준도 아니었다.

나유정과 비교해보면 40~50% 수준?

잠재력만 보자면 래퍼인 창민이보다도 떨어지는 수준이다.

'뭐···. 아우라라는 게 고정된 게 아니니까. 하다 보면 더 잘할 수도 있지 않겠어?"

나는 좋게좋게 생각했다. 최소한 최소윤이 출연한다면 초반 100% 성공 보장에 일본에서의 흥행은 떼놓은 당상이었다. 그리고 만족스럽진 않지만, 연기력도 구멍은 아니니까.

내가 아무 말도 없자 이상함을 느낀 이준환 PD가 나를 불렀다.

"작가님. 작가님? 어디 아프신가요?"

보라색 아우라의 이준환 PD의 모습이 겹쳐서 진짜로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손을 들어 황급히 스카우터를 중지시켰다.

"아, 아닙니다. 갑자기 졸린 것 같아서요."

"왜요? 밤에 또 다른 작품 쓰시는 거예요? 만약 그러시면 저희가 무조건 1순위입니다."

"네? 하하···."

"제가 매일 쫓아다닐 겁니다."

"전 남자는 사절인데요? 자꾸 그러면 줬던 것도 뺏을 판국인데···."

내가 너스레를 떨자 이준환 PD가 너스레를 떨었다.

"어우···.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그냥 가만히 있겠습니다."

나는 가만히 이 PD를 노려보았다. 나 만만한 사람 아니야. 당신이 뭐 하는지 뻔히 보인다고. 다만 그게 아직 정도를 넘지 않기 때문에 가만히 있는 것일 뿐···.

내가 어리다고 살짝 만만하게 보는 거 같은데 내가 지금까지 소설로 계약을 몇 번이나 한 줄 아느냐고!

내가 노려보자 이준환 PD가 불안한 얼굴로 내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내가 또 분위기 잡으면 좀 무섭지. 건장한 체격이다 보니 학창 시절부터 일진들이 건들지도 않은 나다.

"언제 정식으로 캐스팅하시나요?"

옆에서 보고 있던 최소윤이 매끄럽게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피디님?"

내가 이 PD에게 바통을 넘겨주자 그가 헛기침하며 곧 캐스팅을 결정할 거라는 말을 했다.

그렇게 약간은 신기하고 불편한 자리가 끝났다. 먼저 최소윤이 자리를 떴고 나와 이준환 PD만 방에 남았다.

"죄송합니다. 작가님. 미리 말씀 못 드려서요."

"대충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제가 매니저로 구른 지 벌써 2년인데 그 정도 눈치가 없을까요? 뭔가 곤란한 사정이 있으셨겠죠."

"이,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그의 얼굴이 비로소 환해졌다. 그도 눈치가 있는지라 내가 뭔가 약간 불편해한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런데요. 피디님"

"네. 말씀하세요."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앞으론 참지 않겠습니다. 솔직히 말해도 될 걸 어설프게 속이지 마세요. 저도 그리 꽉 막힌 놈 아닙니다."

내 눈빛이 스산해지고 허리를 곧게 펴자 마치 표범과 같은 자세가 됐다. 그는 약간 위압감을 느끼는지 당황한 표정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이러고 싶지 않았습니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초지종을 이야기해 보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사실은 최소윤 씨가 저희 JTVC 스튜디오 대표님과 친한 사이세요. 대표님이 특별히 신경 좀 써달라고 하셔서···."

"흐음···. 별 이야기는 아니네요. 일단 긍정적으로 봅니다. 역시나 연기가 좀 문제겠지만 소윤 씨는 흥행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게 뻔하니까요."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다행입니다."

"저는 오히려 피디님이 걱정되는데요? 저야. 뭐 대본으로 평가받으면 되는데 피디님은 드라마 결과물로 평가를 받으실 것 아닙니까?"

"뭐 그렇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다 방법이 있습니다. 제가 연기력 뛰어난 배우들하고만 작업했던 것도 아니고요."

그의 대답에 왠지 모를 자신감을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는 최소윤이 연기를 하더라도 자신의 연출로 극을 보완하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양반이 능력은 충분한데···.

왠지 모르게 살짝 꺼림칙했다. 마치 구두 안에 작은 돌멩이가 들어갔는데 두 손에 뭔가를 들고 있어서 빼질 못하는 그런 기분이었다.

그렇게 찝찝하게 그와 헤어진 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생각에 잠겨 있다가 다 온 것 같아 고개를 들었더니 앞에 별다방이 보이고 있었다.

"기사님. 잠시만요. 저 앞에서 세워주세요. 감사합니다."

나도 모르게 윤하영이 생각났다. 그녀는 글을 잘 쓰고 있을까? 그녀는 내가 방송에 나온 뒤론 연락이 전혀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그녀가 카운터에서 일하는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잔이요."

"어?"

그녀는 고개를 들고 내 모습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주문 안 받아요?

윤하영은 내 모습을 보더니 허겁지겁 주문을 넣고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곧 끝날 시간이죠? 글 잘 쓰고 있는지 체크하러 왔으니까 어디 도망가면 안 됩니다."

내 농담에 흔들리던 그녀의 눈빛이 제자리를 찾는 모습이었다.

*  *  *

사복을 갈아입고 내 앞에 앉은 윤하영을 보니 갑자기 우리 회사로 스카우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서라. 이준형. 너 지금 벌여 놓은 일도 수습 못 하면서 오지랖 떨지 마.

나는 내 머리를 주먹으로 콩콩 내려치며 윤하영에게 질문했다.

"흐음··· 요즘 쓴 글 성적은 어때요?

"평균 조회수가 1,000 정도 돼요. 선작도 한 800명?"

"한 달 연재했군요?"

"네. 작가님. 이번 달 수익이 150,000원 나왔어요."

쑥스러운 듯 말을 하는 그녀였다. 그래도 크나큰 발전이다. 선작 800이면 발전 가능성이 보였다.

"축하합니다. 그렇게 꾸준히 노력하면 결국 성공할 수 있을 거예요."

"작가님처럼요?"

"네? 저처럼요?"

"네. 저 TV에서 작가님 봤어요. 나유정 씨랑 같이 나오셨잖아요."

"허 참··· 그거 본 사람 많네. 쩝···."

"어떻게 매니저를 하시면서 작가 생활을 하세요? 진짜 말이 안 되는 거 같아요."

"하영 씨도 아르바이트하면서 글 쓰잖아요? 사람은 뭐든지 가능하죠."

"에? 그거 약간 꼰대 같은···."

"하하···. 나도 말하면서 아차 싶더라니. 저 꼰대 아닙니다."

"아무튼, 집에 들어가다가 생각나서 들려봤어요."

"네···."

"가봐야겠네요. 오늘 일이 좀 있었더니 피곤하기도 하고요."

"네. 아니. 작가님."

갑자기 그녀가 일어나는 나를 올려다보며 말을 했다.

"말씀하세요."

"저 계속 연락드려도 될까요? 조언도 계속 얻고요."

"당연하죠. 갑자기 연락이 없길래 무슨 문제라도 있는 줄 알았습니다만···"

"TV에 유명하신 분과 나오고 그러셔서 갑자기 연락드리기가 좀···."

"아이고··· 전 그런 것 없습니다. 막힐 때 연락하세요. 글에 관한 이야기는 언제나 환영입니다. 그럼 이만 가봐야겠네요."

나는 그녀와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방에 틀어박혀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엄마가 왜 밥도 안 먹고 그냥 들어가냐고 뭐라고 하셨지만, 저녁 생각은 없었다.

마치 걸그룹 멤버같은 외모를 가진 작가 지망생 윤하영.

왠지 모르게 막 영감이 떠오른다. 그녀를 생각하니 갑자기 머릿속에 스토리가 좌르륵 펼쳐졌다.

[제목 : 프로듀서님. 저 회귀했어요.]

하얀 바탕에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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