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입니다만? (2)
방구석 오늘 방송이 나간 후···.
소규모 드라마 보조 작가 커뮤니티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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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슬기로운 덕질생활 작가가 방송에서 한 말···.
글쓰기가 취미라고?
이런 걸 보면 자괴감이 든다.
아무리 가볍게 쓴 작품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자기가 쓴 글인데 취미라고 하다니?
그것도 시청률 대박 난 작품을 가지고 장난처럼 이야기하네?
누구는 지금 모 작가의 보조로 들어와서 입봉만 바라보며 열정 페이로 개고생하고 있는데······.
누구는 아이돌하고 다니면서 방송에서 걸그룹이나 배우들 실컷 보고 또 그걸 글로 써서 대박을 내더니 이제는 자기 연예인 하고 같이 방송 나와서 언론 플레이하는 것 좀 봐라.
방송국에서는 시청률이 걸려있으니 광고 오지게 때리고 있네.
웹소설이나 쓰던 듣보잡이 튀어나와서 박탈감 느끼게 하네.
하아······.
미치겠다. 나도 입봉해야 되는데 매일 히스테리 년 시중이나 들고 있고.
글을 써서 보여주면 욕이나 먹는 내 신세가 처량하다. 나도 기획사에 취직해볼까?
[댓글]
- 진짜 어이없다. 취미라니? 누구는 피를 토할 듯 심혈을 기울여 쓰고 있는데.
- 그 작가가 취미라고는 안 했고, 유정신이 그렇게 몰아간 말임. 반쯤 장난삼아 쓴 글이라고 함. 팩트 체크!
- 장난이라고요? 그게 취미보다 더 어이없네요.
- 그게 아니고 반쯤 장난. 팩트 체크!
- 뱀심 금지! 질투하지 맙시다. 나유정이 연기를 너무 잘해서 살린 건 맞는데, 대본도 좋더라. 구해서 봤는데 진짜 잘 썼음. 작품은 읽어 보고하는 소리임?
- 읽어보고 자시고요. 드라마 보면 딱 웹소설 감성이던데? 개연성 떨어지고 그런 내용에 무슨 의미를 담을 수 있겠음? 딱 스낵 컬처잖아. 예전 귀염이 소설 수준.
- 윗분 본인 드라마에 무슨 철학 담으심? 불륜관계 권선징악?
- 귀염이 돈 겁나게 벌었는데. 영화화도 되고. 매우 부러움
- IC 내 말은 아무리 방영 스케줄이 이상진 성폭행 사건 때문에 꼬였다고 해서 그런 수준 낮은 작품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 나름 업계 상황도 디테일하고 재미만 있던데 드라마도 안 보고 하는 소리 아니세요? 기존 드라마 공식을 깨서 나는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지던데?
- 공모전 작품이 어떻게 바로 저렇게 드라마화가 됐는지 알 수가 없네. 누구 아는 사람 있음?
- 나도 궁금해서 아는 사람 통해서 물어봤는데 작가가 공모전에 대본 전체를 냈다네. 10화 전부.
- 흐허···. 미쳤네. 그거 기획안하고 대본 2화분만 내는 거 아니었어?
- 그러니까 웹소설 작가가 심심해서 대본은 싹 다 써놨겠다. 공모전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로 별 생각 없이 투고한 거겠지.
- 초심자의 행운 뭐 이런 건가?
- 이 뱀심들 진짜 대본 읽어보라니까? 아무리 지금 쓰는 글이 힘들고 남의 글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 거 잘 아는데 진짜 무조건 읽어봐라. 진심으로 잘 썼다. 그리고 TV 나온 거 보니까 작가가 15년 이상 글을 썼던데? 너희 중에 15년 이상 글 쓴 사람 손들어 봐.
- 그래도 `슬덕`까지야 방송국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부부의 비밀 2는 너무 오버 아닙니까?
- 사실 그건 맞지.
- 나유정과 그 매니저의 언론 플레이에 JTVC가 당한 거 아닌가?
- 웃기시네. 너 어디에 있는 작가냐? 그냥 지망생 아냐? JTVC 이준환 PD 몰라? 그 양반이 어떤 지독한 양반인데,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라.
- 살짝 물어보니 원고료가 회당 7천이란다. JTVC가 쳐 돌았나? 하나 히트시켰다고 무슨 회당 7천을?? 그 정도면 거의 탑급 아니냐?
- 탑급은 아니고 탑급에 준하긴 하네. 아마 젊은 작가 중에서는 탑일 듯.
- 와! 진짜 대박이네. 히트작 하나만 터트리면 인생이 이렇게 바뀌는구나.
- 글쎄? 입봉작은 운 좋게 터졌는데···. 웹소설을 언급한 이상 차기작에서 바로 고꾸라지면 재기하기 힘들 텐데?
-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 저렇게 어그로를 끌었으니 나중에 시청률 안 나오면 욕 엄청나게 얻어먹을 거야.
- 부부의 비밀 후광이 있어서 1, 2회는 무조건 10% 넘길 거 같은데······. 흠······.
- 여기 뱀심들 어디 두고 보자고 부들부들하고 있네. 아주 완벽히 망하기를 기도하고 있구만? 지극정성이야 아주!
- 웃기고 있네. 너도 웹소에서 넘어왔냐? 그 딴 거 관심도 없거든?
- 네. 그러세요.
- 뜬금없긴 한데 그 작가 잘생겼더라. 저렇게 생긴 작가 본 적 있음?
- 있겠냐? 딱 내 취향임. 사무실에 그런 남자 작가 한 명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 응 꿈 깨시고요. 오늘도 왕 작가님 수발 잘 들으세요.
* * *
웹소설 갤러리에도 게시물이 올라왔다.
[제목 : 슬덕 작가가 웹소설 작가라고 하네.]
웹소 작가 망생이 2년째, 쓰는 족족 폭삭 망하고 집안에서 밥만 축내는 식충이 취급이다.
오늘 500자 쓰고 예능을 보는데 `슬덕` 작가가 나유정이랑 같이 나왔더라.
그 드라마 작가 진짜 매니저던데 전직 웹소설 작가였대.
웹소설로 먹고는 살았다던데 갑자기 기획사에 들어가 매니저를 하고 경험을 쌓은 뒤 짬짬이 글을 써서 드라마 작가가 됐다더라.
나도 이 기회에 기획사나 들어가 볼까? 걸그룹 매니저 하다가 연예계물 쓰는 거지. 어때?
[댓글]
- 거울은 보고 이야기하는 거니?
- 너 인마 네가 찍어서 올린 사진 보면 네 컴퓨터 모니터에 반사돼서 네 모습 살짝 보이는 거 아냐? ㅋㅋㅋ
- 일단 50kg 빼고 시작하자.
- 걸그룹 멤버들한테 사육당하러 가냐? 걸그룹이 널 매니지해야겠다. ㅋㅋ
- 망생아 500자가 뭐냐, 5,000자를 쓰고 TV 봐라.
- 외모가 슬덕 작가 정도는 되어야 취직되지. 넌 안돼.
- 젠장! 인생 왜 이렇게 불공평한 거야. 이준형 작가라고? 드라마 개꿀잼이던데 작가는 무슨 연예인처럼 생겼더라.
- 글 쓴 망생이 한강대학교 다이빙학과 입학하러 갑니다.
- 수온이 괜찮을 것 같은데? 온몸을 포근하게 감싸줄 듯!
- 다이빙학과 졸업하면 회귀하냐?
- 지금 모습 그대로 회귀?
- 제가 무슨 다이빙을 하러 가겠냐. 기껏 해봐야 롤하러 가겠지. 망생아. 게임은 4,500자마저 쓰고 해라.
- 그나저나 슬덕 작가 필명 아는 사람 있냐? 그 당시 연예계 물을 썼다고? 하도 양산작들이 많아서 찾기 힘들 것 같은데······.
- 한참 붐이었을 때라 네티즌 수사대도 못 찾는다.
- 설마 레전드인 탑티어 매니지먼트는 아니겠지?
- 아니래. 확실한 정보임. 슬덕 작가는 딱 봐도 너무 젊잖아.
- 궁금하네. 스스로까진 않겠지? 당당히 스타 작가의 길을 걷고 있는데 혹시 떡타지 같은 거 썼으면 흑역사잖아.
- 야이 미친···.
* * *
한편, 나유정의 SNS도 불이 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유정이에요. 어제 방송이 나갔는데 잘들 보셨는지요? 오랜만에 나간 예능이라 무척 흥분되더라고요. 나름 잘 마쳤거든요?
그런데 오늘 보니 기사가 계속 자극적으로 나가는 것 같습니다. 방송을 보신 분들께서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아실 거예요. 재미를 위해서 한 말들이 과장되게 와전되고 있습니다.
특히 제 매니저인 이준형 작가가 이상한 기사들로 곤란해하는 것 같은데요. 제 매니저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로 글을 잘 씁니다. 차기작 대본을 정말로 손에 땀을 쥐며 봤거든요. 그리고 저의 변신도 기대해주세요. 차기작에서 뵙겠습니다. 빠이···.]
<추신> 자꾸 그녀를 위해 작품을 썼다! 어쩐다 그러면서 이상한 기사 제목으로 어그로 끄는 기자님들! 그러지 마세요. 자꾸 저랑 제 매니저랑 이상한 관계로 엮어서 몰고 가시려고 하는데요. 저희 진짜 그런 사이 아니랍니다. 끝.
[댓글]
- 언니, 작가님이랑 사귀면 안 되나요?
ㄴ나유정 : 응. 안 사귐.
- 유정 언니. 극구 부인하셔도 너무 달달해요. 알콩달콩. 히힛.
ㄴ나유정 : 달고나 커피나 원샷!
- 너를 위해 대작을 준비했어. 출연해줄래?
ㄴ 나유정 : 너 혼난다. 지금 잘못하면 오디션 보게 생겼다고!
- 사겨라! 사겨라! 사겨라!
ㄴ 나유정 : 어휴!
* * *
휴···. 난리가 났군. 나랑 나유정이 최근 화제의 중심인 것 같다. 단 한 번 방송에 나갔을 뿐인데 이렇게 난리가 나다니···. 확실히 슬기로운 덕질생활의 인기가 높긴 높았나 보다.
방송에 나가고 주변에서 연락이 많이 왔다. 특히 학교 동창들과 친구들에게 연락이 많이 왔다.
TVM 예능 작가로 일하고 있는 오수정에게서 곧 대학 연극 동아리 OB 모임이 있으니 같이 나가자는 연락을 받았다.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했더니 무조건 같이 가자고 했다. 왠지 이번엔 가봐야 할 것 같았다.
나유정이 혹시나 사고를 치지 않을까 감시를 하고 있었는데, SNS를 보니 시름을 덜어도 될 것 같았다. 그녀가 민심 관리를 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촬영도 하기 전에 괜히 이상한 열애 소문 같은 게 퍼지면 좋아질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물론, 우리가 사귀거나 하는 것도 아니긴 했다.
오늘은 오전부터 CF 광고를 찍는 날.
제의가 들어온 아이템은 최고급 안마의자였다. 그녀는 잠시 쉬는 동안 모 보이그룹 멤버가 읽었다는 에세이를 안마의자에 앉아서 읽고 있었다.
그래. 모태 독신(Forever alone) 나유정은 평생 아이돌이나 덕질하며 살게 놔두자.
그렇게 CF 촬영이 끝난 후 나는 고급 일식당에서 이준환 PD를 만났다. 오늘은 내 밑으로 배속된 대성이가 나 대신 나유정을 데려다주기로 했다.
나유정이 살짝 투덜댔으나 어쩌겠는가? 이제 나도 슬슬 바빠질 텐데 익숙해져야지.
"안녕하셨어요. 작가님."
"네. 얼마 안 됐는데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피디님."
"요즘 장안의 화제입니다. 그래서 벌써 홍보 효과를 아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들의 관심이 좀 불편하네요."
"하하···. 유명해지시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제가 그런 분들 많이 봤었죠."
가게 직원이 들어와 미리 주문된 메뉴를 가져왔다. 우리는 천천히 회를 먹으며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제가 그 방송을 추천해드리기도 했고 해서 본방 사수를 했거든요. 재미있던데요?"
"부끄럽네요. 민간인이 방송 나와서 어버버버 했는데요 뭘···."
"아니요. 특히 나유정 씨와 케미가 아주 좋았습니다. 드라마홍보도 되고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케미요? 저희가 무슨 케미가 있습니까?"
나는 이 양반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정확하게는 알 수 없지만요. 뭔가 이성 간의 썸과 현실남매 사이를 미묘하게 오고 간달까요? 뭔가 감성을 자극하는 그런 게 있어요."
"네에?"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란 말인가?
"작가님이 직접 캐스팅을 주선한 스토리도 재밌고, 유정 씨가 써달라고 떼쓴 대본을 써준 것도 그렇고요. 하지만 서로 못 볼 꼴을 다 본 사이처럼 티격태격하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더구나 작가님은 실제로 유정 씨 매니저이기도 하고요."
"뭐···. 듣고 보니···."
"사실 이런 독특한 관계가 현실에선 별로 없습니다. 오죽 답답했으면 SNS에 나유정과 이준형을 이어주자는 해시태그까지 돌까요."
"허···. 이거야 원. 정작 당사자들은 아무 생각도 없는데 다들 왜 이러는 건지."
"뭐 다 한때입니다. 곧 시들해 질 거고요. 그런 게 인기란 놈이죠."
"그러게나 말입니다."
"아 참··· 회도 이제 좀 많이 먹은 거 같은데 본격적인 이야기를 꺼내 볼까요?"
"그러시죠. 피디님."
"오늘 뵙자고 한 것은 한번 대접할 목적도 있었지만, 주인공인 김인애 역에 지원한 배우 리스트를 보여드리기 위함입니다."
"오! 주연 배우요. 저번에 대본 돌리셨다고 하셨는데 누가 하신다고 했는지 궁금하네요."
"여기 배우들 프로필이 있습니다."
이준환 PD가 옆에 가방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더니 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는 봉투 안에서 4개의 프로필이 들어있었다.
"한번 보시죠."
나는 이준환 PD가 꺼낸 배우 프로필을 건네받았다. 그 프로필을 넘길 때마다 감탄성이 터져 나왔다. 모두 특색이 있거나 경쟁력이 있는 배우들이었다.
"와···. 대단한데요. 정말 이분들이 전부 제 작품에 출연하고 싶다는 게 사실인가요?"
내가 놀라서 반문하자 이준환 PD는 얼굴에 빙긋 미소를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아주 강하게 출연 요청을 해왔습니다.”
어휴~ 겁나네! 이거. 스케일 겁난다. 이 배우 중 한 명하고 나유정을 붙여놓으면 그야말로 극을 이끌어가는 최강의 쌍두마차가 될 것 같았다.
그 배우들의 이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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