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44화 (44/263)

취미입니다만? (1)

나는 나유정과 함께 강남에 가서 피부 관리를 받고 머리를 다듬었다. 피부 관리는 처음이었는데 가끔 와서 관리를 받으면 좋을 것 같았다.

느낌적인 느낌이었지만 피부가 한결 좋아진 것 같았다.

내가 피부 관리와 머리까지 만진 이유는 바로 방송 출연 때문이었다. 머리야 언제나 깔끔하고, 단정하게 하고 다녀서 상관없었지만, 피부는 예전보다 많이 안 좋아진 게 사실이었다.

아···. 그립다. 20대에 피부 진짜 좋았었는데···.

그래도 방송에 앞서 메이크업을 받으니 나도 진짜 연예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옆에서 나유정이 메이크업을 받은 내 모습을 보더니 살짝 미소를 지었다.

"와! 우리 이 작가님 때 빼고 광내니까 볼만한데요? 간장게장 집에서 사진 찍혔을 때 하고는 딴판이네. 훈남 맞다."

"후후···. 원래 제가 학교에서 킹카였습니다. 동아리에서도 제일 잘 나갔었고요."

"오호. 왠지 바람둥이 냄새가 나는데···."

"언제는 아재 냄새라면서요."

"·········."

나유정은 내 얼굴을 보며 갑자기 입을 꾹 다물었다.

"저 평상시도 패션 감각 괜찮지 않나요? 한 달에 한 번씩 잡지도 사보는 남자입니다."

오늘 방송 출연을 하기 위해 저번에 구매해 놓은 휴고 보스 수트로 멋을 냈다. 색상은 정확히 모르겠지만 푸른 색감이 섞인 검은색 정장으로 약간 광택이 있어서 고급스러웠다.

안쪽에는 은색 셔츠를 입고 검은색 넥타이를 맸다. 거기다 왼손에는 태그호이어 까레라(?)를 찼다. 사실 시계는 별로 관심이 없어서 의사인 형 것을 훔쳐 왔다. 가격은 잘 모르지만 좀 나가는 거로 알고 있다.

"뭐···. 준형 씨가 스타일이 좋긴 하죠."

"어라? 하하······. 대배우님께서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위아래로 내 스타일을 쭉 스캔하는 것 같았다.

"오늘 잘할 자신 있어요? 갑자기 인터뷰가 예능 쪽으로 바뀌었잖아요. 더구나 오늘 처음 방송 나가는 건데······."

"그냥 편안하게 하고 오려고요. 유정 씨가 메인이고 저야 유정 씨 옆에서 보조하는 건데요."

"흐음···. 글쎄요. 아닌 거 같은데···."

나유정은 고개를 까딱하며 과연 그럴 것인지 의문을 표했다.

똑똑···.

"출연자분들! 이제 녹화 들어갑니다."

방송 스태프의 목소리가 대기실 문밖에서 들려왔다.

*  *  *

"안녕하십니까? 콘텐츠와 인문학이 만났다! `방구석 오늘`의 유정신, 정규성입니다. 반갑습니다! 오늘의 주제는 바로 얼마 전 종영을 한 드라마죠? 바로! 부부의 비밀입니다. 오랜만에 드라마를 하는 것 같네요."

"그러네요. 요 몇 주간 쭉 영화만 했잖아요."

"그거야. JTVC 드라마들이 그동안 줄줄이 망···."

"어허! 쉿!"

"죄, 죄송합니다."

"이제 프리랜서라고 막 나가네?"

"아닙니다. 전 언제나 JTVC의 아들이죠. 영원한 마음의 고향!"

"헛소리는 그만하고 오늘의 게스트를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최근 핫이슈로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 최고의 연예인과 작가 겸 매니저입니다. 아직 방송으로는 정식으로 인사를 드린 적이 없다고 합니다. 화제의 드라마 `슬기로운 덕질생활`의 주인공 역인 나유정 씨 그리고 작가 겸 매니저인 이준형 씨입니다. 어서 오십시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나유정은 MC들의 말을 주의 깊게 듣고 있다가 말이 끝나자마자 능숙하게 멘트를 이어받으며 인사를 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그녀를 따라 덩달아 꾸벅 인사했다.

"인터뷰를 정말로 안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저희 제작진들도 섭외하는데 상당히 고생했다는 소리가 있던데요."

방구석 오늘의 큰형 유정신이 우리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무래도 최근 저희가 자의로 그런 홍보를 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좀 그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인 게 맞습니다. 더군다나 여기 이 작가님은 드라마만 한 편 썼다뿐이지 사실상 그냥 무명작가였으니까요."

"아! 그 유명한 간장게장 집 사진···."

"맞습니다. 그게 발단이었죠."

"유정 씨야 뭐 온 국민이 다 아는 인기 있는 배우시고 워낙 사생활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남자와 찍힌 사진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정말로 드디어 모태솔로인 유정 씨가 연애를 시작한 게 아니냐는 말들이 많았었는데요?"

"모태솔로요? 제가요?"

나유정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닙니까? 예전 모 매체에서 그런 발언을 하셔서 흑역사가 되신 거로 알고 있습니다만···."

작가들이 조사를 열심히 했는지 유정신이 처음부터 강한 질문을 하고 있었다.

역시 예능이라 이건가?

"그때는 제가 순진했었죠. 하지만 지금도 그럴까요?"

그녀는 두 MC를 보며 환하고 자신감 있는 미소를 지었다.

"어? 그럼 아닙니까?"

"글쎄요. 노코멘트하겠습니다."

나유정은 확실히 방송 짬이 있어서 그런지 능수능란해 보였다. 정말로 그 이후에 누구를 사귄 경험이 있는 것처럼 말을 했다.

`뭐야. 나유정 모태솔로면서 구라 치는 것 봐. 저 표정 가증스러운 거 보소.`

물론, 모태솔로라는 건 내 추측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느낌이라는 게 있다. 개인적으로 연락하는 남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최근에야 테리우스와 단톡방에서 소식을 주고받는 정도···.

그때마다 그녀는 정말로 행복해하는 표정이었다. 멘트 하나하나에도 고민하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아! 물론 유정 씨가 SNS에 해명 글을 바로 올려서 작가분과 열애가 아니라고 하셨는데, 그 후로 더 논란이 됐습니다. 그렇죠?"

"네. 그 사진의 드라마 작가가 바로 여기 나와계시는 제 매니저시거든요."

"지금 실물로 보니 유정 씨의 해명과는 다르게 무척이나 훈남이신데요?"

"아. 칭찬 감사합니다."

"아하하······. 사실, 이 작가님이 오늘 저랑 같이 피부 관리도 받고 옷도 평소와 다르게 힘 좀 줬어요. 그래서 그럴 겁니다. 평상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에이···. 연예인 뺨치게 생기셨는데요. 혹시 유정 씨 눈이 너무 높으신 거 아닌가요?"

"제가요?"

"네. 혹시 그래서 모태솔······."

"하하하···."

정규성이 농담을 하면 유정신이 크게 웃어 추임새를 넣었다.

"아, 아닙니다만."

"하하... 저 정도면 괜찮은 것 같은데요. 유정 씨는 취향이 다른 것 같습니다."

"취향요?"

"네. 유정 씨가 사실 연하를 좋아하는 게 아닌가 싶은······."

"아하······. 뭔지 알 것 같아요. 슬덕 말씀이시죠?"

나유정의 얼굴이 다시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헉! 그만 놀려야지. 폭주해서 사고 치면 안 되니까.

"당연히 농담이고요. 사실 최근에 제가 이렇게까지 화제가 된 건 최고 여배우의 매니저가 해당 작품의 작가라고 하니 사람들이 다들 신기해하는 것 같습니다. 제 가족들도 신기해했거든요."

"가족들에게도 비밀로 하셨군요."

"어쩌다 보니 타이밍이 안 맞아서 말을 못 했습니다. 그래서 혼 좀 났습니다."

"글은 언제부터 쓰신 건가요?"

"중학교 때부터 썼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환상문학상을 받기도 했었고, 대학교도 문예창작과에 입학해서 전공까지 했습니다. 연차로 따지면 15년 이상이네요."

"혹시 어렸을 때 야한 소설도 써 보셨는지···."

"아 참···. 규성야 넌 왜 그런 것만 관심이 있는 거야? 이제 프리라고 막 나가는 거니?"

"아 죄송합니다. 저는 방송심의위원회 규정을 준수합니다."

"요즘에 아주 미튜브로 떴다고 말투가 살짝 쌈마이가 된 거 같다?"

"시정하겠습니다. 진행하시죠."

정규성 씨 아나운서였을 때도 원래 저러지 않았나요?

나유정이 뾰로통한 표정으로 두 MC를 노려보았다. 그들은 나유정의 아름다운 얼굴을 보며 바보처럼 헤벌쭉해지는 게 아닌가?

"말투가 이래서 죄송합니다. 여신님."

"흥!"

"에··· 이제 진행 좀 합시다. 어쨌거나 작가님은 글을 쓰신지 상당히 오래되셨군요."

"그렇죠. 맞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작품이 좋았던 거군요."

"혹시 보셨는지요?"

나는 유정신이 그 말을 하자 호기심이 일어 일부러 물어봤다.

"다른 방송사지만 그 드라마 골수팬입니다."

헉! 영광이네. 왠지 기쁘구만.

"고등학생이 환상문학상을 받을 정도라면, 상당히 재능이 있으셨나 봅니다?"

"꼭 그런 것도 아닙니다. 처음에는 재능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넓고 천재는 모래알처럼 많더군요."

"허허. 겸손하시군요. 그래도 아직 30대도 안 되셨는데 이렇게 히트한 드라마가 있다는 건 대단한 겁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정신님 노래 엄청 좋아합니다."

"역시 성공한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 음악을 듣는 귀까지 있고···."

"하하하···."

"본격적으로 부부의 비밀 리뷰를 하기 전에 한 가지 더 여쭙겠습니다. 많은 분이 가장 궁금해하는 거 같아서요."

"네. 물어보십시오."

"글을 쓰시는 분이 어쩌다가 매니저라는 직업을 가지게 되신 건가요?"

"제가 원래는 웹 소설 작가였습니다. 그럭저럭 글로 먹고살다가 아버지께서 사회생활도 안 해본 놈의 글에 무슨 깊이가 있겠냐라고 하시더군요. 솔직히 충격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가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별로 없더군요. 그러다 마침 기획사에서 사람을 뽑는다고 하길래 지원을 했습니다."

"왜 하필이면 연예기획사였죠?"

"사실 그 당시 제가 연예계 물을 쓰고 있었거든요."

"연예계 물이요?"

"네. 정신님처럼 프로듀서가 주인공이었는데요. 아이돌 그룹 제작하고 그 그룹이 경연하고 하는 내용입니다."

"아···. 그런 것도 소설로 쓰는군요. 약간 오디션 프로그램도 나오고 하는?"

"정확합니다."

"왜 나를 주인공으로 쓰고 그래요."

"형! 형이 만든 걸그룹은 망했잖아요."

"아직 활동 잘하고 있거든? 어디서 은근슬쩍 사망신고를 하려고 들어? 소송한 번 당해볼래?"

"죄송합니다. 법대로 하면 제가 불리하죠. 지은 죄가 커서···."

허···. 듣던 대로였다. 정규성은 정말로 대본에 있지도 않은 멘트를 그냥 막 날리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하면서 아슬아슬 선을 잘 지킬까 궁금했다.

"그렇다면 매니저는 글을 위해 경험 삼아 해본 건가요?"

"아. 꼭 그런건 아닙니다. 지금은 애착이 생겼죠. 여기 유정 씨와 아이돌 그룹인 테리우스와도 정이 많이 들었고요."

"그러면 매니저 활동을 하면서 취미로 글을 쓰셨군요?"

"아···. 음···. 그렇게 이야기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사실 `슬기로운 덕질생활`은 그냥 반 장난삼아 쓴 글입니다. 갑자기 소재가 생각나 그냥 이틀 만에 쭉 써버렸어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나유정의 얼굴을 살짝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나름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루 만에 썼다고 하면 믿지 않을 것 같아 이틀이라고 그냥 둘러댔다. 이틀도 짧긴 짧은데···.

"장난에···. 이틀 만이라···."

"시청률 23%를 돌파했는데요?"

"연기도 좋았고, 연출도 좋았고 모든 게 딱딱 맞아서 나온 결과 같습니다."

"정신 씨! 다른 방송국 드라마 홍보 그만 하세요. 우리 마지막으로 물어볼 게 있잖아요."

"그렇죠. `슬덕` 이후 차기작으로 JTVC에서 부부의 비밀 2를 제작한다는데 거기 대본을 쓰셨죠? 혹시 그것도 반쯤 장난삼아 쓰신 건 아니시겠죠? JTVC의 시청률이 걸린 일인데요. 돈도 많이 투입된다는데 망했다 하면 기둥뿌리가 흔들···."

"아, 아닙니다. 장난이라니요. 물론 시작은 유정 씨가 한번 써보라고 옆에서 부추긴 면이 없진 않지만, 제가 예전에 생각하던 스토리를 부부의 비밀에 나오는 초반 플롯과 살짝 겹쳐서 써봤는데요. 기사를 보고 JTVC 스튜디오에서 대본을 읽어보시더니 계약을 하자고 해서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어라···. 잠깐만요. 점점 뭔가 분위기가 이상해져 갑니다. 뭔가 달달한데요? 나유정 씨가 한번 써보라고 했다고요? 그리고 그걸 작가님이 쓰고?"

"어흠. 어흠."

"오, 오해 하지 마세요. 이준형 작가는 글을 무지 빨리 씁니다. 저를 위해서 쓰거나 한 게 아니고요. 안내키면 안 하는 사람이에요. 오늘 여기서 리뷰할 부부의 비밀이 좋아서 글을 쓴 것 같아요. 거실에서 정신없이 부부의 비밀을 보고 있더라고요."

"네? 유정 씨 집 거실에서 준형 씨가 TV를 봤다고요?"

정규성이 화들짝 놀라며 오버를 했다.

"아니 아니···. 제 매니저니까 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거죠. 스케줄 때문에······."

"하으···. 뭔가 마음이 간질간질한데요."

규성은 무흣한 미소를 지으며 부끄러운 듯 얼굴을 감싸 쥐었다.

"제가 그 마음 좀 긁어드릴까요?"

앗! 갑분싸다. 내가 말하고도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이렇게 유머 감각이 없는 사람이 아닌데···. 젠장! 이런 곳에 나와서 괜한 예능 욕심 때문에 망하다니!

"긁으면 안 돼요. 작가님. 쟤 가슴에 털 엄청 많아요. 손톱에 털 끼어요."

"하하···. 제모했거든요!"

다행히 유정신이 치고 들어와서 갑분싸가 되는 상황을 막아줬다. 역시 방송 진행 베테랑다운 솜씨였다.

"휴···. 제가 프로그램을 잘못 나온 것 같아요. 이렇게 몰아가는 분위기였다면 안 나오는 건데···."

나유정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이쿠. 그럼 안 되죠. 저희가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여왕님."

"작가님. 마지막으로 차기작 홍보 한번 하시죠."

"네. 곧 제작될 제 두 번째 드라마 많이 시청해주시기 바랍니다. 제목은 부부의 비밀 2가 아니라 다른 제목이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예능 출연이 끝이 났다.

원래는 손숙휘 아나운서의 문화초대석에 나가려고 했는데 너무 묵직해서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 이 프로그램으로 주선해준 모양이었다.

이준환 PD의 정책적 결정이었다.

그리고 오후에 연달아 TVM의 `슬기로운 덕질생활` 스페셜 방송에도 나유정과 함께 인터뷰하는 장면을 찍었다.

그리고 며칠 간은 조용했다. 드라마는 순조롭게 캐스팅을 시작했으며, 나유정은 파주에서 계속 액션스쿨을 다니며 검도를 배우고, 헬스장에서 PT를 끊어 근육질 몸을 본격적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잠깐의 한가로움을 맛보며 오랜만에 글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방구석 오늘"이 방송된 다음 날.

연예 기사란에 또다시 내 이야기가 도배됐다.

[슬기로운 덕질생활은 그냥 장난삼아 쓴 글···. 불과 이틀 만에 완성해.]

[나유정의 스타 작가 매니저. "글쓰기는 취미입니다만?"]

[부부의 비밀 2는 그녀를 위해···.]

[천재 스타 작가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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