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새끼를 망치려 한 놈이 너냐? (4)
"자! 테리우스 컴백 싱글앨범 제2차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는요···. 총득표수 50표 중 A 곡 43표, B 7표로 A 곡이 승리하였습니다. 탈락자는 B 곡입니다. 이도훈 프로듀서님 곡은 아쉽지만 컴백 싱글에서 더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수고하셨고요···."
나, 나유정 미친···. 보는 사람 별로 없다고 여기가 지금 아이돌 메이커 101인 줄 아나···.
"우와!"
테리우스 멤버들이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가운데 낀 정이든은 함박웃음까지는 아니더라도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거, 거짓말이지?"
이도훈 프로듀서는 투표 결과를 믿지 못한다는 듯 말을 더듬거리고 있었다.
"이도훈 PD님. 여기 명백한 증거들도 있어요. 절대 조작이 아닙니다."
나유정은 북풍한설이 부는 차가운 얼굴로 이도훈을 노려보고 있었다. 나유정 표정 아주 좋고.
"말도 안 돼!"
고개를 흔들며 현실에서 도피하고 있는 이도훈이었다.
"잠시만요. 더욱 충격적인 건 점수입니다. A 곡의 평균점수가 100점 만점에 91점이었는데요. B 곡은 55점이었습니다."
"55점이라고?"
이도훈은 거의 뇌졸중으로 졸도 직전인 것처럼 얼굴이 시뻘게졌다. 역시 점수를 매기는 것을 넣은 건 잘한듯싶었다. 수치심을 극한으로 몰고 갔다.
자신의 실력이 점수화돼서 만천하에 드러나는 거니까. 내가 이도훈이라도 창피할 것 같았다. 쥐구멍 어디 있니?
"더욱 최악인 것은요. 밑에 달린 비평이네요. 점수란 밑에 '하고 싶은 말'이라는 칸이 있었는데요.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와우!"
나유정은 못 볼 걸 봤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어, 어떤 말을 했길래 그, 그런 표정이···."
이도훈의 이미 얼굴은 흙빛이 되어있었다.
"자! B 곡에 대한 비평이 정리되었는데요. 읽어드리겠습니다. 놀라지 마세요. 정신 꽉 잡고 들으세요."
꿀꺽···.
나유정의 진행 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뭐야! 나유정! 아이돌 메이커 101의 대표 장군성보다 훨씬 잘하잖아? 나중에 뮤직넷에 MC로 추천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B 곡 트랜디한 사운드의 잡탕! 머릿속에 남는 게 없다."
"큭···."
"B 곡 뭐임? 기껏 네임 밸류 올려놨더니 눈을 가리고 다시 하수구로 빠트릴 작정인가?"
"아오···."
"B 곡은 절대 안 된다. 망하고 싶으면 이 곡으로 나가라."
"·········."
급기야 고개를 떨구고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드는 이도훈 프로듀서였다.
"아! 물론 좋은 멘트도 하나 있었습니다."
"B 곡은 아침에 잠에서 깰 때 들으면 좋을 듯···"
"푸훗···."
나도 모르게 뿜어버렸다. 아이 C 이건 에바잖아.
"반면에 말이죠. A 곡은 정말 대단하네요. 휴우···. 평가가 대박입니다. 바로 갑니다. 기뻐서 기절하지 마시고요."
얼씨구 신났네. 신났어.
"A 곡으로 컴백하면 차트 상위권으로 무조건 들어간다. 곡이 드라마 이미지와 완벽하게 매치되고 깔끔하고 신났다. 추천 추천!"
"A 곡은 왠지 슈퍼노바의 초기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슈퍼노바가 곧 군대에 가는데 그 포지션을 가져왔으면 한다."
"A 곡은 많이 들어본 것 같지만 신선하다. 분명 신인이 만든 곡인 듯 중간중간 참신한 시도가 보인다. 추강!"
"물론 지금까지 걸어왔던 노선을 바꾸는 거다. 약간 모험일 수도···. 라는 우려 섞인 비평도 있었습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하지만 드라마로 뜬 테리우스를 아이돌 그룹으로 살리기 위해서는 이든의 곡이 필요했다.
"흠···. 뭐 더 읽어볼 필요가 있나 싶네요. A 곡의 완승입니다."
나유정의 지엄한 멘트를 끝으로 블라인드 테스트가 종료됐다. 나는 나유정에게 잘했다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망연자실한 이도훈 프로듀서를 쳐다보았다.
"프로듀서님. 제가 어제 말씀드렸잖아요. 그 곡은 안돼요. 본인이 듣기에는 좋아 보일지 모르지만, 대중들은 대부분 저하고 비슷하게 생각할 겁니다. 이런 건 좋게 말해줘 봐야 아무 도움이 안 돼요. 그저 냉정하게 바라봐야 합니다. 앞으로 참고하셔서 좋은 곡을 쓰시길 바랍니다."
그랬다. 웹소설 플랫폼에서도 마찬가지다. 노잼이면 유료 불가, 국룰이다. 조작? 프로모션? 재미없으면 말짱 황이다.
실 구매수로 이어지지 않으니 돈이 안 벌린다. 그렇다고 재능이 있는 놈들만 대박 작품을 내는가? 또 그건 아니다. 꾸준하고 성실하면 얻어걸리기도 한다.
나는 매니저 생활을 하며 느꼈던 바를 떠올렸다. 요즘 아이돌 시장은 그야말로 핏빛 가득한 레드오션 전쟁터다.
아무리 1티어 아이돌이라도 곡이 안 좋으면 상위권에서 오래 못 버틴다.
팬덤의 쉴새 없는 스트리밍 총공도 하루 이틀이지···.
그런데 겨우 드라마 하나 뜬 주제에 이딴 곡으로 감히 상위권을 넘본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을 지경이다.
이도훈의 망연자실한 표정을 보고 있으니 예전에 내가 연재를 하다가 뇌절을 치고 불 꺼진 방에서 멍하니 벽을 보던 생각이 났다.
'쯧쯧···. 왠지 씁쓸하네. 그래도 어쩔 수 있냐? 도훈아. 학벌이나 인맥이 아니라 실력으로 승부를 겨뤄야 하는 게 바로 콘텐츠야. 오키?'
나는 나도 모르게 그만 이도훈의 어깨를 손으로 토닥거렸다. 그러자 이도훈 프로듀서가 나를 째려보더니 손으로 내 팔을 쳐내는 게 아닌가?
"진정하세요. 이 팀장님. 다음 기회를 노려보세요. 혹시 압니까? 이 곡으로 빵 떠서 다음 곡에 피디님 곡이 선택돼서 돈방석에 앉으실지?"
"후···."
진짜 충고였는데 이도훈은 그 말도 비아냥거리는 거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됐고요. 일단 한 이사님께 보고드리러 가겠습니다."
그는 쌩하니 몸을 돌려 연습실을 빠져나갔다.
본부장한테 꼬바르러 가나? 가봐야 욕만 먹을 텐데···. 너 그러다 손절 당한다.
"우와! 정이든 프로듀서 대박!"
영관이는 이든이 기특한지 아예 뒤에서 얼싸안고 있었다.
"형···. 아니 이 실장님. 우리 싱어송라이터 아이돌 그룹 되는 거야?"
래퍼인 창민이가 흥분하며 침을 튀겼다. 쟤도 세수도 안 했는데 어쩜 이렇게 얼굴에서 빛이 날까?
얼굴 천재인 사기캐 한연준 때문에 피해를 보는 녀석이었다. 어떤 그룹에 박아놔도 센터를 차지할 것 같은 멤버였다.
물론 정작 자신은 외모 이야기를 꺼내는 걸 극도로 싫어했다. 이 외모 언급 결벽증 같으니라고···.
실력은 무슨! 우월한 유전자를 타고난 게 행복이라는 걸 모르는 짜증나는 녀석이다. 그저 이제는 외모로 뽑은 아이돌이 아니라 실력파 그룹이 되는 거 같아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형! 우리 이제 얼굴로 뽑은 어쩌고 그런 수식어에서 벗어날 수 있냐고!"
"그래. 인마. 싱어송라이터! 요즘은 아이돌도 곡을 써야 메리트가 있어. 그 누구냐 T-Rex처럼 말이야. 야! 정이든. T-Rex처럼 될 수 있겠어?"
내가 호기롭게 질문하자 이든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피식 웃는다.
"당연한 소릴···."
"·········."
어쭈? 뭐냐 그 자신감은? 해보니까 별거 아니라 이거야? 저 녀석도 일본 만화를 많이 읽었나?
내가 T-Rex의 아우라는 못 봤지만 너의 아우라를 보면 충분할 것 같다. 그리고 병춘이. 아니 다니엘···. 다니엘이라···. 너 혹시 아이돌 메이커 101 팬이니?
아무튼, 다니엘도 꽤 괜찮은 능력을 갖춘 프로듀서니까 둘이 협업하면 우리 회사에 알아주는 작곡팀이 나올 수도 있겠군.
잠깐 나도 작사가로 살짝 숟가락을 얹어볼까? 이번 데뷔곡에 작사가로 내 이름이 올라간다.
작사가로 곡을 쌓아 올리면 연금같이 짭짤하게 나온다던데 사실인지 모르겠다. 그래 봐야 앞으로 내가 벌 돈의 푼돈이겠지만 말이다.
"어? 이거 우리 회사에 새로운 작곡팀이 생긴 거 아냐?"
"그러게. 뭔가 극적인데?"
"형들! 이번 기회에 팀 하나 만들까?"
영관의 말을 들은 이든이 나와 다니엘을 보며 말을 꺼냈다.
"나는 작곡에 곡자도 모르는데 무슨 작곡팀에 들어가? 그냥 작사나 하면 모를까···."
"아냐. 형. 항상 팀을 이뤄서 작업하고, 히트곡을 팍팍 썼던 그 유명한 작곡가와 작사가가 있을걸? 이름은 기억 안 난다."
김훈까지 가세해서 자꾸 팀을 만들라고 재촉하고 있었다.
"그게 중요하냐? 필요할 때 그냥 하면 되지."
내 심드렁한 말에 갑자기 울 것 같은 표정의 다니엘이 나에게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안 그래도 처음 봤을 때 삐쩍 말라서 굶어 죽을 상판이었는데 날을 새고 나니 정말로 관에 누울 기세였다.
"실장님."
"으응?"
"감사합니다. 저를 마수에서 꺼내주셨어요. 정말로 그만두기 직전이었거든요."
"그래. 넌 합격!"
"네?"
"아냐. 그런 게 있어."
"실장님? 저희 팀 만드시죠. 작곡가건 작사가건 상관없이요."
"만들자. 형."
하룻밤 사이에 곡을 뚝딱 완성한 대단한 녀석들이 자신들과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고 있었다.
"원한다면 하지 뭐. 그런데 굳이 작사가를?"
"실장님이 잘 모르셔서 그래요. 작사가의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짧은 시간 안에 곡에 어울리는 가사를 뽑는 겁니다. 어제 저희가 도와달라고 했는데 15분 만에 가사가 오길래 뭐지 했거든요? 근데 그걸 곡에 넣어보니 대박인 거에요. 진짜 깜짝 놀랐어요. 너무 딱 맞아떨어져서요."
"크흠··· 칭찬해줘서 좋긴 한데 그거야 내가 드라마를 써서 그렇잖아. 어떻게 보면 지금 이 곡의 흐름을 꿰뚫고 있다 보니···"
"그거야 형."
"뭐가?"
"형의 그런 능력."
그런 건가? 생각해보니 그렇다. 사고 이후로 감각이 예민해지고 통찰력이 깊어졌다. 아무리 나라도 찰떡같은 가사를 15분 만에 써내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실제로 가사를 잘만 쓰면 중박이 될 곡을 대박으로 둔갑시키는 경우가 왕왕 존재했으니까.
"그럼 하지 뭐. 하자."
"와! 우리 전용 작곡팀이 생긴 거야? 대단한데?"
리더인 영관이가 기쁜 나머지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고 다니엘은 눈가가 촉촉해졌다.
"이름 정해야지. 이름."
"자! 우리 팀 작사가의 능력을 한번 봅시다. 그는 곧바로 팀의 이름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
영관의 우스운 짓거리가 또 시작됐다.
"아니! 이놈들이 장난하나?"
"30초 드립니다."
"흥! 30초까지도 필요 없다. 방금 나왔어."
"뭔데 그렇게 빨라? 알려줘 봐."
"쓰리콤보(Three-Combo)"
"쓰리콤보라고? 그게 무슨 뜻인데?"
"잽, 잽, 스트레이트다."
"응? 잽, 잽, 스트레이트? 무슨 권투야?"
"권투 용어 맞아. 3연격이지. 너희 둘이 날파리같이 하찮은 작곡 실력으로 잽, 잽을 날리면, 이 본좌가 마지막으로 스트레이트를 꽂아서 K.O.를 시키겠다는 뜻이다."
"푸핫! 뭐래···. 어이없네."
"다른 거 있으면 말하던지."
"아냐. 괜찮다. 쓰리콤보. 뭔가 영화관 팝콘 메뉴 같은데? 난 항상 영화관에 가면 팝콘을 먹지."
다니엘과 나는 얼굴을 찌푸리며 이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정이든은 400년동안 살아와서 틀딱이 되어버려 유머 감각을 잃은 뱀파이어 같았다.
역시 4차원! 엄마가 항상 이런 녀석은 조심하라고 했는데···.
의미야 어쨌거나 우리 팀의 이름은 쓰리 콤보로 정해졌다. 모두가 기뻐했다. 심지어 아이돌 마니아인 나유정도 옆에서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하지만 나는 불만이 하나 있었다. 어제부터 느끼던 뭔지 모를 불쾌함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병춘이를 불렀다.
"다니엘···. 미안한데 너 혹시 예명 바꿀 생각 없니?"
"네?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세요?"
다니엘은 두눈을 크게 뜨고 눈알을 뒤룩뒤룩 굴리며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으음···. 못생긴 얼굴은 아닌데 너무 말라서 보면 볼수록 판타지에 나오는 리치같이 생긴 녀석이었다.
얼굴까지 하얘서 밤에 어두운 골목에서 마주치면 깜짝 놀랄 외모의 소유자.
"그 다니엘이라는 예명이 너무 안 어울리는 거 같아서 그래."
"진짜요? 저는 괜찮은데···."
"내가 안 괜찮아. 다니엘이라는 게 너무 어감이 이상해. 입에 진짜 안 붙어. 안 바꾸면 난 그냥 네 본명으로 부를래. 병춘이었지? 문병춘!"
"앗! 아, 안돼요. 실장님. 절대 안 됩니다. 바꿀게요. 뭐가 좋을까요? 우리 팀명처럼 하나 지어주세요."
"DJ. Nec 어떠냐?"
"DJ. Nec 이요? 뜻이 뭔데요? 어감은 나쁘지 않네요."
"Nec 그러니까 Neck의 준말이야. 머리와 몸통을 이어주는 중간 브릿지라는 거지. 머리에 해당하는 프로듀서인 이든과 몸통에 해당하는 작사가인 나를 이어주는 존재랄까? 너 멜로디 잘 만든다면서 탑라이너 아냐? 목에 중추신경이 가까이 있잖아. 뭔가 컨트롤을 담당하는 그런 역할이랄까?"
"오! 그거 좋네요. 어감도 좋고 의미도 좋고요."
"그래. 그럼 그걸로 바꾸자."
"감사합니다. 실장님."
"감사는 무슨···. 그리고 그냥 형이라고 불러라. 물론 공석에서는 직함을 불러야겠지만."
"알았어요. 형. 흐윽···."
"오케이. 울지마 인마. 그럼 그렇게 가자고."
나는 병춘이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이도훈 프로듀서를 털기 위해서 시작한 일이 작곡, 작사팀을 만들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도훈 프로듀서는 자존심이 있다면 사표를 던지고 나갈 거다. 뭐 나가봐야 별 볼 일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블라인드 테스트는 완승으로 마무리되었다. 나는 날을 새서 피곤해하는 애들을 숙소에 데려다주기로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는 도중에 옆에 있는 연준이가 귓속말로 소곤거렸다.
"형···. 아까 DJ. Nec이요."
"어···"
"그거 네크로멘서(Necromancer)의 준말이죠?"
"헉···."
나는 연준이의 허를 찌르는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아니! 이 녀석! 그 비밀을 알아채다니···. 영원히 라이프 배슬 속에 가둬두려 했건만···.
나는 이 녀석이 웹 소설 중독자라는 것을 깜빡했다. 특히나 그는 정통판타지와 게임판타지를 좋아했다.
한연준은 나를 보며 입을 틀어막고 낄낄거리고 있었다. 재수가 없게 웃고 있어도 얼굴 천재였다. 약간 짜증이 나려고 한다.
나는 그만 무릎으로 한연준의 엉덩이를 가격하고 말았다.
"악!."
그리고 다음 날 나와 나유정은 JTVC와 TVM에서 인터뷰 촬영을 진행했다.
드디어 공식적으로 내가 전국에 알려지는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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