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42화 (42/263)

내 새끼를 망치려 한 놈이 너냐? (3)

아침부터 바득바득 같이 가겠다는 나유정을 데리고 회사에 도착했다.

"오늘 파주 가야 하는데 꼭 회사에 들러야 하겠어요?"

"테리우스 컴백곡을 정하는데 제가 빠지면 안 되죠."

"얼씨구. 매니저 나셨네. 이참에 취업이라도 해보시지 그래요?"

"맘 같아서는 그러고 싶은데 상황이 안 되잖아요. 드라마도 찍어야 하고···."

그녀는 손으로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넘기며 새초롬하게 대답했다.

"아주 열혈 나셨네. 열혈 나셨어. 얼른 올라갑시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작업실로 가보니 마지막 마무리를 하는 정이든과 다니엘이 보였고 그 옆에 소파에 널브러져서 자는 다른 멤버들이 보였다.

그래도 의리는 있는 놈들이다. 정이든을 위해서 함께 날을 샌 것 같았다.

잠깐. 이 녀석들 오늘 오후에 스케줄 없던가? 저녁때쯤 하나 있었던 거 같은데? 아닌가?

"뭐야! 너희들 여기서 날 샌 거야?"

"형 왔어? 유정이 누나도 같이 왔네?"

이든이 컴퓨터를 보고 있다가 몸을 돌려 나를 바라봤다. 다른 녀석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래. 좀 괜찮냐? 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괜찮아. 미칠 정도로 재밌어. 다니엘 형이 좋은 거 많이 알려주네."

"오셨어요?"

옆에 앉아있던 병춘 씨가 손으로 부스스한 얼굴을 쓱 비비더니 일어나서 꾸벅 인사했다.

"그래요. 수고하시네. 어떻게 좀 성과가 있어요?"

"네. 들어보시면 깜짝 놀라실걸요."

"그렇군요. 고생하셨습니다."

"···형. 고마워."

"응? 갑자기 무슨 소린데?"

"형이 괜히 나 때문에 무리한 게 아닌가 싶어서 그래."

"무리는 개뿔! 내가 이런 거로 무리할 사람이냐? 다 치밀한 계획이야 인마. 넌 실컷 인지도 쌓고 그딴 곡으로 컴백하고 싶니?"

"아니···."

정이든의 얼굴은 피곤해 보였지만 살짝 미소가 감도는 것 같았다.

자식. 감동하진 마라.

나도 너희가 확실히 1티어에 들어가야 무게를 잡을 거 아니냐.

"이든아. 누나가 뭐라도 좀 사 올까?

나유정은 본격적으로 테리우스의 매니저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사 오긴 뭘 사와. 결국, 내가 가야 하잖아.'

"으응? 아, 아냐. 누나. 커피 마셨어.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역시 이놈은 반말이 일상화된 녀석이다. 대배우건 뭐건 아무 상관없다. 이제는 한국말에 익숙해졌을 텐데도 일부러 이렇게 하는 거 같다니까?

그나저나 나유정 얼굴 좀 봐. 헤벌쭉 해가 지곤. 아이돌이라면 그저 좋은 거냐?

"어? 작가 형님 오셨어요?"

소파에서 자고 있던 영관이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너희는 왜 안 들어가고 여기 있었어. 녹음이 늦게 끝난 거야?"

"응. 정이든 저 자식이 자꾸 태클을 걸잖아. 지가 무슨 프로듀서인 줄 알어."

아하. 그렇구만. 역시 정이든. 프로페셔널하네. T-Rex 흉내냐? 귀엽네.

멤버들이 하나둘씩 소파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근데 왜 연준이는 안 일어나냐? 얘는 얼굴만 디밀고 파트도 별로 없잖아. 초반에 후딱 끝내고 치웠을 텐데···."

"스마트폰으로 계속 웹소설 봤어."

"어이구···. 진짜!"

"한연준! 얼른 일어나. 형님 오셨다."

"으응? 몇 시야? 아으으···."

얼마 자지도 않았고 불편하게 잤는데도 불구하고 연준의 얼굴은 여전히 잘생겼다. 괜히 얼굴 천재겠는가. 옆에 영관이랑 비교됐다.

"영관아. 넌 세수 좀 하고 와라."

*  *  *

9시 30분에 테리우스의 신곡 선정 블라인드 테스트가 있을 예정이라는 사내 방송이 나갔다.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사항이니 적극적으로 참여하라는 멘트도 나왔다.

잠시 후 아이돌 안무 연습실에 XM Ent. 직원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야? 이준형 작가 선생. 뭘 또 꾸미고 있는 건가?"

가수팀의 조블리 조형택 팀장이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왔다.

"준형쓰? 이게 무슨 일이냐? 우리 회사에서 공개적으로 이런 걸 다하네. 너냐?" 너 프로듀싱&콘텐츠 총괄본부 실장 됐다며?"

배우 2팀 나우민 팀장도 나에게 다가왔다.

둘다 내 옆에 의자에 앉아있던 나유정을 보고 흠칫했으나 그녀가 휴대전화를 보고 있자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 팀장. 이제 우리 상사인데 말조심하자. 이 실장님이라고 불러."

"그런가? 어우 이거 큰일 났네. 자연스럽게 안 나온다."

"괜찮아요. 형님들. 말만 실장이지 매니저 활동 계속할 거예요."

"굳이? 넌 그냥 편하게 앉아서 글이나 쓰지 그러냐? 내가 너 같은 능력 있으면 운전기사 노릇 하기 싫어서 안 한다."

"조 팀장아. 벌써 우리 팀 대성이 배우3팀에게 뺏겼다. 대성이가 나유정 씨 같이 케어할거야."

"그럼 그냥 글 쓰러 놀러 다니는 거냐? 매니저는 심심할 때 한 번씩 하고?"

"아! 좀. 이 양반들 귀찮게 하시네. 한번 지켜보세요. 나중에 제가 어떻게 하나."

"여···. 당당해졌어. 이 작가님."

"나 팀장. 이 작가님은 원래 신입 때도 위아래도 없이 말을 팍팍 놨잖아."

"뭐 그렇긴 하지···."

"거참. 말 많네. 가만히 노래나 듣고 평가 좀 잘하고 일들 보세요."

"캬···. 매정하네. 역시 사람은 잘나가고 봐야 해."

"맞어 맞어."

"형님들. 제가 나중에 한우 쏠게요. 됐죠?"

나는 팔짱을 끼며 조나브라더스를 바라봤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 척을 날려줬다.

"저. 실장님 준비가 다 됐습니다."

어제와 같은 옷을 입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아 보이는 다니엘이 드디어 준비가 완료됐다는 걸 알려줬다.

반대쪽을 보니 이도훈 프로듀서와 멀대도 테이블에 살짝 걸터앉아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오케이. 시작합시다."

나는 직원들 앞으로 걸어 나갔다.

"크흠···"

내가 헛기침 소리를 내자 소란스럽던 장내가 조용해졌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이번에 새로 프로듀싱&콘텐츠 총괄본부에서 실장을 맡게 된 이준형입니다. 반갑습니다."

짝짝짝짝···.

직원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미 연예 기사로 내 이야기를 접하고 어제 승진 소식이 전사에 빠르게 퍼져서 대부분 사람이 알고 있는 눈치였다.

여기 모인 직원들도 내 파격적인 승진이 신기한 모양이었는지 표정에 호기심이 가득해 보였다.

"저희 XM Ent.가 임직원이 한 80명 정도 되는데요. 여기 임원분들을 제외하고 딱 50분이 오셨네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컴백하는 테리우스의 싱글앨범 타이틀곡을 선정하기 위한 자리입니다.“

”현재 두 곡으로 좁혀진 상태인데 의견이 분분해서 결론이 안 나고 있어서 여러분들의 투표를 참고하여 정할 예정입니다. 별다른 설명 없이 딱 두 곡을 들려드릴 테니 테리우스의 차기 곡이 어떤 게 좋은지 나눠드린 종이에 표시를 해주시면 됩니다."

'후···. 이거 안 해보던 연설을 하려니 조금 부담되는데 이거?'

"거기 종이에 보시면 A, B가 쓰여 있습니다. 타이틀곡에 어울리는 곡에 동그라미를 쳐주시면 되고요. 밑에 보시면 두 곡에 점수를 써넣는 칸이 있습니다. 거기에 각각의 곡에 대한 점수를 1점부터 100점까지 써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하실 말이 있으면 비평을 적어주셔도 좋습니다."

내 말을 들은 이도훈 프로듀서가 흠칫 놀라는 게 느껴졌다. 설마 내가 잔인하게 점수까지 넣으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클래스를 정확하게 알려주도록 하지. 누구 말이 맞는지 한번 보자고···.'

이도훈이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자 먼저 A 곡부터 나갑니다. 다니엘 준비됐나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노래를 재생시켰다. A 곡은 이든과 다니엘이 작업한 곡이었다. 허겁지겁 녹음까지 마무리한 곡이었다.

혹시 테스트 순서로 트집을 잡을 수도 있어 이든의 곡을 먼저 재생하기로 했다. 같은 클래스면 아무래도 나중에 듣는 노래가 뇌리에 남기 때문이었다.

"이 곡의 제목은 [내가 빛나더라도]입니다. 평가를 위해 더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들어보시죠."

드디어 연습실 스피커를 통해서 깔끔하고 경쾌한 EDM 사운드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역시 전문적으로 하던 사람이 편곡을 새로 해서 그런지 어제의 약간 투박했던 느낌이 싹 다 사라진 상태이었다.

역시 병춘이는 재능이 괜찮은 것 같았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엄지를 보여주자 매가리 없이 씩 웃는다.

얘는 살 좀 쪄야겠다. 무슨 병자 같네.

아무튼, 연습실에 모인 직원들의 표정이 상당히 괜찮아 보였다. 당연했다. 호불호가 없는 부담 없는 깔끔하고 달달한 댄스곡 아니던가?

비록 머니 코드로 범벅이 되어있지만 뭐 어쩌랴. 초보 작곡가가 굳이 모험할 필요는 없다. 일단 명성부터 쌓는 게 좋다.

내가 유명해져서 빛나는 사람이 되더라도 오직 너만을 위해 살겠다는 한 남자의 말도 안 되는 순애보(?)가 들어간 가사였다.

기존 골수팬들과 드라마를 보고 테리우스를 떠올리는 신규 팬들을 동시에 노리는 의미의 가사였다.

어제 멤버들이 이든이 쓴 가사가 별로라며 나한테 S.O.S를 쳐서 멜로디 라인을 고려해서 제목과 가사들을 뚝딱 바꿔줬다.

역시 내 능력은 대단했다. 15분도 안 걸린 것이다.

300페이지도 미친 듯 하루 꼬박 걸려서 써버리는 나인데··· 짧은 곡 하나쯤이야. 물론 이렇게 말하지만, 작사는 쉽지 않았다.

길게 쓰는 소설하고 문장을 압축해서 의미를 전달해야 하는 가사와는 매우 달랐다. 하지만 내가 누구던가. 그래도 학교 다닐 적 순문을 했던 사람이다. 예전 감각을 되살려 집중을 했더니 가사들이 뽑혀 나오기 시작했다.

하이라이트인 후렴구가 나올 때는 사람들이 오오오··· 하면서 눈을 크게 떴다. 그만큼 시원하고 깔끔했기 때문이다.

특히 성대결절을 치료한 후 예전 실력을 되찾은 훈이의 고음은 듣는 이들의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뻥 뚫어버리는 역할을 했다.

드디어 노래가 끝나고 사람들이 감탄한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자! 바로 B 곡 들어갑니다. 제목은 [그래도 너니까]입니다. 바로 들어보시죠."

곧바로 이도훈 프로듀서의 곡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제와 같은 곡이었다. 강렬한 트랩 EDM 사운드의 곡이다.

테리우스의 약간은 남성적이며 쿨한 컨셉을 살린 곡으로 1, 2집과 연결이 되는 곡이었다. 당연했다.

1, 2집 타이틀곡도 이도훈의 곡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들어봐도 여러 장르가 혼합돼있고 지극히 대중적인 내 귀에는 잘 안 들어오는 곡이었다.

이제 나는 직원들의 반응이 궁금했다. 그래도 그들은 회사의 아이돌 그룹이 부를 노래라 그런지 상당히 주의 깊게 듣고 있었다.

두 번 들어보니까 확실히 알 것 같았다. 이 곡은 테리우스의 최근 인기로 반짝 차트에 등장하겠지만 곧바로 광탈할 수준이었다.

약 3분 30초의 노래가 끝나고 집중을 하고 있던 직원들이 다시 고개를 갸웃하며 다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이제 노래가 모두 끝났습니다. 이제 자신의 선호 곡에 동그라미를 쳐주시고 두 곡에 대한 평점을 매겨주시면 됩니다.“

”참고로 나가실 때 문 앞에 마련된 통에 넣어주시면 되고요. 여기서 들은 노래는 절대 외부로 노출하시면 안 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직원들의 블라인드 테스트가 끝이 났다.

개표와 집계는 지원팀에서 도와주기로 했다. 표를 가지고 갔다가 엑셀로 금방 쭉 정리해서 한 장으로 가져왔다.

이제 연습실에는 어제 모여있던 사람들만 남은 상태였다.

갑자기 구석에서 조용히 있던 나유정이 일어났다. 그녀의 표정은 차가웠다.

"그거 제게 주세요. 제가 발표하겠습니다."

헉···. 나유정 뭐야. 하여간 어그로는 알아줘야 한다니까?

"뭐 그리하세요."

이도훈 프로듀서는 나유정의 발표 선언에 마음대로 하라며 설마 자기가 지겠어? 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자! 테리우스 컴백 싱글앨범 제2차 블라인드 테스트 결과는요?"

마치 대국민 오디션 K스타 진행을 보는 아나운서처럼 깔끔한 발음이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의 입에 고정됐다.

꿀꺽···.

이게 뭐라고···. 나도 덩달아 긴장됐다.

만약 지면 다시는 아우라 스카우터를 켜지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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