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40화 (40/263)

내 새끼를 망치려 한 놈이 너냐? (1)

나는 분노했다. 나유정이 빡치게 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분노!

내가 우리 애들의 머리끄덩이를 잡고 강제로 1티어로 올려놨더니 어디서 이따위 곡을 들고 와서 초를 친단 말인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썩을 프로듀싱팀! 두고 보자.

나 이제 실장이다.

나는 사고 이전에도 한가지 특기가 있었다.

나름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확신을 하게 된 사실인데···.

나는 대중음악을 듣는 귀가 아주 뛰어났다.

아 오해는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내가 음악성을 따져가며 곡을 평가할 능력 따윈 없다. 나는 글쟁이니까.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글을 쓰면서 파인애플 차트 TOP 100을 무의식적으로 들어온 사람으로서 듣는 귀가 완벽하게 대중성에 세팅된 사람이다.

Average of Averages!

최근에는 내가 뜰 거 같다 하면 뜨고, 음 이건 좀 아닌데? 하면 여지없이 망했다.

더구나 사고를 당한 이유로 감각이 극도로 증폭된 상태였다. 진짜 요즘에는 딱 한 번만 들어도 감이 왔다.

뿌드득···.

"왜 그래요?"

내가 이빨을 꽉 깨물자 옆에 있던 나유정이 걱정스럽게 나를 쳐다봤다.

"후···. 아닙니다. 일단 들어가시죠."

내가 연습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안무 연습을 중단하는 테리우스였다.

"오! 유명 신인 작가님 오셨네!"

"작가 행님 오셨습니까?"

"이런 훌륭하신 분께서 어찌 이렇게 누추하신 곳까지 행차하셨는지요?

"형!! 왜 이렇게 오랜만이에요."

역시 비아냥거리지 않는 건 입을 다물고 있던 이든이와 훈이 뿐이었다. 기특한 녀석들. 훈이는 음악을 끄고 나에게 다가왔다.

"그냥 지나가다 들렀다."

"어? 누나 오랜만···."

"누나 잘 지냈어?

"으.... 응······."

파릇파릇한 녀석들이 안무를 하며 땀을 많이 흘렸는지 머리와 옷이 젖어 있어서 약간 섹시한 느낌이 들었다.

페로몬을 팍팍 풍기는 녀석들 때문에 나유정은 심히 쑥스러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유정 행복하겠구만. 비록 잡덕이었지만 최애 순위권에 있던 테리우스가 누나, 누나 해주니까 하늘을 나는 기분이겠지.'

그녀의 얼굴에 약간의 홍조가 감도는 것 같았다.

"유정 씨. 아예 테리우스 매니저를 하지 그래요? 너무 좋아하는 거 아닙니까?"

"뭐라고요?"

테리우스 앞에서는 천생 여자면서 나한테는 메두사처럼 굴고 있는 나유정이었다.

"오! 드라마처럼 유정이 누나가 우리 매니저면 우리 엄청 행복할 것 같다. 시어머니보다는 100배 낫겠지?"

리더인 영관이가 또 깐족대고 있었다.

"설마 시어머니는 나를 지칭하는 단어냐? 이 녀석들 줄빠따 한번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왜 애들을 때린다고 해요? 무식하게?"

“무식?”

나유정은 남자들끼리 하는 농담을 진담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자 눈치를 슬슬 보는 박영관이었다.

"누나···. 농담이에요. 정색하시면 아니 되오십니다."

"영관아. 방금 대사 뭐냐? 아니 되오십니다? 쯧쯧 역시 넌 연기는 그른 것 같다."

"악···. 이 작가님. 저 좀 케어해주세요. 평생을 형님으로 모시겠습니다."

"됐어. 뭐 그다지······."

"형님. 제발요."

박영관은 마치 유리판에 붙은 문어처럼 나에게 찰싹 달라붙어 아양을 떨었다.

"야 인마. 좀 꺼져 줄래? 왜 이렇게 징그럽게 달라붙는 거야? 얼른 저리 가라."

나는 손으로 영관이의 얼굴을 쭉 밀었다. 하지만 그는 내 허리를 잡고 죽기 살기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자 훈이가 가운데로 쑥 들어와 상황을 종료시켰다.

"형! 그만 좀 해. 준형이 형이 우리 드라마에도 캐스팅해주고 그랬는데······. 이제부터 우리가 잘하면 되잖아."

암! 그렇지. 그렇고말고···.

난 훈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문득 방금 들었던 개똥 같은 곡이 생각났다.

"자, 잠깐···."

"??"

"아까 추던 곡 뭐야? 혹시 이번에 컴백할 때 쓰이는 타이틀곡은 아니겠지?"

"타이틀곡이래."

내가 나타날 때도 입을 열지 않았던 이든이가 나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그는 나와 똑같이 차가운 표정이었다.

"뭐? 미친!"

"왜? 별로야?"

"좀 그런가? 약간 두서가 없긴 해.

"형. 내가 처음부터 다시 들려줄 테니까 한번 정확하게 들어봐"

갑자기 이든이가 노래를 다시 처음부터 재생시켰다. 어지간히 노래가 맘에 안 드나 보다. 그나마 곡에 가장 민감한 게 바로 이든이였다.

나는 스피커로 흘러나오는 노래를 집중해서 들었다.

처음부터 마치 브라스 밴드를 연상시키는 EDM 트랩 사운드가 고막을 때린다. 요즘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한 흔적은 보인다.

하지만 뭔가 정제되지 않은 난잡함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트랩으로 시작했다가 갑자기 뭄바톤과 하우스를 믹스하고 마지막 하이라이트에선 다시 EDM 트랩으로 마무리하고 있었다.

"아···. 시끄러워. 사운드만 강력하고 리듬감이나 확 끌리는 후크가 없잖아! 무슨 나이트나 클럽 왔어? 귀청 떨어지겠네. 어휴."

일단 처음 도입부부터 에바였다.

테리우스가 슬기로운 덕후생활에서 흙수저 아이돌로 친근함이나 잘생긴 교회 오빠 같은 이미지로 나왔는데 어쩌자고 이런 묵직한 사운드의 곡을 타이틀곡으로 한단 말인가!

쿵!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하아···."

담담함에 나도 모르게 합판으로 된 벽을 주먹으로 쳐버렸다.

"벼, 별로야? 큰일인데?"

김훈도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는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내 표정이 심상치 않자 테리우스의 멤버들의 표정이 덩달아 심각해졌다.

"왜 그래요? 노래가 안 좋아서? 원래 한번 들어서는 모르잖아요."

나유정이 일그러진 우리의 얼굴을 바라보며 난감해 했다.

"누나가 몰라서 그래."

"내가 뭘 몰라?"

"우리 스타 매니저님의 권능."

"궈, 권능?"

콘텐츠 킬러인 한연준이 또 이상한 단어를 들먹여가며 설명충 역할을 하고 있었다.

"권능이란 신격이 관장하는 영역을 바탕으로 행사할 수 있는 힘을 말하거든. 이준형 선생은 그 권능을 가지고 있어. 누나."

"푸훗···. 정말? 그게 뭔데?"

"아이돌 노래를 들으면 뜰지 안 뜰지 귀신같이 맞히거든. 특히 걸그룹 노래는 거의 99%의 정확도를 자랑해. 그래서 걸그룹송 판독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어."

"벼, 변태..."

어이 어이···. 변태라니! 그럼 나유정 씨 본인은 나보다 더한 상변태라고!

나의 미간이 팍 구겨졌지만, 그냥 무시했다. 지금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뭐... 내 자랑은 아닌데 보이 그룹들도 별반 다르지 않죠. 뜰지 안 뜰지 95% 이상은 맞춥니다."

"에에??"

"누나 진짜예요. 우리도 신기하다니까요. 준형이 형은 한 번만 딱 들어도 대충 몇 위권인지까지 거의 맞춰요."

"괜히 유명 신인 작가가 아니라니까? 감이 엄청나게 좋죠."

야. 그건 오버다. 작가랑 그게 무슨 상관인데? 난 그냥 지극히 호불호 없는 최고의 평균적인 귀를 가지고 있을 뿐···.

"그, 그런데 지금까지 테리우스는 왜···."

"지금까지는 그냥 일개 매니저였습니다. 이 녀석들 케어하기도 정신이 없었죠."

"누나···. 국내건, 해외 작곡가들이건 좋은 곡들은 대부분 인기그룹에 가요. 인지도 없는 그룹들은 좋은 곡도 받질 못하죠. 작곡가들도 잘빠진 곡은 인기가수에게 주려고 하거든요. 그래야 돈이 되니까요. 저작권요."

"형. 우리 이제 겨우 인지도 올려놨는데 이거 발표했다가 망하면 어떡해? 나 불안해 죽겠어."

쿵!

내가 다시 한번 주먹으로 벽을 쳤다.

"어이가 없네. 물들어 왔을 때 노를 저어야지. 어쩌자고 이런 곡으로 컴백을 한다는 거야? 이거 프로듀서 누구야? 이도훈?"

끄덕끄덕···

"이번에 작곡가들한테 메일 안 돌렸대?"

"나도 몰라. 안 알려줘."

"지금 바로 프로듀싱팀으로 가자. 진짜 짜증 나네."

나는 애들을 데리고 프로듀서들이 있는 작업실로 갔다.

우리 회사는 본격적으로 가수나 아이돌을 키우기 위해 투자를 많이 한 상태로 그리 좋진 않지만 녹음 시설도 있었고 전속 프로듀서들도 있었다.

물론 내가 보기엔 능력 없는 놈들 같았는데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 솔직히 잘 알지도 못했다.

벌컥···.

작업실 문을 여니 두 명의 프로듀서가 앉아서 노닥거리고 있는 게 보였다.

"어? 누구··· 어? 나유정 씨?"

"뭐?"

그들은 나와 나유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 같은 회사였지만 아마도 실제로 본적은 없었을 테니까.

"무슨 일로 오셨나요?"

모자를 약간 삐딱하게 쓰고 검은색의 화려한 티셔츠를 입은 젊은 녀석이 나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얼굴이 창백하게 생긴 밥도 못 얻어먹게 생긴 이 녀석이 막내인듯했다.

"여기 이도훈 피디 어디 갔어요?"

"어? 혹시 나유정 씨 매니저인 작가님···"

"아 됐고. 나 오늘부터 프로듀싱&콘텐츠 총괄본부 실장인데요. 이도훈 프로듀서 불러와요."

"예?"

물론 아직 정식 발령은 안 났지만, 그냥 강하게 나가기로 했다.

"이도훈 프로듀서 어디 있냐고요."

"그게··· 잠시 옥상에 담배 피우러···."

그는 내 무시무시한 눈을 보자 살짝 주눅이 든 것 같았다. 갑자기 문밖에서 소리가 났다.

"너희가 웬일이냐? 안무 연습해야 하는 거 아니냐?"

"안녕하세요."

테리우스 애들이 꾸벅 인사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이도훈 프로듀서인 것 같았다. 버클리 음대를 나왔다던가?

그래. 어디 한번 해명해봐라.

*  *  *

나는 테이블에 앉아서 이도훈 PD와 눈싸움을 하고 있었다. 그는 20대 후반의 나이에 보통 체격에 머리에는 왁스를 발랐는지 제법 스타일링을 하고 사각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매니저님이 우리 본부 실장님이 되셨다고요?"

그는 소파에  테리우스와 함께 앉아 있는 나유정을 힐끗 쳐다보고 시선을 돌려 나에게 말을 했다.

"맞아요. 못 믿겠으면 대표님께 전화해보시던가요."

"됐습니다. 어차피 공석이었던 자리인데 누가 오든지 관심 없어요.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오신 거죠?"

"애들 노래 때문에 왔습니다. 이번에 컴백하는 곡요."

"왜요? 녹음도 다 끝나고 이제 곧 발매해야죠."

"아직 제작은 안 들어갔죠?"

"네··· 뭐··· 그런데 왜요?"

나는 그 소식을 듣고 안심했다. 가볍게 한숨을 쉰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다행이네요."

"뭐가요."

"곡이 너무 별로라 바꾸는 게 좋겠습니다."

"뭐라고요?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정말···"

"이 곡 프로듀서님 곡이죠?"

"그, 그런데요?"

"이거 정당하게 블라인드 테스트한 거 맞습니까?"

"허 참··· 내가 왜 매니··· 아니 실장님한테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네."

"곡이 그거밖에 없습니까?"

"짜증 나네. 야! 너희가 설명해드려라."

그는 인상을 구기더니 후배로 보이는 두 명에게 일을 떠넘겼다. 현장에서 매니저 뛰던 놈이 유명 드라마 작가랍시고 꼴값을 떨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러자 그 두 명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다시 막내인 그 검은 티의 사내가 쭈뼛쭈뼛 다가오더니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실장님. 외부 작곡가들에게 받은 곡들과 내부 곡들 전부를 블라인드 테스트해서 선정한 겁니다."

"그래요? 그럼 어디 한번 다른 곡들을 들어봅시다. 그쪽 이름이 뭡니까?"

"예··· 다니엘이라고 합니다."

"교포예요?"

"아뇨. 그냥 한국인인데 예명입니다."

"크흠··· 아무튼 다른 곡들 한번 들려줘 봐요."

다니엘은 불안한 눈빛으로 나와 이도훈 PD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이도훈은 프로듀싱팀 팀장이었고 나는 더 높은 실장이었지만 자신의 목줄을 틀어쥐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이도훈 프로듀서였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것 같았다.

"야. 리더. 영관이. 너희가 곡 별로라고 했어?"

"아··· 음···. "

박영관이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난감해 하고 있자 옆에서 가만히 있던 이든이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저요. 저는 별로라고 생각해요."

"뭐 인마? 허··· 미치겠네. 이제 드라마로 좀 떴다고 눈에 뵈는 게 없냐?"

나는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손바닥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탕! 탕!

"거 참··· 조용히 좀 해보세요."

"??"

"저기요. 피디님. 별로가 아니라 이 곡으로 컴백하면 그냥 쫄딱 망합니다. 차트도 못 들고 그냥 아웃이에요. 그 정도입니다."

"아니 이 이 사람이 보자 보자 하니까!"

이도훈도 열이 받았는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손을 들어 그를 제지했다.

"일단 진정하시고요. 다른 작곡팀에서 받은 곡이나 한번 들어나 보자고요."

"야! 다니엘. 저번에 곡 왔던 거 이 실장님 들려줘라."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지만 우리는 다른 곡들도 한 번씩 쭉 들어볼 수 있었다.

나는 들으면서 점점 얼굴이 찌푸려지고 있었다.

곡들이 좋았냐고? 아니··· 하나같이 쓰레기거나 아니면 이도훈 프로듀서 곡과 별반 차이가 없는 곡 들 뿐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곡들이 왜 다 이따위야?'

이도훈은 내 얼굴을 보며 비릿하게 웃고 있었다.

"한상훈 본부장님까지 모시고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서 결정된 겁니다. 비리 같은 거 전혀 없어요."

이 녀석··· 분명 뭔가 있다. 드라마가 히트해서 인지도가 확 떴는데 이따위 곡들 밖에 안 왔다고? 이건 진짜 말도 안된다.

나는 고개를 돌려 이든이를 쳐다보았다. 그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응? 설마···.'

"잠시만요. 다니엘 씨."

나는 다니엘을 옆으로 밀었다. 그리고 그가 보고 있는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응? 뭐야. 허··· 어이가 없네. 어디서 얄팍하게 사기를 치려고···'

다니엘이 클릭했던 파일들이 저장된 날짜가 벌써 두 달이 넘었다. 그렇다면 저 곡들은 테리우스가 드라마 출연하기 전에 받은 곡들일 가능성이 컸다.

아마도 2집 활동이 마무리됐을 무렵 같았다. 만약 최근에 곡을 받았다면 지금처럼 그저 그런 곡들만 왔을 리 없었다.

'이도훈 이 새끼. 어디서 얄팍하게 숟가락을 얹으려고···. 내가 기껏 강제로 1티어로 올려놨더니 내 새끼들 등에 빨대를 꼽고 감히 똥을 뿌려? 그딴 시답지 않은 곡을 가지고?'

분노가 쓰나미처럼 몰려왔다.

'후···. 이 새끼를 어떻게 조진담?'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