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의 이중생활 (2)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그동안 JTVC 스튜디오 측은 작정한 듯 공격적으로 기사를 쏟아냈다.
나유정의 매니저가 드라마 작가라는 이슈로 인터넷을 달구고 있을 때 눈치를 보다가 슬쩍 터트린 것이다.
부부의 비밀을 재미있게 봤던 팬들과 슬기로운 덕질생활 팬들이 이 기사에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나유정을 데리고 회사에 출근해서 하석우 팀장 사무실로 올라갔다. 입구부터 나를 보는 시선이 달라진 걸 몸소 느끼고 있었다.
하긴 어제 오후부터 수많은 기사가 나갔으니 대부분의 회사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 같았다. 가수팀 사무실을 지나다가 코너에서 걸어 나오는 지원팀 순규와 마주쳤다.
그녀는 나를 보고 움찔하더니 뒤에 화려하게 챙겨 입은 나유정을 보고 입을 삐죽하더니 풀이 죽었는지 아는 척도 안 하고 사무실로 들어가 버린다.
열린 문으로 사무실 안을 들여다보니 조형택 팀장님께서 잘 다루지 못하는 컴퓨터 앞에 앉아 뭔가를 작성하고 있었다.
"조 팀장님!"
그가 나를 멀뚱멀뚱 쳐다보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엄지손가락을 들어 목을 쓱 그었다.
넌 죽었다는 뜻이겠지. 조블리의 가공할 팔뚝을 보니 살짝 걱정이 됐다. 그의 헤드록은 UFC 급으로 살벌하기 그지없었으니까.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예전처럼 장난스럽게 경례를 했다. 그 모습을 본 조 팀장이 하 실장과 미팅이 끝나면 잠깐 옥상에서 커피나 한잔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나는 엄지와 검지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뭐해요. 안 가요?"
뒤에 나유정이 나를 재촉했다. 나는 뒤를 돌아보며 그녀의 모습을 살폈다. 아무리 저렇게 화려하게 차려입고 왔지만, 그녀는 실상 씹덕의 화신. 나는 코웃음을 한번 치고 입을 열었다.
"갑시다."
다시 앞을 보고 걸어가려는데 나유정이 내 등을 밀었다.
"아···. 왜 밀어요."
"지금 나 비웃었죠."
귀신이네. 귀신이야.
"아닙니다."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코에서 훅하고 바람이 나오던데···."
".........크흠···. 이제 들어갑시다."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하 실장이 일어나서 우리를 맞았다.
"아···. 어서 오세요. 또 이렇게 오시라고 해서 죄송합니다. 두 분 때문에 또 난리가 나서 말이죠. 정말 곤란합니다."
"왜요? 뭐가 곤란하시죠?"
나유정이 천친 난만하게 묻고 있었다.
"지금 인터뷰 요청이 여기저기서 엄청나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방송 출연 제안도 많고요."
연예 기사면을 도배하는 이슈였기 때문에 왠지 그럴 것 같았다.
"아무래도 인터뷰는 해야겠죠? 괜히 안 한다고 해봐야 더 이상한 기사나 잔뜩 쓸 테고요."
나의 말에 나유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연예인들은 인터뷰를 최대한 많이 해야 합니다. 노출이 많이 될수록 좋거든요. 그런데 유정 씨야 뭐···. 대배우고 준형 씨는 작가라 그럴 필요가 없죠."
"딱 2개 정도만 하시죠. 짧고 굵게요."
"헉···. 지금 요청만 수십 개가 들어왔는데 겨우 두 개요? 그, 그건 너무 적은데···."
"저는 글도 써야 하고 유정 씨도 차기작 들어가면 바쁘니 시간이 없습니다. 실장님이 가장 임팩트 있는 건으로 골라주세요."
"흠···. 의향이 그러시면 이것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하아···. 신문 쪽도 좀 하셔야 하는데···. 잡지도 그렇고···."
그는 계속 궁시렁거리며 A4에 정리된 인터뷰 요청 목록을 쓱 쳐다보더니 형광 팬으로 두 개만 쓱쓱 칠하며 나에게 건네줬다.
"TVM 슬기로운 덕질생활 특별편하고 JTVC 부부의 비밀 2(가제) 사전 홍보 방송 인터뷰요?"
"네. 둘 다 녹화로 진행되는 거라 괜찮을 것 같네요. 전자는 슬기로운 덕질생활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 될 것 같고, 후자는 앞으로 차기작 이야기를 하시면 됩니다. 이제 슬기로운 덕질생활은 거의 마지막이잖아요?“
“TVM에서 촬영한 미방영분하고 NG 등을 편집해서 특별 편을 벌써 다 만들어놨는데 거기에 추가로 작가님 인터뷰를 넣을 생각인가 봅니다. 김호진 PD에게 강력한 요청이 있었습니다. 왠지 모르겠지만 좀 화가 나신 것 같더라고요."
아무 상관 없다.
사실 김호진 PD는 좀 눈치가 좀 둔했다. 촬영장에서 그렇게 보고도 내가 나유정의 매니저인 것을 기사가 나가고서 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촬영장에서 그는 초집중하고 있어서 여러가지 자잘한 사항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못하는 편이었다.
"네···. 뭐 그렇다면 거기는 의리로라도 해야죠. JTVC는 차기작 홍보 때문에 하는 거겠죠?"
"맞습니다. 거기서도 지금처럼 이슈가 있을 때 같이 터트려서 최대한 관심을 끌려고 하는 거죠."
"그럼 그렇게 하시죠. 유정 씨 괜찮죠?"
"네. 그렇게 하면 좋겠네요. 저야 인터뷰가 적으면 적을수록 좋으니까요."
뭐야. 이제 대스타라 이건가? 아······. 원래 대스타였지.
"하 실장님께서 일정 좀 잘 잡아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는 인터뷰 리스트를 다시 돌려받으며 서류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TV 예능에서도 섭외 요청이 있었습니다."
"예능이요? 주말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그런 거요?
"아···.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왔는데요. 만약 한다면 '전관시'가 제일 좋을 것 같습니다.."
"전관시라면···. 전지적 관찰자 시점 말이죠?"
"네. 그 프로그램이 시청률도 좋고 아무래도 신인 유명 작가인 매니저와 최고의 여배우라는 이런 관계를 부각시키기에 좋죠. 엄청 이슈가 될 겁니다. 거기 나왔던 분들이 CF도 많이 찍고 다들 잘됐어요."
예능 프로그램이라··· 나는 솔직히 하고 싶지 않았지만, 나유정을 살짝 놀려주기로 했다. SNS에 글을 올린 벌로 말이다.
"한번 해볼까요? 그거 전관시요."
"??"
나유정의 미간에 주름이 갔다.
"네? 정말요? 전 준형 씨가 하지 않을 거로 생각해서 가망 없다고 생각했는데···. 솔직히 이건 좀 놓치기 아까워요. 이슈 몰이를 할 게 분명하거든요. 방송 타면 추가로 CF 계약도 들어오고요···. 만약 이게 터지만 유정 씨 수익이 100억이 아니라 200억도 가능할 겁니다."
"오우! 괜찮네요. 어때요. 유정 씨. 같이 출연하실래요? 하 실장님께서 짭짤할 것 같다고 하시는데요?"
나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리며 미소를 지었다.
나유정은 내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눈을 좁힌 채 살벌한 안광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렇게 쏘아보면 뭐 어쩔 건데? 하나도 안 무섭다.
내가 그녀를 보며 빙글빙글 웃고 있자 드디어 그녀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안 해요."
"예?"
"안 한다고요."
"저···. 유정 씨. 그러지 마시고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는 게···."
"저 예능은 안 할 거예요. 특히 그 전관시 그거요."
"인, 인기 좋은데···."
나유정의 강한 부정적인 의사 표현에 하 실장이 당황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해가 안 가겠지.
전관시는 그나마 예능 중에서는 개인기나 오버를 하지 않아도 괜찮았고 촬영도 편할뿐더러 시청률까지 잘 나오는 보기 드문 프로그램이었으니까.
사실 그런 예능을 거른다면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나 다름없었다. 보다 못한 내가 하 실장을 거들었다.
"유정 씨 잘 생각해보세요. 사람들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기회에요. 대중들에게 촬영하는 것도 공개하고, 나랑 드잡이질하는 것도 보여주고요. 그리고 한강 뷰가 멋진 집도 공개하고···."
"특히 안방을 서프라이즈로 짜자잔!!"
"그, 그만! 절대 가만 안 둘 거에요."
"안방을~~~ 공개해주세요!"
그녀는 내가 장난을 치자 얼굴이 시뻘게져서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뭘 가만 안 둔단 말입니까?"
나는 쫄지 않았다. 손가락을 들어 귓구멍을 후비며 말했다.
"나가기만 하면 무조건 시청률 지붕 킥일 텐데···."
"이익···."
나유정의 원독어린 저 표정···.
"괜찮아요. 잘 둘러대면 될 거에요. 연기를 위해서라고 하면 되죠."
"·········."
서클렌즈를 낀 것 같은 그녀의 반짝거리는 보석 같은 검은 눈동자가 나를 매섭게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입을 꾹 다물어서 그런지 분홍색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큭···. 정신 차려! 이준형! 저 가식적인 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 정나미가 떨어지는 최악의 모습을 떠올려봐! 라면 국물을 추리닝에 엎어도 말려서 입는 이 여자의 본 모습을 떠올리란 말이다.
가까스로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상대는 화장··· 아니 변신술이라는 사술을 써서 사람을 현혹하는 요물이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그녀에게 다가가 조용히 말을 했다.
"사실 안방에 있는 건 말을 잘하면 넘어갈 수 있는데요. 그 평상복은 절대로 방송에 나가면 안 될 겁니다. 특히 그 센스없는 연두색 추리닝 바지! CF가 우수수 다 떨어져 나갈걸요?"
그녀를 게슴츠레한 눈으로 바라보며 검지를 들고 까딱까딱 흔들었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가 크앙 소리를 내며 내 손가락을 깨무는 게 아닌가! 이런 미친!
"으악!"
하석우 실장이 황급히 우리 둘을 떼어냈다.
"아니···. 지금 뭐하는 겁니까? 왜들 그래요? 사이 좋은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갑자기 왜들 그래요?"
"아 진짜! 개새······. 강아지도 아니고!"
여전히 그녀는 나를 보며 씩씩대고 있었다.
하여간 나유정은 사회성 발달이 덜 된 거 같았다. 비록 살짝 깨문 것이지만 이런 똘아이 같은 짓이 종종 튀어나왔다. 성격이 급하고 즉흥적이며 감정적이었다.
그래서 연기를 그렇게 잘하나?
그녀는 혼자 씩씩대다가 의자에 앉더니 테이블에 엎드렸다.
'얼씨구?'
"유, 유정 씨···"
하석우 실장이 나유정의 행동에 깜짝 놀라서 달래려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를 제지했다. 저건 보나 마나 연기일 테니까···
"실장님. 일단 예능은 다음에 이야기 하시고요. 오늘 테리우스 애들 연습실에서 신곡 안무 연습 있다고 하지 않았나요?"
"네··· 아마 그럴 겁니다만?"
그의 표정은 왜 가수팀 일을 왜 나한테 묻지? 라는 표정이었다.
"유정 씨가 화가 많은 것 같아요.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은데···. 여기서 잠시 쉬게 해주세요. 전 테리우스 애들 잘하고 있는지 구경 좀 가려고요."
드르륵···.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의자가 뒤로 밀리며 나유정이 귀신처럼 일어났다. 그리고 몸을 돌려 나에게 다가오더니 왼쪽 어깨에 손을 턱 하니 올려놓았다.
"뭡니까? 또?"
나는 한껏 아니꼬운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가죠?"
"어딜?"
"연습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있었으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게 기분이 급격히 좋아진 것 같았다.
"참나··· 따라와요."
"가시게요?"
"네. 애들 한번 보고 가려고요. 인터뷰는 아까 실장님이 추천해주신 거 나갈게요. 알아서 일정 잡아 주세요."
"네··· 그거야 당연하죠. 준형 씨 그런데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어요."
"네. 말씀하세요."
"지금 회사가 상당히 난처합니다. 사람들이 어째서 준형 씨를 일개 매니저로 쓰고 있느냐고 비난을 하고 있어요."
"아아···"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 그래도 연예기획사에 부정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데 유능한(?) 내가 일개 매니저라니···. 물론 팀장 대우긴 하지만 밖에서 보기엔 그냥 일반 매니저와 다를 게 없었다.
"죄송한데요. 프로듀싱&콘텐츠 총괄본부에서 실장을 맡아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안 한다고 했는데요?"
"아···. 대표님께서 그냥 직책만 드리고 일은 안 하셔도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냥 계속 나유정씨 매니저를 해도 되고요. 아무래도 이제 드라마 촬영 들어가면 바빠질 텐데 준형 씨가 일일이 매니저 노릇을 할 순 없을 테니 준형 씨 밑으로 신입 한 명을 드리겠습니다."
"배우 2팀 김대성이라는 친구를 배속시켜드리려고 하는데요. 괜찮으세요?"
김대성이라면 나름 괜찮은 녀석이다. 인성이 안 좋다는 이건호인가 뭔가 하는 놈 매니저를 하면서도 버틴 녀석이다.
"흠··· 뭐 그런 거라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회사도 사정도 있으니까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해요. 얼른 가요."
나유정은 안달이 났는지 벌써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는 시늉을 하고 있었다. 신곡 안무연습이라고 하니 보고 싶어서 초조한 모양이었다.
'어우··· 저 씹덕···'
우리는 하 실장 사무실을 나와서 안무 연습실로 향했다. 쿵쿵쿵···. 가까이 갈수록 음악 소리가 크게 들려오고 있었다. 우리는 잠시 투명 유리를 통해서 테리우스가 군무를 추는 모습을 관찰했다.
"와! 진짜 신곡인가 봐요."
나유정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나는 얼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왜··· 왜 그래요?"
그녀는 내가 얼굴을 찌푸리자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흠··· 내 표정이 안 좋은 이유는 딱 한 가지였다.
이미 망해있다.
일본의 유명한 만화 대사 같네.
'넌 이미 죽어있다.'
뭐가? 곡 말이다. 곡!
누가 또 이딴 쓰레기 같은 곡을 가져온 거야?
갑자기 살인 충동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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