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의 이중생활 (1)
나는 어이가 없어서 손으로 이마를 짚고 말았다.
"아오··· 뭐 하러 이런 걸 올렸어요?"
"아니! 자꾸 내가 열애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화가 나서···."
"뭐요? 열 받는 사람이 누군데 지금! 내 참 어이가 없어서···."
"뭐가 어이없어요? 준형 씨야 일반인이니 상관없겠지만 나는 이런 거 내버려두면 마이너스에요."
"....후···. 좋습니다. 그런데 훈남 X, 시어머니 O 은 뭡니까?"
"그건 그냥 농담이죠. 농담. 다들 재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요."
"크흠···. 그럼 나도 뭐 농담 한번 해봐야겠네."
"뭐, 뭐를요?"
나유정은 뭔가 불안감을 느낀 듯 두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어디 보자. 안방에 있던 남자 아이돌 굿즈랑 앨범, 포스터 찍어 놓은 사진이 어디 갔더라?"
"악!!"
"제목은 '유정 씨는 진정한 연기자! 연기를 위해 이렇게나 모았답니당~' 어때요?"
갑자기 나유정이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내 팔을 붙잡았다. 그리고 눈을 쳐들고 나를 쳐다봤다.
"에이··· 우리 그러지 맙시다. 미안해요. 내가 사과할게요."
나는 내 팔을 붙잡은 그녀의 손을 쳐냈다.
"웃기시네. 그런 표정이 전혀 아닌데···."
"그거 SNS에 절대 올리지 마요."
그녀는 말을 마치고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본인 이야기는 그렇게 싫으신 분이 내 얘긴 왜 올렸어요? 왜 멋대로 그러냐고요!"
"아니. 어차피 밝혀질 건데······. 그냥 받아들이시지."
"하···."
"잘 생각해보세요. 회사에 공개했잖아요? 솔직히 소문 금방 퍼져요. 아직도 몰라요? 소문은 빛보다 빨라요."
"유정 씨. 주변 사람이 아는 거랑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거랑 같아요?"
"그게 무슨 차이가 있어요? 자신이 유능한 걸 세상이 알아주면 좋은 거지. 무슨 범죄 사실 공표하는 것도 아니고···."
"뭐요?"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나유정의 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녀는 정말로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유명해지는 게 왜 싫어요? 어차피 사진도 SNS로 다 까발려졌는데 내 매니저보다는 유명 작가 같은 능력남으로 알려지면 좋잖아요."
나는 그녀의 말에 순간적으로 답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사업하려면 지금부터 유명해져야 해요. 명성이 괜한 게 아니라고요. 연예계에서는 인기와 명성 자체가 권력이자 힘이에요.
"조, 조용히 좀···."
나는 잠시 머리가 어지러워서 소파에 앉았다. 그녀는 나를 내려다보더니 부엌으로 사라졌다.
나 스스로 아직 준비가 덜 됐는데 벌써 이렇게 기사에 오르내리다니···. 솔직히 머리가 복잡했다. 나는 다시 연예 기사란 클릭했다. 가장 많이 본 뉴스에 떡하니 올라가 있었다.
'아니 이놈들은 초상권도 모르나? 내가 공인도 아닌데···.'
==========
[슬기로운 덕질생활의 작가가 나유정의 매니저라고? -일간투데이-]
SNS 올라온 한 장의 사진이 온통 연예 기사란을 점령하고 있다.
나유정 팬의 SNS에 식당 주인과 나유정 그리고 그 옆에 훤칠하게 생긴 훈남이 함께 찍힌 한 장의 사진이 올라왔다.
파주시의 한 간장게장 집에서 찍힌 사진이라고 하는데 식당 주인의 말에 따르면 나유정이 그 훈남을 보고 슬기로운 덕질생활(이하 '슬덕')의 작가라고 소개했다고 한다.
이에 SNS에서는 공식적으로 모태솔로라고 알려진 일 중독자 나유정이 드디어 남자를 사귀는 게 아닌가 하는 기대감이 일었다. 더군다나 그게 유명 신인 작가라는 게 밝혀지며 나유정과 '슬덕' 작가가 열애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성 기사들이 마구 쏟아졌다.
하지만 나유정은 SNS에 직접 자신은 열애를 하지 않고 있다며 해명 글을 올렸다. 그 결과 '슬덕' 작가는 실제 그녀의 매니저이자 취미로 글을 쓰는 드라마 작가라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면서 그는 훈남이 절대 아니라며, 마치 시어머니 같은 존재로 묘사했다.
나유정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SNS상에서는 도대체 그 매니저가 누구나며 신상 추적이 시작되었고, 결국 그가 테리우스의 전 매니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테리우스의 한 팬에 따르면 그는 팬클럽에서 꽤 유명한 존재로 테리우스의 엄마로 일컬어지고 있는 이OO 매니저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최근에 슬덕 작가가 테리우스와 나유정과 함께 촬영장에 함께 왔으며 같이 어울리는 것으로 봐서는 매니저 역할을 한 것처럼 보였지만 아마도 작가로 활동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슬덕'이 가볍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개연성이 없는 드라마가 아닌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작가 본인이 연예기획사 소속이었기 때문인데, 드라마에 사건 사고들을 그렇게 디테일하게 녹여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실제 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들을 쓴 게 아닐까 추정되고 있다.
한편, '슬덕' 작가는 사진에서 보는 것과 같이 키도 크고 외모도 훤칠했다. 깔끔한 훈남 스타일인 그는 20~30대 여성들에게 꽤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당장 연예인을 해도 좋을 것 같은 생김새라는 평이 많았다.
나유정은 베니스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슬기로운 덕질생활까지 2연타석 홈런을 날려 100억 이상의 CF 계약을 따낸 것으로 알려졌으며, 테리우스도 현재 드라마 촬영을 마치고 바쁘게 TV 스케줄과 행사를 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
"허 참··· 기사 한번 진짜 빠르네. SNS에 얼마 올라온 지도 안됐는데···"
나는 반응도 살펴보았다. 이런 반응을 보는 것은 테리우스 매니저를 하면서 자주 했던 일이었다.
[유정이 언니. 그냥 '슬덕' 작가랑 사귀었으면···]
[그런데 나유정 진짜 모태솔로 맞냐? 구라 아냐?]
[3년 전 한참 인기 있을 때 나유정이 모태솔로라고 인터뷰에서 고백한 적 있음. 물론 2~3년 정도 활동을 안 했으니 그 후로는 모르는 일이고···.]
[저 매니저 외모면 사귈만한데? 히트작도 쓴 작가다 보니 능력도 있는 것 같고···]
[매니저님 하다가 오빠하고 그러다 아빠도 하고···]
[야이··· 미친···]
[그치만 현실 매니저인데 사귈 리가 없잖아요. 본인이 극구 부인하기도 하고··· SNS로 농담하는 걸 보면 진짜 아닌 것 같아요.]
[저 매니저 유명함. 키도 크고 훈남이라 테리우스 홈마들이 다들 잘 알고 있음. 어떤 홈마는 저 매니저님 사진도 많이 찍은 거로 암. 옷도 잘 입고 다녀서 제6의 멤버라고도 불림.]
[저 매니저 말인데 벽에 기대서 핸드폰으로 문자를 하는 유명한 짤이 있었는데··· 내가 생각했을 때는 그때도 글을 쓴 게 아닌가 싶다. 대기할 때 항상 한참을 저러고 있다며 여자친구랑 톡을 주고받는 게 아닌가? 다들 이야기했었던 기억남.]
[테리우스 홈마냐? 대포는 안 무겁디?]
[생각해보니 매니저인 작가가 자기 연예인들 캐스팅한 거잖아? 이거 특혜 아님?]
[너 모르냐? 이상진 성폭행 사건 때문에 '슬기로운 닥터생활' 후속편인 '지옥에서 온 사나이'가 엎어져서 허겁지겁 버리는 카드처럼 찍은 게 바로 '슬기로운 덕질생활'일걸. TVM에서도 캐스팅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었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그건 어쩔 수 없었다는 게 맞겠지.]
[그런데 그 캐스팅이 대박 났잖아. 완전 찰떡 배역들이라고···]
[작가가 옆에서 실제 보고 느낀 걸 쓴 게 아닐까? 아예 캐릭터도 가져오고?]
[그런 거 같다. 테리우스 애들은 윗사람 이야기가 맞는 것 같음. 하지만 나유정은 아님. 나유정은 연기로 극복해 냈음.]
[그게 무슨 소리임?]
[나 CF 광고 촬영 관련 일을 하고 있음. 그래서 유정 씨를 본 적 있지. 절대 드라마에 나오는 그런 캐릭터가 아님.]
[어떤데? 그래. 궁금하다.]
[얼굴은 진짜 예쁘지. 날씬하고··· 그런데 차가움. 엄청나게 차가움. 그런데 또 촬영 들어가면 달라짐.]
[그, 그렇구나. 하긴 나유정이 그럴 리가 없지. 아이돌 잡덕이라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잖아?]
[솔직히 어울리지도 않잖아. 화려하고 도도한 이미지인데 말이야. 너희 그 영화 기억 안 나? 내가 사랑한 그녀 말이야. 거기서 나유정이 국민 첫사랑이 됐잖아. 그런 그녀가 슬덕에 나오는 그런 씹덕 캐릭터라고? 말도 안 되지.]
[그래. 나도 그렇게 생각함.]
[그런데 그 훈남 매니저 레전드 아님? 글을 써서 자기 연예인을 완전 대박 내버렸잖아. 이게 말이 되는 일임?]
[흠··· 전례가 없던 일이긴 하다.]
[이러다 전지적 관찰자 시점에서 연락 오는 거 아니냐? 나유정이랑 슬덕 작가 예능 좀 출연하라고···.]
[우왕!! 그거 보고 싶다. 진짜 궁금하다. 스타 신인 작가의 매니저 생활!]
[내가 봤을 땐 출연하면 시청률 지붕 킥 뚫을 듯!]
[디씨 아웃사이드 웹겔에서 나왔습니다. 취, 취미로 글을 쓴다고요? 자주 박고 갑니다.]
[웹겔이 뭐냐? 웹소설 갤러리?]
[누구는 하루 10시간 동안 글을 써도 3~4백 명 볼까 말까 해서 투베를 뚫느냐 못 뚫느냐 하고 있는데···. 누구는 연예인들이랑 노닥거리면서 시청률 대박 내는 드라마를 쓰네.]
[노닥거리다니···. 설마 놀면서 했겠니? 연예인 매니저가 얼마나 바쁜지 알아? 뭣도 모르면서 나불대지 마라.]
[그리고 10시간 동안 쓰는 건 자조적으로 한 이야기냐? 왜 망생이인 너랑 천재 작가랑 비교해? 그냥 너는 그냥 네 것 써라. 괜히 뱀심 부리지 마!]
[그래도 기만자이긴 함. 얼굴 잘생겼지, 키 크지, 글 잘 쓰지, 옷도 잘 입고 다니는 듯? 앞으로 드라마 한두 개만 더 터트리면 아주 탄탄대로일 듯.]
[야 인마. 그게 쉬운 줄 아냐? 어이없네.]
[망생이덜··· 부들부들···]
==========
'허 참···. 난리 났네.'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해서 양 관자놀이를 엄지로 꾹 눌러보았다.
"이거 마셔 봐요."
나유정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우유 한잔을 내 앞으로 내밀었다.
"음?"
"난 머리가 복잡할 때 우유에 꿀을 타서 마시고 한숨 푹 자고 잊어버렸어요. 연예인 되면 악플을 달고 살아야 해요."
"지금 속이 답답한데 그 뜨거운 걸 마시라고요? 그리고 전 소화가 잘 안 돼서 우유 못 마십니다."
"그럼 이거 마셔요. 제가 마시려던 아이스 커피인데···"
나는 그녀에게서 커피를 받아들고 단번에 다 마셔버렸다.
"후··· 살 것 같다."
"미안해요. 마음대로 올려서요. 내 생각엔 어차피 알려질 일이라 좀 임팩트 있게 화제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었어요. 준형 씨 처지를 생각하지 못한 건 내 실수에요."
그녀는 진심으로 사과하는 표정이었다. 뭔가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이런 분위기를 원한 건 아니었는데 말이다.
나는 그녀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봤다.
옷이라도 좀 제대로 입고 그런 말을 했으면 약간 마음이 움직였을 것 같은데 목이 늘어난 흰 티에 묻은 짬뽕 국물이 자꾸만 눈에 거슬렸다.
"일단 오늘은 집에 가서 가족들에게 사실을 좀 알리고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겠어요. 유정 씨 이야기도 일리는 있으니까요."
"그렇게 하세요."
"아! 그런데······. SNS 아까 그 사진 좀 마저 올리고 가려고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악!"
그렇게 나유정의 끈질긴(?) 배웅을 받으며 현관문을 나섰다. 그리고 운전을 해서 집에 도착했다. 이미 저녁밥 먹을 시간은 지난 늦은 저녁이었다.
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자 가족들이 다 거실에 나와 있었다.
"응? 다들 왜 그러고 있어요?"
"아들······!"
갑자기 엄마가 다가오더니 나를 껴안으며 등을 토닥였다.
"드라마 작가라는 거 왜 숨긴 거야. 혹시 망할까 봐 걱정한 거야?"
"음··· 뭐 그런 거도 살짝 있고 말할 타이밍을 놓쳐서··· 미안해. 엄마."
"미안하긴··· 엄마는 아들을 믿었어. 언젠가는 꿈을 이룰 거라고 생각했거든."
"·········."
엄마의 격려에 뭔가 가슴속에서 뭉클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왠지 이런 감정은 즐겨도 될 것 같았다.
"밥 안 먹었으면 같이 먹자. 다 기다렸어. 오빠 이야기 들으려고···"
막내인 주리가 엄지와 검지를 비비며 실실 웃고 있었다. 이주리! 내 지갑을 털려는 수작을 모를 것 같지? 다 안다.
그렇게 가족들과 그간 있었던 사실에 대해 재미있게 이야기를 했다.
가족들은 내 이야기를 본인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하게 들어 주었다.
그렇게 하루가 가고 다음 날 또 대형 뉴스가 터졌다.
[JTVC! 대성공을 거둔 부부의 비밀 속편 제작하나? 작가는 슬기로운 덕질생활의 나유정 매니저 작가로 밝혀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