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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36화 (36/263)

제가 작가입니다만 (2)

별들의 전쟁인가? 회의실에서 나를 제외하고 하석우 실장이 제일 직급이 낮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올해 이 회사에서 나만큼 돈을 벌어다 준 사람 있으면 나와보라고 해!

나유정 캐릭터빨로 년 100억 CF 모델료에 회사 몫 20%니 20억 수익에 가깝고, 제자리만 맴맴 돌던 테리우스 녀석들을 캐스팅해서 히트곡만 없다뿐이지 인지도를 1티어로 만들어줬지.

허··· 이거 미친 거 아님? 내가 대표이사보다 못한 게 뭔데?

나는 당당했다.

박수가 끝나고 김인환 대표가 뚜벅뚜벅 다가오더니 나유정에게 인사를 하고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나를 꽉 껴안았다. 이내 포옹을 풀더니 나를 보며 씨익 미소 지었다.

역시 그는 나를 좋아했다. 검지로 나를 가리키며 웃기 시작하는 김인환 대표.

하지만 몇몇 이사님들은 대표 때문에 손뼉은 쳤지만,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려고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저기요. 대표님."

"네. 말씀하세요. 유정 씨."

"좀 앉아도 될까요? 무슨 하실 말씀이 있는 것 같은데 그냥 이렇게 서서 듣고만 가도 돼요?"

"아··· 내 정신 좀 봐. 자자 자리에 앉읍시다."

그의 말에 회의실에 사람들이 모두 의자에 착석했다. 김인환 대표는 좌중을 한번 쓱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

"뭐 별다른 일은 아닙니다. 소식을 듣고 얼굴을 보고 싶어서 이렇게 오시게 한 겁니다."

"네···"

"모두 기사 보셨죠? '슬기로운 덕질생활' 대박입니다. 유정 씨가 CF로만 100억을 넘길 것 같고, 테리우스의 인기도 심상치 않습니다. 경영지원 안 이사가 시뮬레이션해보니 작년보다 최소 30% 이상 더 높은 이익이 날 거라고 합니다."

모두 김인환 대표의 얼굴을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네. 대박이죠. 하지만 이런 성공이 있기까지 우리가 모르는 숨은 공로자가 있었다는 걸 아십니까?"

"??"

사람들은 뜸을 들이는 김 대표의 입만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그건 바로 여기 유정 씨 매니저이신 이준형 씨 덕분이었습니다. 슬기로운 덕질생활 작가기도 하죠."

"예···?"

"네??"

회의실 안에 임원진들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얼굴을 보아하니 하 실장이 라인인 정이사와 조전무는 이미 보고를 받은 눈치였고, 경영지원본부 안해연 이사와 프로듀싱&콘텐츠 총괄 본부 한상훈 이사만 전혀 몰랐다는 얼굴이었다.

"그··· 그러니까 유정 씨 매니저인 준형 씨가···."

"작가 본인 맞아요. 그리고 유정 씨가 회식자리에서 찍힌 그 유명한 대본 아시죠? 그 부부의 비밀 속편도 준형 씨 작품이랍니다. 오늘 JTVC에 계약하러 간다고 합니다."

"대, 대박···"

잠시 회의실에 침묵이 감돌았다. 놀라운 일이긴 했지만, 회사의 아래 직원이 그런 네임드 작가인 것은 또 다른 문제거리였다.

"준형 씨가 J 대학교 문창과 출신이었죠?"

"맞습니다. 대표님."

"일하면서도 글 쓰는 걸 놓지 않았던 모양이군요."

"네··· 뭐 취미로 간간이 쓰다가 이렇게 됐습니다."

물론 사실이 아니었지만, 굳이 자세히 이야기해봐야 입만 아팠기 때문에 생략했다.

"하··· 이거야 원. 이런 인재가 우리 회사에 있었다니··· 상상도 못 했어요. 약간 쇼크 상태입니다. 과장 조금 보태서요."

한상훈 이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을 했다.

"저도 처음에 준형 씨가 대본 가져왔을 때는 진짜 깜짝 놀랐었죠."

아까부터 차가운 표정을 짓고 있던 나유정이 질 수 없다는 듯 한마디 했다.

"그랬군요. 올해 목표가 이익 개선이었는데 준형 씨 덕분에 제 입장이 한결 수월해졌어요."

"아···. 네. 다행이네요."

나는 겸양 같은 것을 부릴 생각은 없었다. 솔직히 잘한 건 맞잖아? 최소 20억 이상을 벌어준 건데···

거기다가 테리우스까지 터진다면 그야말로 대박 중에 대박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어요. 준형 씨가 회사에 엄청난 도움이 된 건 맞습니다만··· 작가라는 게 밝혀져서 회사 내에서 분위기나 직급, 직책이 애매해졌어요. 그래서 제가 제안을 하나 할까 합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대표님."

"우리 프로듀싱&콘텐츠 총괄 본부에 실장 자리를 하나 드릴 테니 거기에서 마음껏 집필을 해보는 게 어떨지···?"

"헉··· 대표님!"

갑자기 나를 다른 팀에 뺏길 거 같자 화들짝 놀라는 정재욱 이사였다. 하지만 김 대표는 손을 들어 정이사를 제지했다.

"일단 준형 씨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흐음··· 말씀해주신 실장이라면 지금 저기 계신 하석우 실장님 급으로 승진하는 건데요. 이제 2년 차인데 실장을 달아서 조직 내 불화를 일으킬 생각도 없고요. 지금은 유정 씨와 테리우스를 좀 더 케어해보고 싶습니다. 글은 집에서 취미로 쓰는 거라···"

"취, 취미··· 허···."

경영지원 안해연 이사가 어이가 없는지 헛바람을 집어삼켰다.

"마, 맞습니다. 대표님. 지금은 차기작을 성공시켜야 합니다. 유정 씨에게는 준형 씨가 필요하죠. 그럴 게 아니라 팀장 대우 어떻습니까? 정식 직함은 아니지만, 연봉도 올려주고 대우도 팀장급으로 해주는 거죠."

팀장 대우라··· 크게 부담도 없고 괜찮긴 하다. 하지만 우리 회사 팀장이라 해봐야. 50~60만 원 월급이 올라가는 꼴이다.

사실 나로서는 아무런 차이가 없었다. 그래도 팀장급이 어딘가. 회사 내에서 그래도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게 팀장이다.

"어떤가요. 준형 씨? 아까 말한 실장보다는 현재 부서에서 팀장 대우를 다는 게 나은가요?"

"당분간은 후자가 낫겠습니다. 대표님."

"당분간은······. 음······. 알겠습니다. 저도 굳이 무리를 시키고 싶지 않아요. 괜히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를지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배를 가른다고요?"

"어감이 좀 이상했나요? 그냥 못들은 걸로 해주세요. 다만 앞으로도 그 취미로 글이 나오면 꼭 XM. Ent 소속 배우나 가수들 좀 챙겨··· 아, 이건 좀 이상한가? 배려를 좀 해주면 고맙겠네요."

"뭐··· 그건 그때 가봐서···"

짝짝짝···.

그는 내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박수를 쳤다. 김 대표가 박수를 치자 이사진들도 따라 했다. 허 참, 나.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아니다. 나유정하고 테리우스는 예외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다.

확실히 모기업에 있다가 와서 그런지 상황 판단이 능숙하다. 나의 존재가 애매하지만 품고 가려는 자세··· 괜히 순리를 거슬러봐야 회사의 이익에 반한다는 생각도 있는 것 같았다.

이 아저씨. 바지사장인 것 같았는데 의외로 유능한 것 같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구멍가게는 좁다 이건가?

일단 조직이 이상해지더라도 나를 이용해 수익을 최대한 개선하고 그 공로를 인정을 받아 모기업 본사로 올라가려는 속셈일지도 모른다.

방계라면 응당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일까?

내가 그렇게 김인환 대표를 관찰하고 있었는데 이 틈을 놓칠세라 아티스트지원본부 정재욱 이사가 손을 들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저··· 대표님. 사실 회사에 이런 경사가 터지게 된 것은 다른 한 명의 숨은 공로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래도 자기 측근이라고 하 실장을 끌어주기로 마음먹은 모양이었다. 외모만 보면 딱 나이 먹은 하 실장 같은 모습이었다.

"아··· 다른 공로자가 있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그게 누구죠?"

"바로 저희 아티스트지원본부의 하석우 실장입니다."

"하석우 실장요?"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문 앞쪽에 조용히 앉아있던 하 실장이 김 대표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대표님. 하 실장이 가수팀 매니저였던 준형 씨를 배우팀으로 끌어와서 유정 씨와 함께 이러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한 장본인입니다. 물론 테리우스도 마찬가지고요. 가수팀, 배우팀 가리지 않고 인재를 눈여겨봤다가 적재적소에 투입하여 이런 결과를 이끌어냈습니다."

"으음··· 그렇군요. 맞다. 하 실장 일 잘한다고 소문났었지."

"맞습니다. 유능하죠. 부서에 신망이 두터운 인재입니다. 그리고 유정 씨를 우리 회사에 모실 수 있었던 바로 그 전설의 삼고초려도 하 실장 이야기입니다."

"아··· 그거?"

김 대표는 들어본 적 있다며 고개를 미미하게 끄덕였다. 조용하던 그가 테이블 위에 두 팔을 올리더니 손가락으로 깍지를 꼈다.

갑자기 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여러분 그거 아십니까? 회사 수익에서 유의미한 결과가 나온 게 준형 씨가 유정 씨의 매니저가 된 이후입니다. 그전까지는 회사에 큰 도움이 안된 건 사실입니다.“

그 말을 들은 나유정의 표정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 같았다.

김 대표는 나유정과 한 불리한 계약을 지적하고 지금까지 돈 안 되는 영화를 찍은 그녀를 살짝 돌려 깐 것이다.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후보래 봐야 국내 흥행 성적은 별로였다. 그리고 배역도 미쳐가는 연기를 해서 그랬는지 좋은 CF가 그다지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지금 저 들으라고 한 말인가요? 대표님?"

"아!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합니다. 유정 씨. 사과드릴게요. 회사가 이렇게 좋아진 건  준형 씨의 역할이 컸다는 걸 말하고 싶은 거니까요."

"·········."

그녀도 뭔가 불만이 있는 것 같은데 내 이야기가 나오자 함부로 말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이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네. 대표님. 경청하겠습니다."

경영지원 안해연 이사가 김 대표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이사들은 항상 실속 없는 이야기라도 꼭 한마디씩 하는 편이었다. 그게 바로 자신의 존재감을 보이는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제가 여기 처음 부임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바로 신입사원 면접이었어요. 그때 말이지. 중간에 앉아 있는 준형 씨가 왠지 심상치가 않은 겁니다."

"아아···"

"조 전무. 그때 같이 있지 않았나? 내가 그랬잖아요. 이상하게 느낌이 좋다고···"

"그, 그랬을 겁니다."

실제 대표 업무를 대신 하는 조형석 전무가 모기업에서 파견(?) 나온 바지 사장 격인 대표이사에게 아마 그럴 거라고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물론 그의 얼굴은 '네가 언제?' 라는 표정이었지만 말이다.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그때 내가 준형 씨를 뽑지 않았다면···. 휴··· 끔찍하구만."

"·········."

김인환 대표는 스스로 대견한지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었다.

와! 뭐야 이거! 황당하네.

역시 대표는 대표인가··· 이 능구렁이 보게나. 지금 이 성공을 자기 공으로 슬쩍 돌려버리는 어마무시한 사람이었다.

확실히 대기업에서 치열한 사내 정치를 하고 온 사람이라서 그런 걸까? 아니면 CA 그룹의 방계지만 가문에서 보고 자란 게 있는 것인지······.

이런 게 바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인 걸까?

그는 내 얼굴을 보면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도 그만 어이가 없어서 그의 얼굴을 보고 살짝 웃고 말았다.

나중에 이 사람 인터뷰 좀 해서 달동네에서 재벌물을 쓰면 괜찮을 것 같았다.

진짜 재벌들의 행태에 대해서 탁 까놓고 물어봐야겠는걸? 김 대표님. 윈윈 합시다. 내 별말 안 할 테니 나중에 인터뷰나 착실히 좀 해주길···

물론 내가 좀 더 확실히 자리를 잡은 후에 말이다.

"아! 이제 JTVC 스튜디오에 가봐야 합니다."

"오···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군요. 가보셔야죠."

나와 나유정은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김인환 대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요. 계약 잘하시고, 유정 씨도 차기작 준비 잘하시길 바랍니다. 준형 씨. 언제 한번 식사나 하십시다."

"그러시죠."

그는 먼저 회의실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서 하석우 실장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하 실장. 기대가 큽니다."

"가, 감사합니다. 대표님"

김 대표가 별말도 하지 않았는데 그저 감격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이는 하석우 실장이었다.

왜 저럴까 싶다. 고달픈 샐러리맨의 삶이여.

물론 나에게 저런 것은 남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나는 하석우 실장처럼 누구에게 잘 보이거나 할 필요가 없었다.

밖으로 나가는 김인환 대표의 뒷모습을 보니 조선 시대에 서자 출신의 왕이었던 선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두 계파를 적절히 이용하는 능수능란한 정치를 펼치고 있었다.

'지금은 잘하는 것 같은데 왠지 위태롭다. 위태로워···'

솔직히 무슨 상관이랴. 나는 이 작은 조직의 사내 정치와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났다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웠다.

대표가 나가자 이제야 목을 꽉 조르고 있는 넥타이를 살짝 푸는 하 실장이었다.

'음···.'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피디님?"

[네. 작가님! 이준환입니다. 지금 출발하셨나요? 저희는 다 준비 완료된 상태입니다. 이제 사인만 하면 됩니다. 하하···]

"아! 지금 출발합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바로 옆이니까요."

[네. 조심히 오세요.]

이준환 PD는 아직도 계약과 관련해서 조바심을 내는 것 같았다.

나 어디 안 가는데···

그렇게 나는 나유정과 하석우 실장을 데리고 JTVC 스튜디오로 출발했다. 무려 11억짜리 계약을 하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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