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30화 (30/263)

제작사도 모르는 속편 (2)

[부부의 비밀 제작사도 모르는 후속작. 당황한 JTVC 바로 진위 파악 나서······.]

어제저녁 7시 '슬기로운 덕질생활' 종방연을 대신하는 회식이 있는 자리에 비교적 캐주얼한 차림으로 나타난 나유정이 차에서 내리는 사진이다.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지자 눈이 부신 듯 팔을 들어 눈을 가리고 있는 사진도 같이 올라왔다.

그녀의 손에 들려있는 것은 다름 아닌 대본이었고, 그 표지에는 '부부의 비밀 2 (가제) 8화'라고 명확하게 적혀있었다.

부부의 비밀은 JTVC에서 시청률 28%라는 엄청난 성공을 거두고 JTVC 최고 시청률을 달성한 작품이다. 나유정이 들고 있는 대본을 보고 JTVC에서 속편을 제작 중인 게 아닌가 하는 소문이 돌았지만,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해당 작품은 외국에서 판권을 사와 리메이크를 한 작품이기 때문에 후속편은 없습니다.” 부부의 비밀을 제작한 JTVC 스튜디오의 김현도 CP의 말이다.

“어째서 나유정 씨가 그런 대본을 들고 있는지 알 수 없으나 저희 쪽에서 따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없습니다.”

김현도 CP는 강한 어조로 논란을 일축했다.

하지만 부부의 비밀은 워낙 큰 성공을 거둔 작품이었기 때문에 쉽사리 이슈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SNS에는 속편을 기대하고 있다는 게시물들이 많이 올라오고 있다.

책임 피디의 말로도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자 JTVC 측에서는 자체적으로 진위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나유정 소속사 XM Ent. 부부의 비밀 속편 출연은 전혀 상의 된 바 없다!]

'슬기로운 덕질생활' 회식 장소에서 찍힌 한 장의 사진으로 대한민국이 시끄럽다. 그만큼 부부의 비밀이 준 충격이 대단했기 때문인데, 왜 나유정은 속편으로 추정되는 대본을 들고 있었을까?

논란이 커지자 나유정의 소속사 김인환 대표는 소속사는 전혀 알지 못하는 상황이며 정식으로 오퍼가 온 적도 없다고 밝혔다.

오히려 아직 한 달 가량 방영이 남은 '슬기로운 덕질생활'의 시청률에 마이너스가 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나유정 앞으로 밀려든 CF가 천문학적 금액이기 때문이다. 소속사는 현재 나유정에게 사실 여부를 파악 중이라고 밝혔다.

[논란이 커지자 SNS로 입장을 밝힌 나유정. '그냥 해프닝입니다. 친한 작가가 재미로 쓴 글입니다'.]

최근 크게 이슈가 되었던 부부의 비밀 속편에 대한 소문의 진위를 당사자가 직접 밝혔다. 모든 것을 해프닝으로 일축하는 모습이다. 아래는 전문이다.

안녕하세요. 나유정입니다.

깜짝 놀라게 해드려서 죄송해요.

부부의 비밀 2는 저와 제 지인인 작가가 장난삼아 만들어본 대본입니다. 제가 그 드라마를 너무 재미있게 봐서 작가인 지인에게 한번 써보라고 권유한 작품입니다.

그 작가도 무슨 의도를 갖지 않은 채 대본을 만들었으며 지금의 사태로 저와 함께 많이 놀란 상태입니다. 단순 해프닝으로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다시 한번 놀라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나유정 올림-

[나유정! SNS로 단순 해프닝이라고 언급했으나 뭔가 석연치 않다.]

배우 나유정이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부의 비밀 속편에 대해 결국 본인의 SNS로 입장을 표명했다.

그녀의 핫스타그램은 1년에 4~5개의 게시물이 올라올까 말까 하는 계정이지만 팔로워는 57만 명에 이르고 있는데 사실을 해명했음에도 쉽게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 이유는 첫 번째로 팬들이 부부의 비밀 속편을 강하게 바라고 있다는 점, 두 번째로 장난으로 썼다기엔 너무나 긴 분량이라는 점이다.

사진에 찍힌 팩트만 따지면 그녀가 들고 있는 것은 무려 8화다. (이 말은 최소 8화라는 뜻이다.) 한 드라마 작가는 미치지 않고서야 장난삼아 8화 이상을 쓰는 현업 작가는 없다는 게시물로 나유정의 해명을 반박했다.

이래저래 논란이 쉽게 수그러들지 않고 있는 모습으로 누리꾼들조차 분명 뭔가 있다는 강한 의심을 하는 상황이다.

*  *  *

나유정은 드라마 촬영이 다 끝났기 때문에 며칠간 휴가를 얻은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하 실장의 지시로 나유정을 회사로 데려가기 위해 그녀의 집에 와 있었다.

"죄, 죄송해요. 준형 씨. 거기에 기자가 진을 치고 있을지 몰랐어요."

".........."

"제가 SNS로 해명했으니 곧 잠잠해질 거에요."

".........."

나는 거실에 서서 팔짱을 끼며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약간 떡진 머리에 평소에 입던 후줄근한 추리닝, 진짜 양푼에 비빔밥이라도 해먹었는지 상의에 김칫 국물이 살짝 묻어있다.

얼굴만 보면 예쁜데 전체적인 갭이 진짜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갑자기 모 걸그룹 멤버의 결혼 전, 결혼 후 짤이 생각났다.

"어, 어딜 그렇게 봐요."

나유정은 팔로 자신의 상체를 가렸다.

"벼...변...태···."

"김칫국물 흘렸어요. 거기 가슴 부근요."

"에?"

"거기.."

그녀는 국물 자국을 확인하기 위해 안 그래도 늘어난 티셔츠를 더 늘리고 있었다.

"아 쫌···. 이거 입은 지 3일밖에 안 됐는데···."

"3일······?"

오늘 나유정이 나를 계속 침묵시키고 있었다.

잠시 거실에 적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나는 미간을 좁히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거 고의였죠?"

"뭐가요?"

그녀의 눈꺼풀이 살짝 파르르 떨리는 것 같다.

"어제 대본 가지고 나가서 찍힌 거···."

"그, 그럴 리가요. 준형 씨도 거기 기자들 있는 거 몰랐잖아요."

"모르긴 뭘 몰라요. 여러 명이 가게 앞에서 대포를 들고 있는데 모를 리가 없잖습니까! 왜 그때 대본을 들고 얼굴을 가렸나 고요!"

"그거야. 플래시 때문에 눈이 부셔서···"

"평소에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히신 분이 눈이 부시다고요?"

"어쨌든! 실수에요. 미안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준형 씨는 곤란한 게 없잖아요. 지금 내가 문제죠. 여기저기서 난리란 말이에요. 핫스타그램도 도저히 열어보질 못하겠어요. 하도 문의가 많아서···"

"곤란한 게 없다라··· 생각해보면 그렇긴 하죠. 솔직히 유정 씨가 부부의 비밀 어쩌고 이상한 소리를 하길래 장단 좀 맞춰준 거긴 한데··· 앞으로 좀 곤란하게 해드려야겠네."

"그, 그게 무슨···"

"나지혜 배역 확정을 취소하겠습니다."

"악! 아··· 안돼욧!"

나유정이 갑자기 악을 쓰며 내 팔에 매달렸다. 어우야 이 여배우 악력이 장난 아니다.

"놔··· 놔요."

"준형 씨! 이 매니저! 아니 이 작가님 농담이시죠? 에이! 소속 배우를 놀리시면 못써요. 나 놀랬잖아요."

나유정은 얼굴을 45도 각도로 나를 올려다보며 생글생글 애교를 떨기 시작했다.

"농담 아닙니다."

"아이! 정말! 이러기에요? 제가 말이죠. 오늘부터 PT 끊었어요. 예전에 퓨전 사극 찍을 때 다녔던 액션 스쿨도 다시 등록하고요. 거기서 검도도 가르쳐주거든요. 제발요. 네? 저 꼭 그 배역 하고 싶어요. 평생소원이었어요. 막 선혈이 낭자한 액션물 해보는 거···"

나는 그녀가 애원하거나 말거나 매몰차게 거절했다.

"전 속이 시커먼 사람하고 같이 일 못 합니다. 거짓말이나 막 해대고···"

"전 그런 사람 아니에요. 네?"

기사가 뜰 거라곤 회식할 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다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어제 들었던 그녀의 말이 생각났다.

나유정은 회식자리에서 기분이 좋은지 소주를 몇 잔 마시고 취해버렸다. 술이 엄청나게 약한 체질인 것 같았다.

테리우스 애들 말고는 사무적으로 사람들을 대해던 그녀가 술에 취하자 갑자기 돌변해서 헤픈 웃음을 흘리고 다녔다. 나는 무슨 안 좋은 소문이라도 돌까 봐 그녀를 잡아 옆에 앉혀놓고 술을 깨도록 했다.

나유정이 술을 먹고 힘든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면서 중얼거리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자까님···.으음···. 작품 너무 조터라···. 진짜아···. 나만 미더요 끅··· 내가 제작하게···..해준다능···]

꼭 저런 소리를 들었다고 의심하는 건 아니었다.

대본으로 얼굴을 가린다고?

하나하나 다 따져봐도 뭔가 구린내가 났다.

솔직히 나는 이슈가 되는 것도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대배우가 저렇게 맘에 들어 하는데 다른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예전부터 그녀에게 들어온 대본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녀는 작품을 선택하는 감각도 뛰어나다고 들었다.

단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나유정의 폭주였다. 가만 놔두면 안 될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말도 안 하고 일을 벌이면 나중에 곤란해진다. 내가 컨트롤 하는 선에서 움직여야 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나유정에게 고난을 좀 주기로 했다.

"됐고요. 오디션장에서 봅시다. 물론 제작이 된다는 가정하에···"

"아··· 진짜!"

"아~ 몰라요. 나 잠깐 화장실 좀 쓸 테니까 거실에서 무릎 꿇고 반성하고 있던지요."

나는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려 화장실로 들어갔다.

농담이 조금 과했나 싶긴 했다. 명색이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는 배우로 우뚝 선 내 연예인인데 말이다. 나는 일을 본 후 손을 씻고 거실로 다시 걸어 나왔다.

"큭··· 뭐, 뭡니까!"

나는 나유정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정말로 화장실을 쳐다보며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준형 선생님.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제발 배역만은···"

허··· 대배우(?)께서 이 정도로 사과하다니···

그녀는 정말로 나지혜 역할이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아역 배우 때부터 엘리트 코스를 밟고 성인 연기자로 데뷔하자마자 단박에 떠버린 그녀였다.

캐스팅 할 때 작가들은 신들린 연기를 보여주는 나유정을 항상 1순위로 꼽았으며, 우리 회사의 하 실장이 삼고초려를 해서 겨우 계약에 성공했으며, 그마저 계약도 본인 유리하게 해버린 부동의 여배우 1티어.

최근 '슬기로운 덕질생활'에서 미친 씹덕 연기를 선보이고 신드롬급 인기를 얻어 이십여 개의 굵직한 CF가 밀려 있다는 그녀가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고 있었다.

살짝 내가 너무 나갔나 싶었는데··· 그것도 아닌 거 같았다. 그녀는 더욱 내 눈치를 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놀려줄 생각이었다.

"부부의 비밀에 한초연 역을 한 김다연 씨도 꽤 배역에 어울리는 거 같은데 말이죠."

"뭐라구욧! 지··· 지금 뭐라고 했어요?"

김다연의 이름을 꺼내자 나유정의 눈에서 시퍼런 안광이 쏟아져 나오는 것 같았다. 마치 한을 품고 죽은 처녀 귀신의 원독 어린 눈빛 같았다.

'컥···'

김다연이 뭐길래··· 철천지원수라도 된단 말인가! 아무래도 이건 건드리면 안 되는 영역이었던가?

그녀는 치켜뜬 눈도 모자라 주먹을 터질 듯 꽉 쥐고 있었다. 그녀는 무릎을 풀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나를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저기요. 작가님 오디션 하시려면 마음대로 하세요. 김다연이도 부르려면 부르시고, 아니면 할리우드 배우를 부르시던가요...“

“그런데요. 이것만 아시면 돼요. 누굴 데려와도 저한테 안될 거에요."

헉! 이 무슨 광오한 발언이란 말인가! 누구도 상대가 안될 거라니!

나를 째려보는 그녀의 눈은 마치 북풍한설과 같았다. 하지만 나도 성깔이 있다.

물론 수십억을 벌어들일 나유정과 비교는 안 되겠지만 나도 월천 킥(?)하는 작가다.

"아이···. 쩝. 갑자기 쓰기 싫어지네. 9화, 10화 쓴 거 그냥 다 파쇄기에 갈아버려야지."

그러자 갑자기 그녀가 나에게 뚜벅뚜벅 걸어오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손으로 내 어깨를 탁하고 잡았다. 나는 고개를 돌려 그녀의 가녀린 손을 쳐다보았다.

나유정은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두 눈을 찡긋했다.

"에이··· 그거 나 좀 봅시다? 제가 사과하면 되잖아요? 뭘 어떻게 해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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