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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7화 (27/263)

대배우가 준 퀘스트 (4)

김호진 PD에게 훈이와 잠깐 병원에 다녀온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황당한 표정이었다.

"아니··· 작가님이 왜 김훈 씨를 병원에 데려가나요? 매니저들도 있는데···"

"매니저들 바쁘잖아요. 다른 애들은 여기 놔두고 갈 수가 없으니 제가 대신 가는 겁니다."

"그런데 어디가 아프길래···"

김호진 PD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표정이었다.

"별건 아니고 검진이 좀 있다네요."

"흠···"

"대본에 일이 있어서 훈이만 자리에 없다는 설정으로 바꾸고 대사 좀 조정하면 될 거 같은데요?"

"아 조정해주시려고요?"

"물론이죠."

김 PD는 내 대답을 듣고 흔쾌히 허락을 해줬다. 하지만 김훈의 반응이 영 별로였다.

내가 병원에 가자고 하자 의아해하는 표정을 넘어 짜증이 섞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차 안에서 말 한마디 없이 창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인마. 혹시 몰라서 그러는 거잖아. 사내자식이 꽁해서···'

난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혹시 성대가 안 좋은 상태라면 말을 안 하는 게 나았다.

시간에 맞춰 세브란스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이비인후과 김철중 박사를 찾아갔다.

김 박사는 훈이를 진단해보더니 담담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성대결절입니다."

"네?"

안 간다면서 짜증 섞인 말을 하던 훈이는 경악하며 그야말로 얼굴이 흙빛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증상이 심하진 않아서 약물치료 좀 하고 휴식을 취하면 좋아질 것 같습니다. 웬만하면 성대를 사용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휴······. 그거 다행이네요. 치료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요?"

"사실 개인차가 심해서 대중이 없긴 한데 짧으면 몇 주, 길면 두세 달도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혹시 가수?"

"네. 맞습니다."

김철중 박사는 훈이가 한 메이크업과 머리스타일을 보고 가수로 생각했나 보다.

"지금 가수분은 웬만하면 말씀을 하지 마시고··· 제가 대신 보호자 분께 말씀을 드릴게요. 환자분은 듣고만 계세요."

김훈은 의사의 목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감싸 쥐었다.

"가수분들 보면 스케줄이 바빠서 상태가 심각해진 상태로 오곤 하는데 이렇게 초반에 오는 경우는 상당히 드문 케이스에요. 뭔가 살짝 초기증상을 느끼고 곧바로 오신 거죠?"

"네··· 요즘 노래가 컨트롤이 살짝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내가 손가락으로 훈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혹시 가수분 성함이··· 제가 노래를 부르는 영상 같은 걸 볼 수 있을까요?"

"남자 아이돌 가수입니다. 테리우스라고 메인 보컬을 맡고 있습니다."

"메인 보컬이군요. 어디 한번 봅시다."

나는 미튜브를 열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의사는 그 영상을 주의 깊게 살피고 있었다.

"이거 말고 그냥 대화 톤으로 말하는 영상도 보여주세요."

요구하는 대로 다 들어줬더니 김철중 박사가  책상을 톡톡 치며 나를 쳐다봤다.

"흠. 정확하지는 않고 그냥 제 경험으로 말씀드리는 거에요. 환자분이 소리를 낼 때나 고음을 낼 때 자연스러운 걸 보면 전문적으로 발성 훈련을 받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는 톤이 평상시 목소리와 크게 다르지 않고 자연스러워요."

"네. 그런데요?"

"지금 한 이야기는 과학적이거나 그런 건 아니에요. 경험상 자연스럽게 무리하지 않고 고음을 내는 사람들이 성대결절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건 맞습니다."

"얘는 노래 연습도 많이 하고 성대를 혹사한 건 맞을 텐데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노래하는 방법이 비교적 성대에 무리가 덜 가능 방법이네요."

그는 시간이 많은지 친절하게 설명을 잘 해줬다.

"그렇다면 왜 성대결절이 온 걸까요?"

"원인은 다양합니다. 감기에 걸려서 오는 사람도 있고 어린애들이 갑자기 소리 지르다가 오는 경우도 많아요. 특히 술, 담배, 커피 같은 거 많이 드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특히 술 드시면 역류성 식도염으로 성대에 거의 염증이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역류성 식도염이 별거 아니에요.

그냥 술을 많이 마시거나 뭘 많이 먹거나 소화 안 되고 특히 우유 같은걸 먹었을 때 위산이 살짝 올라오는 건데 목에 점막이 없다 보니 상하게 되거든요?"

"혹시 아침에 양치질할 때 헛구역질하다가 목이 싸한 느낌···"

"맞아요. 그런 거도 그렇고요."

"보통 사람들은 그런 경우를 겪더라도 자연스럽게 나아지는 경우가 있는데 말을 많이 하거나 목을 많이 쓰는 사람들은 염증이 치유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렇군요. 케이스가 다양하네요."

"예전에 어떤 여자 가수분은 다이어트 한다고 먹은 걸 죄다 토하다가 성대에 염증이 생기고 부종이 생기면서 섬유화가 진행돼서 결절이 온 예도 있었어요. 그런 심각한 경우는 수술까지 해야 하는데 잘못하면 목소리가 돌아오지 않는 일도 있죠."

"흐읍···"

그 말을 듣자 갑자기 훈이가 놀란 듯 몸을 살짝 떨었다. 뭐야 이 녀석 그런 거야? 김 실장이 자꾸 살찐다고 면박을 줘서 먹는 거 조심하더니···

"아무튼, 환자분은 염증이 살짝 있고 부종이 막 발생하려는 초기 단계 정도로 보이는데 약물치료 좀 하고 휴식을 취하면 나아질 겁니다."

"아··· 절대 술, 담배, 커피··· 웬만하면 우유도 드시지 마세요."

그렇게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권유받았다. 그리고 물을 많이 마시고 성대를 될 수 있으면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시죠? 몸은 소모품입니다. 많이 쓰면 쓸수록 안 좋아지죠. 다행히 성대는 그나마 노화가 느리게 오는 곳 중 하나입니다. 오래 가수 생활을 하시려면 바른 생활 사나이가 되어야 합니다. 왜 유명 가수분들이 그렇게 관리를 하는지 이해하셨어요?"

"감사합니다. 박사님."

"아무튼, 다행이에요. 정말 이 정도 단계에서 오시는 분들은 극소수거든요. 회사가 어디에요? 소속 가수 관리 잘하네요."

"아··· 회사가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매니저인데 다 제가 잘나서죠."

".........."

"낌새가 이상해서 데려온 겁니다. 박사님이 국내에서 가장 권위자라고 하시더군요."

"하핫! 제 자랑 같지만, 외국에서도 치료받고 수술을 하려고 많이들 오십니다."

서로 농담을 하면서 스스로 얼굴에 금칠하고 있었다.

"감이 대단하신 거 같은데 혹시 이런 경우 또 보시면 저한테 데려오세요. 커미션 드립니다. 하하하!"

이 의사 양반 은근히 웃기네.

"가수분 일단 치료받으시고. 절대 무리하면 안 돼요. 나아지고도 관리 잘해야 합니다. 소리라는 게 결국은 성대에서 이루어져서 성대로 끝나는 겁니다.

뭐 흉성, 가성, 두성··· 어쩌고 하는데 결국 성대를 얼마나 좁히느냐 얼마나 끌어올리느냐 내리느냐 그런 거에요. 관리만이 살길이요. 오래 활동하는 지름길이다. 이 말입니다."

"아이고···. 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박사님."

나는 훈이와 함께 의자에서 일어나 허리를 굽혀 꾸벅 인사했다.

"나가셔서 처방받으시고··· 관리 잘하세요."

*  *  *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심각한 얼굴의 훈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나는 일부러 라디오조차 꺼놓은 상태였다. 혹시 노래라도 나와서 저놈이 흥얼거릴까 봐···

갑자기 고개를 돌린 훈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 고마워."

"야! 의사가 하는 말 안 들었어? 너 말하지 말라잖아. 가만히 있어. 일단 촬영장 가서 내가 대사 다 빼줄 테니까. 넌 얼굴만 나오면 된다. 성대 회복되는 거나 신경 써. 알았어?"

끄덕끄덕···

훈이는 대답하지 않고 이를 꽉 깨문 채 고개만 크게 끄덕였다.

"넌 인마. 형이 하라는 데로만 해. 자다가도 떡이 나와."

도리도리···

"아···. 넌 떡 싫어하지? 그래. 자다가도 빵이 나온다고!"

그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고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괜히 다이어트 한답시고 먹고 토하지 마라. 먹고 싶으면 먹고 운동을 하라고! 멤버들하고 운동하게 PT라도 끊어주랴?"

훈이는 고개를 떨군 채 손에 들고 있던 물병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띠링 띠링···

빨간 불에서 톡을 확인해보니 훈이가 보낸 메시지었다. 강아지가 울면서 절을 하는 이모티콘이라던가 여러 가지를 보내줬다. 나는 그걸 보고 가볍게 일침을 날렸다.

"야··· 짜증 나게 하트는 넣지 마라. 뒤진다."

리어 미러로 훈이를 보니 손으로 하트를 그리고 있었다.

"아! 씨···. 저게 죽으려고···"

우리 둘은 서로 피식 웃고 말았다.

나는 촬영장에 도착해서 일단 조 팀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뭐? 성대결절 초기?"

"금방 낫는다네? 워낙 초기에 와서···"

"그건 다행이네. 얼··· 이준형이 한 건 했네? 역시 촉이 좋다니까?"

"형님도 알잖아요. 나 촉 좋은 거··· 내가 이상하다고 하면 이상한 거라니까."

"흠···. 그럼 이를 어쩐다?"

"일단 내가 나중에 회사 가서 보고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김호진 PD한테도 말해놓을게."

"그··· 그럴래? 하긴 네가 훈이 상태를 제일 잘 알고 있으니까 그게 맞겠지."

조형택 팀장은 한숨 덜었다는 듯 가슴을 쓸어내리는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내가 이상한 거지 형 처지에서는 방송국 PD가 편할 리만은 없었다.

그리고 개미 그러니까 개 미친놈인 김상효 실장도 마찬가지였다.

요즘 딸내미 보는 재미에 빠져 살고 있는데 이런 귀찮은 일은 내가 대신해줘야지만...

솔직히 말하면 꼭 그런 건 아니었다.

어차피 대사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내가 김 PD랑 이야기를 해야 하고, 김상효 실장에게는 한 방 먹이려고 가는 것이다.

어차피 하는 건데 괜히 조 팀장에게 생색을 낸 것이다.

일거양득. 꿩 먹고 알 먹고.

나는 곧바로 김 PD와 상의를 해서 김훈의 대사를 이든이로 바꿔버렸다. 물론 이든이는 말이 없는 캐릭터라 약간의 대사 변경이 필요했다.

하지만 내가 누군가 하루 만에 슬기로운 덕질 생활 대본을 다 써버린 초인이다. (물론 바로 떡실신했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일을 처리한 후 쉬고 있는 나유정에게 다가갔다.

"병원 간 일은 잘됐어요?"

"이건 비밀인데 성대결절이래요."

"엑··· 정말요? 심각해요?"

"초기래요. 그냥 쉬면 낫는다고 합니다."

"휴··· 다행이네. 안 그래도 요즘 훈이 얼굴이 안 좋던데··· 쉬면 좀 나아지려나."

그나마 드라마를 찍으며 친해졌다고 걱정을 해주는 나유정이었다. 그렇게 마지막 부분의 촬영이 끝나가고 있었다.

일주일 후 슬기로운 덕질 생활 3화가 방송됐다. 반응은 역시나 뜨거웠다.

[슬기로운 덕질 생활 3화 시청률 20% 돌파! 쾌속 진격!]

[여배우 나유정 연예기획사 신입사원 되다? 시청자를 웃게 하는 좌충우돌 초보 매니저 생활!]

[나유정 효과는 쭉 이어진다? 하지만 연기돌 테리우스 한연준도 주목해야 하는 이유!]

[드라마 제작사가 슬기로운 덕질 생활을 쓴 작가를 찾고 있다?]

"응? 뭐야. 내 기사까지 떴네?"

나는 호기심에 위 기사를 클릭했다.

드라마 제작사들이 슬기로운 덕질 생활을 집필한 초보 작가의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연히 슬기로운 덕질 생활 대본을 구한 제작사 관계자들 사이에서 앉은 자리에서 그 내용을 전부 다 읽어버렸다는 도시 괴담이 돌고 있다.

드라마 10화 분량이 마치 한편인 것처럼 느껴진다는 소리까지 나오고 있었다.

'마치 하루 만에 다 써버린 것 같은 흐름이에요. 회차가 바뀌면서도 너무 자연스럽고 흐름이 끊어지는 게 전혀 없더군요. 정말 드라마 초보 작가인지 의심스러운 필력이었습니다.'

이렇듯 제작사들 사이에서는 이 드라마 대본을 집필한 작가에 대해 알아내려고 했지만 TVM 측은 자신들도 전화번호와 메일 외에는 별다른 정보가 없다며 공개를 꺼리고 있다고 했다.

항간에는 신비주의 전략이 아닌가 하는 의견도··· <중략>

"신비주의는 개뿔! 괜히 내가 작가라는 게 밝혀지면 캐스팅 논란 같은 게 생길까 봐 그러지. 솔직히 이거 아는 사람이 몇 명 되지도 않는데··· 가족도 모르고···"

나는 기사를 닫고 대배우님이 내려주신 퀘스트 "부부의 비밀 2"의 8화 집필을 끝마쳤다. 이제 남은 건 나머지 후반부 8화였고 전반부, 후반부 총 합쳐서 16화였다.

다음날도 일찍 일어난 나는 여느 날처럼 나유정을 데리고 촬영장에 갔다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그녀를 데리고 집에 데려다줬다.

"이 작가. 부부의 세계 속편은 쓸 건지 안쓸 건지 아직 결정 안 했나요?"

나유정이 차에서 내리다 말고 장난스럽게 나를 쳐다봤다.

"그거요? 잠시만요··· 아···. 지금 8화 정도 써놨는데 내가 말을 안 했구나."

"어? 정말요? 벌써 8화까지 썼다고요? 지금 2주가 채 안 된 거 같은데···"

"제가 말했잖아요. 10년 이상 글을 쓴 작가라고요. 웹소설 작가는 웬만하면 하루에 만자는 거뜬하게 씁니다. 2주일이면 책 한 권 뚝딱 이에요."

"그렇게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얼마나 날림으로 썼길래 그렇게 빨라요? 안 봐도 비디오네."

"에이 그러면 안 줘야겠다. 나만 봐야지."

내가 가방에서 대본을 꺼내다 말고 다시 집어넣자 나유정이 내 어깨를 덥석 잡았다.

"사람이 싱겁기는··· 좀 봅시다?"

눈을 살짝 흘기는 나유정이었다.

"후후후···"

나는 가방에서 대본 뭉치를 꺼내서 그녀에게 건네주려다 멈칫했다.

'혹시 이거 읽다가 또 날 새는 거 아냐?'

적당히 덜어내서 4화 정도만 그녀에게 건네고 말았다.

"아니! 다 주지. 그 남은 건 뭐에요."

"일단 그것만 보고 이야기해요."

나는 그렇게 나유정을 엘리베이터로 올려보냈다. 집에 도착해서 씻고 글을 좀 쓰려고 앉았는데 나유정에게 톡이 왔다.

[나유정 : 뭐에요. 1화가 부부의 비밀하고 너무 똑같이 가는 거 아니에요? 설정만 좀 다른 거 같은데요? 뭔가 다크한 것 같긴 한데···.]

1시간 후···

[나유정 : 나지혜 뭐야. 너무 불쌍한데요? 왜 이렇게 내 배역을 찌질하게 만든 거임?]

이제는 자려고 누웠는데 또다시 톡이 왔다.

[나유정 : 하악하악··· 김인애가 녹취 파일 듣고 실신하는데... 저도 실신할 뻔··· 하악···. 얼른 다음화를 이메일로라도 좀···]

[나유정 : 저기요?]

[나유정 : 이준형 작가님? 제에발··· 나 죽어욧···]

급기야 새벽 한 시가 넘었는데 전화가 온다. 나는 짜증 나서 전화를 방해금지 모드로 돌려버렸다.

'8화까지 다 줬으면 또 날을 샐 기세였군. 큰일 날 뻔 했다. 응대를 안 하면 좀 자겠지. 뭐···'

다행히 새벽에 전화까지 오는 걸 보니 반응은 좋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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