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26화 (26/263)

대배우가 준 퀘스트 (3)

나는 수첩을 펴놓은 다음, 워드 프로세서와 마인드맵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시놉시스와 줄거리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과분하게 행복한 결혼 생활이었다. 한 아이의 아버지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내 남자는 결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니었다. 그의 비밀을 추적하며 나의 세상은 뒤집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놉시스를 간단하게 써 놓은 뒤 대략적인 플롯을 짜기 시작했다.

생명공학자이자 의사인 김인애(40세)는 평온한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끼고 사는 아직은 꽃다운 나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이다.

몇 년 전 친구이자 직장동료에게 한 남자를 소개받고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는 그녀에게 너무 과분한 사람이었다.

그녀의 남편 한승호(40세)는 보기 드문 미남이자 경찰대학 출신의 전도 유망한 경찰 간부후보였다.

그는 가정에서 한 아이의 믿음직한 아버지이자 다정한 남편이었다. 그리고 직장에서는 냉철한 두뇌로 탁월한 검거율을 기록했다.

그리고 극악무도한 연쇄살인범까지 체포하는 공로를 세워 미디어에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얼굴까지 시너지가 발생하며 경찰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개선한 사람으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는 인물.

심지어 그의 주위 친한 친구들조차 잘 나가는 인물들이었다. 그를 김인애에게 소개해준 같은 병원의 친구인 정신과 의사 김태원, 국민 메신저를 개발해 최고의 IT 기업을 일군 사업가 이영민까지···.

그녀는 과분하고 누구보다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어느 날 김인애는 범죄 수사에 바쁜 남편을 위해 말없이 서프라이즈를 해주기 위해 도시락을 싸서 남편 직장을 찾았다.

우연히 경찰서 지하주차장에서 한승호와 그의 직장의 하급자인 나지혜의 이상한 관계를 눈치채고 그들을 미행하기 시작하는데···.

카페까지 미행한 김영애는 옆자리에 앉아 남편과 나지혜의 충격적인 불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호텔로 사라지는 둘을 보며 미칠듯한 분노를 느끼는 그녀. 입술을 깨물고 급기야 눈물을 쏟고 마는데···.

미칠 듯 화가 났지만, 남편이 죄를 진심으로 뉘우친다면 아이의 아버지로서 한번은 눈감아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직 그녀는 그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분노는 고스란히 불륜녀인 나지혜에게 향하게 된다.

자신보다 미인이면서 젊기까지 한 나지혜!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그녀의 정보를 캐기 시작한다.

IQ 160의 천재인 김인애의 잔인한 보복이 시작됐다. 자신의 남편을 유혹한 나지혜를 파멸시키기 위한 계략이 하나둘씩 펼쳐지기 시작한다.

직장과 친구들 가족들까지 천천히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엘리트 경찰에서 밑바닥 인생까지 추락해버린 나지혜!

여기까지는 초반 도입부였다. 부부의 비밀과 비슷한 분위기로 흘러간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다크한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흐음···. 1화, 2화는 부부의 비밀과 너무 똑같나? 뭐 어때. 속편인데···. 이게 드라마화 될 리도 없고··· 내 맘대로 쓰는 거지 뭐.'

나는 부부의 비밀을 재미있게 봐서인지 패러디(?) 혹은 극본 집필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며 글을 쉽게 썼다.

'역시 머릿속으로 영상을 떠올리면서 쓰면 재미있다.'

나는 글을 쓰면서 마치 눈앞에 화면이 재생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솔직히 자신이 쓴 글이 영상화가 된다면 얼마나 만족스러울까?

몇몇 대박 작가들을 제외한 일반 작가들 평균 연봉이 5천만 원도 안 되지만, 직업 만족도가 상당히 높게 나오는 걸 보면 그런 요인이 큰 영향을 차지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막장 스토리를 전개시키기로 했다.

나지혜를 파멸시킨 것도 모자라 남편의 차에 위치추적기를 달고 생일에 선물한 도청장치가 있는 만년필로 그의 사생활까지 모두 탈탈 털기로 작정한 닥터 김인애.

그 사실을 모르는 한승호는 그동안 꽁꽁 숨겨왔던 자신의 비밀스러웠던 행적을 아내에게 고스란히 노출하게 된다.

범죄 수사를 핑계로 잦은 야근을 하는 남편을 쫓는 김인애···.

한승호는 그 사실을 모른 채 경기도 인근의 호화 별장으로 들어선다.

김인애는 높은 곳에 올라가 준비해온 망원 카메라로 별장을 탐색하는데 마당에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과 그의 절친 이영민 (IT 재벌)이 마중을 나와 있었고 잠시 후 자신의 친구이며 직장 동료이자 유능한 정신과 의사 김태원이 도착한다.

그 후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연예인 같은 여자들이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 드디어 문이 닫히고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은 각자의 감시 구역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며칠 후 도청장치를 회수하기 위해 만년필을 빼돌린 김인애는 결국 추출한 음성 파일을 듣고 엄청난 충격에 빠지며 실신한다.

중반으로 넘어가면서 치정극에서 스릴러로 자연스럽게 극이 변화했다.

이미 드라마 초반부터 다크한 이미지를 곳곳에 깔아두며 암시를 줬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갑작스러운 급발진을 느끼지 못하게 한 것이다.

그 모임의 정체는 PP Club (사이코패스 클럽 - Psychopath Club) 이었다.

로또보다 더한 확률로 어렸을 적 영재학교에서 만난 3명의 천재 사이코패스가 도원결의하며 대한민국을 통째로 접수하기 위해 계획을 짜는 무시무시한 이야기였다.

친구라고 생각했던 김태원은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며 자기를 한승호에게 소개해줬던 것도 그 계획의 일부였던 것!

유력 정치인인 자신 아버지의 후광을 노린 것이다. 키가 크고 잘생긴 한승호는 깨끗하고 유능한 스타 경찰이 되어 정치에 입문해서 40대 중반에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노리고 있었다.

현재 경찰 조직에서 그의 영향력은 가히 경찰청장 이상급으로 모든 경찰의 마음속에 우상과 같은 존재였다.

김태원은 자신들과 비슷한 사이코패스 및 정신병이나 편집증이 있는 환자들을 완벽하게 정신적으로 굴복시키며 마치 신흥 종교와 같은 암흑 조직을 건설하는 교주 겸 보스 역할이었으며, 이영민은 대한민국의 사실상 독점 메신저를 손에 쥐고 모든 정보를 신처럼 내려다보는 빅브라더를 거의 완성해놓고 있는 단계였다.

일의 심각성을 눈치챈 김인애는 어쩌지 못하고 공포에 떨며 미칠 듯 괴로워하다가 자기가 파멸시킨 나지혜를 찾아가 사실을 털어놓고 협조를 구하게 되는데···

쓰다 보니 웹소설과 막장드라마는 공통점이 있었다.

첫 번째, 아무 생각 없이 뇌를 비우고 보면서 욕을 한다. 두 번째, 욕을 하면서도 비슷한 걸 계속 본다.

"후··· 힘드네. 막장도 이거 보통이 아니구만."

나는 책상 옆에 큰 잔에 가득 담겨있는 연한 아메리카노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쓰읍··· 이거 너무 막장인가? 스케일 무엇? 이거 드라마화 가능?"

솔직히 괴작을 쓰는 감각은 아직도 죽지 않은 듯했다. 나의 존재를 어떤 규격에 맞추지 않고 봉인을 풀면 이러한 것들이 툭툭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뭐에 홀린 듯 키보드를 두드리고 나니 벌써 새벽 2시 반이었다. 플롯을 짜고 1화, 2화 대본을 완성했다.

이 작품은 슬기로운 덕질 생활과 다르게 플롯이 복잡하고 경험이 없는 분야기 때문에 여러 가지를 찾아보느라 빠르게 쓸 수 없었다.

물론 다른 사람에 비하면 하루 만에 2화를 쓴 것도 엄청난 속도라고 할 수 있었다.

내일 오전에 촬영이 있어서 그만 자야 할 것 같았다.

순전히 나를 위해서··· 아니지 엄밀히 말하자면 나유정이 퀘스트를 준거긴 하지만···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았다.

아직도 웹소설로 월 천만 원 이상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걱정이 없이 이런 미친 짓을 과감히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 행복하다. 역시 글을 쓰는 건 너무 짜릿해.'

나는 정녕 작가를 타고난 걸까? 매니저로서 회사 다니는 것도 재미있긴 한데 역시나 창조적인 일이 나에게 더 잘 맞는 것 같았다.

"에효··· 애송이 녀석들 돌보미 역할을 하려면 얼른 자야지. 이 짓도 힘들구만."

양치질을 하고 침대에 눕자마자 잠이 들어버렸다.

*  *  *

아침 일찍 회사에 들러 업무 보고를 했다. 오늘은 촬영장에서 훈이를 빼내서 병원에 데려갈 생각이었다. 위태롭게 흔들리던 아우라가 자꾸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제 인터넷을 검색해서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성대 전문가를 찾아내었다. 세브란스 병원의 김철중 박사였다.

성대 치료라면 세계적으로 세 손가락 안에 꼽힌다는 대단하신 분이었다.

전화를 해봤더니 우연히 오늘 한 타임이 빈다고 해서 곧바로 예약을 넣어 놓은 상태였다.

나는 먼저 조 팀장에게 보고했다.

"형. 아무래도 훈이 녀석 오후에 병원에 좀 데리고 갔다 와야 할 것 같아요."

"응? 그게 무슨 소리야? 훈이 어디 아프니? 어제 안색이 안 좋긴 하던데···"

"그건 아니고··· 좀 의심되는 게 있어서 그래"

"뭐가 의심되는데?"

"확실하진 않은데 성대 검사 좀 해보려고··· 요즘에 노래가 마음대로 잘 안되나 봐."

"혹시 목 아프다고 하냐?"

"아니. 그런 건 전혀 아니래."

"그런데 왜 병원에 데려가? 무슨 근거로 위에다 보고할 거야. 그냥 감이라고? 증상도 없는데?"

형택이 형도 팀장으로서 난감해 했다. 한참 촬영을 해야 하는데 혼자 빠지고 증상도 없는데 병원에 간다고 하다니 보고하기가 어려웠다.

보고를 안 하자니 또 나중에 무슨 소문이라도 나면 절차대로 하지 않았다고 추궁당할 게 뻔했다.

"형. 좀 난감해? 그럼 그냥 내가 김 실장한테 보고할게."

"괜찮겠냐?"

"나 요즘 김 실장이랑 싸워서 정든 거 몰라?"

"얼씨구? 웃기고 있네. 요즘 아주 겁대가리를 상실했어요. 너 혹시 로또라도 된 거 아니지?"

이 양반도 나우민 팀장하고 똑같은 소리를 했다.

"형. 로또 되면 내가 왜 여기 다니고 있겠어요? 당장 때려치웠죠."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어이없다는 듯 두 팔을 들었다.

"하긴··· 그래. 알아서 해라. 너 은근히 감이 좋잖아. 맨날 드라마 하면 스토리 다 맞추고···. 네가 감이 안 좋다고 느꼈으니 지금 이러는 거잖아?"

"오우! 맞아. 정확해. 역시 조 팀장님. 조블리 선생이자너. 김 실장이 조블리 정도만 돼도 얼마나 편할까!"

우락부락한 덩치의 형택이 형이 오버를 하는 나를 보고 빙긋 미소를 지었다.

"김 실장이랑 쇼부치고 와라. 내가 애들 데리고 촬영장 먼저 가 있을 테니···"

"그래. 보고하고 유정 씨 데리고 갈게."

그렇게 형택이 형이 테리우스 숙소로 출발하고 나는 김상효 실장 방문을 노크했다.

"들어오세요."

"안녕하세요. 팀장님. 이준형입니다."

내가 문을 열고 꾸벅 인사를 하자 고개만 살짝 까딱하고 나를 노려보는 김 실장이었다.

"네가 아침부터 무슨 일이냐?"

이 자식(?)은 대뜸 아침부터 반말이네. 짜증 나게. 이런 말은 언제 들어도 기분이 좋지 않다.

반말은 정겨운 사이나 돼야 맘 편히 받아들이지 저런 식으로 고압적으로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은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김훈 때문에 왔습니다."

"오호~ 혹시 설득한 거냐?  복면 가요왕 나간대?"

"아뇨? 그게 아니라···"

"뭐야. 그럼 뭐하러 왔어."

"오후에 훈이 좀 빼서 병원에 다녀오려고요."

나는 아까 형택이 형에게 보고한 것처럼 똑같은 말을 했다.

"인마. 너 미쳤어? 지금 드라마 한창 마지막 부분 찍는다며? 그런데 왜 네 멋대로 증상도 없는 애를 병원에 데려가느냐 마냐 하는 거야?"

"뭔가  이상한 거 같아서 그럽니다. 훈이가 연습생 때부터 노래를 좀 과하게 불러온 게 사실이거든요. 성대라는 게 갑자기 탈이 날수도 있는데 증상이 고통 없이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합니다."

"웃기지 말고 정 필요하면 이번 드라마 다 찍고 데려가 봐. 그럼 뭐라고 안 할 테니까."

"늦습니다."

"뭐 인마?"

"늦다고요."

나는 훈이의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위태롭게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김상효 실장은 나를 보고 짜증이 난다는 표정으로 들고 있던 신문을 책상에 휙 던져놓았다.

"난 허락 못 하니까. 하고 싶으면 네가 방송국 PD랑 직접 이야기해서 일정 조정하던지··· 흥···"

네가 어쩔 건데? 라는 반응이었다. 그러더니 책상에서 칫솔을 꺼내 치약을 묻히고 있었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표정 하나 변함없이 담담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래. 김 실장! 그런 반응 좋다. 아예 안된다고 강짜만 안놓으면 된다. 김호진 PD는 내 말이라면 끔벅 죽는다고··· 흐흐흐···

"알겠습니다. 그 문제는 제가 현장에 가서 알아서 하는 거로 하겠습니다. 그럼 가보겠습니다."

내가 아주 쉽게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돌려 나가려고 하자 급히 다시 나를 부르는 김 실장이었다.

"이준형! 혹시 스케줄 조정되면 너 나한테 보고해야 해. 알았어?"

"예··· 그리합죠."

"허··· 이 자식 말하는 본세 보소?"

김 실장은 내 자신감에 뭔가 이상한 느낌을 받은 모양인지 한 발짝 빼는 모습을 보였다.

"혹시 압니까? 일이 잘 풀려서 나중에 복면 가요왕 나갈 수 있을지? 그렇게 되면 실장님이 위에다 생색 내시던가요."

"·········."

그는 어이가 없는지 대답을 못 하고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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