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기로운 덕질 생활 (2)
슬기로운 덕질 생활의 첫 방송이 있은 후 한 연예 매체에 장문의 기사가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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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기로운 덕질 생활 도대체 얼마나 재미있길래 이렇게 난리인가?' - 일레븐아시아-
TVM의 슬기로운 닥터 생활의 후속작 슬기로운 덕질 생활이 어제 9시 첫 방송 후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 및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의 이슈를 모조리 장악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슬기로운 덕질 생활'은 베니스 영화제 여우주연상 노미네이트에 빛나는 연기파 배우 나유정이 주연을 맡았으며 주목을 받는 신성 보이 그룹 테리우스가 출연 중인 드라마다.
어제 방영된 1화에서는 세계적으로 연기력을 인정받고 있는 한국의 지적인 최고 여배우가 실은 지독한 아이돌 마니아라는 사실이 코믹하게 그려졌다.
나유정이 연기한 나혜리는 대중들 앞에서는 도도하고 지적이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아이돌 앞에서는 그야말로 여중생 팬처럼 행동하는 이중인격자와 같은 모습을 드러냈다.
특히나 최애 보이그룹의 신보를 가슴에 껴안고 방을 데굴데굴 구르며 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과 손을 벌벌 떨며 동영상 사이트에 업로드된 뮤직비디오를 클릭하는 코믹한 모습은 영락없는 아이돌 마니아와 같은 모습이라며 보는 사람들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한 행사장에서 우연히 만난 중소 연예기획사 무명 그룹(제우스)를 만나 호들갑을 떨며 입덕하는 모습은 시청자의 폭소를 자아내기 충분했다는 평가다.
드라마 마지막에는 몇 년간 쉼없는 연기활동을 이어간 나혜리가 번아웃이 왔다며 정신과 상담을 신청하고 소속사에 6개월간의 휴가를 달라는 폭탄선언을 하는 장면으로 1화가 마무리되었다.
2화부터 그녀의 본격적인 덕질 생활을 예고하고 있었다.
전반적으로 1화에 대한 각종 SNS의 반응을 살펴보면 한결같이 나혜리역을 연기한 나유정의 높은 연기력을 칭찬하는 반응이 많았다.
한 시청자는 '나유정의 180도 달라진 연기에 놀랐다'면서 '영화에서 소름 끼치게 미쳐가던 연기를 하던 사람이 맞는지 의심스럽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한, 모 커뮤니티에는 집 밖 나유정 VS 집안 나유정이라는 재미있는 움짤이 비교 합성되어 빛의 속도로 베스트 게시물에 등극한 상황이다.
집 밖 나유정은 도도하기 그지없는 지적인 배우고, 집안 나유정은 남자 아이돌 포스터에 자신이 나왔던 영화 포스터(그것도 키스하는 장면)를 오려 붙이며 풀린 눈으로 헤실헤실 웃기까지 하는 푼수기 넘치는 허당녀다.
시청자들은 이 갭 차이 때문에 '나혜리'라는 캐릭터에 푹 빠져 버렸다고 환호하고 있다. 또한, 그런 연기를 완벽하게 해낸 나유정의 소름 끼치는 연기력까지 극찬을 받는 상황이다.
드라마에서 나혜리의 집안 복장도 화제가 됐다. 노 메이크업에 안경을 쓰고 목이 늘어난 김칫 국물이 묻은 티셔츠에 헤진 연두색 츄리닝 바지.
대충 아무렇게나 올려 묶은 머리를 보고 '와! 꼭 내가 집에 있을 때 입고 있는 옷 같다'라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여성들의 열띤 호응이 많았으며 그 모습을 보니 왠지 힐링이 된다는 다수의 의견이 눈에 띄었다.
제우스라는 무명 아이돌 그룹으로 나온 5인조 아이돌 그룹인 테리우스도 5명 전원이 안정적인 연기를 펼친 것으로 시청자들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특히 메인 남 주인공인 센터 한연준과 주요 조연인 래퍼 이창민의 연기가 돋보였다는 평. 참고로 테리우스는 얼굴로 뽑은 신인 남자 아이돌 1위로 유명한 그룹이다.
이처럼 슬기로운 덕질 생활은 수많은 화제를 낳으며 쾌조의 출발을 알렸다. 역대 TVM 최고의 작품들과 견주어 1화 시청률은 역대 작품의 1화 시청률을 오히려 압도해 버렸다.
덕질 생활의 1화 시청률이 14.2%로, 큰 화제를 몰고 종영됐던 슬기로운 닥터 생활 (마지막회 시청률 14.5%)의 시청률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물론, 혹자는 슬기로운 닥터 생활의 후광 효과 아니겠느냐며 평가절하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솔직히 인정할 건 인정하자.
우리는 알고 있다. 엄청난 시청률의 드라마가 종료되고 그 후광 효과를 이어받을 것으로 생각했던 수많은 작품들이 그저 신기루처럼 휙 하고 사라져 버렸다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까지의 반응을 살펴볼 때(물론 섣부르긴 하지만) 일회성 화제로 취급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TVM은 이 같은 열광적인 반응이라면 점차 시청률이 상승해 TVM 역대 드라마 시청률 순위에 들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하는 모습이다.
항간에 펑크가 난 편성을 때우기 위해서 급조된 드라마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오로지 시청률로 소문을 일축해버린 이들이 있으니 바로 이 작품의 만들어낸 연출과 작가다.
이들에 관한 관심도 뜨겁게 이어지고 있다.
깔끔하고 스피디하며 재치 있게 화면을 연출한 김호진 PD의 능력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고(원래 뛰어난 실력자로 업계에서는 유명) 특히 이 작품을 써낸 생초보 작가에 관해서도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하지만 첫 작품이라 그런지 작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고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는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는다는 TVM의 언질이 있었기 때문에 궁금증만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호기롭게 유쾌한 재미와 따뜻한 힐링을 드리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던 김호진 PD. 과연 그의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슬기로운 덕질 생활은 매주 목요일 오후 9시에 방송된다.
참고로 아래는 보너스로 주연그룹인 테리우스의 슬기로운 덕질 생활 응원 영상이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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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응···"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시원하게 일을 보면서 기사를 읽고 또 읽었다.
'첫회 시청률이 14.2%라고? 이거 실화냐?'
입꼬리가 쓰윽 올라가는 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기쁨을 주체할 수 없었다.
사실 어제 내가 아무 말 없이 드라마를 보고 있자 어머니와 여동생이 다가와서 1화를 같이 시청했다.
그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고 좀 높게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을 살짝 하고 있었지만 14.2% 라니? 정말 첫 시청률이 환상적으로 나온 것이다.
물론 대배우님이신 나유정 효과가 가장 컸다고 생각하지만 어찌 됐든 간에 내 작품 아니겠는가?
시원하게 변기의 물을 내리고 휘파람을 불며 망측한 댄스를 췄다.
밖에서 이주리가 주먹으로 화장실 문을 쳤다.
"오빠야 안 끝났어? 얼른 좀 나와봐. 나 큰 거 터졌어. 빨리!"
"다 했다. 나간다. 잠시만."
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이주리가 떡진 머리를 하고 화장실로 쏜살같이 달려 들어갔다.
"켁켁··· 아오··· 냄새! 뭘 먹은 거야! 짜증 나!"
막내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평소 같으면 입 닫으라고 문짝을 주먹으로 치며 큰소리를 쳤겠지만, 지금의 나는 그저 평온한 천사(Angel) 그 자체였다.
막내의 짜증은 바드가 부르는 나를 위한 찬송가였을 뿐이었다.
휘파람을 불며 계속해서 망측하기 그지없는 댄스를 추며 거실을 지나 부엌을 지나는데 어머니의 강한 엉덩이 스매싱이 날아들었다.
짜악!
"으악!"
"야 이 녀석아. 뭐 잘못 먹었니? 아침부터 왜 그렇게 신났어?"
"아프다고! 엄마!"
나는 꿋꿋하게 휘파람을 불며 제자리에서 한 바퀴 턴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문밖에서 어머니께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한 번 기사를 쓱 훑어보고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올려놓으려다 어제 온 문자 메시지를 찍어봤다.
[데일리노블] 3월 작가료 11,550,400원 입금 완료. 앞으로도 좋은 작품 부탁드립니다.
3월 한 달 수익이 자그마치 천만 원을 훌쩍 넘겨버렸다.
"오예~~"
콧노래를 부르며 책상에 앉아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갔다. 이번 달 부수입(?)은 가족을 위해 쓰기로 했다.
'자! 먼저 아빠는··· 패쓰···'
괜히 선물 줬다가 욕만 먹을 수 있다. 아버지는 무조건 현찰을 선호하셨다. 다른 사람 선물 사고 남은 돈을 드리기로···
'엄마는 저번에 좋아 보인다고 말씀하셨던 명품 핸드백'
사이트에 들어가 구매를 누르니 400만 원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형은 흐음··· 이 양반은 의사라 돈도 많은데 그냥 패스할까? 아니다. 기분이다 뭐. 최신형 핸드폰으로다가! 지금 쓰는 게 한 2년 됐었지?'
다시 구매를 하니 150만 원이 사라졌다.
'막둥이는 저번에 컴퓨터를 최신형으로 바꿔달라고 했지? 오케이···'
또 200만 원이 날아갔다.
'음··· 총 750만 원인가? 그럼 아빠는 현찰로 2백 드리지 뭐.'
가족들을 위해 선물을 샀더니 모두 950만 원 정도였다. 대략 200만 원이 남은 상황. 이 돈은 나를 위해 쓰기로 했다.
오랜만에 친구들이나 만나서 밥이나 사 줄 작정이었다.
물론 자랑질은 하지 않을 거다. 솔직히 말해서 그런 건 체질상 맞지 않는 편이었다.
'한 달 후 드라마 촬영 다 끝나면 친한 녀석들 좀 불러야지.'
나는 다시 화면에 떠 있는 가족들의 선물을 훑어봤다. 뿌듯했다. 이렇게 고가의 선물을 팍팍 질렀다니···
예전 같으면 벌벌 떨었을 거다. 사실 나는 약간 짠돌이 기질이 있긴 했다. 전 여친이 되게 싫어 했다.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려나?
* * *
차를 몰고 회사에 도착해서 지하에 내 애마를 주차했다.
'차를 바꿔 봐?'
나는 그냥 얼굴을 찡그리며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로 걸어갔다. 어차피 매일 1억이 넘는 차를 운전하고 다닌다.
물론 내차는 아니다. 유정 씨나 테리우스에게 배정된 밴의 가격이 1억이 넘을 거다. 그리고 유정 씨 개인 소유의 고급 차량도 가끔 몰곤 한다.
그러다 보니 차에 대해서는 환상 같은 게 없는 편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거울에 내 얼굴과 전신이 비치고 있었다.
"뭐야. 이 훈남은? 어디 배우 소속이세요?"
나는 시답지 않은 농담을 하며 혼자 웃고 있었다. 그만큼 오늘은 아침부터 기분이 아주 좋았다.
띵~
밖으로 나와 사무실로 걸어 들어가는데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 회사는 어제와 달리 활기가 넘치고 있었다.
다들 슬기로운 덕질 생활의 시청률을 본 게 아닐까 싶었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조형택 팀장이 오른손을 번쩍 들며 나에게 주먹을 내밀었다.
"여어··· 이게 누구신가! 대박 난 드라마의 주연배우와 주연 아이돌을 모두 관리하고 있는 매니저계의 배신의 아이콘 이준형 선생 아니오?"
아침부터 농담을 거는 형택이 형이었다.
그에게 주먹을 뻗어 가볍게 터치한 후, 나도 질세라 개드립을 치기 시작했다.
"지금 팀에서 가수를 매니지하는게 아니라 자신을 똑 닮은 한 살짜리 딸을 관리하고 있다는 조형택 팀장님 아니신가요?"
"흐흐흐··· 노노~ 나를 닮지 않았다네."
"톡에 있는 프로필 사진을 봤는데 그건 조카의 사진이란 말씀이십니까?"
"푸훗···"
옆에서 우리의 농담을 듣고 있던 막내 김두영의 현웃이 터졌다.
"엄마를 더 닮았다는 게 중론이외다."
"어허··· 허튼소리! 아버지인 조블리를 똑 닮아 커서 아주 큰(?) 미녀가 될 듯합니다만. 미리 제가 선수를 쳐서 선수 계약을 하도록 하지요."
"아니 이노므자식이··· 감히 천사 같은 내 딸을 나랑 닮았다고! 일로와. 같이 죽자. 같이 죽어."
나는 형택이 형과 죽음을 해쳐나온 사이다. 우린 이런 패륜적인 드립조차 농담으로 받아들인다.
사실 조카가 아버지를 닮았다는 건 사실이 아니었다. 미녀이신 형수님을 더 닮았다. 그러니까 웃으면서 맞장구를 치는 것이다.
우리가 농담 따먹기를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복도가 시끌시끌해졌다.
[오! 하 실장님. 소식 들었습니다. 어제 방송된 드라마 대박 났던데요?]
[대표님. 송구스럽습니다. 제가 뭘 한 게 있습니까? 나유정 씨와 테리우스가 열심히 해서 그런 거죠.]
[에이··· 하 실장님이 손수 데려가서 계약했다고 하던데요?]
[그거야 대표님이 다 판을 깔아주셨으니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창문으로 복도 쪽을 보니 김인환 대표와 하석우 실장이 일부러 복도에서 직원들 다 들으라고 덕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하고 있었다.
사정을 잘 모르는 직원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를 하는 것 같았다.
'허미··· 낮 부끄러버···'
"훗···."
나도 모르게 코웃음이 터져버렸다.
"야 인마. 갑자기 너 왜 그래?"
형택이 형이 나를 보며 싱겁다고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찔렀다.
"아무것도 아냐. 흐흐흐···."
아침부터 희한한 광경을 보고도 기분이 좋았다. 그래 오해하라지. 나중에 실상을 알게 되면 어떤 표정일까?
건방지게도 웃음이 나는 건 내가 그냥 일반적인 평범한 사람이라 그런 걸까?
'하아··· 왜 이렇게 가소롭지? 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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