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 매니저는 스타 작가님-11화 (11/263)

대배우 담당? (2)

나는 서둘러 기획안을 작성했다. 어차피 대본으로 쓴 작품이라 줄거리, 인물, 시놉시스 등은 전부 써놓은 상태였고 기획 의도 정도만 새로 작성해서 원고를 정리했다.

한글 파일에 기획안과 대본 10화를 그냥 몽땅 때려 박고 이름과 메일, 전화번호를 넣고 서둘러 접수했다.

11시 50분.

마감을 10분 남기고 간신히 제출을 끝마쳤다.

"와···. 긴박했다. 하마터면 실컷 써놓고 나가리 될 뻔했어."

공모전 정보를 밑으로 다 내려봤지만 정말로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문창과를 나온 게 이런 곳에서 도움이 되네. 웹소설 작가로 살면서 배운 걸 안 써먹을 것 같았는데···."

오랜만에 연재작품에 달린 댓글이나 한번 살펴보기로 했다.

# 코멘트

- 하악! 어서 다음 편을!!

- 야 이 연쇄절단마야!~ 여기서 끊으면 어떻게 하냐···.

- 묵혀놨다가 봐야 하는데 계속 보게 되네. ㅠㅠ

- 쿠폰루팡님 아니 연쇄폭참마님 이제 포텐 터진 듯.

- 맞다. 루팡형님 각성하심. 이제 글먹 간다···.

- 루팡이는 원래 전업 작가임. 물론 그런데도 제대로 된 작품이 없었지. 그냥 입에 풀칠하고 살 정도 지금 쓰는 거 봐서는 저축도 가능할 듯.

- 저축 ㅋㅋㅋ 달동네에서 이거 시작했으면 내가 봤을 때 월 천 킥 뚫었을걸

- 이건 루팡이가 예전 독자들한테 서비스하는 개념인 듯. 루팡이가 우리 뒤통수를 오지게 쳤잖아.

- 여기서도 월간 1위 하면 월 천 킥 가능한데

- 다음 편을 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드리겠습니다.

- 근 2년간 뭐한 거냐 폐관 수련이라도 다녀왔니 예전에도 필력은 괜찮았는데 약점을 완전히 보완했네. 캐릭터랑 스토리 라인 보소.

- 형님. 잡식누렁이 왔습니다. 저에겐 너무 고급진 요리입니다. 다른 글들이 먹다 남은 짬밥 같은 느낌이 들기 시작했어요. 이 글만 보고 있어요.

- 루팡 작가. 나다. 괴작판독기! 얼른 다... 다음 편을... 혀, 현기증이···.

'오! 괴작판독기 녀석이 어쩐 일로 나를 칭찬하다니···. 내 글이 재미있긴 한가 보네.'

잡식누렁이는 뭘 써도 좋아하는지라 민심 파악이 잘 안 됐는데 괴작판독기는 달랐다. 그는 데일리노블의 미슐랭 가이드와 같은 존재였다.

엄청난 독서량으로 베스트 작품들을 읽고 가차 없는 평가를 달았다. 그가 재미있다고 하면 재밌고, 재미없다고 하면 귀신같이 재미없었다.

그래서 데일리노블의 감평사로 불리며 추종자들까지 있는 녀석이었다. 그는 내가 뇌절을 해서 독자들의 뒤통수를 쳐도 줄곧 따라붙어서 가혹한 훈계를 했다.

그때는 짜증 났는데 지금은 그게 관심의 표현이요 애증의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다.

잘 나가다가 조회수가 확 떨어진 작품에 그가 이런 코멘트를 남긴 적이 있었다.

[쿠폰루팡은 신기한 작가다. 탑티어급 필력을 갖추고도 이런 쓰레기 같은 똥을 마구 뿌리는 제 멋대로인 글을 쓰는 인간이다. 뒤통수를 치는 실력을 보면 오히려 순문학에 어울리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대략 틀에 짜인 입식타격기 경기에 올라와 무규칙 격투기를 구사하고 판정패하는 인간!]

그 당시 나는 아집에 사로잡혀 있었다. 고등학교 때 환상문학상을 받은 게 내 인생을 꼬이게 한 가장 큰 원흉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도 지금에서야 깨닫게 된 것도 천만다행이었다.

그랬던 녀석이 다음 편을 달라고 저러고 있으니 내 기분이 어떻겠는가?

'에이! 기분이다. 오늘은 세 편 투척한다.'

자정이 되고 세 편을 연달아 올린 후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뒤로 한 채 꿀잠을 잘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살짝 막히는 도로를 운전해서 회사에 도착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라 사무실은 한산했다.

나는 그제 앉았던 구석진 자리로 가 가방을 놓고 수첩과 스마트폰의 노트 앱을 켰다.

'커피 한잔 마셔야지. 어디 보자.'

고급 인스턴트커피를 큰 컵에 때려 넣고 물을 많이 넣고 헤이즐넛 향 시럽을 탔다.

'음···. 바로 이거지.'

한 30분 정도 썼나 누군가 나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스마트폰의 종료 버튼을 눌러 화면을 껐다.

"준형 씨 안녕! 왜 이렇게 일찍 나왔어요."

"오! 역시 사무실 출근은 순규 씨가 항상 일등이구나?"

"부지런하면 또 저 아닌가요. 어쩐 일로 일찍 나왔어요? 어제 연차 썼던데···."

"어제 집에서 쉬었더니 아침에 일찍 깨서 차 안 막힐 때 빨리 왔죠. 그런데도 막히더라."

지원팀의 회계 처리 및 총무 담당인 순규 씨는 나보다 입사가 2년 빠르지만, 나이는 나보다 어렸다. 우리는 항상 높임말과 반말을 오가며 애매하게 대화를 하는 편이었다.

그녀는 유독 나에게 친절했다. 그녀의 알짜 정보로 도움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솔직히 그녀가 나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직장 동료 이상으로 느껴본 적 없었기 때문에 거리를 약간 두는 편이었다.

나야 뭐···.

꽤 훌륭한 외모 덕분에 지금껏 여자친구가 없었던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전업 작가 생활을 한 후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근 2년은 솔로로 지내고 있었다.

하지만 마음만 먹는다면 언제든···. 흐음···. 그만하자.

"어제 준형 씨 연차 낸 거 모르고 옆 사무실 하 실장님이 오셨는데."

"하석우 실장님이 왜?"

"지금 뭔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 같던데. 준형 씨 거취 문제에 대해······."

"허···."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었다.

"뭐야 알고 있었구나!"

"뭐 대충은···."

"그래서 그제 김 실장한테 들이받은 건가?"

"들이받긴···. 그건 아냐···."

"어쩌려고 그래. 돌아이한테 찍혀서 좋을 게 없는데 말이 안 통하는 인간하곤 싸울 게 아니라 아예 상종을 안 해야 해."

"순규 씨. 내 직속 상사인데 언제까지나 참고 있을 수만은 없잖아. 어쩌다 만나는 다른 팀도 아니고 무시하는 것도 한두 번이지."

"그래도 좀 참아."

나는 대답을 하지 않고 순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내심 나를 걱정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 신경 써줘서 고맙네."

그녀는 뭔가 더 말을 하려다 내가 무뚝뚝하게 대꾸하고 다시 자리에 앉으니 머뭇거리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순규 씨. 난 예전의 이준형 매니저가 아니라고···. 그리고 미안해.'

커피를 마시며 묵묵히 글을 쓰고 있으니 역시나 김상효 실장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를 불렀다.

"이준형이! 따라와라. 면담이다."

"네···."

그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가 보니 하석우 실장과 나유정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를 보고 약간 멈칫하였으나 마치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권하는 자리에 앉았다.

"그래. 준형 씨. 대화하는 건 처음인 거 같네! 얼굴은 오다가다 몇 번 봤는데···."

"예. 안녕하십니까. 하 실장님. 유정 씨도 안녕하세요."

나유정이 내 얼굴을 보고 아주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여간···. 저 싸가지 하곤···.'

"자! 뭐 같은 식구들끼리 인사치레는 됐고 바로 본론으로 넘어갔으면 하는데···."

"그러시죠."

하석우 실장은 참 성격이 급한 사람이었다. 매니저 중에서는 학벌도 좋고 능력도 인정받아 매니저급에서는 현재 가장 위치가 높은 사람이었다.

휘하에 김상효 실장이 그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사람이었다. 같은 실장급인데 이미 경쟁은 포기한 모양.

딴에는 위로 쭉쭉 올라가서 자기를 끌어줄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준형 씨. 배우팀으로 와서 나유정 씨 매니저 할 생각 없어요?"

사실 99% 정도 확정해놨을 테지만 그래도 의례적으로 내 의견을 물어보는 것 같았다.

"네. 관심 없습니다."

".........."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내 생각을 말하자 두 실장은 어이가 없는지 심호흡을 하면서 목이 뭉친 걸 푸는 듯한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나유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내가 뭐가 아쉽다고 4차원 영애 님 집사역을 자처해야 할까?'

솔직히 말해서 그제 안방에서 그것을 보지 못했다면 살짝 해볼까 하는 마음도 있긴 했다. 다섯 명과 복작거리는 것보다는 비록 정은 없더라도 한 명만 케어하는게 훨씬 편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으며 가까이하면 위험한 여자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경험상 저런 부류의 인간은 언제든 불시에 사고가 터지기 마련이었다.

"저기···. 준형 씨. 너무 그렇게 딱 잘라 말하지 말고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게 어때?"

"그, 그래. 준형아. 하 실장님이 너를 배려해서 이런 큰 기회를 주셨는데 생각도 안 해보고 그냥 마다하면 입장이 난처하시잖아."

'뭐야 이 자식.'

전형적인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전형적인 강약약강인 김상효 실장. 개인적으로 너무 극혐하는 스타일이었다.

김 실장을 한번 째려보고 하석우 실장에게 고사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니까···. 테리우스 애들하고 정도 많이 들었고 신입을 데리고 조형택 팀장이 멤버 다섯 명을 케어하는게 쉽지 않을 거다."

"네."

"흐음···. 내가 알기엔 테리우스 애들 2집 활동 끝나서 이제 개인 활동 시작하는 거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힘들진 않을걸?"

역시 하 실장은 만만하지 않은 사람이다. 배우팀 실장이면서도 XM의 모든 일을 다 꿰고 있었다.

"맞습니다. 맞긴 한데요. 사실 지금 테리우스 애들이 1티어로 올라가느냐 마느냐 하는 중요한 시기라 좀 보류해주셨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심정입니다."

"흐음···."

하석우 실장은 고민에 빠진 듯 손으로 턱을 쓰다듬고 있었고, 김 실장은 약간 화가 난 표정이었다.

'어이···. 김 실장. 그런 표정 지어도 난 하나도 안 무섭거든? 고혈압 있다던데 잘못하면 뇌졸중 오니까 조심하셔야지. 흐흐···.'

"준형 씨. 그럼 이렇게 하지."

"네. 말씀하십시오."

"가수팀에 신입을 한 명 뽑아줄게."

".........."

"3명이 테리우스를 담당하고 준형 씨는 유정 씨 스케줄 있을 때 봐주는 거로 하자. 요즘이 신입 업무 익히기 딱 좋은 시기잖아. 테리우스는 간간이 개인 활동할 거고. 유정 씨야 영화 끝나고 소소하게 인터뷰하고 CF 찍고 차기작 검토하는 비수기니까."

외통수였다. 역시 하 실장은 김 실장과는 달리 순간 판단력이 뛰어났다. 그러니 저렇게 임원진들에 신뢰를 받는 거겠지.

"그래도···. 애들이 심정적으로···."

"이 사람아. 손 떼라는 거 아니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준형 씨는 나유정 씨 스케줄 관리하면서 테리우스 애들 관리도 병행할 테니까···."

'큭···. 혹 떼려다가. 붙인 꼴인가? 차라리 그냥 나유정 씨 전담한다고 할 걸 그랬나?'

면담은 그렇게 종료됐다. 결국, 나는 가수 한팀과 연기자 한 명을 동시에 맡는 희한한 포지션이 된 것이다.

나유정은 자기 차를 몰고 왔는지 오늘은 스케줄이 없어 집으로 돌아갔고, 나는 김 실장과 함께 사무실 복도를 걷고 있었다.

"이준형 너 인마. 윗사람이 생각해서 결정한 거면 군말 없이 좀 알았다고 하면 안되냐? 어  꼭 하 실장님이 그렇게 고민을 하셔야겠냐고!"

그는 짐짓 화난 얼굴로 나를 훈계하려 했다.

'하···. 이 인간 내가 꼭 한마디를 하게 만드네.'

"김 실장님."

내가 조용히 말을 시작하니 성난 그의 눈이 나를 똑바로 쳐다본다.

"솔직히 말이죠. 신입 뽑고 그렇게 운영하자는 아이디어는 실장님이 내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거기서 하 실장님이 그렇게 고민하셔야겠어요?"

"뭐?"

"하 실장님은 뻔히 가수팀 실상을 다 아시는 거 같은데 그냥 저를 무작정 데려다가 배우팀에 붙이려고 하시면 어떡합니까?“

내 말은 왜 당신은 하 실장보다 자기 팀 사정에 눈과 귀를 닫고 있느냐는 일종에 돌려 까기였다.

"내, 내가 그걸 몰라서 하는 이야기야 가수팀이야 내가 알아서 하면 돼!"

역시나 김 실장은 그냥 화만 내면서 알아서 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왜요? 팀장님이 직접 현장 뛰시게요?"

"뭐?"

"일단 대강 봉합은 끝난 거 같으니까 그만하시자고요."

"보자 보자 하니 이 자식이 어디서 건방지게?"

그때였다.

"아침부터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요?”

김상효 실장은 계단에서 올라오는 사람을 보자마자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대표님! 출근하셨습니까?"

XM Ent.의 대표 김인환의 등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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