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폭참마의 탄생 (4)
"에···?"
"있죠?"
"그, 그게··· 있네요."
윤하영은 내 작품의 순위가 믿기지 않는지 황당한 표정이었다. 그녀는 내 얼굴과 핸드폰을 번갈아가며 쳐다보고 있었다.
'혹시 주작이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런 거 아닌데···.'
"뭐 문제 있나요?"
"아, 아니요. 황당해서요."
"뭐가요?"
"아니 그렇잖아요.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오시는 작가분이 그것도 제가 우연히 팁이라도 물어보려고 했던 분이 투데이 베스트 1위 작가시잖아요. 이게 놀랠 일이 아니면 뭔가요!"
"우연히 그럴 수도 있죠."
"확률이 말이 안 되잖아요. 작가님!"
나는 살짝 흥분한 것 같은 그녀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 정도라면 어디 걸그룹이라도 들어가도 될 외모긴 한데···
"크흠··· 그런데 왜 언성을 높이세요? 사람들이 다 쳐다보네."
그녀는 내 말에 주위를 둘러보더니 얼굴이 빨개져 슬쩍 고개를 떨궜다.
"죄, 죄송해요. 제가 지금 너무 놀라서요. 본의 아니게 그만···"
"하하~ 괜찮아요. 사실 저도 1위인지 몰랐어요. 아침에는 아니었거든요."
나는 담담하게 파란색 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물을 따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분, 분명히 매일 1위, 2위 하는 작품이 고정적이었는데···"
"그렇죠. 아침이라면 몰라도 지금쯤 되면 귀신처럼 1, 2위로 올라가 있죠."
"맞아요. 맞는데 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에요?"
"어떻게 하긴요. 그야 재밌으니까···"
"·········."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띠고 그녀를 향해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윤하영의 표정에 진지함이 느껴지자 표정을 고쳐먹었다.
"농담입니다. 사실 별것 없어요. 어제 한방에 20화 분량을 올렸어요."
"에엑··· 정말이네요? 그런데 아무나 20화를 올린다고 1위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뭐. 그렇죠. 사실 제가 그래도 데일리노블에서는 네임드 작가예요. 별로 좋지는 않은 이미지긴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을 듣더니 황급히 내 필명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연쇄폭참마요?"
'아차! 아까 필명을 바꿨는데···'
그녀가 입으로 내 필명을 되뇌자 살짝 창피해졌다.
'어감이 심히··· 쩝. 하아~'
너무 섣불리 바꾼 게 아닌가 싶었다. 나는 데일리노블보다는 달동네에서 활동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기로 했다.
"작가님. 그런데 전작이 하나도 없으신데요?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죠?"
"아. 제가 신작 올리면서 기존작들을 전부 비공개로 돌려놓았습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요."
"죄송한데요. 저도 거기서 꽤 오랫동안 독자였는데 작가님 필명을 처음 봐요."
그녀가 살짝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아! 그거 오늘 낮에 필명 변경 신청해서 바꿨어요. 원래는 쿠폰루팡이라고···"
"에에? 쿠폰루팡님요?"
그녀는 눈이 확 켜지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당탕···
일어나면서 그녀의 허벅지가 테이블을 위로 밀어 올리는 바람에 내 앞쪽에 있던 물컵이 내 바지로 쏟아졌다.
"으악···"
"어머머··· 괜찮으세요? 죄송해요."
그녀는 능숙하게 냅킨을 빼서 내 바지에 물기를 닦았다. 그래도 목이 마려워 물을 2/3는 마셨기 때문에 많이 젖지는 않았다.
"괘, 괜찮습니다. 별거 아니에요."
왠지 모르지만, 이 처자에게서 강한 허당의 스멜이 풍겨왔다.
* * *
우리는 파스타를 먹으며 다시 이야기하고 있었다.
"저를 아셨군요."
"네. 쿠폰루팡님 작품 본 적 있어요. 물론 제 취향은 아니라···. 죄송합니다."
"하하~ 아니에요. 예전 작품들은 저도 읽기 힘듭니다. 이제 그렇게 안 쓰죠."
"혹시 스타일을 바꾸시고 1위 한 건가요?"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제가 달동네에서 마지막 작품을 연재한 지가 벌써 1년 반이 넘어가네요. 그동안 여러 가지 경험을 쌓으면서 안 좋은 버릇을 많이 고쳤어요."
"그렇군요."
물론 화룡점정은 자동차 사고 후 머리를 다친 거였다.
"작가님. 제가 지금 작가님 작품 좀 읽어봐도 될까요?"
"제거는 집에 가셔서 읽어보시고 물어보고 싶은 거나 물어보세요. 1위 작가 코치 아무나 못 받아요."
"아차~ 내 정신 좀 봐. 물어보고 싶은 게 잔뜩 있었는데···"
"일단 지금 연재 중인 작품명이나 알려주세요. 한번 봅시다."
"나의 걸그룹 데뷔기라고···"
나는 그녀의 말을 듣자마자 작품을 검색해서 역시나 휘리릭 읽기 시작했다.
현재 올라가 있는 편수는 15편 정도였다. 5~6분 정도 결렸나?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남아있던 콜라를 단번에 마셨다.
"에? 벌써 다 읽으셨어요? 남들은 빨라야 2편 정도 보는 시간인데···"
"속독요."
"아···"
"쭉 읽어보니 뭐라고 해야 하나···"
"그, 그냥 솔직히 말해주세요. 괜찮아요. 마음의 준비는 단단히 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눈빛이 나름 비장했다. 나도 엄근진한 표정으로 그녀의 눈빛을 받아쳤다.
"그냥 노잼이에요. 뭐랄까··· 글이 다큐멘터리랑 비슷합니다."
"네? 네······."
그녀의 비장했던 얼굴이 내 말을 듣고 완전 시무룩해져 버렸다.
"지금 보니까 선호작 수도 두 자릿수고 조회 수도 엄청나게 낮네요."
"·········.그렇죠. 노잼이라···"
윤하영의 아래로 깔린 시선이 접시를 뚫고 바닥으로 추락할 기세였다.
"처음부터 설명체로 시작해서 사람들 다 떨구고 10화까지 그냥 고구마 덩어리라 꾸역꾸역 먹으며 따라온 독자들이 결국 목이 막혀 죽었어요."
"고··· 고구마···"
"11화부터 연독이 팍 깎이죠? 다들 10화 발암 부분에서 내상을 입고 탈주한 겁니다. 원래 10화쯤 되면 능력을 보이고 대리만족을 줘야 되거든요?"
나는 처음부터 신랄하게 비판을 해줬다. 경험상 그렇게 해도 정신을 차릴까 말까였다.
살짝 찔리는 게, 사실 나도 지금 1위 일뿐이지 예전 독자들 뒤통수를 치고 내상 입히는 것은 거의 달인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작가모임에 가끔 가면 충고하는 노땅 기성들의 충고를 그냥 귓등으로 흘려버렸었다.
하지만 나는 달동네에서 연재를 시작하고 내상을 많이 입은 후 나쁜 버릇을 어느 정도 고친 상태였고, 사회생활을 겪으며 이제야 일반 독자들의 심정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초보 매니저 시절 삶이 너무 팍팍해서 퇴근하고 나면 머리 아픈 이야기는 도저히 읽을 수 없었으니까.
테리우스 애들하고 부대끼고 나면 몸도 힘들고 정신도 지친 상태가 되었다.
너덜너덜한 상태로 퇴근하고 집에서 씻고 쉬고 있는데 쿠폰 루팡이 쓴 기괴한 고구마 통수 스토리를 본다?
이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아마도 나와 같은 독자들은 그냥 딥빡을 느끼고 그냥 우수수 떨어져 나갔을 것이다.
그런 거라도 맛있게 먹는 누렁이들과 집에 처박힌 백수들이나 오덕후 녀석들이면 모를까?
나는 고개를 떨구고 있는 윤하영을 담담하게 바라보았다.
"하영씨. 실망하지 말고 잘 들어요. 원래 글을 쓰는 게 쉽긴 하지만 잘 쓰기는 어려워요."
"네···"
"그런데 웹 소설은 다릅니다. 어느 정도 기본 지식만 있으면 일정한 방법을 통해서 누구라도 팔릴 만한 글을 쓸 수가 있어요."
"그, 그럴까요?"
그녀는 팔릴만한 글이라는 단어에 반응했다.
'뭔가 돈이 급히 필요한 건가? 아··· 어제 표정에서도 뭔가 다급함이 느껴지긴 했지.'
"지금 내가 뭐 조언해줘야 하는 레벨이 아닌 거 같아요. 일단 집에 가셔서 좀 쉬시고 제가 링크를 몇 개 보내드릴 테니 쭉 한번 읽어보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녀는 뭔가 아쉬운 표정이었다. 당장 뭐라도 듣고 갈 줄 알았던 모양이었다.
"하영씨. 평소에 어떤 일을 할 때 무작정 하는 스타일이죠?"
솔직히 포탈사이트나 디씨아웃사이드 웹연갤 개념 글만 봤어도 최소한 이렇게는 안 썼을 것이다.
"끄응··· 뭐··· 일단··· 시작하고 보는 스타일은 맞아요."
그녀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지 얼굴이 붉어졌다.
"거봐요. 딱 봐도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글을 썼어요. 솔직히 말하면 글도 많이 읽어본 적 없죠? 아예 안 읽은 건 아니긴 할 테지만···"
"·········."
"그게 표시가 나요?"
"네. 제목만 봐도 압니다. 전혀 궁금해하지 않을 제목이죠. 사실상 클릭을 못 하게 하는 제목이에요. 셀프 방어막이랄까?"
"큭··· 방, 방어막···"
"잠시만요.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네···"
멍하니 앉아있는 그녀를 뒤로하고 슬쩍 돌아서 카운터 쪽으로 가서 음식값을 결제했다. 보아하니 뭔가 돈이 급한 모양이었다.
'뭐 어디선가 웹 소설이 돈이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겠지. 평소에 가끔 봤는데 그 정도 글은 나도 쓰겠거니 해서 시작한 게 아닐까?'
뻔한 레퍼토리였다.
요즘엔 상금이 높아져서 공모전 기간만 되면 평소에 관심도 없고 읽지도 않았던 사람들까지 어디선가 다들 기어 나와서 지망생들이 노는 게시판이 사람으로 미어터졌다.
"만 육천 원 결제되었습니다."
"네···"
나는 결제를 마치고 다시 테이블로 돌아왔다. 그녀는 내 글 1화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작가님. 지금 조회수 폭발인데요? 추천수 미쳤어요."
"하하··· 뭐 지금이야 첫 끗발이라서요. 조금 더 지나봐야 결과를 알 수 있어요. 알박기를 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하거든요."
"그걸 뭐라고 하던데···"
"연독이요. 연속으로 읽는 비율을 말하는 거에요. 처음에 잘 나가다가 갑자기 훅 떨어지는 작품들도 엄청나게 많거든요."
"제, 제가 그래요."
"봤습니다. 11화에서 그냥 뚝 떨어지던데요. 뭐 기존에도 몇 명 없긴 했지만··· 아무튼 고구마를 너무 세게 넣었어요. 주인공이 완전 호구가 됐거든요."
"그, 그건··· 나중에 시간이 가면 다 풀릴 떡밥이에요."
"고구마도 많지만 읽을 작품은 더 많다. 심지어 새로 나오는 것은 홍수다! 이게 바로 요즘 웹소 시장입니다. 고구마를 먹으면 바로 다른 데 가서 사이다를 찾거든요."
"그래도 저처럼 느리고 호흡을 길게 쓰면서 성공한 작품도 있지 않나요?"
"흐음··· 뭐 없진 않아요."
"그렇죠?"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아하니 역시나 글 쓰는 사람들은 뭔가 고집이 있는 것 같았다. 뭐 나도 그랬지만···
"있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필력이 미친 듯 좋아서 만약 그렇게 안 쓰고 약간의 공식을 따랐다면 무조건 처음부터 터질 사람들이었겠죠."
"아아~"
그녀가 이제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후후··· 이해하셨나요? 식사 다 하셨으면 일어나시죠. 제가 아까 전화번호를 저장했으니 그쪽으로 해서 링크를 보내드릴게요.“
“거기 있는 글들을 시간 내셔서 쭉 정독해보세요. 일단 지금 쓰신 것처럼 맨땅에 헤딩하는 일은 없으실 거에요."
"네. 감사합니다. 작가님."
"그럼 이제 일어나시죠. 벌써 9시 반이네요."
나는 가방을 챙기고 그녀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참~ 하영씨 밥값은 제가 결제했어요. 나이도 많은데 제가 쏘고 싶어서 쏜 거니 부담 갖지 마세요."
"아··· 이거 미안해서 어떡하죠? 투베 1위 작가한테 팁을 얻은 것도 모자라서 밥도 얻어먹다니요."
"제가 작품 유지하면 돈이 꽤 쏠쏠하게 벌리는지라··· 아시죠? 무슨 말인지···"
"아하~ 네! 무슨 말씀인지 알았어요. 작가님이 보내주신 정보는 꼭 정독해볼게요."
"당연히 그러셔야죠."
"그리고 작가님 작품도 읽어볼게요."
그 말을 하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참 귀엽다는 생각을 했다.
"알았어요. 읽어보세요.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보는 눈이 생기니까요. 그럼··· 다음에 봬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녀는 정말 고마운지 고개 숙여 꾸벅 인사했다.
그녀와 헤어진 나는 캄캄해진 아파트 공동 현관까지 걸어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보고 한마디 했다.
"이준형 네가 그런 말할 자격이 있는 놈이냐?"
솔직히 내가 지금 잘하는 짓인지 뭔지를 모르겠다. 혹시나 주제 파악을 못하는 건 아닌지 살짝 걱정되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금방 흘러갔다.
월요일에 드디어 병가가 끝나고 출근을 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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