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폭참마의 탄생 (3)
코멘트들을 살펴보니 익숙한 아이디들이 몇몇 보였다.
예를 들자면 '잡식누렁이','괴작판독기', '굳굳맨'같은 애들 말이다.
"이 자식들은 아직도 여기에서 놀고 있네. 허 참~"
잡식누렁이는 꾸준히 내 글에 등판을 하던 사생팬이었다. 그는 시답지도 않은 내 작품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송했다.
나는 녀석의 칭찬에 몸 둘 바를 몰랐지만, 그 칭찬은 나를 타성에 젖게 만들었다.
"형님. 꿀잼입니다." "형님. 레전드네요." " 형님. 설정 지리네요." 등등 나의 눈과 귀를 멀게 한 일등 공신!
그리고 괴작판독기는 자주 내 글에 나타나 신랄한 비판을 가하고 잊어먹을 만 하면 나타나서 멘탈을 뒤흔드는 댓글을 싸지르는 존재였다.
그냥 가볍게 지워버리면 되지만 그의 지적은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게 사실이라 마냥 지우는 것도 애매했다. 그의 논리는 확실했고 가끔 나를 궁지로 몰고 갔다.
마지막으로 굳굳맨은 나의 모든 글에 나타나 항상 '굳굳'을 찍어주는 녀석이었다.
가끔 핫하게 터지는 회차에는 '굳굳굳' 이라던가 '구우웃'이라던가 단어만 살짝 바꿔서 감정을 표현했다.
다른 작품에는 없고 오직 내 작품에만 출몰했던 녀석들···.
왠지 모르게 아침부터 센치한 감정이 들었지만 이내 코멘트 창을 닫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역시나 글은 술술 써졌다.
한 3화 정도 썼나? 밖에서 엄마가 나를 불렀다.
"아들! 일어났니? 아침 먹자."
"네~ 나가요."
어머니가 차려주신 식탁에 앉자 아버지와 형이 차례로 도착해서 한마디씩 했다.
"둘째! 대가리는 좀 어떠냐?"
"아유! 이 양반아. 말 좀 순화해서 써. 국어 선생님이 할 말이야? 대가리라니! 우리 귀한 아들한테!"
".........."
"좀 괜찮으냐?"
"어. 형···. 나 아무렇지도 않아."
"그래. 무리하지 마라. 어차피 출근은 다음 주부터 한다며?"
"응. 잘 쉴 테니 걱정하지 마. 나도 오랜만에 휴가라 기분 진짜 좋거든?"
"알았어. 엄마. 그런데 막내는 밥 안 먹는데?"
"몰라. 요즘 다이어트 한다고 안 먹더라. 어제는 뭐 했는지 너희 아빠보다 더 늦게 들어왔다."
"내 저걸 그냥 어휴!"
큰형이 살짝 짜증이 나는지 막내의 방문을 노려봤다. 우리 집 막내는 21살 대학생으로 늦둥이였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막내가 태어났다.
"형. 그냥 내버려둬. 언젠가는 정신 차리겠지."
"요즘 경기 안 좋다고 난리야. 지금 취직도 얼마나 잘 안 되는지 알아?
형은 계속 못마땅한지 인상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모든 게 즐거웠다.
자칫 그날 차가 조금만 더 안쪽으로 파고 들어왔으면···. 이런 정겨운 장면을 더는 못 봤을 거라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해졌다.
우리 가족 5명 중 4명은 아침 식사를 하고 각자 일상으로 돌아갔다. 물론 나는 내 방에 틀어박혀 계속 글을 써대기 시작했다.
꼬르륵···.
나는 배에서 나는 소리에 집중력이 깨지고 말았다. 목과 허리가 아파져 왔다. 이럴 땐 꼭 기지개를 켜야 한다.
'으아아아···. 배고프다. 헉! 벌써 2시네. 집중력 미쳤는데? 글 쓰는 게 너무 재밌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
나는 점심을 대충 차려 먹고 미튜브와 연예 기사를 보며 머리를 식혔다.
[KPOP의 제왕 슈퍼노바 빌보드 200 1위 등극]
슈퍼노바의 3월 1일 출시된 앨범이 빌보드 200 1위에 올랐다. 이는 KPOP 역사상 두 번째 기록이며, 종전에 세웠던 자신들의 기록을 갈아치운 것이다.
또한, 세계 70여 국 아이로그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해 명실상부하게 글로벌 톱 다운 강력함을 과시했다.
한편 일각에서는 이들이 곧 동반 입대를 할 것이라는 루머가 돌고 있으며, 이들을 대신할 남자 아이돌이 누가 될 것인지 의견이 분분한 상황···. 중략
'슈퍼노바 멤버들도 이제 군대에 갈 나이가 됐겠네. 슈퍼노바가 사라지면 그간 숨죽이고 있던 남자 아이돌 시장에도 지각 변동이 있겠구나.'
소파에서 핸드폰으로 기사를 읽다가 다시 힘을 내서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으···. 쓸 수 있을 때 팍팍 진도를 나가야 해. 회사 나가면 쓸 시간이 확 줄 거니까···."
방에 틀어박혀 무아지경으로 진도를 뺐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6시가 가까워진 상황이었다. 오늘 벌써 23화를 비축했다.
어제 올리고 남은 5화가 있으니 총 비축분이 28화였다.
원래는 독자들 반응도 살피면서 연재를 하기 때문에 비축분 20화 정도면 충분했지만, 어차피 지금 쓰고 있는 것은 리메이크였으니 상관없었다.
데일리노블은 특성상 크게 뇌절을 치지 않는 이상 독자들이 대거 이탈하는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었다.
갑자기 어제 별다방에서 만났던 그녀가 떠올랐다. 사람의 호감을 끄는 청순 미녀···.
나는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 이놈아. 도대체 무슨 생각이냐? 그냥 글 쓰면서 궁금한 거 물어보고 싶다는 어린애인데···.'
뭐 부탁을 했으니 들어줄 필요는 있는 것 아니겠는가? 나는 이내 괜찮은 복장으로 갈아입고 노트북이 든 가방을 둘러메고 집을 나섰다.
퇴근하신 엄마가 어디 가느냐고 핀잔을 줬지만 나는 저녁 약속이 있다고 신경을 쓰지 마시라고 했다.
* * *
어차피 계속 집에만 있으면 글이 잘 나오지 않는 편이었다. 가끔 별다방에 들러서 기분 전환을 하며 글을 쓰는 것도 좋았다.
일단 어제 폭참으로 올린 글이 투베 3위에 랭크되어 있으니 그녀에게 내심 자랑할 만한 게 생긴 것도 사실이었다.
"하하~ 올리기 잘했어. 뭔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느낌이야."
별다방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여전히 붉은색의 강한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들어 눈을 쓱 가려서 아우라를 안 보이게 했다. 그녀는 내 동작이 인사하고 착각을 했는지 미소를 지으며 손을 들었다.
'크흠···. 이런···.'
나는 어제와 마찬가지로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자리에 앉았다. 딱히 할 게 없었기 때문에 아까 쓰다만 글을 쓰기로 했다.
"저기요."
나는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웹소설 작가 지망생인 그 아르바이트생이었다.
"엄청나게 열심히 하시네요."
스마트폰을 쳐다보니 8시 5분이었다. 화장실도 안 가고 거의 두 시간 동안 폭주한 것이다.
'허···. 미쳤네.'
일을 시작하면 이렇게 정신을 놓고 글을 쓰는 것도 조심해야 할 것 같았다.
"서 계시지 마시고 여기 앉으세요."
사복으로 갈아입은 그녀의 모습을 보니 확실히 어린 티가 확 났다. 연한 핑크빛 후드티에 흰색 스키니진이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여긴 제 직장이라 좀 그렇고요. 요 근처 파스타 잘하는 집이 있는데 거기 가서 이야기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물론 시간 되시면요."
"그럴까요? 잠시만요. 가방 좀 챙기고···."
우리는 별다방을 나선 뒤, 가까운 파스타 전문점에 들렀다. 고객들은 주로 젊은 커플들이었다. 주위를 둘러보고 머쓱한 느낌으로 자리에 앉았다.
이런 곳에 여자랑 둘이 오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가 벌써 2년이 훌쩍 넘었다.
'세월 한번 빠르네.'
"여기가 싸고 양도 많아요. 가성비가 엄청나게 좋거든요."
내가 아무 말도 안 하고 있으니 그녀가 첫마디 말을 꺼냈다. 어색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인 모양.
"하하. 저도 파스타 좋아합니다. 저는 알리오 올리오로 하겠습니다. 아~ 콜라도요."
"네. 저는 크림치즈 파스타요. 여기 콜라 용량 큰 거 주니까 나눠 마시면 돼요. 콜라는 하나만 주세요."
상당히 알뜰한 느낌이랄까? 그녀의 적극적인 행동에 피식 웃음이 났다.
종업원이 주문을 받고 돌아갔고 다시 한 번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혹시 성함이···."
"아! 네! 윤하영이라고 합니다."
"아···. 하영 씨. 저는 이준형이라고 합니다. 3년 차 작가예요."
윤하영은 일반인치고는 예쁜 편이었다. 직업이 매니저라 항상 사람의 외모를 평가하는 버릇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았다.
'내가 1년간 연예인들을 좀 많이 봤어야지.'
우리 테리우스 애들을 데리고 일 년 반 동안 얼마나 많은 음악방송을 누볐던가.
정말로 대한민국에서 잘 생기고 예쁜 십 대에서 이십 대 초반의 젊은이들은 죄다 연예계에 다 몰려 있는 것 같았다. 특히 아이돌 쪽 말이다.
그래서 항상 인재를 볼 때 TV에 나오면 인기를 끌 것 같은지 아닌지가 판단의 기준이었다.
그녀는 일반인치고는 정말 괜찮은 얼굴이었지만 연예인 수준으로 본다면 그냥 상당히 평범한(?) 축에 든다고 할 수 있었다.
전체적인 이미지가 청순 형이라 쌍꺼풀이 없는 눈은 어떻게 보면 단아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밋밋하다는 인상이 있었다.
'아.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이게 오디션 자리도 아니고···.'
그녀는 나를 보고 싱글거리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 간단한 호구 조사를 먼저 했다. 서로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나는 그냥 본업이 따로 있는 겸업 작가라고 소개했고 그녀는 나이가 스무 살에 지금까지 하던 일이 잘 안돼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평소 관심이 있었던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했다.
"혹시 무슨 작품 쓰세요. 전 남성향을 쓰는지라 로맨스는 그리 전문적이지가 못해서요."
여성 작가라면 거의 다 로맨스나 로맨스 판타지를 쓰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제가 쓰고 있는 게 로맨스가 아니라서요. 주인공만 여자인 연예계물입니다."
"아···. 그렇다면 그나마 좀 낫네요."
"혹시 어떤 플랫폼에서 연재하고 계세요?"
"최근에 데일리노블에서 신작을 하나 올렸습니다."
"와! 저도 거기서 시작하고 있어요."
"네."
"작품 이름 좀 알 수 있을까요?"
윤하영은 이 질문을 하면서 약간 난처해 했다. 아무래도 작품명만 검색해봐도 몇 위인지 금방 알 수 있었으니까.
'말해주면 놀랄까? 아···. 어제 올렸으니 모를 수도···.'
"음. 세상을 멸망시킬 나의 악인이라는 작품입니다."
나는 그냥 까짓것하며 연재 작품을 알려줬다. 앞으로 계속 빵빵 터트릴 연쇄폭참마가 아니던가!
작가 지망생이라면 앞으로 내 필명을 자주 듣게 되지 않을까?
'연쇄폭참마라···. 생각해보니 필명이 약간 쑥스러운데? 뭐 어때. 본진은 아닌데 뭐...'
그녀는 이미 데일리노블의 베스트란을 켜놓고 있었고 내가 제목을 말하자마자 손가락을 휘릭휘릭 넘기며 페이지를 바꿔 나갔다.
"어라? 베스트 100위 안에는 없네요. 올리신 지 얼마 안 되셨나 봐요."
그녀가 약간은 조심스러운 어투로 내 눈빛을 살피고 있었다.
"네? 그럴 리가요···. 제가 아침나절에 투베에 들어간 거 확인했는데요? 잠시만요."
나도 깜짝 놀라서 핸드폰을 들고 황급히 투베를 확인했다.
#데일리노블 투데이베스트# 3월 3일(화)
1위 : 세상을 멸망시킬 나의 악인 -쿠폰루팡- NEW!
2위 : 이세계의 노가다꾼 -갓정환-
3위 : 내가 쓴 떡타지에 빙의했다 -메리메리-
나는 핸드폰을 쳐다보며 내 눈을 의심했다.
'어? 내가 1위라고? 월간 알박 1, 2위 작품을 제쳤어? 이거 레알?'
그녀 앞이라는 것도 잊은 채 깜짝 놀라 눈만 멀뚱멀뚱 뜨고 있었다.
"어, 없죠? 순위가 왔다 갔다 해서 아침에는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나 봐요. 곧 올라가겠죠."
나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흐음... 역시나 청결한 느낌을 주는 얼굴이었다.
"있어요."
"네? 뭐가요?"
"다시 확인해 보세요. 투베 1페이지..."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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