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폭참마의 탄생 (2)
뒤를 돌아보니 그 붉은 아우라가 더욱 강렬해진 그녀가 내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어우! 눈이야."
나는 그 아우라 때문에 어지러워 팔을 들어 눈을 가리고 말았다.
"네? 저기요. 괜찮으세요?"
"아···. 네 괜찮습니다."
제정신을 차리고 그녀에게 핸드폰을 건네받았다.
"혹시 작가세요? 아까 테이블에 앉으셔서 한 시간이 넘게 타이핑을 하시던데···."
"아... 네... 뭐..."
나는 그녀의 청량감 터지는 외모에 감탄한 나머지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못했다.
카운터 밖으로 나온 그녀는 키가 약 160cm 후반대로 여자 키 치곤 꽤 큰 키였다. 어떻게 알았는지는 모르지만, 우리 동네 별다방 직원 중 나를 아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저도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지만, 작가 지망생입니다. 혹시 여기 또 오시는 건가요? 제가 막상 글 쓰는 것을 시작하긴 했는데 어디 물어볼 곳이 없어서요."
"예. 뭐···. 자주 올 예정입니다."
"제가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보고 그런 거 가능할까요?"
끄덕끄덕···.
나는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왜 난 얘를 본 적이 있는 것 같지?'
"감사합니다. 저 아르바이트 8시에 끝나거든요. 아무 때라도 그때쯤 오시면···."
"그렇게 하죠."
그녀는 기쁜 얼굴로 인사를 꾸벅하더니 몸을 돌려 빠른 걸음으로 시야에서 사라졌다.
"허 참···. 이 만남도 사고 후 보상인가?"
나는 집으로 걸어가면서 머리를 긁적이며 아까 그녀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름도 모르지만, 왠지 익숙한 그녀.
미소를 머금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촉박함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무슨 절박한 사정이라도 있는 걸까? 갑자기 처음 보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할 정도라면···.'
* * *
집에 돌아왔더니 큰형이 퇴근해서 집에 일찍 도착한 모양이었다.
"어? 형! 왜 이렇게 일찍 왔어? 오늘은 수술 없어?"
형이 거실에 서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너 때문에 일찍 왔지 인마. 어디 갔다 온 거야? 너 몸은 괜찮아?"
그의 표정은 그리 좋은 편이 아니었다.
"응. 멀쩡해. 왜 그렇게 봐. 진짜야."
"혹시 모르니까 무리하지 말고 집에서 쉬어. 내가 네 주치의랑 이야기해봤는데 큰 이상은 없지만 조심해야 하겠더라."
"알았어요. 의사 양반."
나는 형의 어깨를 잡고 부엌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힌 후 나도 자리에 앉았다.
내 앞에 앉아있는 이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은 이준호. 나보다 4살 위인 친형이었다. 형의 직업은 성형외과 의사였다.
키는 나보다 작았지만, 수학 선생님인 엄마를 닮아 어릴 때부터 공부를 엄청나게 잘했다.
지금은 강남의 모 성형 외과에서 페이닥터로 근무 중이었다.
"아빠는?
"몰라. 그 썩을 양반. 또 친구들이랑 소주 한잔 걸치고 있겠지. 어서 밥 먹자."
식탁을 보니 두부를 숭덩숭덩 넣은 구수한 된장찌개가 뚝배기에서 아직도 보글거리고 있었다.
"우와~ 맛있겠다."
"야 이준형! 넌 다 큰 놈이 아빠가 뭐냐. 아빠가."
"아! 왜! 아버지라고 하면 너무 이상하잖아. 난 결혼해서 애 낳고 호칭 바꿀 거야. 하하하."
나는 그렇게 엄마가 차려준 된장찌개를 맛있게 먹고 방으로 들어가서 다시 모니터 앞에 앉았다. 방문 밖에서 형이 뭐라고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준형! 무리하지 말고 좀 쉬라니까?"
"나는 이게 쉬는 거야!"
미튜브로 들어가 집중이 잘되도록 사무실 백색 소음 동영상을 틀었다. 그리고 손뼉을 한번 치고 손바닥을 싹싹 비볐다.
"자···. 시작해볼까?"
또다시 집필이 시작됐다. 타다다닥 거리며 자판을 치는 소리가 귓가를 스쳐 갔다.
오타를 내서 백스페이스를 몇 번 누른 것을 제외하고 그냥 생각나는 데로 쭉쭉 글이 뽑히고 있었다. 작가로 이렇게 신나게 스토리가 뽑혀 나오면 정말 기분이 최고였다.
거의 무아지경의 상태로 써대니 글 용량이 거의 160kb가 넘어가고 있었다. 그야말로 폭풍 집필이었다. 화수로는 약 25화를 하루 만에 다 써버린 것이다.
'뭐 원래 있던 스토리를 리메이크하는 거긴 하지만 글 쓰는 속도가 어마무시한데?'
고개를 들어 시계를 보니 12시를 살짝 넘은 시간이었다. 나는 오늘 쓴 것을 곧바로 올리기로 했다.
하지만 먼저 예전 작품을 과감히 비공개로 돌려버렸다.
예전 괴작들을 차마 더는 눈뜨고 못 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예전 작품들이 가끔 회자가 되거나 행사에 들어가면 저렴한 핸드폰 하나 정도는 바꿀 용돈이 벌렸기 때문에 살짝 아깝긴 했다.
하지만 사고 후 이준형은 사고 전 이준형과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흑역사로 남을 것 같은 작품들은 깔끔하게 없애는 게 나았다.
엄청난 생산력을 보유했기 때문에 아무 상관 없었다.
이곳에서는 기존 작품을 새롭게 리메이크해서 올리고 전업 작가 활동을 했던 달동네에서 신규 작품을 연재할 예정이었다.
과감히 버튼을 눌러 비공개로 돌려놓으니, 내 작품 리스트가 텅 비어 버렸다. 깨끗해도 너무 깨끗해진 내 리스트였다.
작품 등록 버튼을 눌러 신규 작품을 생성했다. 간략한 소개를 작성하고 일반적인 기본 표지로 대충 고른 다음 제목을 넣으려다 멈칫했다.
'아무래도 '악마 대전쟁'이라는 제목은 바꿔야겠지?'
잠깐 생각을 하고 간단하게 제목을 뚝딱 만들어버렸다.
[제목 : 세상을 멸망시킬 나의 악인]
요즘은 제목 어그로가 대세였지만 그냥 그럭저럭 괜찮아 보이는 거로 결정했다.
'데일리노블의 투데이 베스트가 아마 20화부터였지?'
나는 하루에 몇 편씩 올리면서 독자를 모으는 게 아니라 다 한꺼번에 올려버리기로 마음먹었다.
21화부터는 하루에 두 편씩 예약 연재를 걸어두면 됐다. 이런 방식을 쓴 이유가 이곳에서는 나름 네임드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다지 좋은 쪽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3년이나 연재하지 않았지만, 아직도 내 작품을 선호작으로 걸어둔 독자들이 수천 명이나 됐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먼저 12시 10분에 10화를 올리고 12시 30분에 5화, 그리고 나머지 5화를 1시에 올렸다. 다른 작품에 파묻혀 최대한 노출이 되도록 한 것이다.
그렇게 20개를 올린 후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오늘은 댓글을 안 보기로 했다. 괜히 봤다가 잠을 못 자면 내일 집필 활동에 큰 무리가 가기 때문이었다.
'오늘은 왠지 꿀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 * *
정확히 6시에 눈이 떠졌다. 잠을 잘 잤더니 무거웠던 머리가 개운해진 것 같았다.
나는 눈을 비비고 화장실로 들어가 일을 본 후 간단하게 세수와 양치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즐겨찾기 버튼에 데일리노블을 클릭한 후 로그인을 해서 베스트에 들어갔다.
#데일리노블 투데이베스트# 3월 3일(화)
1위 : 이세계의 노가다꾼 -갓정환-
2위 : 내가 쓴 떡타지에 빙의했다 -메리메리-
3위 : 세상을 멸망시킬 나의 악인 -쿠폰루팡-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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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이! 3위다! 이제 월급은 500만 원 인상 확정이네. 하하~"
나도 모르게 주먹이 꽉 쥐어졌다.
내 경험상 데일리노블 3위 정도를 유지하면 월 500만 원 정도는 벌었다.
물론 지금은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정기결재 독자가 줄었어도 웹소설 시장이 성장했으니 대략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자신의 회사인 XM Ent에서 매니저로 받는 월급이 월 230만 원이었으니 그걸 합하면 730만 원이었다.
'음···. 연봉이 아직 1억은 안되는구나. 그래도 뭐···.'
나는 달동네에서 신규 작품을 연재하는 상상을 했다. 철저히 팔릴 만한 글을 써서 투베 1페이지에 들면?
지금 달동네 기세를 보면 월천 킥? 그렇다면 이것저것 합쳐서 연봉이 2억에 가깝게 나올지 모르는 일이었다.
"킥킥킥···."
꿀잠도 잤는데 즐거운 상상까지 더해지니 웃음이 절로 나오고 있었다.
"크흠···. 진정하자. 이준형! 데일리노블 작품은 알박기를 해야 하고 달동네는 아직 올리지도 않았잖아!"
냉정해지려고 해도 계속 웃음이 터져 나왔고 상상뿐이었지만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마이페이지를 눌러보았다.
두둥~
하룻밤 사이에 코맨트가 수십 개나 올라와 있었다.
#코맨트#
- 뭐지 이 연쇄폭참마는???
- 야! 이 기성작가 놈아, 이렇게 하기 있기 없기! 하룻밤 사이에 핵폭탄을 던지고 가네. 하꼬들은 다 죽으라는 거냐?
- 어엇! 루팡 형님. 오랜만입니다. 3년 만에 복귀이신가요? 신작 잘 보겠습니다.
- 어라? 이거 예전 그 작품이랑 비슷한데 리메이크군요. 저도 사실 내용은 생각이 잘 안 나지만 소재만 같고 내용이 거의 싹 바뀐 것 같은데요?
- 그런 것 같다. 캐릭터 설정까지 싹 다 새로 한 듯.
- 쿠폰계의 공무원 루팡 형님 돌아오셨군요. ㅠㅠ
- 헐~ 미친 20화를 한 번에 뿌리다니···. 읽어봐야겠네요.
- 어? 이거 뭐야. 은근히 재밌는데?
- 굳굳!! 잘 보고 갑니다.
- 뭔데 이거···. 독특하고 재밌는데?
- 이거 대작의 스멜이 풍긴다. 선호작 걸고 갑니다.
- 데일리노블 환상문학(환상문학이라고 쓰고 괴작이라고 읽는다)의 대가 쿠폰루팡이네. 달동네에서 쫓겨나서 본진으로 복귀했냐?
- 내가 알기엔 쫓겨나진 않았음. 아마도 돈이 떨어졌을걸? 달동네 최근작 연재가 벌써 1년 몇 개월쯤 됨···.
- 쿠폰루팡 달동네에서 망했음? 출사표 거창하게 쓰고 가지 않음?
- 뭐야? 왜 이게 3위로 갑자기 치고 올라왔어?
- 선발대 보고드립니다. 이 작품은 3년 전 괴작 마에스트로로 이름을 알음알음 알린 쿠폰루팡 작가의 리메이크 신작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선호작을 박으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이건 달동네 퀄리티를 능가하는 작품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재미와 현실 풍자를 동시에 공략하는 작품입니다. 기존작들을 죄다 비공으로 돌린 것으로 봐서는 쿠폰루팡 작가가 이를 갈고 연재를 시작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럼 즐감!
나는 코맨트 하나하나를 다 읽어봤다. 댓글들은 거의 다 재밌다는 의견이 다수였고 가끔 기성작가가 폭탄드랍을 하는 것에 대해 반감을 보인 글도 몇몇 보이곤 했다.
데일리노블의 내 필명은 쿠폰루팡이었다. 나는 기괴한 환상문학을 쓰는 작가답게 대중성보다는 골수팬을 거느리고 있었다.
이 플랫폼에서 조회수가 안 나와도 그럭저럭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다름 아닌 쿠폰이었다. 정기로 결재한 회원들이 주고 싶은 작가에게 후원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나의 골수팬들은 항상 몰빵으로 쿠폰을 몰아주곤 했다.
"연쇄폭참마라고? 하하···. 웃기네."
게임플랫폼 스팀펑크의 사장 게이브가 계속해서 할인 행사를 해서 얻은 별명 연쇄할인마! 그것을 살짝 비튼 댓글이었다.
"이참에 필명도 새 걸로 바꿔 볼까?"
연 쇄 폭 참 마!
나의 새로운 필명은 그렇게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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