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폭참마의 탄생 (1)
나는 글을 쓰기 전 일단 데일리노블을 방문했다. 내 작품 목록을 살펴보았다.
"와! 판타지 작품 좀 봐. 미쳤다."
그 당시 내 글 중 특히 판타지 소설들은 차마 눈뜨고 보기조차 힘든 수준의 괴작들이 많았다.
내 딴에는 환상문학에 심취해서 괜스레 웹소설과 상당히 동떨어진 힘만 잔뜩 준 글들만 썼으니까.
"쿨럭, 쿨럭··· 와~ 이걸 도대체 어떻게 쓴 거지? 그런데 또 이런 걸 읽은 독자들도 꽤 된단 말이야? 그립다. 이 아무거나 다 먹는 누렁이 독자님들···"
항상 마이너한 글만 주구장창 써대는 내가 인기 작가가 될 리 만무했다. 왜 그렇게 그 당시엔 꽉 막혔는지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학을 졸업한 후 플랫폼을 달동네로 옮겨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 생활을 2년간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안 좋은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역시나 판타지는 망했고 그나마 현대판타지나(연예계물) 이나 무협 정도가 쏠쏠하게 생활비 이상이 벌린 정도였다.
물론 번 돈은 여자친구랑 데이트하고 놀러 다니는데 상당 부분 지출되다 보니 결혼을 꿈꾸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그 당시 2년간 저축한 돈이 약 2천만 원 정도였다.
적다고 하기도 뭐한 애매한 액수였다. 하지만 교사이신 부모님 집에 얹혀서 사는지라 비용이 전혀 안 나간 것을 고려하면 적은 액수라고 봐야 했다.
당시 동아리 퀸카였던 여자친구 현주와도 이 문제로 마찰이 있었고 결국 전업 작가 1년 만에 헤어지고 말았다.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녀도 연극 무대를 전전하며 거의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 각자의 갈 길을 찾아간 것이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그녀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웠다.
그리고 데일리노블에서 내가 싸질러 놨던 글들을 다시 죽 훑어보았다. 그때 한 작품이 내 눈을 끌었다.
[악마 대전쟁]
학창 시절 내가 제일 공을 들였던 작품이었다.
내용은 세상에서 최악의 환경에서 태어난 머리 좋은 장애인 주인공이 처절하게 죽은 뒤 소악마로 다시 태어나 지상에서 악인을 키운 뒤 그 카르마로 지옥에서 승승장구하며 지옥의 왕들과 경쟁하는 내용이었다.
그 경쟁은 자신들의 영혼을 걸고 벌어지는 악마들의 최대 유희 쇼인 '소멸의 레이스'였다.
이 작품은 너무 어둡고 처절한 분위기를 풍긴다는 지적을 수없이 받았지만 나름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끝까지 독자들이 따라와 준 작품이었다.
나는 그 내용이 가물가물했다.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그 작품을 휘리릭 읽기 시작했다. 과연 사고 후 능력이 좋아졌는지 400화에 가까운 분량을 3시간 만에 주파해버리고 말았다.
사실 400화 분량이라고 하면 책으로 따지면 거의 16~17권 정도 되는 분량이었으니 거의 넘기면서 봤다고 해도 되는 수준!
'흐음~ 이 작품을 리메이크해볼까?'
너무 집중해서 그런지 목이 뻣뻣했다.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고 어깨를 풀었다. 밖에서 엄마가 나를 부르고 있었다.
"준형아! 점심 먹어. 네가 좋아하는 비빔국수 해놨다."
'어라. 벌써 한시네. 어쩐지 배가 고프더라.'
"알았어. 엄마. 나갈게요."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인 어머니는 개학 기간이라 바쁜데도 불구하고 나 때문에 연가를 내신 상황이었다.
식탁으로 가서 어머니가 해주신 점심 메뉴를 뚝딱 해치웠다.
"아들. 천천히 좀 먹어."
"맛있어. 엄마. 그리고 배가 고팠나 봐. 그냥 후루룩 먹어버렸네."
"오늘은 방에서 좀 쉬지그래. 왜 또 책상에 붙어있는 거야?"
어머니는 근심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능력이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엄마. 나한테는 이게 쉬는 거야."
"하이고···."
어머니는 내 대답에 혀를 차셨지만, 눈빛만큼은 따뜻했다. 그녀는 자신과 닮지 않은 둘째 아들을 항상 믿고 응원하고 있었다.
그렇게 방으로 돌아와서 팔을 걷어붙이고 시놉시스와 플롯 그리고 캐릭터를 만들기 시작했다.
'분위기는 가볍게 가야 해. 웹소설은 스낵 컬쳐다. 현실이 고달파서 출퇴근 시간에 머리를 비우고 보는 글인데 무거우면 안 돼.'
'소설에 나오는 현실은 악인들이 판을 쳐서 무겁고 기괴하지만, 지옥의 악마들의 배틀은 유쾌하고 통쾌해야 된다'
현실이 망가질수록, 해당 악마가 선택한 인간들이 현실에서 악업을 쌓을수록, 지옥의 악마들이 카르마를 획득하는 시스템이었다.
'요즘 유행하는 성좌물을 살짝 섞는 거지. 그리고 힘든 현실을 풍자한 블랙코미디를 섞는 거야.'
'자신이 선택한 지상의 장기 말에게 한가지 능력을 줄 수 있는데 주인공인 소악마는 다른 악마들과는 다르게 타인을 면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상태창을 주는 거야.
그게 가능한 이유가 이 소악마는 50년만에 새로 탄생한 유일한 악마였기 때문에 상태창이 난무하는 웹소설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존재지.'
나는 낄낄거리며 플롯을 대강 완성한 뒤, 각을 잡고 타이핑을 하기 시작했다.
전업 작가 시절 나의 아집은 기획사 매니저 활동을 하면서 많이 개선된 상태였다.
비록 플랫폼에 올리진 않았지만, 매니저 일을 하면서 틈틈이 글을 쓰며 잘나가는 작품들을 분석한 결과가 지금에서야 나오고 있는 것 같았다.
타닥타닥~
플랫폼 달동네 4질 작가 시절에 마련한 십만 원이 넘는 갈축 기계식 키보드였다.
경쾌한 타건 음이 마음에 드는 놈이었는데 글이 아주 술술 써져서 그런지 거의 ASMR처럼 깔끔한 소리가 방안에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거실에 계시던 어머니는 오랜만에 내 방에서 나는 경쾌한 키보드 소리를 들으며 소파에 앉아 낮잠을 주무셨다. 정말 평온한 오후였다.
오랜만에 맘 편히 글을 쓰다 보니 너무 즐거웠다. 마치 세계를 창조한 신처럼 모든 사건과 캐릭터의 행위를 묘사했다.
캐릭터가 유쾌하고 살아 있다 보니 캐릭터의 힘으로 스토리가 역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뉴비인 소악마가 선택한 것은 역시 한국의 사이코패스이자 악인이었다.
그는 나중에 기업을 거쳐 정치인이 된 후 대통령이 되고 은퇴 후 자신의 악행이 다 까발려지게 생기자 평소에 비밀스럽게 준비해왔던 제3차 세계대전의 불씨를 댕겨버리는 인물이었다.
다른 고위 악마들처럼 강대국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변방에서 시작해서 마지막에 역전한다는 스토리였다. 이른바 악마가 지략을 숨김.
뉴비인 소악마는 고위 악마들에게 무시를 당하다가 점점 성장하더니 막판에 소멸의 레이스 1위 등극한다는 사이다 스토리였다.
소설에 나오는 악마들은 마몬, 레비아탄, 사탄, 바알제붑 등 다양했고 최강의 존재 루시퍼까지 등장했다.
물론 진짜 악마 같은 놈들이 아니라 유쾌하고 약간은 씹덕스러운 존재들로 미남, 미녀로 묘사했다.
'아 참, 보상도 있어야지.'
주인공의 장기말이 소소한 악행을 저지르며 카르마가 쌓여 주인공의 악마 레벨이 올라가며 얻는 보상들도 철저히 생각해서 넣었다.
능력이나 아이템 따위를 보상받고 자신의 영지와 악마의 군대까지 업적으로 받는 체계였다.
'어째 점점 짬뽕물이 되어가네. 상태창에 성좌물에 사회 비리에 대한 블랙 코미디에 완전 씹덕물이잖아?'
'아차 그리고 서큐버스와 19금 장면도 넣어야지.'
데일리노블의 특성이었다. 해당 플랫폼은 19금 딱지를 다는 게 훨씬 유리했다. 어차피 기존작도 19금이라 굳이 바꿀 필요가 없어 보였다.
10화를 완성하고 시계를 보니 5시 반이었다.
"후아~ 미쳤네? 예전 즐겨 했던 게임인 문명을 플레이한 느낌이잖아?"
왠지 머리가 묵직하고 허리도 안 좋고 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윗옷을 걸쳤다.
"엄마. 나 잠깐 나갔다 올게."
"어디 가는데? 저녁밥 먹을 시간 다 됐잖아."
"요 앞 별다방에서 커피 한 잔만 마시고 올게."
"준형아. 그런데 노트북은 왜 들고 가는 거야."
어머니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현관문까지 따라 나오셨다.
"커피 마시면서 서핑 좀 하려고···."
"괜히 무리하지 말아. 너 이제 막 퇴원했어."
"알았어. 엄마 그런데 내 얼굴 좀 봐봐. 예전보다 훨씬 낫잖아."
"글쎄···."
나는 걱정하는 어머니를 뒤로하고 아파트를 나섰다. 목적지는 근처 상권에 있는 별다방!
예전 전업 작가 시절 주 서식지였던 곳으로 실로 오랜만에 방문하는 것이었다.
걷다가 별다방 통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아주 가관이었다.
'와~ 살찐 거 봐. 다이어트 좀 해야겠다.'
원래 키와 덩치가 어느 정도 있던 터라 많이 표시는 안 났지만 예전 훈남 오빠의 이미지가 많이 없어진 상태였다.
'쓰읍···. 이제 나이가 있는데 관리 안 하다가 한방에 훅 가는 거지.'
그런 생각으로 별다방의 문을 열고 카운터로 걸어가 커피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 하나 주세요. 여기요."
계산해 달라고 했더니 하얀 손이 쓱 다가와 내 카드를 채갔다.
"네 주문 받았습니다. 결제해드리겠습니다."
청량한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웬만하면 카운터 직원의 얼굴을 보지 않는 나는 고개를 들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확인했다.
'어라. 왜 어디서 본 것 같지?'
카운터에는 십 대 후반 혹은 이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청순 미녀가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나한테만 지어주는 미소는 아닐 것이다.
근처에서 나오길 기다렸다가 벨이 울리자 커피를 받기 위해 다시 카운터로 갔다.
"주문하신 커피 나왔습니다."
진짜 귀에 팍팍 꽂히는 청량한 목소리였다.
'와~ 진짜 목소리···. 뭐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커피를 들고 무의식적으로 그녀를 쳐다보니 그녀의 몸에서 붉은 아우라가 강하게 발산되고 있었다.
"헉···."
깜짝 놀란 나머지 나도 모르게 상체를 휘청했다.
"어? 괜찮으세요. 손님?"
"아···. 괜, 괜찮아요. 죄송합니다."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려 구석 빈자리에 앉았다. 괜히 추태를 부린 것 같아 창피했다.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첫눈에 반해서 깜짝 놀라는 것 같은 모습이었으니까.
'아이고 준형아 이놈의 자식아. 네가 지금 이럴 때냐? 얼른 생긴 능력을 증명해봐야 할 때잖아.'
스스로 혀를 차고 머리를 쥐어박았다.
'자! 다시 한번 써볼까?'
나는 다시 초집중 모드로 들어가 자판을 신나게 두들기기 시작했다. 한 3편쯤 썼을까? 한 모금 밖에 마시지 않은 비싼 아메리카노가 다 식어 버렸다.
'벌써 7시네. 저녁 시간 늦는다고 엄마한테 혼나겠다.'
나는 노트북을 가방에 넣고 벗어 놨던 옷을 걸치고 별다방을 나섰다. 주위는 이제 살짝 어둑해진 상태였다.
"저, 저기요···."
아까 그 청량한 목소리가 내 등 뒤에서 들려왔다.
"네? 왜 그러시죠?"
뒤를 돌아보니 그 붉은 아우라가 더욱 강렬해진 그녀가 내 핸드폰을 들고 서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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