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299화 (299/300)

# 299

에필로그 4: World as we did not know

‘스탈린그라드 여행권?’

아마 이것 때문에 아까 친구 놈이 나더러 축하턱을 쏘라고 그랬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원래 소련에서는 노동자 복지 차원에서 공짜로 여행을 보내 주곤 했는데, 해외여행이라면 제법 값나갈 만한 게 아닌가?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입이 썼다.

‘내가 물러나기 전에 그런 건 싸그리 쓸어냈다고 생각했는데….’

소련 내의 수많은 스탈린 어쩌고 하는 지명들, 그런 것들은 다 원래 이름이나 적절한 역사적 이름을 따서 환원시켰다.

스탈린그라드 역시 그중 하나였다. 어차피 이 세계에서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처럼 대단한 상징성이 있는 사건도 없었고, 그렇다고 ‘차리친(차르의 도시)’ 같은 반동적 명칭을 쓸 수는 없었으니 볼고그라드로 바꾸어 버렸는데…

그걸 다시 스탈린그라드로 바꾸다니? 어쩐지 흐루쇼프가 아첨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한 것 같고, 내가 예방하지 못한 것 같아 후회가 되었다.

아무튼 공지사항을 천천히 읽어 보자 이런저런 내용들이 쓰여 있었다.

“6월 30일 18시까지 주한 소련 대사관으로 여권과 짐을 챙겨서 모이면 항공편을 통해 모스크바로 이동… 모스크바에서 3일간 자유관광 이후 스탈린그라드로….”

음, 소련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보고 싶기는 했지만 그게 이런 방식일 줄이야?

아마 내가 철거한 스탈린 동상들이 다시 서 있거나, 레닌 영묘 옆에 엠버밍(보존처리)된 스탈린의 시체가 있으면 눈물이 날 지도 모른다.

그런데 6월 30일?

“오늘이네? 망했다….”

왜 이걸 내가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을까? 문자 내역을 보니 이전에 여러 공지가 왔던 것 같았다.

머리가 지금처럼 혼란한 상태라 기억을 못 했었나 보다. 시간을 보니 지금 시간은 12시. 집에 있는 물건들을 대충 챙기면 소련 대사관… 까지는 시간에 맞춰 갈 수 있지 않을까?

“후… 뛰자!”

* * *

“헉, 헉, 헉….”

어딘지 정확히 몰라 허겁지겁 짐을 챙기고 뛰어 왔는데, 주한 소련 대사관은 생각보다 학교와 자취방에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이 세계에서 소련과 미국의 입지가 정반대로 뒤바뀌어서 그런지, 원래 미국 대사관이 있어야 할 광화문 근처에 소련 대사관이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온 덕에 안에 들어와 기다리고 있으려니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세계가 확실히 패션에 있어서는 테러리즘에 가까운 세상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왜 다들 인민복 비슷한 것이나 작업복 같은 것을 입고 있는가?

물론 그게 패션 따위에 수억 원씩 쓰면서 기괴할 정도로 이상한 미의식을 추구하는 것보다는 나아 보였지만… 아무튼 6시가 되자 대사관 직원이 나타나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저는 소련 대사관 주재 영사 블라디미르 티호노프입니다.”

아니, 생긴 것은 무슨 전형적인 러시아인처럼 생긴 사람이 무슨 한국말을 저렇게 능숙하게 하지? 흠잡을 데 없는 억양으로, 티호노프 영사는 이것저것 숙지해야 할 내용이며 주의사항을 늘어놓았다.

사람들이 놀라지 않는 것을 봐선 저런 사람이 생각보다는 흔한 것 같았다. 아직은 뒤죽박죽인 이 세계의 기억을 뒤져보면 대한민국의 국력은 대략 프랑스와 엎치락뒤치락하는 정도.

소련―미국과의 격차는 엄청났지만, 영국이 심각하게 몰락하고 독일이 3분할 당한 덕에 사실상 서유럽 최강자로 등극한 프랑스와 비슷하니 실제 역사의 독일 정도 포지션인가? 아무튼 그런 덕에 한국 역시 나름의 영향력을 가진 것 같았다.

* * *

나름 쾌적한 차량을 타고 공항으로 이동해, 모스크바로 날아가는 와중에도 나는 계속 머릿속에서 뒤죽박죽인 기억들을 꺼내 정리해 보았다.

그러자 학창시절 대충이나마 배웠던 내용들이 기억이 났다.

‘국공내전은 아마 8차인가 9차까지 있었고… 남미에서는 체 게바라의 혁명군이 분열된 소국들을 하나로 합쳐 볼리바르 공화국을 만들고….’

피의 화요일 사건을 일으키며 미국 정치를 혼란으로 밀어넣은 맥아더, 소련의 세계 패권 장악…. 결국 맥아더를 끌어내리기는 했지만 미국 정계가 공화당 책임론과 맥아더 개인 일탈론 간의 싸움으로 번지며 서서히 미국이 소련에게 추월당했고….

[우리 비행기는 이제 목적지인 모스크바, 모스크바 세레메티에보 국제공항에 도착합니다. 승객 여러분들께서는 착륙 시 충격에 대비하여 안전띠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벌써?”

무슨 생각을 좀 하려 하니 벌써 도착인가? 얼핏 스크린에 표시되는 속도를 보니 2500km/h에서 점점 떨어지고 있었다.

‘이거 지금 초음속 여객기였어?’

마하 2가 넘는 속도인데 초반에 멀미가 좀 쏠린 것을 빼고는 알아채지도 못하고 있었다. 항공과학기술의 비약적인 발전 덕인지, 아니면 소련이 체제 선전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것인지….

동맹국이라지만 타국 사람들에게까지 이런 혜택을 마구 주는 것으로 보아 소련이 잘나가기는 하나 보다.

핸드폰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니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패션이나 전자기술을 대가로 기계나 항공 분야를 놀랍도록 발전시켰다면… 최소한 소련이 최강대국으로 등극한 덕에 인류의 과학기술이 쇠퇴하지는 않은 것 같았다.

“사흘간 지내실 숙소에 짐을 풀어 두신 후 자유 여행을 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모스크바에서의 시간을 마음껏 즐기십시오!”

공항버스를 타고 이동하며 보는 모스크바는 어쩐지 SF에 나오는 미래도시 같았다. 하늘에 날아다니는 드론들과 휘황한 전광판들 사이에 섞인 고풍스러운 건물들은 언밸런스했지만, 소련이 추구해온 미래상을 보여 주는 것 같았다.

미래로! 미래로! 더 높은 단계의 세상을 향해서!

소련에 전기를 더하면 공산주의가 된다고 했던 레닌, 생산력 발전이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마르크스…. 물질만이 행복의 조건은 아니겠지만 풍요로운 삶은 저 무뚝뚝한 소련인들마저 입가에 미소를 띨 수 있게 했다.

어쩌면 내가 만든 결과물이 썩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었을지도?

* * *

어디로 가 보아야 하나?

‘으음….’

알고 보니 이 세계에도 앱이란 게 존재했다. 숙소의 방에서 지도 앱으로 뒤져본 결과 몇몇 관광 명소랄 만한 게 있었다.

“크렘린궁, 붉은 광장, 성 바실리 성당, 볼쇼이 극장… 굼 백화점? 음, 여기가 그렇게 관광 명소인가?”

모스크바에서 10년을 스탈린으로서 있었다지만 사실 여기를 관광지로써 둘러볼 일은 없었다. 크렘린만 해도 내 집에 가까웠지, 관광지로 생각해 본 적은 없으니. 붉은 광장도 행사차 들려 레닌 영묘 옆에서 연설하곤 했는데…

대조국 전쟁 승전 기념 거대 퍼레이드가 생각났다. 베를린을 점령한 우리 정예 전차부대들이 시가지에서 행진할 때는 얼마나 자랑스러웠는가?

“그럼 붉은 광장부터 가 볼까….”

붉은 광장에는 가 볼 만한 곳이 다 있었다. 먼저, 내가 알았던 사람들이 묻혀 있을 크렘린 벽 묘지와 그 건너편의 레닌 영묘. 또 근처에는 모스크바 최고의 쇼핑 명소라는 굼 백화점까지 있었다.

흐루쇼프, 몰로토프, 주코프. 다 그곳에 있겠지? 옛 동지들을 보러 가는 걸음이 마냥 가볍지만은 않았다.

‘다들, 잘 했을까?’

내가 남겨 놓고 간 소련이 운영하기 쉬웠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더 풍요롭고 부유한 소련을 남겨 주었지만, 그 위에서 싹튼 자유화와 민주화의 요구는 정치가들이 국정을 운영하기 지극히 까다롭게 만든다.

맥아더가 반쯤 말아먹었다 해도 여전히 초강대국에 걸맞은 국력을 지녔을 미국과의 경쟁도 그랬을 거고.

워낙 모스크바 중심가에 가까운 곳에 숙소가 있었던지라 붉은 광장에는 금방 도착했다. 세계 각국에서 왔는지 딱 봐도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무리 지어 몰려다니며 광장을 활보하고 있었다.

“와….”

여기만큼은 내가 예전에 기억하던 모습 그대로였다. 옥에 티라면 저만치에 보이는 굼 백화점에 설치된 전광판 정도?

광장을 가득 메웠던 승리자 소련군, 대조국전쟁을 승리로 이끈 용사들, 막강한 붉은 군대의 전차들과 대포들, 하늘을 낮게 날던 전투기들… 그 모든 모습들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광장 한편, 붉은 벽 아래의 묘지에는 헌화하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꽃 사실래요?”

“아! 그럼… 한 다섯 송이만….”

바구니 가득 흰 꽃을 담아 파는 소녀는 방긋 웃으며 흰 종이로 곱게 싼 꽃 여섯 송이를 내게 넘겨 주었다.

“한 송이는 서비스에요. 100루블입니다.”

“고맙습니다.”

역시 가장 사람들이 많고 화려하게 장식된 묘역은 대조국전쟁 참가자 묘역이었다. 내 기억에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시대.

“아!”

조각상들은 조금 미화되기는 했지만 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

<소비에트 연방원수 세묜 부됸늬>

저 풍성한 콧수염을 누가 몰라볼까? 사람들에게는 원수 계급을 달고서도 용맹히 전선에서 싸우다 전사한 것으로 알려져 인기가 높은지 부됸늬 묘역에는 흰 꽃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 쭉 내려가자 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대조국전쟁 승리의 1등 공신 주코프, 그의 영원한 라이벌 코네프, 숙청에서 살아나 두 번이나 충성을 다한 로코솝스키, 총참모장으로 헌신했던 바실렙스키….

조국이 가장 위태로웠던 시대에 끝까지 분전해 승리하고, 위대한 나라를 건설한 공신들로 시대는 그들을 평가했다.

대조국전쟁 기념 묘역을 지나 내려가자 정치가들이 묻힌 곳이 나왔다.

“몰로토프….”

나와 함께 시대를 풍미했던 이들. 몰로토프, 흐루쇼프, 칼리닌, 카가노비치….

몰로토프의 흉상 아래에 꽃 한 송이를 더하고 동판에 쓰인 그의 업적을 읽어 내려갔다.

“소련 장관회의 의장 겸 외무인민위원. OPEC 총재. 제2차 코민테른 의장 겸 소련 대표. 그는 죽는 날까지 일평생을 소비에트 연방을 위해 헌신하다 이 자리에 잠들었다. 그의 안식에 평화가 있기를.”

눈물이 한 방울 떨어질 것만 같았다.

바체슬라프 몰로토프, 1890―1996. 1906년부터 볼셰비키 당원이었던 그는 9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을 헌신하다 죽었다. 원래라면 91년 소련이 해체되기 전에 죽었지만 10년을 더 살았던 것은 소련이 흥한 덕일까?

모르겠다. 언젠가는 알 수 있겠지.

걸어서, 걸어서 내려가다 보니 뭔가 알 듯 말 듯 한 흉상이 보였다. 부됸늬 묘역보다도 꽃다발이 많은 것을 보아서는….

“니콜라이 페트로프?”

아, 내가 모르는 바로 그 사람이 등장했다. 조각상의 얼굴은 순해 빠진 소련 시골의 농민 같았지만 눈빛만큼은 미화인지, 아니면 실제인지 형형히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서기장. 소비에트 연방원수. 그는 대조국전쟁의 이등병으로 시작하여 파시스트와 제국주의자들로부터 조국과 사회주의의 방패가 되었다.”

밑에는 그의 유언이 짤막하게 적혀 있었다.

<나는 그저 인민의 위대한 의지의 대변자였을 뿐입니다. 소비에트 인민을 위해, 내가 부족하나마 최선을 다했다는 것만을 알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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