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297화 (297/300)

# 297

에필로그 2: 소비에트의 미래

“후… 하… 후… 하… 씨발….”

아, 씨발. 이건 솔직히 무리였다.

70대 중반의 늙은 육체는 집짓기 같은 중노동을 하는 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었다. 그동안 건강관리를 한답시고 운동은 열심히 했지만 수많은 서류작업에 치이며 체력을 단련하는 것은 사치였고, 그 후과를 지금 느끼고 있었다.

“흐, 흐흐흐… 이오시프! 벌써… 허억… 지친… 헉, 겁니까?”

“후우… 후우… 후우… 말 시키지… 후… 마시게….”

그나마 열 살 어린 월리스는 그동안 집짓기를 해 온 짬이 있어 나보다는 잘 버티는 것 같았다. 이 땡볕에서 묵직한 자재들을 지고 나르자니 뒤질 것 같은 얼굴이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아니… 무슨 이런 날씨가….”

그나마 햇살이 제일 강한 정오 전후는 피하고 이른 아침과 늦은 오후 위주로 작업을 하는데도 수시로 살이 타는 느낌이었다. 현지인들은 이런 날씨가 익숙한지 땀도 별로 흘리지 않고 휘적휘적 오가고 있었지만.

아, 괜히 월리스와 서로 경쟁을 한답시고 자재를 누가 더 많이 지고 나르나 같은 멍청한 짓거리를 해서 그런가?

“후우… 나는… 조금만 쉬겠습니다….”

“그럼 저도….”

지게를 벗어 던지고 응달로 들어가자 그나마 좀 살 것 같았다. 으으… 등줄기에서 흐르는 끈적한 땀 때문에 웃통이라도 까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이 햇볕에 화상을 입을 것이 뻔했다.

새로 비서 겸 제자 삼아 데려온 녀석이 내가 응달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후다닥 달려왔다.

“동지! 동지! 여기 제 물이 있습니다. 물 좀 드시고 하시지요.”

“고… 고맙네… 역시 젊음이 좋군.”

“하하… 별말씀을 다 하십니다.”

역시 20대와 70대의 체력은 감히 비교할 수조차 없었다. 농장 일로 다져져서 그런가?

“다만… 자네 머리는 좀 괜찮나? 그렇게 벗겨져서야… 화상을 입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괜… 괜찮습니다.”

내가 데려온 녀석,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고르바초프는 가슴이 아픈지 움찔하면서도 애써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70대인 내가 20대인 고르바초프보다 머리숱이 많다니. 콤소몰 위원장으로 보았을 시절보다 더, 유의미하게 머리숱이 사라진 고르바초프는 아마 이마 위만 보면 60대 이상으로 보일 것이다.

솔직히 진짜 화상이라도 입지 않을까 싶어 그렇게 이야기한 것이지만…

“아무튼 모스크바 대학 출신의 샌님치곤 대단하네! 아주 대단해.”

“하하하… 저도 고향 농장에서 일해 노력적기훈장까지 수훈했습니다 동지. 샌님이라니요.”

나도 알아 임마.

고르바초프는 중고등학생 시절 고향의 농장에서 트랙터 운전수로 일하며 곡물 수확량을 막대하게 향상시킨 공로로 훈장까지 받았다. 아버지는 레닌훈장을 탔고, 아들은 노력적기훈장을 탔으니 그야말로 모범적인 소련 농민이라 할 수 있었다.

거기에 콤소몰 위원장을 지내고 노력하는 성품에 머리까지 좋아 50년에는 모스크바 대학 법대까지 합격했으니, 엘리트 중의 엘리트 코스를 탔다고 할 만했다.

하지만 그렇게 외골수적일 정도로 성실한 성품 덕에 오히려 더 뒤통수를 맞았다. 부패와 비효율을 직시하고는 있었으나 뿌리 깊은 저들의 커넥션을 한 손에 잡고 휘두르지 못한 덕에 보수파의 쿠데타를 얻어맞고, 옐친 같은 개자식들에게 소련을 넘겨주었지.

이렇게 데리고 다니면서 과외라도 시키면 좀 나아질까? 지금 몇 년 정도 날 따라다닌다 해서 고르바초프의 커리어가 꼬일 일은 없을 것이다. 어쩌면 스탈린 서기장이 직접 점찍은 인재라 하여 더 잘나갈지도 모르지.

“알았네. 내가 대학 같은 걸 안 나와서 대학 나온 사람들만 보면 다 샌님으로 보인단 말이지?”

“죄… 죄송합니다!”

솔직히 고르바초프가 법대 같은 데를 간 것도 딱히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흐음… 차라리 여기서 생긴 미국인들과의 연줄로 미국 유학을 보내줄까?

아직 맥아더가 위세를 떨치는지라 소련―미국 간 상호 유학이 많은 부분 틀어막혔다. 다만 여기서 몇 년 정도 있다가 정권이 바뀌거나 하면 내 추천장, 혹은 전직 대통령인 월리스의 추천장을 받으면 웬만한 대학은 다 뚫고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당연히 과목은 경제학. 이런 오지에서 집짓기 같은 걸 하며 굴러 보고, 소련 농민들의 삶도 이해하는 만큼 개발경제학이나 후생경제학을 시켜서 인간개발이며 사회개혁의 전문가로 육성하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내가 자기 미래를 두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는지, 고르바초프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도 내 수발을 들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와아아아!!”

우리 외에도 적잖은 수의 봉사자들이 일하고 있던 현장에서 대표 봉사자가 외치자 사람들은 진이 빠진 목소리로도 환호했다.

이런 날씨에 너무 오래 일하면 결국 탈진하고 만다. 나름 과학적인 방법론, 사람이 몇 도에서 몇 시간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감안해 만든 마셜의 봉사 가이드라인은 철저하게 효율적으로 사람을 굴려 먹는 데 최적화되어 있었다.

“오늘 저녁이 뭔지 아나?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아, 예. 음… 아마 깔바사 야채볶음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오!”

몇 달간의 봉사활동은 강철 같은 통치자였던 나를 매일의 저녁 메뉴가 뭔지에 따라 희희낙락하는 ‘보통 인간’으로 만들어 놓았다.

하지만 주책맞다기엔 깔바사 야채볶음은 너무 맛있는걸?

식판을 들고 배식대로 향하자 고소하고 향긋한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몇몇 봉사자들은 나이나 내 예전 위치를 생각해 먼저 받을 것을 권했지만 어디 그래서야 되나.

“으음…!”

“하하하, 많이 드십시오.”

“고맙네!”

우리가 아는 소시지 야채볶음과는 좀 다르게 긴 깔바사 소시지와 스팸 통조림을 잘라 케첩에 볶아낸 ‘깔바사 야채볶음’은 봉사자들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였다. 거기에 사람들이 기운 빠지지 말라고 베이컨이며 계란이며 감자 샐러드며 그레이비에 치킨까지!

역시 건강에는 안 좋아도 이런 게 제일 맛있었다. 미군 참모총장 출신의 마셜이 총재를 맡으니 먹는 것만큼은 미군 수준으로 맞춰 주어 고된 일과도 견뎌 낼 수 있었다.

“음…?”

허겁지겁 먹다 보니 웬 어린아이가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이 동네에서 집을 짓다 보면 수많은 문제에 부딪혔다. 집이 없는 것은 빈곤의 한 측면에 불과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집만 없는 게 아니라 먹을 것도 부족했고, 마실 물도 변변찮았으며 옷이며 교육이며 모든 것이 다 부족했다.

내 식판을 내밀자 어린아이는 잽싸게 삶은 계란 두 개를 집었다. 하나를 게눈감추듯 자기 입에 집어넣은 꼬마는 하나는 다 떨어진 바지의 호주머니에 넣고,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달려갔다.

달려간 끝에는 더 작은 꼬마 하나가 손가락을 쪽쪽 빨며 제 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미하일 세르게예비치. 보았나?”

“예, 동지. 참….”

뭐라 형언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든 고르바초프는 자기 식판을 들고 꼬맹이들에게 가서 건네주었다. 그걸 다 주면 오늘 저녁은 사실상 굶는 꼴이겠지만, 고르바초프는 꽤 자주 저렇게 아이들에게 자기 먹을 것을 전부 넘겨주고는 했다.

“가난은 한 영역에서만의 결핍이 아니네. 내가 했던 말은 기억하나?”

“예, 기억합니다. 돈이 없는 자는 돈을 벌기 위해, 또 다른 것들을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고, 더 혹독하게 일하다 건강을 잃고….”

“잘 기억하는군.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뭐라고 생각하나?”

“예? 음….”

모든 일과가 끝난 저녁에 봉사자들은 모여 생활 총화와 토론을 했다. 어떻게 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가?

고르바초프는 아직 짬도 낮고, 워낙 겸손한 성격인 관계로 남에게 말을 하는 것보다는 듣는 쪽을 선호했다. 그래서 이렇게 물어본 것인데 고르바초프는 제법 생각을 해 둔 것이 있는지 쭉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일단 우리가 돈을 주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똑같은 무엇을 구하려 해도 저들은 더 비싼 가격에 사야 하니 말이지요. 그렇다고 현물을 주는 것은 운송 부담이나, 돈도 마찬가지지만 분배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호오….’

“저희가 가지고 있는, 정답에 가장 가까운 것은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니면 의료도 가능하겠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약간 꼼수긴 하지만, 우리가 학교와 병원을 짓는 게 다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이 시대의 개발경제학이라는 것은 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아마티아 센 같은 후생경제학자들이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ement Index) 같은 걸 내놓기 전까지는 개발은 그저 국가가 더 많은 자원을 생산성 있는 분야에 때려 넣는 작업이었다.

하지만 고르바초프는 ‘인간의 역량’ 개발이라는 것이 대충 어떤 개념인지 슬슬 이해하는 것 같았다.

평생 일자무식 막노동꾼으로 살다 죽을 저 어린아이들을 가르쳐 새 시대의 일꾼으로 만드는 것이 국가 단위로 보면 얼마나 큰 이익인가! 단순노동자보다는 기계를 다룰 줄 알고 똑똑한 노동자가 좋았고, 대학교육을 받은 엘리트 연구원들은 그것보다도 더 생산성이 높았다.

“그럼 자네는… 낮은 이율로 저런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출을 해 주는 건 어떻게 생각하나?”

“예? 대출 말씀이십니까?”

그리고 나는 엘리트라지만 시대의 한계 안에 있는 고르바초프에게 이런저런 썰을 들려줄 정도는 되었다.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 음악교육은 우리가 이미 시도하고 있었다. 거대한 의과대학을 지어 세계 학생들을 받아 교육시키는 쿠바의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은 국제 프롤레타리아 의과대학으로 몇 배는 크게 진행시켰다.

다만 그라민 은행으로 대표되는 ‘마이크로크레디트’, 무담보 소액대출은 사회주의적인 이데올로기상 맞지 않아 아직 제대로 하고 있진 못했다.

고르바초프는 무슨 그런 반동적인 이야기를 하시냐는 듯 날 보다가도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아마… 음… 개인이 대출을 통해 사업체를 만들기보다는 집단, 즉 지역당이나 당세포 단위에서 운영권을 가지는 방법이라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최소한 여기 있는 빌어먹을 사채업자 거머리들을 퇴치할 수만 있다면….”

고이율로 빈민들을 착취하는 반동 자본가 놈들의 악행에 질렸는지 고르바초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해비태트 사업과도 밀접한 관련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 일부 사채업자들은 무대포로 빌려준 돈을 갚지 못한답시고 우리가 준 집을 사람들에게서 강탈해 팔아치우기까지 했다!

그런 친구들은 소련의 압력을 받은 정부 관료들이며, NKVD 암살특작부대와 즐거운 만남을 치러야 했지만… 아무튼 고르바초프의 생각은 나쁘진 않았다.

맨바닥에서 집산화만 하면 무엇을 할 것인가? 빈털터리들 수십이 모여 봐야 먹일 입만 늘어나는 꼴인데. 이들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초기자금과 기자재를 먼저 무상제공하는 방식은 쓸만할 것 같았다.

“그런가? 그럼 자네가 높은 사람이 되면 해 보게나.”

“예? 하하하… 농담도 참….”

농담 아닌데. 아직까지 고르바초프는 자기가 누구 눈에 들었는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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