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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스탈린이 되었다-295화 (29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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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5화

<스탈린 서기장 사임을 선언하다!>

오늘도 아이스 소비에트를 한 잔 후루룩 마시며 신문을 들여다보던 니콜라이는 깜짝 놀라 컥컥거렸다.

“으억, 컥, 컥….”

“아빠 괜찮아?”

“아니, 음… 안 괜찮을지도 모르겠네….”

카티아는 아침거리로 직접 만든 파이와 보르시치를 들고 오면서 허둥거리는 니콜라이를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길래 그래?”

“음… 스탈린 서기장 동지가 사임하신다는군.”

“어머, 어머….”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에게 국가 지도자의 명칭은 서기장이었고, 또 스탈린이었다. 스탈린이 권력을 잡은 1928년 전후로 태어난 이들은 지금까지 스탈린 외의 다른 지도자를 생각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아마 어르신들이라면 좀 다르려나….’

물론 적잖은 장노년층은 차르 시대나 볼셰비키 혁명기를 기억했다. 니콜라이 그 자신도, 어린 시절의 어렴풋한 기억으로 레닌이 국가수반이던 시절을 기억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스탈린 서기장은 그저 너무 거대한 인물이었다. 공업화, 대조국전쟁, 그리고 지금 미국과의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까지! 사회 곳곳에 스탈린 서기장의 입김이며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아빠, 사임이 뭐야?”

“응, 그만둔다는 거란다.”

“아아… 근데 어떻게 그만두는 건데?”

“글쎄….”

어린 스타스는 아빠가 이러는 게 신기한지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물어 왔다. 글쎄, 그것만큼은 니콜라이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누가 서기장이 될까? 아니면 미국이 하는 것처럼 소위 ‘민주주의’라는 걸 할까? 아니면 고만고만한 작은 사람들끼리 자리를 나누어 가지게 될까?

스탈린 이전의 소련과 지금의 소련을 비교하면 같은 나라라는 것을 상상할 수 없듯, 미래의 소련 역시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무엇이었다.

‘마카로프 준장에게 물어보아야 하나….’

니콜라이가 아는 한 제일 유식하고 풍문에 밝은 사람은 바로 프룬제 시절의 친구 블라디미르 마카로프였다. 지금은 총참모부 소속 고급 참모로 가 있을 테니 어디 듣는 귀가 많지 않으려나?

아무튼 세상은 너무 바뀌어 버렸다.

“나 같은 촌무지렁이가 장군이 되더니,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지 모르겠네.”

“어머… 당신은 또? 당신만큼 멋진 남자가 어디 있다고?”

출근하는 니콜라이의 뺨에 키스한 카티아는 그의 귀에 이렇게 속삭였다. 니콜라이는 하하 웃으면서 아내의 뺨에 또 한 번 키스했다.

“잘 다녀와!”

“잘 다녀오세요!”

“응, 그래. 이따 저녁에 보자.”

출근하는 길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신문을 펴 들고 웅성대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울기도 했고, 어떤 사람은 당황한 얼굴로 마구 뭔가를 외치기도 했다.

“장군 동지, 좋은 아침입니다.”

“좋은 아침이네 스미르노프 대령.”

새로 그의 참모장이 된 스미르노프 대령은 니콜라이의 눈치를 보면서 명령을 기다렸다. 자기보다 훨씬 어린 이 사단장은 생긴 것은 순박하고 착하게 생긴 주제에 어지간히 괴짜로 이름이 높았다.

장교들의 체력이 문제라고 사단장 본인부터가 웃통을 까고 전 간부를 대상으로 알통구보를 시키질 않나, 자기 뒷담을 재미있다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고 다니질 않나….

‘인민 영웅은 다 저런 건가?’

스미르노프 대령이 뭐라고 생각하든 니콜라이는 대체 스탈린 서기장의 사임이 어떻게 흘러갈까를 고민했다.

“저… 오늘 아침 구보는….”

“아? 구보? 오늘은 좀 생략하도록 하지.”

그러면 그렇지. 스미르노프의 얼굴에는 기분 좋은 환희가 스쳐 지나갔다. 이 나이쯤 돼서 출렁거리는 뱃살을 까고 병사들 보는 앞에서 헥헥거리며 뛰어다니는 게 그다지 기분 좋은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졸병 장군’ 페트로프 소장도 오늘 같은 날에는 고민을 한다는 게 그를 만족스럽게 했다.

‘자기가 아무리 인민영웅에 전쟁영웅이라도 시대의 대세는 어찌 못한단 말이지….’

정권이 바뀌면 반드시 출세하는 사람이 있고, 끈이 떨어지는 사람이 있다. 새로 지도자가 될 누군가가 군부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군부 내 스탈린 충성파들을 제거하고 자기 심복들을 심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누가 실세인지, 누가 떨거지인지 파악하고 줄을 대야 향후의 출세가 가능했다.

페트로프 소장 역시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그에 대한 평판은 출세에는 관심이 없지만, 출세가 그에게 관심이 있었다는 게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런 격변기에 저런 전전긍긍이라니!

“나는 잠시 전화 한 통화만 하지.”

“예! 알겠습니다, 장군 동지.”

보라! 이제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 인맥에게 전화를 걸어 줄을 대려 할 것이다.

스미르노프는 음흉한 웃음을 숨기며 니콜라이의 집무실을 걸어 나왔다. 니콜라이는 저자가 대체 왜 저런 식으로 웃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기억을 뒤져 마카로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블라디미르! 나일세. 니콜라이.”

[하하하하, 아니 페트로프 소장 동지도 이런 때 전화를 거십니까?]

몇 번의 통화 중 메시지를 들은 후에야 마카로프와 간신히 통화연결을 할 수 있었다. 연락 온 사람이 제법 많았는지 마카로프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음? 무슨 그렇게 전화가 많이 온다고….”

[다들 궁금해하지요. 다음 세대의 군부는 누가 장악할 것이고, 누가 원수가 되고 누가 뒷방 늙은이가 될지…. 자기가 잡은 끈이 실한 끈인지 썩어빠진 끈인지 그런 것들 말입니다. 아니 그런데 페트로프 동지는 전혀 그런 것엔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약간은 실망이라는 듯 말하는 마카로프의 말에 니콜라이는 어이가 없었다.

“이봐 블라디미르. 난 지금 맡고 있는 책무도 버거워 죽겠다고. 이 자리에서 내 책임도 다하지 못하는데 무슨 승진이며 끈이며 정치질을 논하나?”

[…휘유. 제게 연락한 자들은 다 그런 걸 궁금해했지요. 니콜라이 동지는 지금까지 안 그랬기에 조금 놀라긴 했습니다만… 역시 아니군요.]

“그래. 뭐… 나도 궁금한 게 있긴 하지만….”

[뭐가 그렇게 궁금하십니까? 하하하하. 또 다음 특진이 언제일지?]

이 친구는… 지금 자리도 감당할 수 없는데 또 특진을 가지고 놀려먹는 게 좀 답답하긴 했지만 니콜라이는 그런 놀림은 견딜 수 있었다.

“그런 건 아니고… 음… 또 전쟁이 터지겠나?”

[예?]

“정권이 바뀌면 말이야. 전쟁이 터질 것 같나 이거지.”

[…그건 좀 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런 건 왜 물어보십니까?]

이런 말을 하기에는 좀 부끄러웠다. 그의 지휘하에서 죽은 병사들이나, 그를 믿고 따라온 병사들에게나.

“나는 또 전쟁이 터지면 나같은 못난 놈들이 또다시 사람들에게 죽으라는 명령을 내려야 할까봐 두렵네. 아니, 나만 못난 게 아니지. 병사들 부식비를 횡령하는 놈, 제 부하들을 성적으로 건드리는 놈… 이런 윗대가리를 끼고 소비에트의 젊은이들이 목숨 바쳐 싸워야 하겠나?”

[…]

“그래서 혹여나 전쟁이 터질 것 같다면 난 이 직업을 그만둘 걸세. 아직 전차 운전하는 법은 까먹지 않았으니, 어디 저기 시골의 농장에서 트랙터나 운전하면 좋겠군. 어차피 훈장에 딸린 연금도 있고 말이야….”

[아니, 니콜라이 표도로비치 당신만큼 뛰어난 지휘관이 어디 있다고 그렇게 말을 합니까? 이제부터 아무것도 안 하더라도 중장, 대장은 달 겁니다!]

“그게 제일 끔찍하군. 나같이 운만 좋은 자가 수만 명의 목숨을 책임지게 되다니.”

마카로프는 이제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진짜로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해 온 게 운만 좋다고 되는 일인가? 하지만 제일 웃기는 것은 니콜라이가 진심으로 저렇게 믿고 있다는 것이었다.

[…말을 말지요. 제가 보기엔 니콜라이 동지는 청렴하고 병사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좋은 장군이 될 겁니다. 그러니 사관학교를 졸업했답시고 꺼드럭거리는 놈들이 윗대가리에서 설치지 좀 못하게 자리를 잡고 계시죠.]

“….”

이번엔 니콜라이가 할 말이 없었다.

군부가 전쟁을 거치며 무능한 자들은 잘라내고 유능한 자들을 승진시켰다지만 여전히 음지에서 자라는 독버섯처럼, 형편없는 인간들은 하고 많아 스믈스믈 기어 올라왔다.

이래서 대숙청을 한 것일까?

“나 같은 놈이 그나마 낫다니 소련군의 미래가 어둡군.”

[그런 말 마십시오. 지금 미국 꼬라지만 봐도…]

“음? 미국은 무슨 소린가?”

[못 들으셨습니까? 하긴 오늘 스탈린 서기장 동지의 사임 때문에 다들 온통 그 이야기뿐이니…]

뭔데 이렇게 뜸을 들이지? 니콜라이는 미국에서 무슨 일이 터졌을까 하며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지만 딱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군대가 시민들로 이루어진 시위대를 전차와 기병을 동원해서 진압했다고 합니다. 수천 명이 부상당하고 수백 명이 지금 실종, 그러니까… 어디 있는지도 모를 상태라고…]

“!!!”

미국에서? 그의 이빨을 뽑아간 이후 미국은 좋은 친구와 악질적인 반동분자 사이 어딘가에 있는 무엇이라고 생각하게 되기는 했지만, 적어도 그들이 대놓고 인민에게 총질을 할 줄은 니콜라이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마카로프도 솔직히 이럴 줄은 몰랐다는 듯 천천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을 해 주었다.

[지금 미국 대통령 맥아더가 군 출신이라는 것은 들어 보셨으면 알 것입니다. 예전에도 시위대를 한번 그렇게 진압했다가 정권이 뒤집히고 좌천당한 적이 있는데 아직도 버릇을 못 버리고 한 번 더 그렇게 한 것입니다.]

“허허… 도저히 상상도 못할 일이로군….”

소련 역시 그렇게 자유롭고 정부가 시민들을 탄압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군대 역시 똑같은 감시의 대상이었고, 대놓고 인민을 향해 병력을 동원하지는 않았다. 소련 초의 혼란기라면 모를까.

전쟁도 끝났고, 내심 군대는 훨씬 규모를 줄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니콜라이로서는 솔직히 가슴이 아팠다.

군대가 잡아먹는 이 막대한 예산이며 인력을 보라! 이것을 다 인민 생활의 질 향상에 투자할 수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장군이 된 이후로 숫자를 들여다보게 되자 니콜라이는 그저 한숨만 쉴 따름이었다.

‘평화로운 시대가 오면 얼마나 좋을까….’

까짓거, 장군에서 실업자가 되더라도 배워먹은 가락이 있는 만큼 어디 시골의 집단농장에서 트랙터 운전수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소련 체제에선 일반 노동자나 고급 장교나 삶의 질의 차이가 엄청나게 크지는 않았기에 지금 누리는 것이 니콜라이는 그닥 아쉽지 않았다.

마카로프는 미국에서 지금 무슨 일이 돌아가고 있는지 쭉 설명을 했다.

[…하여 이 탄핵 표결을 막기 위해 맥아더는 계엄령을 선포하고 의회를 해산시킨 것입니다. 지금도 맥아더 지지파들과 반대파들 간의 물리적 충돌이…]

“제길, 그런 정치는 내겐 너무 어렵군.”

[하하하하. 이제 장군이 된 이상, 동지가 정치에 관심이 없을지라도 정치가 동지에게 관심이 많을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그만두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난 진심인데. 왜 사람들은 이렇게 몰라 줄까.

세상은 너무 바뀌어 버렸다. 인민들의 삶은 좀 나아지긴 했지만, 니콜라이는 변해 온 세상이 생경하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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