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스탈린이 되었다-291화 (291/300)

# 291

291화

[셋… 둘… 하나….]

“발사!”

코룔로프가 만들어 낸 스푸트니크가 지구궤도에 안착했다 내려오며 소련 과학의 위대한 승리를 선전했다.

맥아더는 우리가 던져 준 ‘핵잠수함 설계도’라는 미끼를 물고 그것만 있으면 소련의 머리통을 박살 내버릴 수 있을 거란 헛된 꿈에 부풀었다. 그러는 사이, 소련의 우주과학은 착실하게 발전했다.

내게 연결된 직통 전화로 카운트다운이 들려왔다. 정치국원들도 함께 두근거리며 발사 순간을 기다렸다.

[발사는 성공적입니다!]

“아직 그리 말하기는 이르지 않나? 허허.”

영상으로 보이는 로켓은 점점 하늘로 멀어져가고 있었다. 이번에는 삐 삐 소리만 내뱉는 기계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를 싣고.

‘라이카….’

이번 ‘스푸트니크 2호’ 에는 최초의 우주견이 될 개, 라이카가 타고 있었다.

* * *

“뭐? 제기랄, 소련 놈들이 궤도에….”

“예. 그렇습니다 대통령 각하. 소련인들이 궤도에… 살아 있는 개를 올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들이 붙인 이름으로는… ‘라이카’는 궤도에서 1주일간 생존을 기대한다고 합니다.”

“해군 새끼들은 뭘 하는 거야!”

와장창, 맥아더가 이번 주의 두 번째 콘파이프를 던져 꽃병을 맞히자 와장창하는 소리가 나며 병이 바닥에 떨어져 부서졌다.

“소련은! 벌써! 저렇게! 앞서! 나가는데! 왜 해군 놈들은!”

“각, 각하… 송구합니다만… 시간과 예산을 조금만 더 주신다면….”

원래는 국무회의에 오지 않지만, 미국의 뱅가드 로켓 계획이 해군의 주도하에 이루어졌기에 참석한 해군참모총장 알레이 버크 제독은 굴욕을 참으면서도 맥아더에게 굽실거렸다.

맥아더는 자신과 갈등을 빚었던 군인들, 특히 육군의 마셜이나 해군의 고급 장성들을 전부 한직으로 돌리고 반강제로 퇴역시키며 당시 고작 투스타에 불과했던 알레이버크를 빠르게 발탁해 해참총장으로 삼았다.

물론 해군참모총장의 권한을 대폭 줄여가며, 맥아더의 심복이 배치된 합참의장 자리에 권력을 몰아주기는 했지만.

“그놈의 시간과 예산! 나는 당신네들에게 충분히 많은 시간과 예산을 주었소. 아직도 안 된다고 하면, 소련이 가능한데 당신들은 불가능하다 하면 우리는 사보타주를 의심할 수밖에 없소!”

“아, 아닙니다! 각하!”

“그러니 1주일 내로 발사를 준비시키시오. 당장!”

“!!!!”

다른 사람들도 맥아더가 제정신인가 하며 그를 쳐다보았지만, 경호원이 가져다준 세 번째 파이프를 물고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맥아더는 짜증이 가득한 눈빛으로 알레이 버크를 바라볼 뿐이었다.

“각하… 그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세 달, 아니, 두 달이라도….”

“사흘 주겠소. 당장 나가서 발사를 준비시키는 게 좋을 거요.”

“…알겠습니다.”

괜히 말 한마디 덧붙였다가 부하들에게 덤터기만 씌운 알레이 버크는 축 처진 어깨로 국무회의장을 떠났다. 다른 장관들 역시 그것이 가능하냐는 표정으로 맥아더를 보았지만 맥아더는 아랑곳하지 않고 파이프를 뻑뻑 피웠다.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해서 미국 사회를 뒤흔들자마자 다시 2호를 발사해 살아 있는 생물체를 궤도에 올리다니!

전문가들은 이것이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이야기했지만 한 가지는 명확했다.

‘소련이 앞서 나가고 있다….’

아직도 미국의 경제력은 소련의 그것을 훨씬 상회했고, 전반적인 기술력은 미국이 우월했다. 하지만 소련은 특정 분야, 그것도 선전하기 좋은 특정 분야에만큼은 국가의 기술력을 집중시켜 미국보다 한 걸음씩만 앞서 나가며 미국을 놀려먹었다.

“우리가 뭘 해야 저놈들에게 한 방 먹여 줄 수 있겠나?”

“….”

국가의 대계를 ‘저놈들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 마구잡이로 주무르는 맥아더가 아니꼬울 수도 있었겠지만 그걸 말할 정도의 배짱 있는 자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

예스맨들은 각자 잔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좋을까?

“…궤도나 달에 사람을 먼저 보내면 되지 않겠습니까?”

“달에 사람을?”

“예, 그것이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흐음, 달에 사람을 보낸다? 맥아더는 그 말을 흥미롭게 곱씹기 시작했다. 예스맨은 맥아더가 자기 말을 들어주는 것에 신이 났는지 떠오르는 이야기들을 마구 하기 시작했다.

“일단 달이라는 곳이 가까우면서도 우리 모두가 볼 수 있는 곳 아닙니까? 그곳에 성조기를 꽂는다면 그동안 소련이 자랑해 온 걸 모두 엎어 버릴 수 있을 것입니다. 내친김에 달에다가 우리의 성조기 모양으로 보이게 지형을 깎으면 매일 밤마다….”

“그거, 마음에 드는군그래?”

“감사합니다 각하!”

“우리 인공위성 발사 이전에 내가 연설을 좀 하도록 하지. 발사 시간은 미 동부 기준 프라임 타임으로 잡아두고, 내 연설을 최대한 많은 국민들이 들을 수 있도록 하게나. 알겠나?”

“예!!!!”

당연히 인공위성 발사에는 다른 조건들이 더 중요했지만, 맥아더에게 중요한 것은 재선이었다.

강하고 위대한 미국은 오직 나밖에 만들 수 없다! 그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뭔가 엄청난 성공이 필요했다.

빌어먹을 전쟁에서 이겼더라면 좋았겠지만, 부득이하게 패배한 이상에야 다른 수단들을 강구해야만 했다.

“내가 재선이 안 되면 자네들 역시 갈 데가 없을 걸세. 알지 않나?”

“예? 하하하하, 각하께서는 반드시 재선에 3선, 4선까지도 가능하실 겁니다!”

“맞습니다. FDR 같은 자도 4선을 했는데 각하께서 못 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허허허, 그런가?”

3선, 4선이라! 관례적으로 재선까지만 하던 미국 대통령인지라 맥아더는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4선! FDR과 같이 전쟁 특수를 누리며 뒤에 앉아 빨갱이들에게 퍼줄 궁리나 했던 자도 4선을 했는데. 전쟁영웅이 4선을 못 할 것은 뭐가 있을까?

어쩌면 5선, 6선, 그 이상을 노려도 될지 모른다. 골골대던 FDR과 달리 그는 건강했고, 일흔 살이 넘었지만 아직 20년은 더 해 먹을 자신이 있었다.

“자네들도 내가 대통령을 하는 동안은 부귀며 권력을 누리도록 해 주지. 내게 충성만 하게!”

“예! 각하!”

* * *

[뱅가드 로켓의 발사에 앞서 맥아더 대통령 각하께서 국민 여러분들께 한 말씀 전하시겠습니다.]

뱅가드의 발사! 소련의 스푸트니크 2호 발사와 라이카의 궤도 진입에 시무룩해져 있던 미국 국민들에게 뱅가드 발사는 몇 안 되는 희망적인 소식으로 다가왔다.

미국도 소련에 못지않은, 아니, 그 이상의 과학 기술을 가지고 있었지만 약간 시간이 늦어진 것뿐. 며칠 전부터 언론에서 뱅가드 발사 깜짝 발표를 해 놓고 내내 그 이야기만을 했기에 사람들은 기대감에 점점 들뜨기 시작했다.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대통령 맥아더입니다. 우리는 오늘 역사적인 순간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라디오로, 또 텔레비전으로 맥아더의 연설방송을 듣고 있었다. 언제쯤 뱅가드를 발사하려나 기다리며.

[…지금까지의 우주경쟁에서 우리는 소련의 시도가 이루어진 이후 따라가는 후발주자처럼 보였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부터 우리는 위대한 미국에 걸맞는 우주에서의 입지를 확보할 것입니다.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그것은 우주 공간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류 최초로 달에 갈 것입니다. 달은 우주공간 저편에서 미국의 진출만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그 너머의 우주로도 미국은 가장 먼저 발을 내디딜 것입니다!]

“!!!”

사람들은 맥아더가 내놓는 말에 충격을 받고 말았다. 아직 우주 공간에 사람이 들어가지도 못했건만, 달을 미국의 것으로 만들겠다고?

“와우… 저건 좀 마음에 드는데?”

“그러게. 역시 맥아더가 화끈하기는 하단 말이야.”

[이제 뱅가드 로켓 발사라는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옵니다. 저와 함께 카운트다운을 해 주시지요. 십, 구, 팔….]

텔레비전 화면은 이제 점점 굉음을 내며 엔진 불꽃을 피워 올리는 뱅가드를 비추어 주기 시작했다.

[미국 과학기술의 결정체가 드디어 떠오릅니다! 삼, 이, 일, 발사!!!!!]

“발사!”

“와!”

아마 이때를 기다려 샴페인을 터트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맥아더 행정부를 좋아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나라에서 만든 우리 물건이 우주로 가는 것에 감흥이 없을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다음 순간.

[콰콰콰쾅! 펑!]

“저, 저게 뭐야?”

“지금 터진 거 아니야?”

뱅가드는 발사대를 다 벗어나지도 못하고 화려하게 폭발해 버렸다. 미 전역, 아니 세계에 생중계로 방송되던 영상을 통해 수천만의 시청자들이 보는 앞에서.

근처의 단상에서 뱅가드를 배경으로 연설을 하던 맥아더는 화급히 뒤를 돌아서서 보았지만 그가 본 것은 불꽃을 뿜던 뱅가드 로켓이 반쪽이 되며 무너지는 꼴이었다.

“이… 이… 이….”

화가 나고 어처구니가 없어 맥아더가 아무 말도 못하던 사이 경호원들이 올라왔다.

“각하! 피신하십시오!”

“아니, 지금… 저…!”

어쨌든 화염과 연기를 뿜으며 무너지는 로켓이 안전해 보이지는 않았기에 맥아더는 검은 양복을 입은 덩치들 사이에 숨어 피신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로켓 근처의 생방송 카메라들이 멈추며 맥아더의 모습으로 방송이 전환되었다는 것이었다. 방금까지 우주는 미국의 정복만을 기다리고 있다며 떠들어 대던 ‘전쟁영웅’ 대통령이 사고를 터트린 후 계집애처럼 겁을 먹고 피신하는 꼴은 과히 보기 좋지 못했다.

수천만 세계인이 보는 앞에서 개망신을 당하고 있는지 맥아더는 몰랐겠지만.

* * *

다음 날 신문은 터지는 뱅가드와 몸을 움츠린 채 피신하는 맥아더로 1면을 장식했다.

[뱅가드 로켓 발사대에서 폭발하다]

같은 중립적인 제목 정도라면 그나마 나았다. 하지만 자극적인 황색 언론들은 먹잇감을 물어뜯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Kaput*―nik, 또 한 번 맥아더의 엿을 먹이다!]

[Staypunik 그냥 지상에 머물고 말다. 맥아더는 계집애처럼 피신….]

(*Kaput: 폭발하는 소리, sputnik를 이용한 말장난)

그리고 화룡점정은 스탈린이 직접 조문 편지를 보낸 것으로 찍혔다.

[우리 소련은 미국에 발생한 불행한 사고에 조문을 보내는 바입니다….]

애초에 사람이 죽지 않았으니 조문(弔問)을 할 것도 없었지만 스탈린이 의도한 바는 모두가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은 헛웃음을 터트리며 뻘짓을 한 맥아더와 그걸 또 얄밉게 콕콕 찌르는 스탈린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뱅가드(전위대) 로켓이라는 명칭은 어쩌면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리어가드(Rear Guard, 후위대) 로켓이라고 하면 어떨는지 우방국으로서 제안을 보내 봅니다.]

“이이이이익!!”

대놓고 너희들은 따라오는 주제에 무슨 전위냐고 비웃는 스탈린의 말에 맥아더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서류를 내동댕이쳤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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